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ARY

Lotus Pond 2016. 3. 3. 12:44


광복 70년,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안경신, 한국 여성 최초로 사형선고
권기옥, 중국 밀항해 일본군과 싸워

                                



여성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오희옥 지사(89)가 21일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훈복지타운 자택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수원=백일현 기자], [사진 국가보훈처·국립여성사전시관]
여성 광복군으로 활동했던 오희옥 지사(89)가 21일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보훈복지타운 자택에서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을 가리키고 있다. [수원=백일현 기자], [사진 국가보훈처·국립여성사전시관]
#1921년 3월. 한 여성이 해산한 지 얼마 안 된 핏덩이 아기와 함께 체포됐다. 혐의는 ‘평남도청 폭파’.
7개월 전 임신부의 몸으로 폭탄을 투척한 것이다. 스물네 살의 이 여성은 일본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제 침략자들을 섬나라로 철수시키는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건 무력적인 응징이었다.”
그는 ‘한국 최초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성’이 됐다. 이후 감형돼 7년 복역 뒤 가출옥했지만 당시 기자에게
 “오직 옛날에 가졌던 뜻을 그대로 가지고 나가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행방은 묘연하다.
62년 훈장이 수여됐으나 연고자가 없어 받아가는 이가 없었다.

#3·1 운동에 참가해 구금됐고 임시정부 군자금을 모으다 6개월 옥고를 치렀다. 상하이로 밀항한 뒤엔 “폭탄을 싣고 가
일왕이 사는 곳을 폭파하겠다”는 의지로 중국 항공학교에 입학했다. 남장도 하고, 남성과 같은 혹독한 훈련을 견뎌
1925년 최초의 한국인 여성 비행사가 된다. 1932년 상하이사변에서 전투기를 몰고 일본군과 싸웠다.
그러나 2005년 영화 ‘청연’이 다룬 ‘최초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은 알아도
공군이 인정한 첫 한국인 여성 비행사인 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안경신(1877~미상)과 권기옥(1901~1988). 이들의 이름이다. 두 여성의 활동은 우리가 익히 아는 남성 독립운동가의
활약에 못지않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이는 극소수다.

이뿐 아니다.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많다. 유관순 열사만 있는 게 아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당시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만 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왼쪽부터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김마리아·박자혜·안경신·오광심·윤희순·지복영. [수원=백일현 기자], [사진 국가보훈처·국립여성사전시관]

왼쪽부터 여성 독립운동가 권기옥·김마리아·박자혜·안경신·오광심·윤희순·지복영.

[수원=백일현 기자], [사진 국가보훈처·국립여성사전시관]

◆3·1독립선언서보다 빨랐던 대한독립여자선언서=198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씨는 부친의 유품을 꺼냈다.
한국 독립기념관에 기증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가로 49㎝, 세로 31㎝의 한지에 붓으로 쓴 한글 문서가
눈에 들어왔다. “슬프고 억울하다 우리 대한 동포시여”라고 시작해 민족 자존 능력으로
 “반만 년 문명 역사”를 들고 일제를 향해
“침략적 야심으로 세계의 공법공리를 무시함”이라 꾸짖었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다.

1919년 2월 작성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여성 8명의 이름이 있다. [사진 국립여성사전시관]
1919년 2월 작성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여성 8명의 이름이 있다. [사진 국립여성사전시관]
본문 33행 총 1291자의 이 선언서는 작성 시기와 주체 때문에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선언서 말미에 단기 4252년(1919년) 2월이라 써 있다. 같은 해 발표된 3·1독립선언서보다
빨랐다는 얘기다. 2월 며칠인지는 기록돼 있지 않아 도쿄 ‘2·8 독립선언서’보다
빨랐는지는 분명치 않다.

일각에선 선언서의 2월이 양력이 맞느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음력이라면 3월 1일보다 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3·1운동 이전에 작성됐다고
명기한 ‘두산백과’와 달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작성 시기를 4월로 표기했다.

그러나 이 선언서를 연구한 3·1여성동지회 명예회장 박용옥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작성 시기를 4월로 보는 건 착오”라고 했다. ‘신한민보’ 1919년 5월 8일자 기사가 그 근거다.
기사엔 “거룩한 3월 1일 대한독립 선언 이전에 우리 대한 민족 부인동포의 대정신 대자각을 성명하는 선언”
이라 돼 있다.

선구적으로 선언서를 작성한 여성들은 누구일까. 선언서엔 김인종·김숙경·김옥경·고순경·김숙원·최영자·박봉희·이정숙 등
8명 이름이 있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김숙경은 항일 지도자 황병길(1885~1920)의 부인과
같은 이름이지만 동일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훈장 받은 유일한 여성은 중국인=1만3682명 대 248명.

