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의 찬양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분신사바' 코쿠리(コックリ)귀신은 韓國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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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2012. 9. 26.

 

 

 

    '분신사바' 코쿠리(コックリ)귀신은

韓國 귀신이다!

    - 영화 <분신사바>, 일본의 '코쿠리', 서양의 'Table Turning'의 관계 -

  - 무속적 韓流 '코쿠리'(狐狗狸)사마의 기원은 '(高句麗)사마'와 '굿거리' -

 

"분신사바 분신사바 도오죠 오잇데 쿠타사이!”

 - 한국영화 <분신사바 -

 

    "Kokkuri-sama, Kokkuri-sama, please descend, please descend.

     Come now, please descend quickly."

                         - 미국의 학술지 논문 <The Mystery of Kokkuri> -

 

    コックリさん、コックリさん どうぞ お言で くたさい"

                                         - 일본 전통 코쿠리상(コックリさん)을 부르는 주문 -

 

 

위의 내용들은 귀신 부르는 주문이다. 이 모두가 본래 '코쿠리' 귀신에 대한 내용이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되어 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진 <분신사바>는 무당이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이 아니라 십대 청소년 몇이 모여서 분신사바라는 귀신을 불러내는 것이지만, 주문이 일본어인만큼 '코쿠리'를 불러내는 주문이다. '코쿠리상' 의식은 19세기 일본 전역을 강타했던 귀신불러내는 의식이었다. 

 

    

 

*캘리포니아 대학(at Riverside)의 일본어와 비교문학 교수인 Michael Eylan Foster 교수의 <Strange Games and Enchanted Science: The Mystery of Kokkuri> 라는 논문에 올라 있는 일본인들의 전통 코쿠리 의식 모습. 사진은 필자가 위의 논문이 실린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에서 보내오는 학술지인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2006 5월호(Volume 63, No.2) P.252를 촬영한 것임.

 

귀신을 불러내는 전통사회의 엑소시즘은 오래된 인류학적 문화였다. 해리포터 이야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손오공>에서도 나오는 귀신을 불러내서 귀신을 막아내는 목적으로 '주문'을 외우는 이야기는 오래된 역사적인 '유산'이다. 일본어 도오조 오잇데 쿠타사이(どうぞ お言で くたさい)부디 말씀해 주소서!”라는 귀신에게 요청하는 주문인데 어떻게 하여 한국영화에서 일본어 주문이 나오는지 그 연유를 모른 채 일본 귀신을 불러내는 것으로 우리 청소년들에게 이해시켜야 할까? '분신사바'는 일본의 '코쿠리' 영향일까 아니면 일본의 '코쿠리'가 오히려 한국 귀신문화의 영향일까?

 

일본에서 <코쿠리상>이라는 타이틀로 상영된 한국영화 <분신사바>(안병기 감독 2004)는 본래부터 '코쿠리상'을 불래내는 내용으로 게임형태로 '귀신'을 불러내는 의식이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다른 원인이 있지만, 이런 귀신 불러내는 놀이 아닌 놀이가 비록 형태는 다소 달라도 19세기에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했다. 일본에서 불러내는코쿠리사마’(コクリ-)가 나이 어린 청소년들일 경우 주로 존칭을 조금 하향시켜 코쿠리상(こくりさん)으로 불러냈다.

 

       コックリさん、コックリさん、お言で くたさい"

          (코쿠리상, 코쿠리상, 말씀해주세요!)

 

그러니까 비록 영화에서이지만 <분신사바>는 전통적인 귀신을 불러내는 동양적 엑소시즘의 전통을 바탕한 작품이다. 그런 '코쿠리'(コクリ)를 기반한 한국영화 <분신사바>가 일본에서 개봉되면서 <コックリさん>(코쿠리상)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것은 그것이 '코쿠리' 귀신에 대한 내용이며 그런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발하여 일본에서 영화 제목으로 택한 것은 '콧쿠리상'인데 그것은 한국에서 온 '분신사바'에 대한 '코쿠리'를 다소 달리 의식하여 접요사 를 넣어 '콧쿠리상'(クリさん)으로 영화 제목을 잡은 것이다.

 

<분신사바>는 헐리우드에서도 'Spell'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한다는 뉴스까지 있었다. Spell은 코쿠리의식에서 알파벳 보드를 깔고 볼펜을 잡기 때문인데 그것을 서양에서는 위저보드라고 하는데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테이블 터닝'의 축소판 형식이며 이것이 일본의 코쿠리의식에 영향을 주어 일본어 알파벳 종이를 깐 코쿠리의식이 일본 코쿠리의 형식에 영향을 주었으며 이번 <분신사바>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게 보면 과연 서양인들은 분신사바아니 코쿠리사마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 코쿠리 귀신이 본래 서양인들의 귀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닐까? 그들도 귀신 불러내는 유사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 <분신사바>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면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 영화 <분신사바>의 한 장면. 삼각다리가 있는 테이블을 사용했다.

               아래에 다시 설명하겠지만, 베트남의 '돌아가는 기적의 테이블'은 위의

               사진과 같은 테이블이다.

             

'코쿠리사마'나 '코쿠리상'에서‘사마의 존칭을 빼면코쿠리는 어떤 귀신일까? 왜 공포의 대상이 되는 코쿠리 귀신을 불러내는 것일까? ‘코쿠리가 기본적으로 카타카나인 것을 보면 코쿠리 귀신은 분명 일본귀신은 아니다. 그런데도 코쿠리 귀신은 일본의 엑소시즘 문화에서 가장 유행한 귀신이었다. 오늘 이 글의 목표는 최초로 코쿠리 귀신의 정체가 한국 귀신이었다는 것을 파헤치는 역사학적인 고스트바스타아니 코쿠리바스타글이 될 것이다.

