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사람

한사정덕수 2019. 3. 19. 09:49

봄은 경쾌한 노란색 가득한 노래다

 

산수유와 벌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꿀을 모우는 벌이 산수유 향기에 날아와 분주하게 움직인다. ⓒ 정덕수

 

봄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 연초록의 새싹을 떠올리는 사람은 봄빛은 연둣빛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럴까? 막 껍질을 깨고 마당으로 종종 걸음을 옮기는 병아리 태반이 노란색이고, 들을 수놓는 꽃 대부분 노란색인데 연둣빛이 맞을까? 틀렸다고는 안 한다. 생각이 다를 뿐, 연둣빛도 맞고 노란색도 맞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구성지게 들려오는 봄날은 간다가 봄이면 저절로 입에서 흥얼거려진다. 정경은 그려지는데 어떤 맹세를 했는지는 그저 미루어 유추만 할 뿐 뭔지는 모르고 그냥 따라 부른다. 꽃이 핀다고 같이 울고, 꽃이 진다고 같이 웃는 건 맹세와는 전혀 상관없다. 하지만 봄은 봄인지라 굳은 맹세 없어도 나도 모르게 마음은 이미 들녘과 산으로 향한다.

 

돌이켜보면 지키지 못한 약속 참으로 많이 했다. 그렇다고 정치인들처럼 때마다 공약을 낸 건 아니다. 달콤한 약속으로 누군가 가슴 아프게 만들지도 못했다. 그건 돌이켜보면 눈치도 없고, 배짱도 두둑하지 못해서였던 거 같다.

 

30년 전에 지금처럼만 봄을 느낄 줄 알았었다면 삶의 궤적은 확연히 달랐겠다. 망설이면 놓친다. 속을 꺼내지 않는 습관이 미덕인 줄 알고 살았던 지난날이 지금 생각하면 썩 잘 된 선택이었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도 않는다. 후회한다고 돌이킬 수 없어서만은 아니다. 그런 지난날들이 지금의 나를 완성했고, 앞으로의 나를 존재하게 했으리란 믿음에서다.

 

생강나무꽃 산수유와 닮은 꽃으로 많은 사람이 말한다. 그러나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은 절대로 혼동하지 않는다. 멀리서 보더라도 명징하게 두 가지를 구분한다. 한계령 아래 오색마을에 핀 생강나무는 나무 종류로는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 ⓒ 정덕수

 

한계령, 어느덧 한계령에서를 쓴지 40년이 코앞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을 한계령을 올랐다. 하지만 떠나있을 때의 간절함이 언제든 갈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고 해소되진 않는다. 여전히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마다 의미를 두는 일만 늘었다.

 

또 다시 한계령에서 2

-한계령 겨울나무에게

 

조금만 더 비추면 좋겠다 싶던

짧은 오후 햇살 은근히

마른 잎 하나 간직하지 못해 가난에 익숙한

한계령 산자락 겨울나무 가지 끝마다 매달리니

비로소 완성되어 반짝이는 빛의 두께

 

시리고 찬, 바람도

날카롭게 울어대던 눈보라도 견뎌내던

졸참나무 털진달래 가지마다

눈부시도록 환한 겨울 꽃으로 피어난다

 

잊혀질까 두려워했던

잊힐까 가슴 조이던 조바심 탓에

아득히 잊었던, 잊고 있던 막막한 그리움 하나

풍경 속에서 온전히 세상으로 나선다

 

사소한 기다림 하나도

아직 명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세상 소음에 여전히 흔들거리는데

 

넌 이미 알고 있었구나

겨울 한계령 나무는.

 

한계령 풍경을 담고 오색을 지나 남설악터널 못 미쳐 빨닥고개로 불리는 옛길로 향했다. 국도에 차를 주차하고 사진촬영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을 택했다. 터널이 개통되곤 하루 몇 대 안 다니는 도로지만 비교적 말끔한 편이라 차가 다니기엔 아무 지장 없다.

 

전날 비가 내렸기에 고개엔 산불감시원도 나오지 않았다. 부지런한 양봉을 치는 사람이 벌통을 옮기고 있다. 생강나무가 만개했으니 이른 봄 잡화꿀을 얻을 기회를 놓칠 수 없겠지. 어려선 생강나무와 참나리는 꽃의 향기가 짙어 고약한 냄새로 생각했다. 나이가 들며 그 향기가 편해졌다. 마치 어려선 비리게만 느끼던 젓갈이 나이 들며 입맛을 돋우는 거나 비슷하다 할까.

