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무 아리랑

오솔 2021. 9. 1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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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룹의 전략업종인 정밀화학과 유전자공학 분야 그리고 컴퓨터, 반도체 등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 분야와 통신기기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과 혁신을 가속시킬 것이며... 

 

그룹의 최강점 업종분야이자 그룹 발전의 양대지주인 화학과 전자, 전기, 통신분야를 집중 육성하며... '

 

 

1983년, <럭키금성>그룹이라는 새 이름으로 새 출발하면서 <선진 '83>을 선포했다. 그룹 5만 명 임직원에게 강조한 구자경 회장의 신년사였다. 

 

 

 

‘ 우리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정보, 금융, 유통, 개발 등 3차 산업을 우리 그룹의 주력사업인 제조업의 경쟁력을 더욱 높일 수 있도록 본격화하며.... ’

 

 

92년10월 28일 럭키금성 그룹내 '해외 현지법인장의 역할과 사명'을 주제로 구자경 회장의 강의 내용이다.

 

그룹의 3차 산업이란 제조업의 지원을 의미했다. 모처럼 제조업종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은 눈에 띄었으나 산전 분야가 돋보이는 '말씀'은 지난 10년동안 없었다. 

 

 

 

 

 

 

' 4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 인텔리전트 전력감시시스템을 독자개발하여 시판에 들어갔다. 인텔리전트 감시시스템은 수배전 설비의 감시 및 제어에서 과부하, 지락, 순시과전류를 자동으로 통제하므로서 전력, 전압, 유/무효전력, 전력량, 주파수, 역률 등 계측 요소들을 종전의 아날로그방식에서 디지틀화를 실현... '

 

‘ 우리 기술로 로봇, 산업기구를 처음 생산한 이래 공장자동화와 무인화, 시스템의 체계화를 이루어 가는 산업전자의 영역에서 금성산전은 리더 역할을 ... ’

 

 

최근 <산전소식> 사보와 KOEX에서 열린<제6회 빌딩산업전> 전시회 기업홍보 문안이다. 산전은 묵묵히 노력했다.

 

 

 

신가전, 정보통신, 신소재 그리고 반도체가 그룹에서 '금성'을 대표하는 사업이라면 '산전'은 산업용 전기 전자 시스템의 한 축이었다. 관심과 지원에 따라 뻗어갈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트윈타워 동관'이 산전에 힘을 실어주었다는 징후는 체감하지 못했다. 그룹이 산전 분야를 바라보는 시각은 일관성이 없었다. 그만큼 산업용 전기 전자사업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룹 회장실에 포진하고 있는 참모들도 한계가 있었다. '산전 하면' 고압 전기를 다루는 위험 이미지에다 그다지 돈이 안되는 선입견이 겹쳐 골치 아프다는 제스처가 먼저 나왔다. 잘되는 사례는 금성이나 화학이고 잘못된 사례는 산전에서 찾았다.

 

금성사 창원공장 강성 노조 파업도 철망 울타리 너머로 산전 노조에서 물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금성사 이은준 상무의 편을 들어 우겼다. '산전'을 침울하게 했다.

 

 

 

'산전'을 알아야 했다. 그룹의 주력회사인 전자, 화학, 정유와 근본이 다르다. 그러나 늘 전자, 화학, 정유와 한 통속에 넣고 비교를 했다. 산전을 가늠할 잣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구본무 회장 체제로 넘어오면서 이런 분위기는 심화되었다. 선대 구자경 회장은 진주사범을 졸업하고 구인회 창업회장 밑에서 작업복을 입었다. 공장 현장을 수시로 찾았다. 89년 내가 청주 공장장으로 있을 때 한햇동안 공식 비공식으로 두 번 방문했다.

(회장 비서실에서 별도로 전화가 걸려와, 회장님이 들렀을 때 회장님 차에 '술을 두어 병 실어 드려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공장 친화형 회장님으로 받아들였다.)

 

 

 

산전 분야는 국가 기간 인프라 산업에 기여하는, 그룹에서 유일하게 중공업 제품이다. 산업용 전기 제품은 단품과 시스템으로 나뉘어 진다. 일반 민수용 가전과 달리 한전, 서울시, 조달청 등 정부 관공서나 대형 건설업체가 주요 고객이다.

 

사업의 스케일 측면에서 그룹 내 자매사 사업과는 달랐다. 빤짝빤짝하고 넥타이 메고 회전의자 돌리는 회사 제품 분위기가 아니다. 중후장대한 제품과 건설 현장과 연결된 노가다 이미지가 우중충한 회사로 이어졌다.

 

 

 

 

LG그룹과 삼성그룹이 중복된 사업에서 LG가 삼성에 졌다. LG가 먼저 시작했지마는 삼성에 패배하여 2위로 밀려난 사업들이 한 둘이 아니다. 삼성에 대한 패배의식은 얄미울 정도로 따라붙는 삼성에 대한 견제와 경쟁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삼성을 따돌리고 우뚝 선 사업 분야가 바로 산업용 전기 메이커 산전이었다. 전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라면  부정하지 않았다. 

 

삼성이 LG를 추월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법적이 분쟁으로 이어진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러나 모두 이겼다. 삼성으로 하여금 유일하게 자존심 상하는 분야로 남게 만들었다. 우리의 자부심이다. 