 

 

1. 영화 속의 '분신사바' 귀신 부르기

 

영화 제목으로 선택된 분신사바는 국적불명의 제목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일본의 코쿠리사마의 코쿠리 귀신 불러내는 내용을 모방한 것으로 나타난다.

 

<분신사바>에는 두 세명이 둘러앉아 연필이나 볼펜을 함께 잡고 위에 언급한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데 쿠타사이!”주문을 외워 귀신을 부른다. 그 목적은 귀신을 불러내 운수를 물어보기 위함이다. 이러한 형식은 고구려인들의 영고의식에서 나타나는 귀신부르기는 물론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꼬댁각시 굿과 유사한데가 있다는 정도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필자는 '코쿠리' 그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부터 그 연원은 하나하나 풀어낼 것이다

 

               

               *세 사람이 문자판 위에서 '코쿠리' 귀신을 불러내는 장면

                이것은 세 개의 대나무 다리를 가지는 코쿠리 의식의 축소판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대로 일본의 청소년들에게 유행하고 있는 것은 일본어 알파벳 50음 글자들을 새긴 종이판 위에서 진행되는 코쿠리 의식이다. 알파벳 외에도, 귀신에게 물어보는데 필요한 숫자, 예스와 노, 남녀 등의 단어를 몇개 적은 종이 위에 10엔짜리 동전을 놓고 그 위에 참가자들의 집게 손가락을 하나씩 서로 뻗어 맞댄다. 이때 주문을 외우면 누군가 손가락이 밀려서 세 사람이 함께 손가락을 댄 동전은 어떤 글자 위로 밀려가서 어떤 결과의 점괘를 얻게 된다. 물론 과학적으로 사람은 고정된 자세를 오래 취할 수 없어 무의식적으로 자기최면 현상에 걸려 누군가 손가락을 먼저 움직이게 되어 동전이 움직인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 실제 귀신이 아닌 것이다.

 

 

*일본에서 코쿠리상을 불러낼 때의 '코쿠리' 판 모습의 하나

 

코쿠리 의식의 방법이나 '코쿠리'의 어원적 기원은 아직 알려진 바 없다. 필자가 최초로 여기에 대하여 밝혀내고자 한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요즈음의 일본 코쿠리 의식에서 때로 50음 카나 글자와 동전을 사용하는 방법은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에서 온 위저보드(Wigger Board 또는 Wiggy Board) 또는 영응반(靈應盤)이라는 것의 영향이 가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대로 서양의 위저보드는 종이에 알파벳 25자를 써놓고 숫자 밑 Yes No 그리고 출구용으로 Good bye까지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코쿠리 보드와 비교할 것)

 

            

     * 서양의 '코쿠리' Wigger Board에서 오늘날 일본의 코쿠리 판이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유행되는 귀신 불러오기는 전통적인 코쿠리 의식에서 파생된 편법에 불과하다. 본래 1880년대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대유행한 코쿠리 의식은 세 개의 대나무 다리를 중간에 묶어 벌려 세운 뒤에 그 위에 둥근 탁자를 올려놓은 구조의 테이블에 세 사람이 둘러앉아 한 손을 살짝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한 사람이 주문을 외운다.

 

        코쿠리사마, 코쿠리사마, 도오조 오이데쿠타사이!”

 

         

           *코쿠리 의식을 행한 전통 세 다리 탁자(필자가 JAS 학술지 논문에서

              촬영 - 아래 다시 소개)

 

그렇게 주문을 외우면서 귀신이 내린 사람은 앞으로 약간 상체를 구부리도록 주문한다. 주문이 시작된 몇분 뒤에는 누군가에게 코쿠리 귀신이 내려와 정말 한 손을 테이블 위에 얹은 채 앞으로 약간 구부리게 된다. 이때 테이블의 다리 구조상 반대편 사람들의 손 무게로 인하여 어깨를 약간 앞으로 구부리는 사람 쪽의 테이블은 약간 들리게 되어 있다. 그렇게 어깨를 약간 구부리게 된 사람에게 '신이 내린' 것이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은 그 신내린 사람에게 묻고자 하는 짧은 질문들을 하면 그 신내림 받은 사람은 질문마다 짧게 대답을 한다. 이러한 형태가 변형되어 세 다리 중의 하나가 들리게 되도록 하는 것 대신에 볼펜을 잡고 문자보드 위로 움직이게 하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이다. 대나무 시대가 볼펜시대로 축소되고 시대를 따라 변화된 것이다.

 

 *볼펜 잡는 것을 세 개의 다리를 가진 본래의 코쿠리 테이블 모양으로

 그래픽처리하고 있다.(일본의 코쿠리 관련 사이트에서)

 

<분신사바>에서 두 사람이 볼펜을 잡고 있는 모습의 원형은 세 다리의 탁자 위에서 세명이 코쿠리상을 부르는 것이라는 의미가 위의 그래픽에서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19세기 일본의 귀신 불러내기 놀이가 지금도 일본에서 없어진 것이 아니다. 1970년대 다시한번 대유행을 거쳐 현재에도 오늘날의 일본 초등생 중등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귀신놀이이다. 그 이름이 다소 변형이 되어 큐비트상, 키라키라사마, 엔제루사마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지기도 한다. 그 질문하는 내용도 개인 점에서부터 일본의 미래까지 알아보는 점술 미래학의 답처로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음 사이트는일본의 미래를 코쿠리사마에게 물어본다는 사이트다. (日本の未来をこっくりさんに聞くために) http://media.excite.co.jp/daily/thursday/030828/

 

그 주문의 형태도 다양하다.

