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가요 이야기

나이스가이 2009. 8. 30. 14:35

백년설 가요제에 관하여 경북 성주군 에 올린글     

 

                                                                                                                                   2003.5,15      오태환
백년설에  관하여

본명  이창민  1915년  경북  성주  출신  성주농업학교  재학중  문학에  이끌려  서울의  문사들과도  교류를  가졌다.
우리나라  대중  가요사의  남인수와  함께  쌍두마차로  가요계를  이끌어온  백년설은 성주출신이라는  것만  가지고도  성주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하겠으며  성주의  큰  자랑이며  가요100년사에  백년설이  차지하는  그의  공적 또한  위대하다.

당시  항일  운동의  문학 서클에  소속되어  요주의  인물로  리스트에  오르기까지 한 이창민(백년설)  은1939년  정월  신보로  발매한  유랑극단을  기점으로  예명을  백년설이라 하며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수기/  일자일루/  북방여로/ 를  힛트  시켰으며  1940년 이재호  작곡의  나그네설움이  발매되었고  ,  나그네  설움은  슬픈  일제  통치하에  나라잃은  조선인의  설움을  그대로  표현하였기에  더욱  가슴에  다가왔으며  백년설은 태평  레코드  최고의  매상을  올리며  최고의  가수로  부상했다.

어머님사랑,/ 춘소화월,/ 번지없는  주막,/ 산팔자  물팔자,/ 복지만리,/ 대지의  항구,/ 허허바다,/ 만포진  길손,/ 남포불  역사,/ 석유등  길손,/ 마도로스  박,/ 고향길  부모길,/ 등  백년설이  부른  노래들은  일제의  압박을  견디어  살아가게  한  원동력과  위로의  노래가  되었으며  희망이  없는  조국에  희망을  갖게  하고  메마른  가슴을  눈물로  적시우며  하소연  할수없는  외로운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라  잃은  슬픔!,  가난과  고생!,  천대와  멸시!,를  업보처름  짊어지고  겨레의  통한과 눈물을  달래  왔던  백년설의  노래는  민족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구석구석  담겨 있으며  식어버린  조국의  아픈  심장에  태양보다  뜨거운  노래를  심었다  할수  있겠다.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은  이미  사라져  버린  조국을  표현하였으며,  백년설의  눈물의  백년화는  일제로부터  망해버린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비쳤고,  봄  이었던  과거를  갈망  하듯  추억하였기에  금지  당하고  말았던,  비분  절통의  민족의  노래였다,

이처럼  나그네설움,  번지  없는  주막,  등  수많은  방랑의  노래로  나라  잃고  헤메는  나그네  의  애환을  노래한  백년설의  노래들!.  나라  잃은  민초들의  마음  깃든  슬픔이나  불만이  애절하게  담긴  백년설의  노래는  술상을  두들기며  울분을  발산하였고  널리  애창되었다

  맺힌  것을  풀어주는  노래!,  슬플  때  울고  나면  시원한  노래!,  일본인들이  상상  할수 없을  정도로  우리민족의  속을  풀어주는  노래!,  희망을  주던  노래를  많이  부른  가수 백년설을  일제  잔제의  청산  가요인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

  당시  시대상황과  한  맺힌  우리의  역사를  토대로  한  가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정의 론자  들이  왜색  운운하며,  소위  가요사를  한다는  사람들조차  사려  깊은  연구  없이  우리가요  전체를  일제의  가요  잔재로  생각하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당시  최고의  작곡가  ,최고의  작사가,  최고의  가수  남인수  백년설  이난영  이화자  박향림  등이  부른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안해,  등의  노래는  일제의 강압에  의해  불려졌으며  많은  가요사의  공적에  비해  옥의  티라  안타까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제를  찬양하는  친일의  노래는  잘못  되었으며  역사의  대의를  세우는  측면 에서  반듯이  거론되어야  할  일이지만  지금의  흑백  논리로  단죄함은  더욱  안 된다.

일제  말  최고의  가치가  있는  이들  가요인  들을  일제가 그냥  두었을  리  없고  목숨의  위협과 함께  강요 하였으리라.  그리고  일제에  말살된  조국의  노래를  보존하기  위하여  한  맺힌  눈물과  함께  결정 하였으리라.

일제  강압에  의해  창씨개명을  하고  자의든  타의든  징용과  징집,  정신대로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일제에  일조  한  모든  사람들을  모두  친일파라  할  수  없으며 슬픈  역사에  희생된  양이라  함이  옳으리라..

자기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면서  일제에  항거한  훌륭한  분들도  많지만  지금  친일이라 주장하는  분들도  당시의  상황에선  강자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견딜  자신이  있을까? 
현재  이락크와  미국의  전쟁에서  미국의  외압  에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처럼,  그들도  전체  가요인,  여러  예술인들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  생각  할  수  있다.

 

  남인수의  감격시대와  백년설의  복지만리  역시  일본의  대륙진출을  반영하는  친일가요라 매도하려  하지만  대륙에  묻힌  고구려의  하늘밑을  달리는  조상의  얼을  느끼는  민족의  노래라  하겠다.  해방을  예견하고  해방의  감격을  노래하면서  해방  후  더욱  많이  불려졌다.

해방후  백년설은  신라제  길손,/ 마음의  고향  등을  불렀으며  서라벌  악극단을  만들어
순회공연을  하였으며  1963년  사단법인  연예단장  협회의  초대회장이  되었고  가장  서민적인  그의  주옥같은  명곡들은  지금도  널리  애창되고  있다.

 

 

 

 *  필자는  성주에서  백년설의  가요제가  열림을  축하하며  성주인의  자랑인  백년설 가요제가  세계적인  가요제로  거듭  발전  하기를  기대하면서 이 글을 남깁니다 .  다른  견해를  가진  분  들에게는  양해를  구합니다 

 

좋은 내용의 글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비판 없이 미화되어서도 안됩니다. 친일가요는 분명히 가려야 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진정한 가름과 진정한 반성을 토대로 하여 용납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늘 부끄러운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