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romance에서

Lotus Pond 2013. 10. 8. 12:50

6.25에 태극기 그리기/옮기는 글
연못 | 2011·06·29 00:04 | HIT : 5 | VOTE : 0


돌아온 6․25..태극기 그리기

미국인 지인의 딸 중에 탐구심과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11살짜리 계집아이가 있다.
어느 날 내게 코리아에 대해서 물어왔다. 어디에 있으며 어떤 나라인지 국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太極旗)’ 라고 하는데 바탕의 흰색은 평화와 단일 민족을 뜻하고….”
있는 지식, 없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알아 듣기 쉽게 설명을 해주었다.
호기심이 바짝 동했는지 아예 크레파스를 내밀며 바로 그 자리에서 그려달라는데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나름 음양을 뜻하는 청홍의 태극은 그럭저럭 그렸지만
네 귀퉁이의 사괘인 건곤리감(乾坤離坎)은 그리는데 여간 헷갈리지 않았다.
학교 때 숙제로 해가거나 미술시간에 설명을 따라 막대자와 컴파스를 가지고
혼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괘 그리기가 얼마나 녹녹치 않은지 알 것이다.

하늘에 해당되는 건(왼쪽 위), 땅에 해당되는 곤(오른쪽 아래), 해를 뜻하는 리(왼편 아래),
그리고 달을 상징하는 감(오른쪽 위), 같은 순서대로 동서남북(東西南北),
인예의지(仁禮義智), 목화금수(木火金水), 부모자녀(父母子女), 춘하추동(春夏秋冬)….
. 태극기만큼 음양과 자연의 원리, 그리고 과학까지도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국기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꿈에서조차 잊어본 적 없는 태극기지만 과연 사괘(四卦)를 헷갈리지 않고
구별할 수 있으며 원리와 뜻을 설명하면서 비례에 맞춰 그려낼 이가 몇이나 될까?



브롱스에 소재한 뉴욕 식물원(The New York Botanical Garden) 에 가면 루스 리아 하웰 훼밀리 가든(Ruth Rea Howell Family Garden)이 있다.
안쪽엔 부분적이나마 글로벌 가든이라고 불리는 가든이 있으며
캐러비안 가든, 아일랜드, 중국, 이탈리아 그리고 코리아 가든 이렇게 다섯으로 구성되어 있다.



▲ 글로벌 가든(캐러비안, 이탈리아, 아일랜드, 중국, 맨 끝이 코리아. 통로 좌우로 나라별 국기나 지역을 상징하는 색깔이 칠해져 있다. 맨 끝에 'Korea Garden' 이 써있고 뒷편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긴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기 전에는 진입 통로에선 한눈에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작년 가을 식물원에 취재차 가게 되었을 때 우연히 코리아 가든이라는 곳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태극기의 모양새가 퍽 초라해 보였다.



▲ 지난 가을 우연히 찾은 코리아 가든. 태극기가 식물 뒤에 살짝 보인다.

오래되어 낡아서도 그랬겠지만 한눈에 봐도 청홍의 색감도 그렇고 기본적인 비례며 사괘의 비례도 영 맞지 않아 보였다.



관계자를 찾아 한나라의 국기인만큼 기준에 맞게 해 줄 수 없느냐 건의하니
지금 것이 두 번째 것으로 자원 봉사자의 손을 빌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엉망이었던 첫 번째에 비하면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고 했다.

고치고 싶거든 자원봉사자가 되어 직접 손을 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적어도 한 나라의 상징인 국기가 그것도 내 조국의 국기가 조악(粗惡)하고 엉터리여서는 안되겠다 싶어
태극기 하나를 손보겠다는 마음 하나로 얼결에 자원봉사자 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해가 지나고 봄이 절정에 오면서 글로벌 가든도 초록빛으로 짙어지자 작은 이벤트로 분주해졌다.
각국의 텃밭에서 나오는 채소들로 이틀에 걸쳐 나라별 샐러드를 만들어
방문객들이 샐러드를 만들어 시식(試食)하게 하는 행사라고 했는데
새로 제작하는 태극기를 이때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어 바탕으로 쓸 판을 준비했다.


▲ 태극기 그리는데 4시간 정도면 충분히 끝날거라 예상했지만
(실력이 없으면 환경을 탓한다고 ^^) 뭉툭한 붓들이 시간 잡아먹는데 한 몫을 거들었다.


▲ 도시락을 가져가니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느껴질거 같았는데
섭씨 30도 넘는 곳에서는 추억의 도시락을 까먹어도 밥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태극기 그리기를 마치는데 일등공신은 물 한병과 도시락!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들었던 한국의 국기는 알겠는데
지도는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다던 말이 떠올라 한쪽엔 국기를
그리고 다른 한쪽엔 지도를 그렸다. 정치적 이념도 없고, DMZ 라는 비무장 지대도 없는
한반도 지도를 그리면서 색깔은 평화 통일의 상징인 하늘색으로 칠했다.