 

코쿠리사마, 코쿠리사마, 여기는 태양계의 세번째 혹성인 지구의 일본 XX XX XX마을입니다. 내려와주십시요. 부디 내려와주신다고 대답을 주시기 바랍니다

「こっくりさま、こっくりさま、ここは太陽系、第三惑星地球、日本の××県××市××町です。どうぞおいでください。もしおいでになられましたら「はい」へお進みください」

 

 

 2. '코쿠리'의 기원을 찾아서

 

국제적으로까지 확대되어 간 <분신사바> 영화에 나오는 코쿠리 의식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일본에서 코쿠리(こくり さん, コクリ-)의 한자는 狐狗狸, , 또는 告(코리) 표현하기도 하는 등 중구난방이다. 그만큼 그 기원에 대하여 분명하지 못한데가 있다는 의미다. 주목되는 것은 사람 귀신을 불러내면서 한자를 짐승들의 의미를 가지는 '狐狗狸'(여우, 개, 너구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무언가 배타적인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일본인들은 코쿠리 귀신 불러내는 의식이 일본 전통 귀신이 아니라는데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에서 온 것인지에 대하여서는 아직도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떤 일본인들코쿠리상은 15세기로부터 유럽에 유행한 심령술(spritualism) 1884년에 일본에 유입되어 들어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さんは15世紀からヨーロッパに流行した占いで、日本に入ってきたのは1884年だといいます。

http://64.233.167.104/search?q=cache:_xCEyeUtyXUJ:karen.saiin.net/~soweiru/okaruto/kokkurisan.htm+%E5%AD%A4%E7%8B%97%E7%8B%B8&hl=ko&gl=us&ct=clnk&cd=4

 

또 다른 사람들은 '코쿠리'가서양에서 온 귀신으로 말하면서도 코쿠리가 口寄せ(쿠치요세) 같은 전통적으로 이치코(또는 이타코)라는 여성의입으로 불러내는귀신에 연결시키기도

 

그러나 일본에서 가장 유행한 귀신인 '코쿠리사마'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한국귀신이라는 것을 말하는 일본인들이 있으면서도 서양인들에게는 오히려 '코쿠리' 의식이 서양에서 온 것으로 달리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영화 <분신사바>를 만들면서 그 누구도코쿠리사마가 한국귀신임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더 큰 문제가 있다그래서인지 일본의 코쿠리문화에서 따왔으나 그 이름을 피하고 분신사바라는 국적없는 귀신이름을 만들었고 일본인들은 그것을 일본상영 제목으로 코쿠리로 바꾸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의 자부일까? 아니다. 코쿠리에 얽힌 한국귀신의 뿌리를 추적하여 코쿠리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되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코쿠리사마의 한반도 기원을 밝히려 한다.

 

          

             * 본래 세 사람이 기본으로 하던 '코쿠리상' 불러내기가 두 사람으로도

               하게 되고 이것이 볼펜을 잡고 두 사람이 의식을 행하는 방식의 

               모양으로 발전했고 그것이 영화 <분신사바>에도 영향을 미쳤다. 

 

  

3. 코쿠리에 대한 현재의 잘못된 주장들과 19세기 코쿠리 기원론

 

상당수 일본인들은 '코쿠리'가 '무쿠리 코쿠리'에서 나왔고 그것은 몽고와 고려의 일본 침략과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분신사바>가 나오고 일본에서 <코쿠리상>으로 개봉했을 때 나는 한국의 영화비평가들이 적어도 코쿠리 귀신의 기원을 언급하여 코쿠리의 한반도 기원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영화 제작사는 물론 그것을 언급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한국영화 <분신사바>가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업된다는 뉴스가 나오던 즈음 내가 회원으로 있는 The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에서 보내오는 학술지인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2006 5월호(Volume 63, No.2)의 첫번째 논문이 코쿠리귀신에 대한 것을 보고 다시한번 <분신사바>의 주문을 생각하게 되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도오죠 오이데 쿠다사이!"

 

시기적으로 일본에서 한국영화 <코쿠리상> 영화 개봉 때문에 이와같은 논문의 모티베이션이 되었을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영화의 원작이 한국영화 <분신사바>였기 때문에 코쿠리 귀신의 원천이 한국이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지 그 논문을 읽으면서 Footnotes까지 샅샅이 읽어보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대학(at Riverside)의 일본어와 비교문학 교수인 Michael Eylan Foster 교수의 <Strange Games and Enchanted Science: The Mystery of Kokkuri> 이 논문은코쿠리 귀신의 기원을 다루는 학술적인 논문임에도 고구려는 커녕 단 한 줄도 한반도나 코리아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었. (최근 그 논문은 웹사이트에서도 올려져 있다)

http://64.233.167.104/search?q=cache:IMbjxQ9EN3QJ:www.aasianst.org/catalog/65-2-foster.pdf+Kokkuri+Michael+Dylan+Foster&hl=ko&ct=clnk&cd=1&gl=us

 

그 논문의 요지는 1885년에 일단의 미국 항해사들이 일본에 전해준 심령술(spritualism) 놀이가 코쿠리사마귀신 불러내는 놀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원천적인 코쿠리의 기원에 대한 진위를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한국학계나 한국의 영화계를 포함하여 한국인들이 코쿠리귀신의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들어 놓고도 '코쿠리'의 기원은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떠돌게 되는 것이다.

