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무 아리랑

오솔 2022. 1. 1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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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책임은 분명히 사장님에게 있습니다. “

 

94년 2월 1일자로 발간된 < a 레터 > 창간호 제1신의 표지 제목이었다.

 

 

사보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 특히, < a 레터 >는 회사의 잘못된 부분을 과감히 지적하고 임직원의 의식개혁을 촉구하였다. ‘ 그 책임은 분명히 사장에게 있습니다 ’라는 원고가 수록되어 산전CU 임직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

 

 

에이플랜 팀이 활동한지 반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나는 혁신관련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별도의 매체를 발간하기로 했다. < a 레터 >였다.

 

 

 

 

 

 

 

에이플랜 활동 초기에는 에이플랜의 3사 통합작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노조를 자극하지 않고 사원들의 불필요한 잡음과 긴장감을 야기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오히려 알리고 호소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정립해 가는 편이 유익하다는 판단에 다다랐다. 

 

산전CU가 '21세기의 초일류 기업'을 나가는 과정에 에이플랜이 진행되는 내용을 조직 내에 신속 정확하게 공유함으로써 조직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 a 레터 >는 수동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공격적으로 방향을 돌린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에이플랜의 작업은 사업의 진단을 통한 현황파악 > 사업상 과제추출 > 조직상의 과제해결 이라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12개 < 주요사업의 진단 >에서 ‘신제품 개발’과 ‘품질관리와 AS’, ‘코스트’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중심과제로 나타났다. 우리 사업의 횡적인 핵심 기능이었다.

 

 

이와 같은 과제를 93년 12월 23일 오후 두 시부터 세 시간동안 에이플랜 팀의 보고회가 진행되었다. 에이플랜 팀으로서는 두 번째 종합 보고회였다.

 

 

 

이날 있었던 광경을 테마로 < a 레터 > 제1신인 창간호에 이렇게 썼다.

 

 

“ 여러분들, 1988년 9월 17일이 무슨 날인지, 1990년 9월 22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88 서울 올림픽 개막식이 잠실 운동장에서 있었던 날이고, 북경 아시안 게임이 시작된 날입니다.

 

욕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잠실에서 미국선수단이 입장할 때 선수들의 무질서한 행동을 보고 동방예의지국의 관중들은 그들의 무례함을 비난했습니다. 더욱이 우리 선수단의 보무당당하고 절도 있는 모습에 견주어서...

 

그런데 웬 일입니까. 북경에서 보여 준 우리 선수단의 모습은 바로 2년 전에 잠실에서 보인 미국 선수들의 행동을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욕하면서 배우고 무의식중에 따라하고 있습니다. 여과 없이 흉내내고 있습니다. 주위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지만 며느리들은 지독한 시어머니를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그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또다시 불평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철저하리 만큼 대물림을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문제해결의 관건이겠지요.

 

‘ 과거의 청산 ’

 

요즈음 시중에서 흔히 듣는 말입니다.

 

잘못된 관행과 분위기를 바꾸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피눈물나는 작업입니다. 기업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산전CU도 같습니다.

 

적과도 동침할 수밖에 없고 마른 수건도 다시 한 번 짜야 하는 오늘입니다. 우리 산전CU에 잘못 정착되고 있는 고정관념의 꼬리를 어떻게 떼어야 할 것인가.

 

 

살아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 우리 산전CU에서 우리의 경영과제를 풀어나가는데 문제가 임원에 있다. ’ 나아가서는 ‘ 사장에 있다 ’ 라고 어느 사원이 말한다면... 그것도 공식석상에서...

 

 

지난해 12월 23일 오후.

 

이날은 에이플랜의 두 번째 종합 보고회가 있었던 날입니다. 이날의 테마는 우리의 ‘ 품질관리와 품질향상 ’ 이었습니다. 누구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하나같이 딱 부러지게 자신을 갖지 못하는 오래 된 숙제가 바로 품질문제입니다.

 

에이플랜 팀이 약 두 달 동안 분석하여 만들어진 자료는 불과 20 쪽의 보고서였습니다. CU의 법인사장을 비롯한 경영회의 임원들이 모두 참석하였고 실무자들도 빽빽이 배석한 자리였습니다.

