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무 아리랑

오솔 2021. 7. 11. 20:16

 

 

 

 

 

 

79.

 

 

그리고 이 주일 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드물게 창원공장에서 프로젝트 보고회가 있었다. 나는 이희종 CU장과 함께 공장으로 내려갔다.

보고회가 끝나고 현장 투어가 있었다.

현장의 격려야말로 탑이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을 이희종 CU장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 대로 둘렀다.

사장이 현장에서 현장사원들로부터 생생한 정보를 확인했다. 평소 의문사항을 묻고 애로에 일일이 격려를 잊지 않았다. 간혹 농담도 섞어가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사장으로서도 기분이 좋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사원으로서도 그 것 만큼 최고의 선물은 없었다. 조직에서 신뢰와 보람이 다른데 있지 않았다.

 

이희종 CU장의 당시 모습을 사보는 이렇게 썼다.

“ 이희종 CU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청주, 오산, 천안공장을 방문하여 현장의 혁신활동을 주도하고있는 ‘ BEST 21 ' 팀과 자리를 같이 했다.

‘ 혁신활동을 수행하는 여러분들은 실행을 한 후에 성취의 보람이 있으나 그 과정에서 외로움이 있을 것이다. 협조 부서에서 100%의 협조나 공감을 기대하지 마라. 활동에 동참하는 협조자를 서서히 만들어 가라. 3분의 2가 되면 성공이다. 조바심을 내지 말고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활동에 진력해 달라. ’

이 자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

 

설계실이었다. 막 자리를 옮기려고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 사장님! ”

뒷줄 어디에선가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A팀의 윤용호였다. 오늘 프로젝트 보고회를 지원하기위해 마침 창원공장에 내려와 있었던 것이다. 

CU장이 돌아다보았다. 모두들 엉거주춤 일어선 채였다.

 

“ 사장님, 저희들과 ‘ 다함께 BEST BEST 21 ’ , 한 번 하시죠. ”

윤용호의 속사포 같은 말투에다 느닷없는 제안에 CU장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더 긴장한 건 주위의 사원들이었다. CU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에 조마조마하며 촉각을 세웠다.

“ ........... 뭐지? 그래 한번 해보자. ”

CU장도 쾌히 승낙을 했다. 

“ 저 따라 하시면 됩니다. ”

“ 먼저 한번 해봐. ”

윤용호가 설명과 함께 두어 번 시범을 보였다.

“ 재미있군. 그래. 그럼 내가 해볼까. ”

“ 시작하시죠. ”

“ 다함께! ”

드디어 CU장이 선창을 했다.

“ 좀 더 크게 하시죠. ”

“ 그래, 알았어. ”

“ BEST! "

그 자리에 있던 칠팔 명이 따라 외쳤다.

 

” BEST! “

그러자 CU장이 전보다 더 힘차게 외쳤다.

이어서 모두 제창을 했다.

” 21! “

 

우렁찬 목소리였다. 조용했던 현장이 온통 혁신구호로 뒤흔들렸다.

여기 저기 앉아있던 설계실 사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이희종 CU장은 시골 아저씨같이 파안대소했다. CU장의 이런 모습을 보고 사원들은 모두 함께 활짝 웃었다.

“ 재미있군. 이왕 하는 김에 한 번 더하지. ”

 

CU장의 혁신구호 제창이 다시 이어졌다.

‘ 다함께! BEST! BEST 21! ’ ,

CU장이 몸소 시범으로 보여준 ' BEST 21 '의 제창. 이것이 혁신구호 제창의 시발이었다. 탑이 혁신을 선도하는 상징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장면 하나 하나가 쌓이면서 산전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윤용호가 했다. 아니 해 냈다.

 

 

“ 상무님, 사장님의 혁신구호 제창, 들으셨죠? ”

 

나를 본 윤용호는 의기양양했다. 약속했던 선물, 당장 무슨 선물 줄 거냐고 졸랐다.

그 친구는 파평 윤씨 11대 종손이었다. 그런데 딸 만 셋이었다.(1995년, 김상무 아리랑 79화)

 

 

 

 

 

이희종(1933-2021) LG산전 부회장님의 별세를 애도합니다.

 

 

 

 

 

 

 

 

 

 

 

 

 

 

 

 

 

제 책상에는 2001년 8월 11일 강남의 한 중국집에서 있었던 A팀 모임에 함께하셨던
이희종 부회장님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이 놓여있습니다.
그닐은 김상무아리랑의 탈고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부회장님께서
애써 마련하신 자리였습니다. 그 분은 우리 A팀의 정신적 지주셨습니다.
참 큰 어른이셨습니다. 진정한 리더셨습니다.
삼가 부회장님의 명복을 빕니다.
그렇지. 이희종 부회장님이 A팀을 강남의 어느 중국집에 특별히 초청하여 저녁을 사주셨지. 김상무 아리랑을 다 읽으시고 A 팀이 그렇게 고생한 줄 몰랐다는 말씀... 귀에 쟁쟁하네.
2001년 8월11일 그 사진은 서재에 나도 가지고 있네. 자네가 찍어 액자에 넣어 보내준게지. 며칠 뒤 그 사진 올려볼게.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이회장님 명복을 빕니다
3,230님은 누구시길래?
현장의 격려야말로 탑이 해야할 일이라고 하신 데에 큰 공감을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1년에 사장님 얼굴 한번 못보는 것도 문제지만 그 밑에 부사장, 전무조차 한번도 현장 방문을 하지 않습니다. 이 글을 그분들 면전에 들이밀고 싶네요.
조직의 모든 문제는 현장에 있습니다. 방구석에선 모릅니다.
들이미십시요. 부사장,전무... 출근해서 점심시간이나 기다리면 안되지요.
글을 읽다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런가요? 공감의 폭이 넓습니다.
https://blog.naver.com/kckoh2309/222152855714
저는 당시 실무자로서 회고했습니다. 상무님 존함은 근무시절('87~'97) 들었으나 연구소 팀장/실장 이었고, 이종수사장님체제에서 안양연구소가 4개로 쪼개지고, 실도 5연구단 체제에서 3개연구단 10개실, 그리고 20여개 실로 마구 분해되는 후반부에 IMF를 맞아 로봇사업을 철수하던 시절 15년간 몸담은 LG를 떠나게 됩니다. 그때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ckoh2309/222152855714
화이팅입니다. 최호현 상무님을 모셨었습니다. 돌아가신 ㅠ
A팀! 오랫만에 접하는 단어입니다.

산전의 엘리트 집단.
A팀! 오랫만에 접하는 단어입니다.

산전의 엘리트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