 

여느 다른 많은 한반도 역사가 그렇듯이 일본인들의 그릇된 정보를 그대로 전달받는 미국의 역사왜곡의 한 장면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코쿠리 기원 문제는 중요한 내용의 하나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코쿠리 귀신에 대한 일본인 문화사학자 히로타카 이치야나기는 1994년의 논문에서 코쿠리는 아메리카로부터 들어와 재생된 놀이였다”(As cultural historian Ichiyanagi Hirotaka puts it, Kokkuri was “the trendiest of recreations [asobi] from America”고 말하는 식이다.(위의 포스터 교수의 논문에 인용)

 

위에 언급한 포스터 교수의 논문에서 "1884년 미국 항해자들이 일본의 이즈의 시모다 지역에 들어와서 코쿠리를 퍼트렸는데 일본인들이 영어 이름을 몰라서 코쿠리로 이름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러한 히로타카 교수같은 현대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코쿠리 불러내기가 최대로 유행했던 일본의 19세기 학자들은 코쿠리의 기원을 서양에서 왔다고 했을 것인가.

 

JAS(The Journal of Asian Studies) 논문에서 말하는 미국인들의 심령술이 일본에 전해졌다는 것은 나름의 서양전통의 심령술(spritualism)에 기반하고 있기는 하다. 1848년 처음 뉴욕주의 하에데스빌(Hydesville)에서 시작되었다는 귀신을 불러내는 'Table Turning'(탁자 돌리기)은 미국의 심령술은 유럽 특히 1851년 전후에 최초의 국제박람회가 열렸던 영국 런던의 심령술로 수입되어 갔고 “epidemic of table-truning” 유럽에 퍼져갔다는 것이. 다시 1885년에 미국인 항해인들이 일본에도 전파시켜 그것이 코쿠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논문에서 언급하는 '코쿠리'의 기원은 테이블 터닝’(Table Turning)이었다는 것이다.

 

And, although these Americans told (the Japanese) that the method was called “table-turning,” the locals, unaccustomed to Western language, substituted the word “Kokkuri.”(포스터 논문, p 259).  

 

'테이블 터닝'은 테이블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옆으로 각각 손바닥을 펼쳐 엄지와 옆사람의 새끼손가락이 닿게 하면 누군가의 손가락에서 뭔가를 느껴 손을 움직이게 되고 그것이 결국 테이블이 오른쪽 아니면 왼쪽으로 필히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돌아가면 귀신이 내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방법이다(사진참조). 심리적인 면에서 코쿠리사마와 닮아 있는 것은 틀림없다.

                         

            

               * 서양인들의 귀신부르기(Spritualism)

                   The Spiritualist craze spread in Victorian society

                   포스터 논문(JAS)에 실린 19세기 서양의 '테이블 터닝' 모습

                   (필자가 논문의 그래픽을 촬영한 것)

 

 

 

런던에서 이와같은 '테이블 터닝'이 유행하자 정말 귀신이 내리는 것인지 19세기 당시 Michael Faraday이라는 사람이 두 가지의 종이를 사용하여 심리적으로 사람이 손을 움직이게 된다는 것을 밝혀냈다그뒤로 이것은 일종의 놀이처럼 되어 귀신불러내기 놀이처럼 되어 갔다. 서양인들의 테이블 터닝에 대하여서는 웹사이트의 <WAS ANYBODY THERE?>라는 다음 사이트 글을 참조할 것. http://uk.geocities.com/supernaturaltv/was_anybody_there.htm

 

그러나 과연 이러한 전통이 미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을까? 미국에서 영국에 파급된 것이 1851-1853년이라면 어딘가 동양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많은 동양적 르네상스의 영향의 결과는 아닐까?

 

 

4. ‘코쿠리(狐狗狸)사마의 기원은 高句麗사마였다

 

얼마전 이곳 시카고에서 위성으로 시청한 한국의 모 방송국의 프로그램 가운데 베트남의 3대 기적가운데 이상한 돌아가는 테이블’이란게 있었. 다리가 세 개인 오래된 테이블인데(앞서 언급한 사진을 참조할 것) 한 사람이 두 손바닥을 가볍게 올려놓고 고정자세로 있으면 잠시 후에 그 테이블이 옆으로 돌아간다. 위쪽 탁자가 그것을 고이는 바닥과 연결되는 부분이 돌아가는데 사람이 가만히 있어도 돌아가는 것이다. 몇사람이 함께 손을 올려놓아도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취재하는 PD가 그 테이블을 분해해 보아도 아무런 장치도 없는 평범한 테이블이다. 베트남 사람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그 어떤 '귀신내림'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돌아가는 테이블이 베트남인들에게 프랑스 식민지때 서양식 테이블 터닝의 심령술의 한 풍습에서 이어져 온 것일까? 아니면 일본침략 때에 전해진 코쿠리일까?

 

물론 그 방송물에서는 원인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신비한 테이블정도로 나레이선을 마치고 있었다. 이러한 '코쿠리' 같은 현상에 대해서는 위의 포스터 논문에서도 그리고 코쿠리에 관한 일본인들의 웹사이트에서도 '과학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사람이 고정자세로 고요히 있으려 하면 어딘가 오래 있지 못하여 심리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추적하는 것은 코쿠리 현상이 귀신현상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다. '코쿠리'라는 말이 가지는 그 코쿠리 의식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코쿠리는 한국 귀신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일본의 코쿠리호수(蘭越町のコックリ湖 ). 이 호수는

             코쿠리 귀신이 나오는 호수라는 것일까? 아니면 고구려 영향을 받은

             '고구려 호수'일까?

