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romance에서

Lotus Pond 2015. 1. 19. 09:27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내맛골은 우리 고향입니다

그 고향 마을이 아주 없어 질 것 같습니다.

임실군청의 해명/설명입니다

****섬진강댐 재개발 사업은

댐 비상 여수로 건설과 댐 정상화 운영의 두 가지 사업으로 진행됩니다.

비상 여수로 사업은 기상 이변을 대비하여 물을 빼기위한 비상 터널을

건설하는 사업이며,

귀하께서 관심을 가지는 이주문제는 과거 측량 착오로

홍수선위선 내 운암면, 신덕면(외량리5세대), 신평면, 강진면에 거주하는 235

세대때문에 만수위를 5m낮게 운영해왔으나, 댐을 정상적(만수위196.5m)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이주를 시키는 것입니다.

 

운암면 소재지(108세대)는 공공기관과 함께 이주하며,

운암면 쌍암리 쪽에 현재 70% 공정으로 이주단지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물이 차면 운암면 소재지는 50%정도가 침수되며,

귀하의 고향인 덕면 외량리는 제방이 구축되어 정상화운영에 따른 피해는

없을 것이오나,

홍수선내 거주하는 5세대는 이주(2013년)를 해야 합니다.****

 


운암면_운암면마을소개


운암면 마을명칭 유래

마을명 마을 이름의 유래
광석마을 임실읍과 인접한 마을로 마을 앞산에 산광이 있어 광석리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학암마을 운암강 상류인 신평면에 인접해 있으며 앞산 바위에 황금이 섞여 있어 빛이 났다고 하여 광석이라는 촌락이 있고, 산수가 수려하여 여산이라 하였다가 1920년 행정구역 개편시 광석과 여산을 통합하여 학암리라 개칭하였다.
선거마을 신선이 거중한다는 뜻으로 명명되었으며 마을 앞에는 선무봉(신선이 모여 춤을 춘다는 산)이 있고 선근리라고도 불리운다.
월면마을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낙도같은 마을로서 마을 뒷산의 형태가 반달같아서 월명으로 칭했으나 사방의 산이 높아 달을 볼 수 없다 하여 월면(달이 잠자는 마을)이라 하였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월면리로 개칭하였다.
지천마을 본래 간좌촌, 도마촌, 하적동 등 3개 마을이 400여년 전부터 독립해 있었으나 192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1개 행정리가 되었다. 3촌의 주봉을 이루고 있는 거지산과 3촌의 중앙을 흐르는 내를 상징하기 위하여 지천이라 명명하였다.
사양마을 풍수지리설에 뒷산이 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새알골이라 하였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사양리가 되었다.
기암마을 이 마을 앞에 삼한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가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이전부터 고대부족사회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마을 뒤에 귀와 같은 큰 바위가 있어 귀바위라고 부르다가 기암이라고 개칭하였다.
쌍암마을 마을 앞에 큰 바위 두개가 있어 쌍암리라 불렀으며 마을 앞에서 삼한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가 발견되어 삼한시대 이전부터 고대부족사회가 형성된 것으로 사료되며 신덕면과 인접해있다.
상운마을 운암면 최북단에 신덕면과 인접해 있다. 1965년 수몰로 인하여 옛 상운암면의 각 마을 주민이 집결한 운암면 소재지라는 뜻으로 명명하였으며 운암면 생활의 중심지이다.
입석마을 운암면의 중심부에 위치한 마을로 당초에는 영촌, 구사촌, 어리동, 두언동의 4개 촌락이 상호 독립해 있었다. 마을 앞에 40개의 선돌이 있어 192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입석리라 하였으며 마을 중심부를 능선이 통과하여 마을이 동서로 재를 이루고 있다 하여 영촌이라 하였다. 대대로 12진사가 배출되었고 수몰 이전에는 운암면 소재지였다. 이곳에는 양요정이 있으며 국사봉이 있어 호수가의 기암절벽과 봄철의 기화요초며 가을철의 단풍은 많은 관광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용운마을 마을 앞에 지석묘의 유적이 있으며 부족장급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용곡이 있다. 마을의 형국이 내자형으로 되고 뒷산이 말의 형국이라 하여 내마촌, 마을 앞에 부처와 같은 바위가 있었다 하여 불암동, 용곡이 있다 하여 용동의 3개 마을이 있었는데 용곡의 용자와 운암의 운자를 따서 용운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청운마을 조선조때에는 박실로 불렸으며 백련산 밑에 위치하여 여러가지 기화요초가 만발한다 하여 만화동으로 불렀다. 1968년 10월 10일 이후 하운암으로 편입되면서 거둔, 박실, 만화동의 3개 마을을 합쳐 청운이라 불렀다.
마암마을 여우치(앞 산이 소의 등같이 생겼다 하여 여우치라 함), 둔기, 백암을 합쳐 마암리가 형성되었다. 지형이 말모양으로 생겼으며 흰 바위가 많아서 마암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운종마을 지역의 형국이 마치 구름 밑에 종이 매달린 것 같다하여 운종이라 불렀다. 수몰 전 박흔, 대종, 소종, 면화골을 합해서 운종리라 부른다.
운암마을 500여년 전에 낙향한 선비의 호가 운암이라 하혀 마을 이름을 운암이라 하였다.
신기마을 수몰로 인하여 옮긴 마을이라 하여 1968년 10월 10일 이후 신기리라 부른다. 운암, 서지, 교촌, 냉천, 저동, 방기 샘터가 통합되었다.
금기마을 금이 많이 나왔다는 금계부락, 시랑 벼슬이 나왔다는 시랑고, 골짜기가 깊어 늘 안개가 끼어 있다는 백운리, 집터가 좋아 터골이 합쳐서 금기가 되었다.
운정마을 지리학상으로 구름 아래 샘의 형국이라 하여 운정이라 하였으며 범오라, 수암, 장자골의 수몰민이 한데 합쳐서 운정마을을 이루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겨울철 목요일 분위기입니다.
하시는 일 부보람된 결과 있으시기 바랍니다.
소중한 자료 감사히 보고 갑니다.고맙습니다.
내 고향에 관심있는 분이 계시다니 반갑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또 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