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가요 이야기

나이스가이 2011. 5. 24. 20:52

추억의 스타앨범   http://dbs.donga.com/comm/view.php?r_id=04933&r_serial=01

 

박경원 편
‘이별의 인천항’의 애정어린 목소리
1971.10.10 방송

 

 

- 이제는 영원히 가버린 세월. 청춘의 화려한 낭만과 감상이 번져있는 그리운 노래. 세월은 흘러 갔지만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박경원 편 입니다.

- 사랑과 청춘과 꿈은 흘러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세월도 영원히 흘러가 버렸지만 추억의 숨결이 번져있는 골목엔 아직도 정다운 노래가 있고 그 정다운 노래를 불러 주었던 가수 박경원. 발성과 음정이 정확해서 정통파로 알려진 가수 박경원은 상업학교를 거쳐서 경제과를 나온 이색적인 존재이기도 합니다.
1952년 오아시스 레코드에 들어가 `비애 부르스`로 데뷰한 박경원은 `바타비아의 여정`, `나폴리의 연가`, `만리포 사랑`, `청춘은 산맥을 타고`, `내 사랑` 등 150여 곡의 가요를 불렀으며 `이별의 인천항`은 수 많은 그의 히트곡 중의 하나 입니다. 쌍고동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 갈매기도 슬피우는 이별의 인천항구 항구마다 울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정들자 이별의 고동소리 목 메어 운다.

학사가수 박경원이 데뷰 초기에 날렸던 히트곡 `이별의 인천항`. 1953년 수복된 서울 거리에 백설희의 `센프란시스코` 이인권의 `무영탑 사랑` 등이 유행을 하고 있을 때 애정어린 정다운 목소리로 `이별의 인천항`을 불러 스타덤에 올랐었던 가수 박경원은 그 무렵의 추억을 다음과 같이 해 주었습니다.


- 제가 `비애 부르스` 취입 했을 때 그 전오성 씨 밑에서 그 명국환이 하고 같이 데뷰 했습니다. 명국환 군은 그 때 `백마야 울지마라` 그 뒷판이 `비애 부르스` 거든요. 그리고나서 조금 있다가 인제 전오성 선생님을 인천 자격도에다 한번 모셨어요 여름에. 그래서 거기서 한 이틀동안 거기서 지내시다가 거기서 인제 전오성 씨가 `이별의 인천항` 이라는 곡을 거기서 작곡을 하셔서 이거를 아마 경원이가 불러야 할거다 그래서 제가 불렀는데 어떻게 운이 좋다 그럴까요? 인천 출신이 불러서 히트가 됐는지 모르지만 다행히 히트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것에 많이 아주 선전이 돼서 그 때는 레코드점 앞에다 가사를 다 적어서요 확성기로 막 틉니다. 그러면 지나가던 사람이 그 악기점 앞에서 그 가사를 보면서 그 레코드를 들으면서 같이 합창을 하고 그랬어요.


- `이별의 인천항`에 이어 `인생은 XYZ`, `남성 남보원` 등 당시 인기가수 현인의 창범에 근사하기도 했던 박경원은 1931년 4월 3일생 인천시 중구 신포동이 그의 고향 입니다. 일곡생활 하는 박용갑 씨의 7남매 중 큰아들로 태어난 박경원은 유치원에 다닐 때 부터 이미 가수로서의 소질을 나타냈으며 신흥 국민학교를 거쳐서 인천 상업학교에 들어간 다음 2학년 때 부터 콩쿨대회에 쫓아 다니는 콩쿨대회의 단골이기도 했습니다. 인천 상업학교를 마친 박경원은 곧 동국대학 경제과에 진학해서 경제 순환, 경제 철학 같은 어려운 강의에 귀를 기울이는 경제 학도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의 천성은 명랑하고 낭만적이었으며 중학 2학년 때 부터 쫓아다니던 콩쿨대회의 매력을 져버릴 수 없는 집념의 사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 2학년에 다니던 어느 날 김교성이 경영하던 계림극장 주최의 전국 남녀 가요 콩쿨대회에 출전해서 이윽고 1등 당선의 명예를 획득하고야 말았습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현인의 노래를 불러 인기에 당선한 박경원이 부르는 `바타비아의 여정`

- 거의 모든 가수들이 콩쿨대회에 나가거나 가수로 데뷰를 할 때는 부모들의 맹렬한 반대에 봉착하고 집을 쫓겨나기 일수였는데 박경원만은 예외로 부모들이 반대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격려를 해주고 뒷바라지를 해주는 행운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부모님들의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가수 박경원의 코쿨대회에서 1등에 당선했을 무렵의 얘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 줍니다.


- 아주 부모님들이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그 때 제가 중학교 2학년 땐데 인천 문화관 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지금은 인천 계네마 라고 그러는데 거기서 콩쿨대회를 제가 인제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몰래 나갔어요. 그래서 거기서 제일 처음에는 제가 결선에서 떨어졌습니다. 그 때 제 친구 이갑돈 군 이라고 같은 중학교 다니던 친구하고 같이 나갔는데 그리고나서 그 다음서부터 쭉 그 이갑돈이라는 친구하고 같이 나갔어요. 그래서 같이 뭐 맨날 등수 쟁탈전이죠. 근데 이갑돈의 부모님은 아주 완고하셔서 상장 같은거를 타도 집엘 못 가져 갔어요. 아버님이 그렇게 아주 완고하셔서 아주 상장을 막 찢어버리고 그러고 저는 상장을 자꾸만 모으는 재미로 많이 출연도 하고 그랬죠.