 

 

일본에서 こくり(코쿠리)의 현재의 한자는 狐狗狸이다. 여우, , 너구리를 각각 말하고 있다. 귀신을 불러내면서 동물 이름을 넣은 것은 다분히 왜곡의도가 있어보인다. 본래는 한반도 관련 이름이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실제로 こくり(코쿠리)는 본래 高句麗’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흔히 일본역사나 일본어를 공부하는 한국인들이 초기에 百濟=구다라, 新羅=시라기 정도는 알아도 高句麗=코쿠리라는 것은 잘 모른다. 더더욱 むくり こくり가 蒙古 高句麗)’라는 더욱 잘 모른다. 코쿠리는 무쿠리와 함께 일본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대륙의 귀신들이었다.

 

코쿠리사마'(コクリ-ま)高句麗사마'(コクリ-)였다는 것을 이제 드러내자. <분신사바> 영화가 일본을 거쳐 헐리우드까지 진출하여 리메이크된다면 적어도 코쿠리사마’를 불러내는 그 코쿠리 귀신은 한국귀신이라는 것은 알려야 하겠기 때문이다.

 

고려시대 때에 몽골군과 일본침략이 있었으니 코쿠리사마는 엄격히 말하여 高麗사마였다. 앞서 언급한 고리()사마'(コリ-)코쿠리사마의 다른 명칭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은 고려시대에도 고구려라고 부르기도 했기 때문이다. 고려와 몽골이 일본을 정벌하러 갔을 때의 공포적 트라우마가 그 이름 코쿠리속에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에는 코쿠리사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무쿠리사마도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 역사학계의 논문에서 일체 코쿠리=고구려이야기의 언급이 없다는 것은 아직 이런 이슈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에서 우리나라 역사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むくりこくり = 蒙古 高句麗”(무쿠리와 코쿠리 = 몽고 고구려(고려))를 뜻하는 것은 일본측에서도 엄연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もくりこくりは、どうやら「むくりこくり」の言い回しの方が通ってるらしい。漢字にもあるように、むくりは蒙古、こくりは高句麗を指すよう。この二つの背景としては元寇の時。日本だと鎌倉あたりになるらしい。

 

(모쿠리코쿠리는 또 무쿠리코쿠리로 말해지기도 한다. 한자에도 있는 것 같이 무쿠리는  蒙古, 코쿠리는 高句麗를 가르키는데 그 배경은 원나라때이다. 일본의 카마쿠라 말기의 일이다.) http://d.hatena.ne.jp/kamuraco/20040301

 

 

蒙古高句麗(もくりこくり、むくりこくり)は、日本への蒙古来襲のときに、水難死した蒙古人や高句麗人の亡霊であるといわれる 

 

(몽고 고구려(모쿠리코쿠리, 무쿠리코쿠리)는 일본으로 몽골군이 침략할 때에 바다물에 빠진 몽고인들과 고구려인들(고려를 말한다)의 망령이다)

http://page.freett.com/sekihantaki/tadaf/kaat/kaparuien.html

 

5. 일본에서 아이들 울음도 그치게 한 코쿠리 귀신 온다!”

 

한국 전통사회에서 우는 아이를 그치게 하려면 "호랑이 온다!"라는 것이 가장 유행했다. 그런 반면에 일본인들에게는 "코쿠리 귀신 온다!"라는 것이다. 그 '코쿠리'는 고려시대 때 몽골군과 고려군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의 그 공포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일본인 학자들이 '코쿠리'=고구려라는 사실을 발표한 자료들을 보자. 다음은 키타무라(喜多村)씨가 <むくりこくり鬼> (吉川弘文館 1979)에 발표한 내용 가운데 나오는 것으로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사이트에서도 볼 수 있다.

子供が泣いているのをやめさせるのに、「むくりこくり鬼が来る」という。むくりこくりとは蒙古と高句麗のことである。

 

(아이들이 울고 있는 것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서 무쿠리코쿠리귀신이 온다라고 말한다. 무쿠리코쿠리는 蒙古와 高句麗다.)

http://www.nichibun.ac.jp/YoukaiCard/5860055.shtml

 

여기에서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코쿠리 귀신'은 '고구려귀신'이라고 발표한 것을 볼 수 있다. 아사히 웹사이트 등 에서도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元寇の時、蒙古・高麗軍が日本を襲ったことを、「蒙古高句麗の鬼が来る」といって怖れたことから、転じて子供の泣くのをとめるのに、「むくりこくり、鬼が来る」とおどす風習となったという。

(원나라 때에 몽골군과 고려군이 일본을 침략한 것을 몽고 고구려의 귀신이 온다라고 말하여 겁을 주어서 아이들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무쿠리 코쿠리 귀신이 온다라고 하는 풍습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http://www.asahi-net.or.jp/~GH7S-FNHR/otohime.html


子供が泣いているのをやめさせる時に、「むくりこくりの鬼が来る」と言う。

 

(아이들이 울고 있는 것을 그치게 할 때, “무쿠리 코쿠리 귀신이 온다라고 말한다.)

http://www.mihyoi.com/nobunaga/yokai/mokurikokuri.html

 

일본의 오래전 연구나 오늘날 일본의 웹사이트에도 언급하고 있는 이러한 사실이 미국의 학술지에서 '코쿠리'를 다루면서도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일본인들의 역사의식에서 한반도 영향을 배제하려는 의도가 나타난 일면이 있는 것이다. 몽고군과 고려군의 내습은 공포 이상 어쩌면 숨기고싶은 내용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부담감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에는 일본에서 서양의 신식 교육을 받은 학자들은 역사에 대한 진실을 발표할 때 목숨을 걸어야 했다. 예를 들어 일본 천황가가 한반도에서 도래한 혈통이라고 주장한 학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연구발표를 한 뒤에 괴청년들의 칼부림의 위협을 당해야 했다.