▲ 코리아(KOREA)를 그리면서 나도 모르게 코가 시큰해졌다.
비록 작은 점에 불과한 섬이지만 독도도 그려 넣었다.


▲ 정원 문닫는 시간이라고 빨리 끝내기를 재촉하는 바람에 급하게 서두르다 결국 실수가 생겼다.

태극기 오른쪽 아래 짧은 막대가 6개인 곤(坤) 괘를 그려야 하는데 난데없이 긴 막대가 그려지고 말았다.

러시아에 가면 마트료쉬까( Матрёшка) 라는 것이 있는데 러시아 전통 복장을 한 나무 인형이다.
위 아래를 돌려서 열 수 있는 구조로 겹겹이 들어있다 보니
최소 5개 최대 10개까지 같은 모양의 인형들이 크기만 다르게 연거푸 나온다.
맨 마지막에는 엄지만한 것으로 더는 열 수 없는 전통 민예품이다.


▲ 러시아 민예품 마츄로스카. 똑같은 모양이 크기별로 들어있어서 가든 속의 가든이 있는 뉴욕 식물원을 연상시킨다.

문득, 코리아 가든 역시도 마치 그 인형의 구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가든 안으로 들어가면 중간 크기의 가든이 있고
그 안으로는 작은 가든이 있으며 그 안에는
코리아에서 재배되는 푸성귀가 심어져 있는 한국 텃밭이 나온다.
그 채소 안에는 우리 국기와 한반도 지도가 있다는 것을
러시아 민예품을 예로 들어 힘주어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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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를 그리는데 쓴 물감, 붓, 그리고 저 색 범벅으로 떡이 진 팔렛트 모두 가든에서 하는 어린이 학습용으로 쓰는 것들이다. 어설픈 도구였지만 한 나라의 국기를 반듯하게 그려내는데 소중한 역할을 했다.

미국의 식물원에 태극기가 하나 있는 게 뭐 그리 큰 대수라고 할까마는
뜻밖의 장소나 상황에서 만나는 태극기는 얼마나 반갑고 가슴 뭉클했던가.
미주동포,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 한국에서 온 입양인과 가족들, 한국전 참전 관계자들까지
한국과 연관된 이들이 만날 태극기며 한반도 지도를 통해
본래 남과 북으로 분단된 땅이 아니고
조상과 언어, 역사, 음식, 풍습이
본래 하나였던 코리아임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 태극기와 한반도지도 옆에 어떤 꼬마가 뽑아다 놓고 간 양파 2개가 덩그러니 남았다. 이곳이 채소며 푸성귀가 자라는 곳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다.

▲ 샐러드 볼 행사가 있던 날 그곳을 방문한 아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즐거워하고 있다.

유월의 기온으로는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웠던 지난 목요일
온도계는 화씨 104(섭씨 3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야외에서 무려 7시간 반 동안 꼬박 앉아서
땀을 삐질삐질 흘렸지만 지도를 그리는내내 뭔지 모를 전율(戰慄)로 더위를 실감할 수 없었다.


▲ 언제고 평화롭게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 담은 한반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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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바탕을 좀 더 손을 봐야 하는데 먹구름이 몰려온다며 빨리 끝내라고 성화다.
7시 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주위가 어두워져 버렸다.

하루 종일 야외에서 불구덩이같은 더위를 잔뜩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원한 지하철 안에서 문득 재미난 문구 하나가 떠올렸다.
‘뉴욕의 땡볕아래 태극기 휘날리며’


태극기를 한국의 텃밭에 심었지만(!) 이왕이면 우리의 마음자리에 심어졌으면...

삼일절이 있는 3월, 해방을 맞은 8월이 태극기를 떠올리게 하는 달이라면
현충일과 한국전쟁이 있었던 6월은 태극기와 한반도를 동시에 떠올리는 유일한 달이지 않나 생각된다.
태극기를 그리기에 6월만큼 감회(感懷) 깊은 달이 또 있을까.


▲ 크로키 제목/ Figures / 종이에 물감/ 2007/ 통일이 되는날 우리 만세 부르며 달려가리라!

과연 권곤이감을 아는자 몇이나 될까요.
애국하는길 잘,보고갑니다.
Thsnk's.
이 글을 쓴 김치김이라는 분은 '뉴스로'라는 인터넷신문의 칼럼니스트인데 글을 참 맛깔나게 써요. 이 분이 쓴 '어머니'의 글을 읽고 댓글을 쓰며 알고 보니 같은 전주옹향인이더라고요. 물론 훨씬 후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