국가보훈처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남성과 여성의 수다. 여성은 남성의 1.8%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도 최고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이는 이승만 등 30명인데 여성은 1명, 중국인 쑹메이링
(전 대만 총통 장제스의 부인) 뿐이다. 이성숙 국립여성사전시관 관장(여성사 박사)은 “쑹메이링이 아무리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한들 무장투쟁 등 공적이 큰 한국 여성에게 최고 훈장을 안 준 건 여성을 역사의 보조적 역할로 본 것”이라 지적했다.
국가보훈처 김성민 사무관은 “한국인이 독립에 기여한 게 더 많겠지만 외국인은 외교적인 부분이 감안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대한민국장 다음인 대통령장을 받은 여성도 1명에 불과하다. 일제의 만주국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武藤信義)를 처단하려
탄약을 품고 하얼빈에 갔으나 체포돼 혹독한 고문 뒤 순국한 남자현(1872~1933) 지사다.
유관순 열사는 다른 9명의 여성과 함께 3등급인 독립장을 받았다. 나머지는 그 아래 등급인
애국장(35명), 애족장(112명), 건국 포장(28명), 대통령 표창(61명)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김정아 국가보훈처 전문관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 1931명이 발굴됐는데
248명만 포상을 받았다”며 “자료가 미비하거나 행적 미상 등으로 포상이 보류됐다”고 했다.

여성 광복군도 전투 군사훈련 받았다=21일 수원시 조원동 보훈복지타운. 이곳에서 만난 광복군 출신 오희옥(89) 지사는
“여성 광복군도 최전방에서 지원병 모집 공작도 하고 군사훈련도 받았다”며 “광복군의 한반도 침투작전이 성사됐으면 전투에도
나섰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 광복군의 맏언니’로 불린 오광심(1910~1976), 부친 지청천 장군에 뒤이어 활약해
 ‘대한의 잔다르크’로 불린 지복영(1920~2007) 등이 대표적 예다.

오 지사도 14세 때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입대해 일본군 정보 수집, 지원병 모집 등을 했다.
할아버지 오인수는 용인의 의병장, 아버지 오광선은 독립군 장군이었다. 어머니 정정선은 매일 열두 가마의 밥을 지어
독립군을 먹여 ‘만주의 어머니’로 불렸고, 두 살 위 언니 오희영과 형부 신송식도 부부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오 지사와 언니는 1990년, 어머니는 95년에야 서훈을 받았다. 부친이 62년에 서훈을 받았는데 30년이 더 걸렸다.
“처음엔 증거가 없다고 안 됐어. 나중에 중국에서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랑 배급 탄 명단 등이 나와서 됐지.
언니와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 뒤에야 훈장을 받았는데 아쉽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난 훈장 못 받느냐’ 하시더라고.
언니도 최전방에서 활동했는데.”

그는 “손주 6명은 내가 독립운동 한 걸 잘 모른다”고 했다. “아들이 ‘할머니는 독립운동을 한 분’이라 해도
 손주들은 취업난만 걱정이지. 애들이 알려면 교과서에서 제대로 알려줘야 해. 여성 광복군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좋겠어. 요즘도 집 근처나 시골에서 버스를 탈 때면 운전기사와 가끔 다퉈. 보훈대상자복지카드를 보여주면
일반 버스는 무료로 탈 수 있는데 기사들이 ‘여자는 이런 거 안 될 텐데’라며 뭐라고 해.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별로 못 봤다는 거지.”

국가로부터 인정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 중 생존자는 오 지사를 빼면 3명뿐이다. 1명(박기은)은 미국에 살고,
2명(민영주·유순희)은 병환 중이거나 몸이 불편하다. 오 지사는 “몇 년 전만 해도 민영주·유순희는 자주 만났는데…” 라며
말을 흐렸다.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S BOX] 여학교서 항일의식 심어준 여성 비밀결사대 ‘송죽회’

“임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 있으랴….”

.1913년 평양. 여성 비밀결사대 ‘송죽회’ 회원들은 모일 때마다 정몽주의 ‘단심가’를 낭송했다

소나무·대나무처럼 변치 말자는 의미의 이 모임은 비밀 유지를 위해 공주회(公主會), 이문회(以文會),
유신회(維新會)로도 불렸다. 독립군에 자금을 지원하고, 전국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학생들의 항일의식을 키웠다.
일본·미국까지 퍼져나갔지만 회원 관리에 철두철미한 점조직이어서 일본 경찰 수사망에도 적발되지 않았다.

이처럼 여성들은 숨어서 독립운동을 했기에 관련 기록이 적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장은
“그나마 보훈처에서 인정 받은 이들도 일생이 조각 나 있다”며 “여성 대통령 시대이고 광복 70주년이라
그나마 조명 받는 분위기지만 사학계와 보훈처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황인자 의원이 2월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었고, 여성가족부 산하 국립여성사전시관이 여성 독립운동가
 관련 UCC를 공모하고 있지만 부족하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유공자 발굴과 포상을 20명이 맡고 있다.
오희옥 지사가 주장하듯 교과서에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교육과 도쿄 2·8 독립선언에 앞장선 김마리아(1892~1944) ▶최초의 여성의병장 윤희순(1860~1935) 등이
다룰 만한 인물이란 것이다. 김구 선생의 모친인 곽낙원 여사 등 남성 독립운동가를 채찍질한 어머니와 부인이
조명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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