 

 

‘ 전기는 산업의 기본. 산업용 전기는 없어질 수 없는 사업이다. ’

 

‘ 남북 통일의 그 날을 대비한다. ’

 

화려하진 않아도 끌리는 맛은 있다는 뜻이다. 산전분야의 매력이 그것이다. 없어선 안되는 사업, 통일이 되었을 때 폭발적이 수요...  두 가지 소신만 지녀도 산전의 절반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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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래 사장과 에피소드 세 가지. 

 

 

1.

 

최선래 사장으로선 1박 2일의 첫 출장이었다. 나는 최 사장과 청주공장으로 내려갔다. 사장의 권유에 따라 사장 옆자리에 앉았다. 

 

 

 

최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취임 인사차 주요 언론사를 순방한 적이 있다. 나는 총무부장이었으므로 수행을 했다. 신문사마다 사회면 아래에 '본사 내방 인사' 고정란이 있던 시절이다.

편집국장, 부장 자리를 돌았다. 묻고 물어 자리를 찾아서 갔는데 그 시간에 없는 간부들이 많았다. 

 

 

" 일일이 다 만나야 되나? 명함만 던져놓고 오면 되지! "

 

 

 

그날 이후 두어 달만에 첫 동승이었다. 그 사이에 조직 개편으로 나는 심사부장이 되었다. 심사부장은 최선래 사장과 김영태 부사장이 공장에 내려갈 경우 동행 했다.

 

현장에서 지시사항을 정리해서 관련부서에 배포하고 실천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여 보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점령군이 강조하는 철학이었다.

 

 

남산터널을 벗어나 한남동을 지나 제3한강교를 건너 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최 사장이나 나나 별 말이 없었다. 내가 운을 뗐다.

 

 

" 저희들이 잘 해야 하는데... 힘드시죠? "

 

" 나야 하는 게 뭐 있나? 허허, 자네들이 고생 많어. "

 

강원도 억양이 구수했다. 점령군 사령관에게 주눅들었는데 뜻밖의 어감이었다.

 

 

공장 현장 투어를 마치고 시내 음식점에서 관리자들과 저녁 회식을 했다. 일정을 끝내고 청주관광호텔에 도착했다. 그날은 마침 개발실의 이정훈부장도 내려왔었다.

 

최 사장이 방으로 올라가며 내일 아침에 일어나 조깅을 하자고 돌발 제안을 했다. 최 사장은 조깅을 염두애 두고 온듯 했다.

저녁 늦은 시간에 이 부장과 나는 급히 택시를 불렀다. 무심천 다리를 지나 청주 6거리 시장에 나가 운동화부터 마련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약속대로 사장 차로 세 사람은 상당산성 쪽으로 향했다. 산성 길 중턱에 차를 멈추었다. 다소 내리막길을 뛰기로 하고 차는 산성 초입으로 내려보냈다.

 

 

“ 됐어. 이제 뛰자!”

 

 

최 사장의 선창으로 뛰기 시작했다. 20미터 쯤 뛰었을가.

 

 

“ 어이, 김 부장. 걷자! 걷자! ”

 

“ 예? ” 

 

“어, 힘들어. 걸어, 걸어.”

 

 

세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기 시작했다. 2백 미터쯤 걸어가자 사장은 허리를 꾸부리더니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어이구, 그만 해. 차 불러.”

 

 

말만 들었지 생전 처음해본 조깅은 이렇게 끝났다.

 

 

 

 

2.

 

 

“ 어이, 김 부장, 우리 수박 하나 먹고가지그래. ”

 

 

청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프라타나스 터널 숲길을 따라 대농 공장 인근에 이를 즈음이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원두막을 발견하고 최 사장이 말했다. 청주공장 도착예정 시간이 많이 남았다.

 

 

수박밭이 있었다. 한여름이라 전원 풍경은 오뉴월 뙤약볕에 늘어질대로 늘어졌다.

 

“ 많이 먹어. 김 부장. 수박은 이렇게 먹어야 제 맛이여. ”

 

 

'점령군 사령관'과 전혀 다른 최선래 사장의 면모를 보았다. '포고령'이 난무하던 때였다.

 

 

 

3.

 

1983년 5월, 일 주일 예정으로 명성산 아래 폭포가 코 앞에 보이는 산정호수 콘도. 심사부장이던 나는 <금성계전 5개년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범전, 중전, 전자 3개 사업부 기획부장과 기술 개발부장 등 10 명을 인솔하여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었다.

 

 

밤잠을 줄여가며 마무리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최선래 사장이 워크샵 현장에 나타났다.

 

“ 한번 와 봤어. 차나 한잔 하고 갈려구. ”

 

함빡 웃음을 웃으며 일일이 우리들의 손을 잡았다. 서울 충무로 극동빌딩에서 차나 한 잔하러 포천 땅까지 달려오기에는 먼 거리였다. 예고 없이 사장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나의 수첩에 유쾌한 삽화로 남았다. (59화 계속)

 

 

 

 

 

 

 

 

 

 

 

 

 

 

 

 

그 시댜에는 럭키는 인화 (좋은게 좋은) 삼성는 무도건 1등이 motto엿조. 몸조심 vs. 공격적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