- 대학 재학중에 가요콩쿨대회에서 1등에 당선한 박경원은 다음의 작곡가 전오성에 픽업돼서 오아시스 레코드의 전속가수가 됐으며, 그 때 같이 전속가수가 된 것은 명국환. 명국환과 함께 오아시스 레코드에 입사한 박경원은 `비애 부르스`를 첫 취입 했습니다. 명국화느이 `백마야 우지마라` 라는 노래와 함께 같은 판 앞뒤에 취입돼 나온 박경원의 `비애 부르스`는 명국환의 `백마야 우지마라`와 함께 유행의 물결을 타고 거리마다 골목마다 번져가기 시작 했습니다. 어느 날 그대와 헤어지던 가로등 불 깜박깜박 이 밤도 이 마음 외롭게 하는 희미한 등불 밤마다 잊을려고 하늘을 보며 별들의 노래를 들어보련다 행복은 깨어지고 희망도 사라지고 외로움만이 나를 누린다.

- 여기서 헤어져야만 하는군요?


- 음. 헤어져야지.
- 가로등 밑에 이 갈림길이 원망스러워요.
- 그래.
- 경호 씨.
- 응?
- 이제 그냥 같이 살아요. 헤어지지 말고.
- 글쎄.
- 가을부터는 같이 살자고 하지만 이제 가을이 다 가고 있잖아요?
- 내가 언제 그랬던가?
- 어머나, 그럼...
- 나 이제부턴 좀 바바서 혜숙일 자주 만날 수 없게 될거야.
- 네?
- 나도 이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겠어.
- 아니 그럼 이제까진 비정상이었단 말이에요?
- 뭐 그런 뜻은 아니지만 저 그럼 난 갈테야.
- 경호 씨.
- 혜숙이 잘가요.


- 만났다가는 헤어져야만 했던 청춘의 비애를 노래한 `비애 부르스` 박경원의 목소리 입니다.

- 6·25 동난 당시 중학 6학년이었던 박경원은 국방부 전국 학도의용대 선무공작대에 입대해서 이미 가수로서 위문 활동을 하기 시작 했으며 콩쿨대회에서 1등에 당선한 후 오아시스 레코드에 전속 가수가 돼서 `비애 부르스`를 부르자 인기는 더욱 높아져 국도극장의 첫 무대에선 장내가 무너지는 듯한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1952년 재일교포 악단인 동경맹사수 악단과 함께 국도극장 무대에서 환호를 받은 박경원은 다음해에 `이별의 인천항`으로 중견가수가 됐으며 신신레코드로 자리를 옮긴 전오성과 함께 박경원도 신신레코드로 전속을 옮겼습니다. 이 때 명국환도 같이 전속을 옮겼으며 신신레코드에 전속가수가 된 박경원은 `내 사랑`, `바타비아의 여정`, `나폴리의 연가` 등 계속 히트곡을 불러줬습니다. 휴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전선에선 아직도 은은한 포성이 울리고 있을 그 무렵 거리엔 명국환의 `죽장의 삿갓 쓰고 방랑하는 김삿갓`이 한창 유행 했었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박경원의 `청춘은 산맥을 타고`도 거리를 휩쓸었습니다. 박경원이 부르는 `청춘은 산맥을 타고`

- 전운이 차츰 가시자 영화계도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방운아가 `인생은 나그네` 도미가 `오부자` 등의 주제가를 불러 행운을 누리고 있을 때 박경원은 박시춘이 감독한 `딸 칠형제`의 주제가를 부르고, 황해, 최봉, 김희감, 구봉서, 박응수, 도미 등과 함께 영화에도 출연해서 인기를 모으기 시작 했습니다. 첫 취입 당시 현인과 비슷하다 해서 화제를 모았던 박경원은 발성과 음정이 정확한 정통파 가수로 그가 부르는 노래처럼 성격도 명랑하고 쾌활하며 중학교 다닐 때 부터 열열한 연애를 해서 이윽고 결혼에 골인할 만큼 정열적인 사나이기도 했습니다. 재일교포 위문공연을 하기위해 일본 후쿠오카에 갔다가 국민학교 1학년 때의 담임 교사였던 일본인 마에다 미스루를 만나 추억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사나이 박경원, 한 때 최희준, 도미와 함께 해병대 연희대에 복무하기도 했으며 부부 음악가인 동생 박시원과 함께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명랑하고 정다운 노래를 들려 줄 것입니다.

- 흘러간 세월속에 묻혀있는 정다운 노래와 함께 그 시절 그 가수의 얘기를 더듬어 보는 추억의 스타 앨범 오늘은 박경원 편으로 지금까지 구성 최호영, 출연 김규식, 고경색 그리고 해설에 안중권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