 

토쿠가와 시대의 유명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토우 테이칸(藤貞幹,
1732~97)이나 메이지유신(明治維新) 당시의 고대역사에 관한 사학자이며 동경대 교수수였던 쿠메 쿠니다케(久米邦武, 1839~1931) 등이 그렇다. 특히 쿠메 교수는  메이지 유신(1868) 직후인 1871년에 일본 최초의 유럽시찰단의 일원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과학적 고증학을 토대로 한 근대 역사학을 배웠다.

 

1873년에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일본 천황계의 조상의 하나인스자노오노미코토는 신라인이다고 발표했다. 일본사회에서 그당시의 그러한 연구발표는 쇼킹한 발표였다. 뿐만이 아니라 그는 일본 천황가에서 제사지내는 신은 天照大神이 아니라, 高句麗의 東盟의 神·扶余의 迎鼓의 신, ()의 舞天의 신이다라고 말하여 일본을 놀라게 했다(神道は祭天の古俗, 1891.P.10-12). 이에 천황주의자들인 괴청년 4명이 쿠메교수의 자택을 기습하였다. 그들은 쿠메교수의 목에다 칼을 들이대고 논문을 취소하라고 협박하기도 했다(東京日日新聞, 1892, 3 3日字)

 

그 괴한들이황조(皇祖: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와 스사노오노미코토 등의 천황가의 조상을 말함)를 일개 표류민으로 치부하는 이유가 무어냐?”라고 호통쳐도 쿠메교수는 목숨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일본서기>에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신라로부터 일본땅에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오시호노미코토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묘사되어 있는 해원(海原)이라는 것은 신라를 가리키는 것이다.”라고 정면으로 대답했다. 진실 여부를 떠나 19세기 일본의 학자들은 한반도 관련 연구 발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늘날까지 일본의 우익은 천황가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 일본의 한반도 관련 연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영향을 떠나 요즈음 일본학자들과 미국학자들은 칼을 들이대지도 않는데 일본역사에 영향을 준 한국역사와 관련된 사실에 대하여 왜곡을 서슴치 않는다. 앞서 언급한 포스터 논에 인용된 여러 '코쿠리 기원론'은 모두가 1990년대와 2000년대 이후의 자료들이다. '코쿠리'가 '고구려' 코쿠리라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몽골-고려 연합군의 침략은 무서운 귀신의 내습으로 여기기에 알맞은 공포였다. 몽골제국과 고려가 함께 현해탄을 건너 일본침략을 시도했을 때 심한 풍랑이 일어 이른바 카미카제를 만들었던 것은 귀신과 귀신의 싸움같은 것이었다 '카미카제'라는 말은 태풍 이상 무서운 상대 귀신에 대하여 일본의 귀신을 대응시킨 용어라 할 수 있다. 코쿠리 무쿠리라는 말은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몽골귀신과 고구려귀신이 쳐들어오는 것을 그렇게 공포스럽게 여겼던 일본인들에게는 수많은 세월동안 특히 한반도에서 쳐들어오는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런 '코쿠리' 고구려(高句麗) '코쿠리(こくり)' 발음만 남긴 채 狐狗狸로 변화시킨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귀신이 존재한다는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은 한국귀신이라는 것을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코쿠리'와 영화 '분신사바'의 관련은 그렇게 한국사회에서만 무지한 결과로 '코쿠리'가 한국기원이라는 사실과 그러한 연구와 의견들이 배제된 채 나타나고 있다.

 

'코쿠리'는 단순한 청소년들의 귀신불러내는 공포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역사적인 연원에 대한 문제이다. 일본인들이 아이들 울음을 그치게 하는데도 코쿠리상 온다고 했을 정도이니 '코쿠리'의 영향은 단순히 귀신 불러내는 의식 이상이었다. <분신사바> 영화는 <코쿠리>로 다시 헐리우두의 리메이크로 확대되어 가도 코리아 고려를 의미하는코쿠리뜻은 여우와 개와 너구리가 되어狐狗狸가 되어 있을 따름이니 여기에 바로 잡아두고자 한다.

 

               

 

 

 

結 論: 무속적 '한류': 일본의‘코쿠리(コックリ)는 韓國의 굿거리’!

 

일본을 알려면 그들의 신도주의를 알아야 한다. 일본의 신을 알려면 한국의 역사적인 무속의 신들림을 알아야 한다. 욘사마 열풍이 일본에 분 것은 작품 속의 죽은 주인공이 다시 닮은 사람에게 '신내림' 현상같은 것이 있었다고 일본인들은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국의 한류의 대명사처럼 된 '욘사마'를 안다면 '코쿠리사마'를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연예문화의 한류 이전의 역사적인 한류에는 '무서운 한류'도 있었으니 그것이 '코쿠리사마' 한류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끼리 모이면 필자도 형들이 코쿠리사마 같은 귀신 불러내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조금은 특이했다. 그것은 거의 게임이면서도 아이들을 엄숙하고 다소 두렵게 하는 놀이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이 내리도록 준비된 아이는 눈을 감고 양손바닥을 앞으로 모아 기도하는듯한 자세를 취하고 다른 주문하는 아이가 그 정면에서 주문을 한다. 나머지 아니들은 주변에 둘러앉아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수리수리 마수리 사바하.. 양손을 벌려라! 점점 벌려라!’ 이런 주문을 외우면 기도하는 아이의 손바닥이 아주 조금씩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은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지금도 시행하면 일어나는 일종의 최면현상이다. 스스로 자신도 모르게 손이 벌어지니 그것이 신들린 현상인줄 알고 주문을 외우는 사람의 말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때 너는 남자냐?식의 짧은 질문을 하면 눈을 감은 채 손바닥이 벌어지고 있는 신이 내린 아이는 나는 남자다!이런 식의 대답을 한다. 최면상태로 빠진 현상인 것이다.

