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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us Pond 2017. 9. 13. 01:19




19년 전 군에서 의문사한 K중위가 순직을 인정받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감동적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K중위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익히 접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쉽게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 많다.

오래전 한 사건이 떠올랐다. 군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잠실 후암선원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왜 아들이 죽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제발 구명시식을 올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나도 아들을 군대에 보냈던 아버지였기에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팠다.

“안 됩니다. 구명시식은 의문사를 밝히는 수단이 아닙니다. 돌아가십시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잠실 후암선원 밖에서 일인 시위를 했다. 구명시식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저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기에 가슴으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언젠가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것뿐이었다.

대낮에 별이 안 보인다고 별이 없는 게 아니다. 별은 밤이든 낮이든 분명히 존재한다. 단지 햇빛 때문에 별이 안 보일 뿐인데 별이 안 보이니 없다고 우기는 사람에겐 증명할 방법이 없다. 답답한 마음을 부여잡고 낮에도 별이 보일 그날을 막연히 기다릴 뿐이다.

진실이라는 것도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현실만 가지고 몰아붙일 때가 있다. 소중한 아들을 군대에 보냈을 때는 애국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잘 지키다가 몸 건강히 돌아오기만을 바란다. 그렇게 보낸 아들이 이유도 모른 채 시신으로 돌아온다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침내 K중위의 순직이 인정됐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비록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아직 밝히지 못했지만 국가에서 순직으로 인정해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이다.

책임지지 않는 역사는 아물지 않는 상처처럼 고통스럽고 아프다. 얼마 전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게 됐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5·18의 최초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은 누구일까란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역사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너무 많다. 진실 규명을 꺼리는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야말로 진상 규명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날 최초 발포 명령을 내린 자가 누구인지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우리 역사는 영원히 진실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누군가가 처벌받는 문제를 떠나 큰 의미에서 명명백백 진실을 밝혀내야 그날 억울하게 돌아가신 수많은 원혼들이 한을 풀고 천도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과거 1948년 10월에 발생했던 ‘여수·순천사건’이라는 말도 바뀌어야 한다. 그 사건은 ‘14연대 반란사건’으로 재명명돼야 한다. 오랫동안 잘못된 이름 때문에 여수와 순천 주민들이 큰 피해를 많이 봤다. 나는 군부독재 때 재명명에 대한 의견을 냈다가 큰 곤욕을 당한 적이 있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으니 재명명 작업도 조속히 이뤄지길 바란다.

구명시식을 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제3의 눈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제3, 4의 눈은 수없이 많다. 이보다 더 무서운 눈은 바로 하늘의 눈이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살아 있을 때 침묵이 있다면 죽은 뒤엔 외침이 있고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게 돼 있다. 부디 영계에서 진실을 밝히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역사적으로 밝혀지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