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시사

Lotus Pond 2018. 9. 19. 06:38


이마트24 평택중앙점 고경찬씨
하루 120만~130만원 하던 매출
같은 가맹점 문 열자 3분의 2로
본사 할인점도 오픈, 30만원대로

건물주, 5년 계약 내세워 집세 요구
석 달째 생돈 154만원씩 까먹어



경기 평택시 비전동의 이마트24 평택중앙점은 진퇴양난에 빠진 자영업자의 현실을 압축해 보여준다.

2년 전 자영업 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다는 편의점업에 뛰어든 고경찬(46)씨는 인근에 경쟁 점포가

잇따라 생긴데 따른 매출 하락을 견디다 못해 최근 문을 닫았다.

그러나 건물주와 분쟁을 겪으며 ‘자영업 탈출’마저 가로막힌 상황이다. 

지난 2016년 10월, 고씨는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편의점 이마트24와 가맹계약을 맺었다.

애초 큰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고씨가 기아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어

“집사람 인건비 200만원 정도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픈 후 수개월은 하루 매출 120만~130만원을 찍었다.

경쟁 브랜드에 비해선 낮은 수준이지만, 하루 24시간이 아닌 18시간 문 여는 신규점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많지 않지만 이문도 남았다. 

하지만 편의점을 연 지 1년 뒤인 지난해 11월, 고씨의 매장에서 150m 떨어진 곳에 이마트24 평택라페온점이 생겼다.

계약서엔 250m 이내 신규 출점은 기존 점주의 동의서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돼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고씨는 “동의서를 써주고 싶지 않았지만, 본사 영업 담당이 우리가 출점하지 않으면 어차피 다른 브랜드 매장이 들어오게 돼 있다며 동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인근 점포가 생기자마저 매출이 3분의 2로 꺾였다. 

급기야 지난 4월엔 신세계가 직영하는 ‘노브랜드’ 평택점이 길 건너편에 자리 잡았다. 김씨 매장에서 80m 떨어진 곳이다. 노브랜드는 신세계그룹이 지난 2016년 론칭한 생활·식료품 할인점이다. 코앞에 경쟁 매장이 생긴 데다 편의점서 파는 상품을 더 싸게 내놓은 노브랜드까지 생기자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고씨는 본사를 상대로 노브랜드 평택점에 대해 ‘영업금지가처분신청’을 내며 맞섰다. 이후 본사는 다른 매장을 알아봐 줄 테니 가처분신청을 반려해 달라고 요청해 고씨는 서약서를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전동 일대는 지난 2010년 결정된 지구단위계획이 진행되며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본사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는 새 매출은 더 떨어졌다. 지난 5월엔 하루 30만원을 찍는 날이 허다했다. 고씨는 “사실상 담배만 팔렸다”고 말했다. 한 달 수익을 계산해 보니 하루 10시간 일한 아내는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150만원 적자가 났다. 고씨가 직장에서 주야 교대 근무를 하며 벌어들인 월급의 3분의 2를 편의점 적자를 메꾸는 데 썼다.

결국 지난 6월 편의점 문을 닫기로 했다. 하지만 자영업 탈출은 진입보다 더 험난했다. 먼저 5년 계약을 맺은 본사와 협상에 들어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노브랜드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본사는 고씨에게 중도계약 해지에 따른 위약금을 물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사실 평택중앙점은 이마트24 본사로선 아픈 손가락이다. 지난 2013년 위드미를 인수한 신세계그룹은 2016년 상호를 이마트24로 바꾼 후 매장을 전격적으로 확장했다. 동시에 신세계는 노브랜드 매장도 키워나갔다. 그러나 한 상권에서 가맹점주가 운영하는 편의점과 본사 직영 노브랜드가 겹치면서 문제가 생겼다. 

고씨 외에도 이마트24 편의점주와 노브랜드 간 분쟁은 더 있다. 지난 2월과 5월 인천 마곡·청라점은 고씨와 같은 이유로 노브랜드를 상대로 영업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으며, 지난 6월엔 울산 성남·현대점도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마곡·청라점은 본사가 점포를 인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나 울산의 두 군데는 아직 진행 중이다. 

고씨는 본사와 합의 후 폐점하기로 했지만, 매장은 석 달째 방치돼 있다. 이번엔 건물주와 맺은 임대차 계약에 발목이 잡혔다. 편의점 가맹계약이 기본 5년인 지라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도 5년을 맺었기 때문이다. 



고씨는 “건물주에게 편의점을 본사에 넘기기로 했으니 임대차 계약을 다시 써달라고 했지만,

건물주는 ‘대기업과는 계약 안 한다’며 ‘남은 40개월 동안 임대료를 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대인이 임차인의 양도 기회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새 임차인과 계약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건물주 오모씨는 “나중에 (지구단위계획이 진행돼) 강제수용이 될 수도 있는데,

신세계 같은 대기업이 세입자로 들어와 있으면 내가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퇴양난에 처한 가운데 고씨는 매달 임대료로 154만원씩 까먹고 있다.

고씨는 “개발 계획으로 상권이 죽어 누구도 그 정도 임대료를 내고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며

 “건물주는 편의점이 안 되면 다른 장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유동인구가 없다시피 하는데 되는 장사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구본기 생활경제연구소장은 “계약 기간 5년은 일반적이지 않다”며 “장기 계약을 할 경우

 ‘임차인이 양도를 시도할 시 임대인은 이를 받아들인다’는 조항을 넣었으면

분쟁의 소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건물주와 임대차 계약을 할 당시에도 지구단위계획은 알려져 있었다.

고씨는 “편의점 입지를 선정한 쪽은 본사의 개발 담당이다. 당시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분쟁이 생기니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마트24 관계자는 “당시 담당자가 그 물건(평택중앙점 자리)을

점주에게 소개해 준 것은 맞다”면서도 “임대차 계약 당사자는 임대인·임차인이고 본사는 도움을 줄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본사는 책임 있는 자세로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본사를 대표하는 전국편의점산업협회는 지난 7월 말 공정위에 ‘근접출점 제한 업계 자율규약’을 정리해

공정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자사 편의점이 아닌 다른 브랜드까지 포함해 80m에 출점하지 않는다’는 자율 규약이다.

유권해석을 의뢰한 이유는 지난 2000년 공정위가 ‘담합의 소지가 있다’며 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담합을 우려한 공정위의 규제는 뜻밖에도 ‘한 지붕 두 편의점’도 가능케 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