 

그당시 형들의 말에 의하면 이때 신이 내린 아이는 주문을 하는 사람이 시키는대로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발을 가져오라”고 하면 신발을 가져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장면을 필자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점차 손바닥이 넓게 벌어지는 장면은 직접 보았다. 그러는 과정쯤에서 갑자기 주문을 외우던 주문을 하던 형이 물바가지에 찬물을 준비하고 있다가 입에 찬물을 머금어서 눈을 감고 손바닥을 벌려가는 '신들린' 아이의 얼굴에 품어버려 최면이 깨버리는 것까지 보았다.

 

이러한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중단하는가인데 이러한 찬물 끼얹기는 옳지 못한 방법이다. 주문으로 간단하게 '깨고 나와!' 하면 최면상태에서 나올 수 있다. 전통 굿거리에서는 흔들던 대나무 손을 멈추게 하려면 '들어 서시오!'라고 말하는 것을 어릴 때 본 일이 있다. 쌀 위에 꽂은 대나무를 잡고 흔들다가 대나무를 들어 올려 서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여러번 흔들고 또 '들어서는' 장면을 보았다.   

 

한국인들의 전통 시골 아이들의 귀신불러내기 또한 또한 서양의 'Table Turning'의 심리 최면적 요소와 같으며 베트남의 기적의 돌아가는 테이블이나 일본의 코쿠리사마의 심리적인 움직임의 근거에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 전통 무속에서 나오는 대나무 굿거리에서 쌀함지에 손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 '신이 내리면' 대나무가 흔들리는 것과 같은 '굿거리' 주술 심리적인 배경이 '코쿠리'와 '분신사바'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이 글을 통하여 <분신사바>의 원형인 코쿠리는 고구려(고려) 귀신 즉 코리아 귀신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코쿠리 귀신 불러내기의 그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단지 몽고와 고려(또는 '고구려')가 일본침략을 시도한 사건에서 코쿠리사마귀신의 이름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코쿠리 의식의 그 문화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 남기 때문이다.

 

우선 코쿠리 게임이 서양에서 테이블 터닝이나 문자판을 사용한 것이 일본에 영향을 미쳤겠으나 영화에서처럼 볼펜을 잡는 등의 신들림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쌀함지 굿에서 굿거리 무당이 주문을 외우면 신내리는 사람이 대나무를 잡고 있다가 신이 내렸을 때 대나무를 흔드는 것에서 그 연고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코쿠리' 의식이 대나무 다시를 이용하는 것과 우리나라의 굿거리에서 대잡이가 대나무를 잡는 것과 그대로 연결된다. 지금은 대나무 대신에 볼펜이 된 것이다. 주문과 볼펜을 붙든 손의 신내림은 그대로 쌀함지 굿거리에서 나온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일본의 '코쿠리(コックリ)'는 우리나라의 굿거리에서 나왔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코쿠리'의 그 이름과 볼펜을 흔드는 현상은 대나무 가지를 흔드는 한국의 '굿거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무속(巫俗)에서 나온 굿거리가 오늘날 민속 춤이나 그 반주 음악의 한 가지로 칭해지기도 하지만, 주로 징을 치면서 굿을 하는 굿거리는 본래 쌀함지에 대나무 가지를 붙들어 세워 신이내리게 하는 '귀신을 불러내리는 굿거리' 그 자체에서 비롯된 말이다. 발음에서나 그 기능에서 '코쿠리'는 그대로 '굿거리'인 것이다. 코쿠리 즉 굿거리는 징을 치면서 무당이 주문을 외우는 장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춤을 동반하기도 하는 무당 굿거리 의식 자체를 말한다.

 

알파벳 글자를 향하여 볼펜이 움직이는 것은 점괘를 향항 흥민 진진한 의미 추적의 점 기분을 자극하겠지만, 굿거리에서 문자판 대신에 쌀을 깐 것은 대나무가 흔들릴 때 쌀알이 튀기면서 소리가 나는 음향효과가 있었다. 코쿠리와 쌀함지 대나무 굿거리는 둘다 기본적으로 실내용이었다.

 

일본인들이 코쿠리의 일본 자체의 기원으로 이치코(또는 이타코)가 귀신을 불러내는 口寄せ(쿠치요세) 의식에 연결시키기도 한다. 나는 일본의 '쿠치요세'의 '쿠치'가 한국의 '굿'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산신을 모시는 산을 영산이라 한다. 이러한 산에서 죽은 사람의 혼을 불러내는 이치코라는 여성은 우리나라의 산신굿에서 무당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신굿이 많은 구경꾼들을 동원하듯이 여름과 가을에 일본의 쿠치요세 의식은 전국 각지에서 참배객 및 관광객이 찾아와 성황을 이룬다.

 

여기에서 일본의 19세기 코쿠리에서 대나무 세 다리를 사용한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세 개의 대나무 다리를 사용하여 신이 들리면 그 세 다리의 균형이 깨지도록 하는 것은 세다리를 가지는 전통 솥 다리의 균형 이미지를 가진다. 그렇게 보면 19세기 일본의 세 개의 대나무 다리의 균형의 한쪽이 들리게 하여 신내림을 확인하는 코쿠리의식은 일종의 삼족오 굿거리게임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삼족오는 단순히 엠블렘(국장)으로 보면 안된다. 삼족오는 고대 삼국시대의 난생신화의 신이었다. 그냥 바라보는 신이 아니라 그 신에게 운수를 묻고 제사하는 그런 인터렉티브한 복술의 대상으로서의 신이었다. 고대 사회의 신은 불러내려 신명을 듣는 신들이었다. 세 사람이 세 발 달린 테이블에서 코쿠리상을 부르는 것은 삼족오 굿거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본의 신사나 제당의 대문에 세우는 '도리'는 그 뜻이 '새'다. 그 새는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으나 까마귀 특히 삼족오가 날아오는 것을 기다리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즉 태양 여신의 사자인 삼족오가 오는 것은 신의 사자가 오는 것이었으리라. 그런 삼족오 대신에 대나무 세 다리의 코쿠리 테이블이 만들어졌지 않았을까? 아니 본래는 단지 태양의 사자는 까마귀였는데 어쩌면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라는 것 자체가 균형 흔들리기 좋은 이러한 세 다리 코쿠리 테이블 굿거리에서 발전했지는 않았을까?