여느 보고회보다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더욱이 최근 계전의 에너지사업부 관련제품에 대한 민원 때문에 분위기가 더욱 그러했습니다.

 

 

에이플랜 팀의 한창진 부장이 침착하게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0여 쪽이 지나도록 보고자의 목소리만 낭랑할 뿐 별다른 질문이 없었습니다.

 

 

“ 다음은 사내 각 계층에 있어 품질의식수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는 각 계층 별로 몇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나온 코멘트 를 그대로 옮겨 본 것입니다. ” 

 

 

바로 ‘ 표 ’의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들어갔습니다.

 

 

< 표 >

Top의 품질에 대한 관심은 높으나 그 생각이 사업부장 이하 전 사원에게 침투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려움.

 

 

사내 각층의 품질의식

( 인터뷰 코멘트 별 )

 

Top : “ 품질은 중요과제 ”

사업부장 : “ 원칙을 지키지 않는 국민적 풍토의 문제로 방법이 없음. ”

               “ 나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장장의 품질 마인드가 문제임. ”

               “ 라인 스톱을 하여 근본적인 해결을 한 후 생산을 재개하지 않고 생산을 계 속하면서 개선하는 등의 보완적인 작업으로 대응하고 있음. ”

 

공장장 : “ 납기와 품질, 어느 쪽을 택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역시 납기, 그 다음에도 품질이 아니고 코스트 임. ”

담당자 : “ 생산의 이븐 로딩을 위한다면 특채를 하지 않을 수 없음. ( 생산관리 과장 )

            “ 외주업체의 품질관리와 생산지도는 QC, 생산기술의 업무이고 나는 관계가 없음. ( 협력과장 )

 

- Top의 목소리나 경영철학이 조직 전체에 흘러가지 않는다. 흘러가더라도 엉뚱하게 변질이 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나버린다.

- 달성되어도 그만 안 되어도 그만, 뒤를 챙기지 못한다.

- Top은 큰 줄거리를 보아야 하는데 각론에 치우친다.

- 이리저리 표류하는 의사결정은 없는지, 드러커는 < Top의 일관성 있는 행동에서 부하의 신뢰감은 우러나온다 >고 했다.

 

 

 

여기에서 정적을 깨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기전의 김회수 사장님이었습니다.

 

“ 그러면 보고자의 생각으로는 그 책임이 Top에 있다고 보요?( 보는가? ). 솔직히 말해 보소. ”

 

뜻밖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부장의 입에 집중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부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결연한 어조로 말을 이었습니다.

 

“ 그 책임은 분명히 Top에게 있습니다. ”

 

순간 ‘ 와- ’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이때 모든 참석자들의 표정이 그렇게 밝은 적이 없었다고 봅니다. 딱딱하던 분위기가 일순에 부드러워지면서 화기마저 감돌았습니다.

 

듣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은 해야 하는가 봅니다. ‘노' 라고 해야 할 때 머뭇거리고, ‘예스'라고 해야 할 때 엉거주춤하는 그런 일이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 지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정녕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지 않을 때 그 조직은 이미 살아있는 조직이 아닙니다.

 

우리 사장님들부터가 아랫사람들의 진솔한 자기 표현에 귀를 기울이고 또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초일류로 가는 조직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증거입니다. "

 

 

 

 

 

“ 깨 부숴라. 장본인들이. ”

 

자판기의 계속되는 불량에 대한 이희종 CU장의 지시였다. 며칠 후 창원공장에서는 망치소리가 요란했다. 불량 자판기를 깨부수는 소리였다. 불량을 만든 ‘ 나 스스로 ’를 채찍질하는 소리였다. 

 

“ 클레임을 받은 제품, 운동장에 모두 모으도록 해! 망치를 들고 부숴서 없애! 그런 걸 제품이라고 만든 사람들이 직접 해야 돼. 장본인들이 스스로 깨서 없애지 않고는 불량이 고쳐지지 않아. ”

 

 

 

“ 그 책임은 분명히 Top에게 있습니다. ”

 

파급 효과는 컸다. (3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