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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us Pond 2016. 11. 21. 02:12



첫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항상 ‘매우 밝음’이었습니다.
 

그 밝은 표정으로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죠.


그러나이 여인이 10살 때 고아가 됐다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끼 식사를 위해
혹독한 노동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
 
소녀는 돈을 ‘땀과 눈물의 종잇조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소녀에게는 남들이 갖지 못한 자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낙관적 인생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비관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되어 여섯 자녀 중 한 아이가 숨을 거뒀을 때도
 

“아직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걸” 이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다리를 못 써 휠체어 인생이 됐을 때


“불구인 나를 아직도 사랑하오?” 라고 묻자,
 
여인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언제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나요?”

 
이 여인이 바로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미국인이 가장 호감가는 퍼스트 레이디로 꼽는
 엘리너 루스벨트입니다.
 

밝은 성격과  낙관적 인생관,
 인생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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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 루스벨트  

Eleanor Roosevelt

출생 1884년 10월 11일          
미국 미국 뉴욕 시
사망 1962년 11월 7일 (78세)
미국 미국 뉴욕 시
국적 미국 미국
종교 미국 성공회
배우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서명 
Eleanor Roosevelt Signature-.svg


애나 엘리너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t, 1884년 10월 11일 ~ 1962년 11월 7일)은

미국 제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부인이다. 자신의 개인적 권리에서 두드러진 대중적 인물이 된 그녀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활동적인 영부인들 중의 하나로 알려졌다.

 
 

생애[편집]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조카딸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인도주의적인 활동으로 명성을 얻었고,

정치와 공동 분야에서 여성을 위한 역할의 모델이 되었다.


1905년 백부 시어도어의 소개로 먼 친척뻘[1] 프랭클린을 만나 결혼하였다.

1921년 남편이 소아마비를 겪자, 그를 대신하여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였다.

프랭클린의 뉴욕 주 지사와 후에 대통령 재임 동안에 엘리너는 그를 위하여 진상 조사 여행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좌측부터 조지 6세, 엘리너 루스벨트, 엘리자베스 왕비
영부인 시절[편집]


영부인 재임 동안에 엘리너는 전국적으로 강의를 위한 만유를 하고 여성 리포터들 만을 위하여

350회의 기자 회견을 가졌으며, 일간 신문의 본란과 잡지들을 위한 많은 문서들을 썼다.

또한 젊은이들과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소수 민족들을 위한 인권 투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말년의 경력[편집]
 

 


국제 연합 대사 시절의 엘리너 루스벨트


1945년부터 1951년까지 국제 연합 대사를 지내면서 1946년에는 국제 연합 인권 위원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녀는 만국 인권 선언을 기안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1961년 국제 연합 총회로 돌아오다가, 그해 후반에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하여 여성 지위 위원회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78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사망하였다.



저서[편집]
저서로는 <이것이 나의 이야기>(1937), <내가 기억하는 이것>(1950),

<나의 개인적 일에서>(1958)와 <내일이 지금이다>(사후에 출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