 

생강나무꽃 약리작용이 알려지며 최근엔 산수유보다 생강나무가 사람들에게 수난을 당한다. ⓒ 정덕수

 

최근 생강나무는 수난을 겪는다. 살균과 항균 작용을 하고, 어혈을 풀며 부종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꽃을 채취하는 수준을 넘어 가지를 잘라 차로 이용하거나 술을 담그는 사람들이 늘었다. 더러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키는 신통한 재주를 설파하는 사람도 있다. 좋다고 과용해서 이로울 일이 없다는 걸 알아야 할 일이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왜 물에 떠 흘러가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굳이 그건 이상한 표현이라고 따지진 않는다. 그저 봄날 흥을 고조시키기 좋고, 입에 착 감기는 맛에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입에 뱄다. 봄빛은 노란색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꽃들이 대체로 노란색으로 피는 까닭이다. 종류부터 살펴보면 생강나무, 산수유가 목본류로는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고 개나리가 뒤를 이어받는다. 그 다음 초본류로는 복수초가 1월부터 만나고 다음으로 괴불주머니가 나선다. 그 뒤로 노랑제비꽃과 양지꽃이 핀다. 이때쯤 돼야 흰색과 분홍색, 보라색의 꽃들이 산과 들을 물들이며 나무도 잎을 낸다.

 

산수유와 생강나무, 개나리만 이야기하면 누군가 히어리도 있는데라 하겠다. 거기에 풍년화와 영춘화도 대체로 노란색이다. 이 세 종류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흔하게 만날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생전 본 적 없는 이들도 있고.

 

생강나무꽃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녹나무과의 낙엽관목인 생강나무는 산에서 눈에 확연히 띄는 꽃으로는 가장 먼저 피는 나무의 꽃이다. ⓒ 정덕수

 

오래전 한 어른이 사람을 부르더니 , 산에 가서 산수유 좀 꺾어 오니라. 단지에 꽂아 가게 분위기 좀 살리게라고 하는 말을 듣고 의아스러웠다. “도대체 산에 뭔 산수유가 있단 말인가? 누가 산자락을 개간해 산수유로 조림을 했나싶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말을 듣고 나간 양반이 한아름 야무지게 꺾어 온 건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였다. 시킨 이나 듣고 나간 이나 둘 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못해도 소통은 되니 다행이랄까.

 

생강나무와 산수유는 나무나 꽃, 잎 모두 다르지만 이를 구분하는 방법을 모를 경우 생강나무를 산수유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잎이 핀 다음엔 생강나무를 산수유라 하는 이들을 못 봤다. 꽃이 피는 봄철에만 혼동하는 걸 보면 잎만큼은 동정할 줄 알거나, 잎이 핀 시기엔 숲을 들어가기 곤란한 탓일 수 있다.

 

잘 모르면 인정하고 확실하게 배울 일이다. 모르는 걸 감춘다고 아는 게 될 턱없다.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고 모르면 조용히 다른 사람의 뜻을 따르는 게 현명하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려다보니 독초 박새를 명이나물이라 쌈 싸먹고, 노랑매미꽃을 참나물이라 우기며 동의나물을 곰취로 둔갑시키는 신통술을 부린다.

 

노랑제비꽃 봄을 알리는 꽃들 가운데 제비꽃도 빼 놓을 수는 없다. 영서지역엔 귀하지만 백두대간의 동쪽 지역엔 노란색 꽃을 피우는 제비꽃이 있다. 양양에서는 어디서나 노랑제비꽃을 요즘 시기에 흔하게 만날 수 있다. ⓒ 정덕수

 

비슷한 모양, 그런데 말이다. 이 비슷한 모양을 떠나 같은 모양이라도 성질이 전혀 다를 수 있다. 곰취와 동의나물, 곤달비는 모양까지 닮았지만 전혀 다른 식물이다. 물론 곰취와 곤달비는 먹을 수 있는 나물이다. 물론 이걸 얘기 하려고 같은 모양이란 표현을 꺼내진 않았다. 같은 곰취를 말하는 거다.