 

삼족오의 기원에 대하여 코쿠리 의식의 세 발 달린 테이블은 새로운 비밀을 풀어줄 것이다. 여기에서 추가적으로 살펴볼 일은 전통 굿거리에서 대나무를 꽂아 잡은 쌀함지를 얹는 테이블이 주로 개다리 밥상이었는데 그 원형은 어쩌면 세발 달린 특별한 상을 사용한 전통이 있었는지를 추적해보는 일이다.

 

굿은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무속이었다. 굿의 어원은 육당 최남선이 그의 <조선상식>에서 지적한대로 고시례, 고사의 어원과 뿌리를 같이한다고 했다. 삼족오에 대한 제사 또는 신을 불러내리는 굿거리는 일본의 코쿠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코쿠리는 일본인들이 말하는 단지 침략해 들어오는 무서운 고구려귀신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신을 불러내리는 '굿거리' 그 오래된 원형은삼족오 굿거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일본의 '코쿠리'는 서양의 '양류'가 아니라 '한류'였으며 그것도 무서운 '공포의 한류'가 아니라 '굿거리 한류'로서 무속적 한류였다고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역사 속에서 국가의 명분과 통치자의 권위는 제사에 달려 있었다. 국가적 재앙이나 홍수나 가뭄 등의 천재지변을 다스리기 위하여 신의 능력을 불러내고자 했다. 일반 서민들은 쌀함지 안에 세운 대나무를 잡은 손이 떨리는 굿거리’(코쿠리)로 운세와 액운의 답을 풀어내고자 했다. 그 굿거리는 일본문화에서 '코쿠리'로 전통을 이어갔고 그것이 1880년대 유럽의 심령술에 영향을 받으면서 알파벳 문자 판을 사용하는 등의 다소의 변모되는 양상을 보였지만, 그 이름 '코쿠리'와 함께 한반도의 '푸닥거리' '굿거리' 신내림 문화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무속적 한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년대 방송 드라마화까지 되었던 하근찬의 소설 <야호>는 일제시대를 거쳐 광복 이후 6.25를 거치며 살아온 한 시골 아낙네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그 작품 속에 '꺼꾸리'라는 약간은 정신박약아가 등장한다. 그러나 비록 작품 속의 이름이지만, 경북 영천지방에서 작품 소재를 택한 작가는 그 '꺼꾸리'라는 어린 아이가 동네에 새로 등장하는 모든 '뉴스'를 가장 먼저 알아내고 전달하는 아이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 이름이 '꺼꾸리'로 나올까?

 

새로운 '뉴스'(소문)를 가장 빨리 전해주는 '꺼꾸리'의 기능은 '코쿠리' 의식에서 '코쿠리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문화적 구조를 볼 수 있다. 작가는 '꺼꾸리'라는 이름을 그런 캐릭터의 아이에게 사용한 그 배경을 어떤 의도로 그렇게 불렀는지는 직접 알 수 없다. 그러나 궁금한 신명을 물어보는 일본의 '코쿠리상' 의식이 일제시대를 통하여 알게 모르게 식민지 한국의 시골 문화에 그 이름이 영향을 끼쳐 '꺼꾸리'라는 이름이 실제로 존재했고 또 그러한 기능까지도 함께 소설 속의 등장 캐릭터의 이름으로까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가 모르는 소재를 풀어내는 것도 감상평에 속한다. 모든 궁금한 소문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꺼꾸리'라는 이름과 그 기능은 그래서 '코쿠리상'의 그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일본을 침략한 고구려와 몽골군의 공포에서 '고구려(高句麗는 일본발음 '코쿠리'다)' '코쿠리(こくり)로 변화되어 간데는 우리의 전통 무속인 굿거리에서 코쿠리(こくり)’가 문화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며, 근년에 다시한번 한국영화 <분신사바>의 일본개봉 제목으로 こくりコックリ로 변형된 것이다. 코쿠리상은 그래서 일본에서 우리의 원조 굿거리 귀신불러내기 무속이 영화로 개봉되었던 것이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당시에 스투워트 컬린(Stwart Culin) <한국의 놀이>로 97가지의 우리나라 전통 놀이를 한 권의 책에 담아 한국의 놀이문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백년이 더 지난 오늘날 우리는 굿거리무속의 신불러내는 전통이 일본의‘Kokkuri’가 서양의 테이블 터닝 게임이 기원이라고 도리여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있다. 우리는 굿거리와 코쿠리와의 관계에 대한 연구나 지적도 없이 영화를 다른 이름으로 만들고 그것이 결국은 미국의 역사학계의 논문에서서양에서 온 놀이로 왜곡되는 역사 아닌 역사를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분신사바>가 헐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어 개봉될 때 Kokkuri는 우리의굿거리였다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알려야 할 것이다. 한류는 그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그 맥을 이어온 것이 많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고 다시 손질해야 할 것이다.

 

(02/11/07 오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