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세의 팡세

오솔 2019. 8. 16. 05:35







<꿈>을 하루에 다 읽었다. <흙>, <무정>에 비하면 단편이다. 지난 두어 주일은 춘원 이광수 소설에 푹 빠진 셈이다. 오래 전에 읽어 저장되었던 스토리의 기억은 바래져서 희미하고 주인공 이름들만 또렷하게 남아 새삼 새로웠다.


춘원 이광수. 그는 누구인가... 다시 들춰본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이광수론의 한 시각>에서 몇군데 발췌한 내용이다. 춘원에 대한 많은 평전이 있지만 특히 유년기 시절의 춘원 인격 형성 과정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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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이광수며 어릴적엔 이보경으로 불린 춘원이 태어난 곳은 평양서 북쪽으로 200여 리 떨어진 정주군, 거기서도 40리 들어간 돌고지 마을이었다. 조선 왕조 개국 501년이자 고종 29년이요 동학혁명과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두 해 전(1892년)이었다...

 

"아버지(이종원)는 열다섯에 첫 장가를 들어 삼 년 만에 상처를 하고 ,두번째  맞은 이는 딸 하나를 낳고 돌아가고 나를 낳은 어머니는 세번째 장가든 이었다. 내가 난 것이 아버지 마흔두 살 때,어머니(충주 김씨)는 삼취가 되어서 스물세 살 적이었다...  열다섯 살에 서른다섯 잡순 아버지의 재취로 들어오셔서 일생을 가난 속에 보내셨습니다..." (이광수의 회고)


이러한 부모가 콜레라에 걸려 거의 동시에 사망한 사실이야말로 그의 생애를 결정하는 심리적 상처에 해당된다. 광수의 나이 11세 였다...

어린 광수를 구출하여 세계속으로 끌어낸 것이 동학이었는데 동학이 고아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다. 동학이 관헌의 감시하에 포교활동을 하던 어두운 시절, 몰래 문서 돌리기와 교도들의 접선 심부름꾼으로 고아가 적격이었던 것. 그가 일본 유학에 나아갈 수 있었던도 오직 동학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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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성경 및 톨스토이주의에도 조예와 통찰력이 있었고 ,특히 불교에서 법화경 행자로서 구도적 탐구를 현실 속에 서 실천했지만 종교 학자나 종교인으로 규정하기는에는...중후한 평론을 썼으나 평론가로 국한시킬 수도... 민족적 경륜을 펼친 대논설을 통해 그가 사상가로  규정하기에도...소설을 통해 당대 소설계를 풍미해했지만 소설가로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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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士는 돈을 벌자는 직업이 아니외다. 文士라는 직업은 적게는 일민족을 크게는 전인류를 도솔하는 목민의 성직이외다..." (이광수)


文士라는 용어와 그것이 안고 있는 개념을 종교보다 두고 있음은 문사의 몫이 종교와 동등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신성하다는,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 어디서 말미암은 것일까...






춘원 이광수는 1916년, 24세에 근대소설의 효시이자 춘원의 첫 장편소설인 <무정>을 썼고 1932년 <흙>, 1938년 <사랑>을 발표했다. 신문학의 개척자로서 수많은 작품으로 우리나라 근대문학사에 불멸의 업적을 쌓았다. 한만 국경, 상해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하였다.


1937년 흥사단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39년 '복지황군위문'에 협력함으로서 친일의 행보를 하였으며 1943년 '조선인 학생의 학병' 권유차 동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 대목에 대해선 춘원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건아니다. 그러나 1919년 동경 유학생으로 <조선청년독립단 선언서>를 기초하여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춘원에게 흠결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죄인, 비록 大淸 光緖에 나고 明治 大正의 巨喪 입고 天照 昭和에 절한 더러운 몸이언마는 건국선서 투표하는 날 조국은 나를 용납하여 불렀다. 7월 17일 헌법공포식 중계방송 듣고 흘린 감격의  눈물로 먹을 갈아 사는 날까지 조국 찬양의 노래를 쓰련다. 그리고 독립국 자유민으로 눈 감으련다."  해방이 되고 1948년 8월 <삼천리>지에 춘원은 이렇게 썼다.


1950년 6.25 때 공산군에게 납북되어 그 해 사망했다.  58세. 그는 조선천지가 알아준 천재였다. 길지 않은 일생이었다.

<꿈>은 춘원 말기인 1947년의 단편 작품으로 <삼국유사> 권3 낙산이대성관음정취조신조(洛山二大聖觀音正趣調信條)의 <조신 설화>를 소설화 한 것이다. '조신'은 '달례'에 대한 욕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깨달아, 일개 하찮은 중이었던 조신으로 하여금 이때부터 일심으로 수도하여 '낙산 사성'이라는 네 명승 중에 한 분인 조신대사가 되었다는 줄거리다.


스스로 '文士'로 불리어지길 바랐던 춘원의 꿈.  는 허망하고 덧없다는 불교사상을 밑바탕으로 바로 춘원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본 행적이 소설 <꿈>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디서고 읽지 못했던 글...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를 쓰자니 장황하고 적당히 쓰자니 뭔가 미진하고 앞뒤가 안맞고...
글이라는게 본래 그렇습니다.
이광수는 여러모로 근세사에 아껴야할 자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