자연과사람

한사정덕수 2015. 1. 28. 11:14

다시 그가 부르는 노래 모두를 빠짐없이 모아 즐기고 참으로 좋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삶의 문제에서 기대치를 낮추거나 행복하기에 긍정적이다말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거 같다. 이는 현재 충분히 만족할 정도의 삶의 질을 향유하고 있느냐는 문제에 대해 스스로 평가가 가능할 때 성립되는 이야기 아닐까.

차고 넘치는 것 보다, 조금은 부족하지만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긍정적인 삶을 살기에 행복하다는 것이 타당성을 갖추게 된다.

 


이런 생각의 한 자락을 붙잡고 있는 날이면 이오시프 꼬브존이 불렀고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도 불렀던 백학의 노래(Cranes)’를 상념의 바다에서 길어 올리고 노래를 찾아 듣게 된다. 날씨 탓일 수도 있겠고, 겨울비 뿌리는 풍경처럼 가라앉은 심상(心想)의 구성 자체가 잔잔한 호수에 투영된 사물처럼 명징하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다.


가끔 생각하지

피로 물든 들녘서 돌아오지 않은 병사들이

고향땅에 눕지 못하고 백학으로 변해버렸다고

그날이 오면 백학들과 무리지어

회청색 하늘을 날아가리

대지에 남겨진 그들 모두를

소리 내어 부르며


또한 봄이면 집 앞 냇가에서 시작해 점봉산과 끝청봉 자락에 무수히 피는 돌배나무에 핀 돌배꽃을 대할 때 이 노래가 생각나고 곧장 찾아 듣는 버릇이 있다.

 


곱고 경이롭기까지 한 저 돌배꽃을 보고도 슬픔 가득한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노래한 체첸공화국의 음유시를 떠올리는 까닭도 일종의 과거 집착적 성향 때문이란 거 부인하지 않겠다. 내겐 또 다른 하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방식이고, 온갖 사물마다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믿으며 그에 걸맞을 또 다른 대상들과 짝을 맞춰주는 일종의 의식이랄 수도 있다.

곱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건 슬픈 노릇이다. 환희에 찬 희망을 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아름다운 추억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다. 상처를 가슴에 안은 이들은 대상이 무엇이거나 모두 상처로 인식하고, 상처를 간직하고 있어도 그 자체를 받아들여 다시 희망으로 승화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떤 대상이든 아프게 다가온 것들까지 포용해 아름다움으로 빚을 줄 안다.

저마다 나무가 베어진 뒤에야 드러나는 나이테처럼 간직하고 있을 지나 온 날들의 잔상들이 있다. 봄이 되면 힘차게 물 올리기를 하는 나무들을 견고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대지도 켜켜로 쌓인 시간의 나이테를 간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대지나 나무, 다른 이들과 형태는 다르지만 내게도 세월의 흔적들로 선명하게 드러나는 나이테를 간직하고 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은 물론이고,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다양한 문화적 창작 작업을 하는 이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더러 겉치레에 불과한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이들에 대해서는 그런 마음 끌림 자체가 없다. 어진 농부가 밭을 일구고 두엄을 내어 씨앗을 뿌려 작물을 가꾸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에 대해서라면, 그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간섭이 되지 않을 선에서는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어쩌면 그런 마음 끌림은 내가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고 시작된 습관이리라. 한 그루 나무로 서 있으면 관상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제대로 된 숲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일이다. 성공회대 석좌교수이신 신영복 교수께서 그런 사람의 관계를 일러 일찍부터 더불어 숲이라 하셨다. 참으로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처럼 근사한 표현 아닌가.

 


모르는 이들은 간혹 이런 이야기를 한다.

참 좋으시겠어요. 고향에 살고 이 좋은 풍경 속에 계시면 글이 절로 써지시죠?”

과연 그럴까?

어쩌면 지금은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 비워진 곳간이 있었고 채우기에 바쁜 때인지도 모른다.

물이 아래로 향하여 흐르더라도 빈틈없이 모두 꼭꼭 채워야 다음으로 향해 나가고, 강을 이루어 바다에 당도하였을 때 온갖 이야기들 뒤섞여 안고서도 말없이 한 몸이 되듯 그런 과정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실상은 안주하여 더 이상 그리워할 대상을 잃어 그리움 듬뿍 배인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런 생각은 나 혼자의 것이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리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말들로 채워진다.

과거의 추억들이 현재의 저를 커다란 힘으로 지배를 한다면, 결국 지금의 제 모습이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이치를 알기에 그저 묵묵히 이 속에서 듣고자 하는 걸 찾고 보고자 하는 걸 찾으며 지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먼 훗날 지금 이순간이 그리워지면 다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몰처럼 거침없이 풀어놓겠지요.”

인고의 시간에서 길어 올린 그리움이나 간절함이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다시 그 시와 노래를 바탕으로 또 다른 문화적 행위들이 불꽃을 일으킨다. (무용)이 그러하고, 영향을 받을 또 다른 형태의 창작도 그러하다. 형태가 다소 몽환적이고 현실적으로 유효하지도 않은 몽상적일지라도, 광폭의 그리움과 간절함의 우물에서 길어 올려 진 시는 다소 거칠고 투박한 단어의 조합에 지나지 않을 때도 여전히 명징하고 구태여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길 있어야 바람이 지나는 것 아니다. 관능적인 몸짓으로 흔들리던 꿈이 바람이 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시에서 가능하고 노래이기에 가능하며, 이리 기묘한 내면의 울림이 움직여 깊고 그윽한 파동이 비로소 가능하다.

모차르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고 돈 지오반니피가로의 결혼’, ‘레퀴엠을 안다거나 좋아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쉰베르크나 스트라빈스키, 프로코피에프 등 많은 작곡가들을 알거나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누가 작곡을 하거나 연주를 한 줄 모르고 특정 곡 하나를 좋아한다는 경우가 많다. 물론 밥을 짓는 일에 익숙하고, 김치를 담그는 일이 익숙한 사람이 밥과 김치에 대해 말하듯 익히 아는 대중가수들에 대해서는 조용필을 좋아한다거나 이선희가 좋다고 쉽게 말 하듯 그 분야에 대해 관심이 깊고 오랜 세월 더불어 함께 하면 절로 목신의 오후가 아니라 입에 드뷔시가 참 좋다는 말이 감칠맛 나게 달라붙을 것이다.

 


들꽃이나 사평역에서와 같은 한 곡의 노래가 아니라 시린(詩隣)’이라는 음반 전체로, 다시 그가 부르는 노래 모두를 빠짐없이 모아 즐기고 참으로 좋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많게 되면 세상에 노래를 하는 가수로 활동한 입장에서 노래를 하길 참 으로 잘 했다생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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