 

곰취는 토양과 조건에 따라 맛이 달랐다. 재배를 한 곰취도 노지와 하우스란 조건에서 맛이 다르고, 자연산도 지역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다. 거기에 더해 채취한 시기에 따라 부드럽게 풍미를 느끼거나, 강한 향에 거부감을 갖게도 한다. 똑 같은 모양의 주변에서 생산되는 곰취를 놓고 자연산과 재배를 구분하는 수준을 넘어, 같은 자연산도 채취한 지역을 구분한다면 믿을 수 있는지?

 

몇 년 전 모 방송사에서 특집으로 사할린의 동포들에 대한 삶을 조명했다. 이때 동포들의 음식을 먹는 러시아인들을 중요하게 다뤘다. 고사리를 익숙하게 먹고, 조개와 오징어를 먹는 이야기가 비중 높게 다뤄진 이유는, 러시아인들은 이전엔 나물은 물론이고 우리가 즐겨먹는 조개나 오징어를 안 먹었단다. 그런 그들이 이젠 러시아에 정착할 수박에 없던 우리 동포들의 음식을 즐겨 먹는 수준을 넘어 봄이면 산을 찾아 산나물을 채취하는 모습을 방송이 소개했다.

 

이때 그 이전, 모 방송사가 양구 곰취 축제를 소개한 방송을 보고 지적한 상황보다 황당한 화면에 할 말을 잃었다. 양구 곰취 축제 방송은 곤달비를 주민들의 말만 듣고 곰취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사할린의 러시아인들이 곰취라며 채취하는 나물은 노랗게 꽃이 핀 동의나물 아닌가. 방송내용 어디에도 곰취로 잘못 알고 동의나물을 러시아인들이 뜯고 있다는 볼 수 없었다. 다만 화면이 바뀐 뒤 러시아인들이 채취했던 동의나물이 흐르는 물에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이 비춰졌다. 아마도 방송에 동행한 동포 누군가 이건 먹을 수 없는 동의나물이라며 버리게 한 모양이다. 방송엔 이런 내용도 다루지 않았다.

 

노랑제비꽃 한국 각처의 산지에 나는으로 도감은 설명하고 있지만 영서지역에선 쉽게 찾을 수 없었다. 3월 중순부터 4월 하순까지 양양군에서는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 정덕수

 

섣부른 판단은 목숨까지 위협한다. 산나물이나 버섯, 그리고 약초 때문에 병원을 찾거나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매년 발생한다. 명이 하나만 해도 줄기는 얼레지나 은방울꽃 등 비슷한 종류가 수 없이 많다. 잎은 어린 박새나 은방울꽆과 비슷하다. 그러니 박새를 귀한 명이나물로 알고 사찰에서 스님이 신도들 밥상에 내 놓는 사건도 발생한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도 구분 못하는 눈썰미라면 산에서 비슷하다고 아무 거나 뜯는 습관은 버리자. 그러고 보니 동의나물과 노랑매미꽃도 꽃빛이 노란색이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기왕에 시작하면 뿌리는 뽑자. 산나물을 뿌리까지 뽑으란 소리 아니다. 노래 하나를 불러도 2절까지 있으면 2절까지 모두 불러야 노래의 참맛을 알고, 3절가지면 3절까지 부를 일이다. 뭔가 배우려면 끝까지 파고들어 제대로 몸에 익혀야 내 것이 된다.

 

산수유꽃 남자한테 참 좋은데, 남자한테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던 광고가 있었다. 그리고 김종길 시인의 시 성탄제엔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라 산수유를 노래한다. 산수유는 층층나무과로 분류된다. ⓒ 정덕수

 

열아홉 시절 황혼이 슬퍼진다니 이해는 난감하다. 노랫말을 쓴 이의 나이가 열아홉이 아닌 까닭일 수도 있겠고, 말 못할 연정 때문에 애별린 처녀가 저녁답 바라보는 풍경이 자신의 속내 같지는 않을까.

 

같은 듯 다른 꽃과 산나물은 절대노력 없이는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 사는 세상 닮았다. 누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겉모습만으론 구분하기 어렵고, 관심을 지니고 깊이 알아야 그 품성을 이롭게 만나니 말이다.

 

얄궂은 봄날은 어느덧 곁에 다가왔고 오래지 않아 속절없이 떠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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