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Lotus Pond 2019. 4. 7. 04:06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4/04 08:33


가장 오랜 재가불자 단체 룸비니
젊은이 중심 새로운 불교 내세워
불교 용어 쉬운 우리말로 풀어
종파 떠나 삶 현장서 깨달음 실천
지금까지 각계 1만여 명 거쳐가



서울 종로구 운니동의 법경에서 룸비니 법도들이 법회를 보고 있다. [사진 룸비니]





1962년 추석 당일이었다. 경복고 1학년생 조보연은 서울 을지로의 국도극장 앞에 서 있었다.
그때 한 행인이 다가오더니 그의 볼을 꼬집었다. 교복 이름표를 보면서 말했다. “조보연! 공부 잘 해라.”
행인은 학생의 주소를 묻고서 떠났다. 한 달 뒤에 조보연의 집으로 엽서가 한 장 날아왔다.

 ‘법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법회’의 뜻도 몰랐던 조보연은 그날 종로3가의 대각사로 갔다.
이름 모를 행인은 룸비니의 창설자였다. 그 사람이 법회에서 강설했다. ‘불교’라는 말도 없었고, ‘종교’라는 표현도 없었다.
대신 그의 가슴에 날아와 박힌 메시지가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자유롭고 평등하다.
거기에는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 우리가 그걸 몰라서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다.
그걸 알면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조보연은 강설을 들으며 ‘내 삶의 나침반’을 직감했다.
주위에 있던 고교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재가불자 신행단체 룸비니는 1959년 4월 7일에 창설됐다. 비구승과 대처승 간에 분규와 정화불사를 거쳐 출범한
통합종단 조계종(1962년)보다 3년이나 먼저 세워졌다. 이달 7일이면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명실공히 국내 불교계 재가불자 단체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숱한 종교단체가 한때 이름을 날리다가 내분을 겪고 명멸한 것과 달리,
룸비니는 60년 동안 이렇다 할 잡음이나 내분도 없었다. 당시 경기고·서울고·경복고 교복을 입고 법회를 찾던
까까머리 학생들은 이제 각계 저명인사가 돼 있다. 지금껏 룸비니를 거쳐간 이들만 1만 명이 넘는다.
조보연도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현재 중앙대병원 갑상선센터장을 맡고 있다.
지금은 룸비니의 회두(會頭)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저 시니어이자 얼굴마담일 뿐이다.
룸비니가 지금까지 건재한 것은 전적으로 창립자인 법주님의 정신 덕분이다.” 




1962년 대각사 법회 직후의 룸비니 학생들. [사진 룸비니]





룸비니 회원들은 창립자를 “법주님”이라고 부른다. 굳이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얼굴을 알리지도 않는다.
‘법주님’은 2015년 12월 20일 92세의 나이로 열반했다. 룸비니 회원들은 스승에 대한 평전이나 자서전도 만들지 않았다.
 ‘법주님’은 생전에 “나는 한 세상 안 (태어)났다고 생각하겠다”며 자신을 내세우는 모든 일을 마다했다. 

법주의 속가 성은 이(李)씨다. 그래서 “이법주님”이라고도 부른다. 192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출생해 평양에서 자랐다.
그의 집은 뜻밖에도 기독교 집안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릴 적부터 불교에 끌렸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해방이 됐다.
그는 혈혈단신으로 배를 타고 강원도 양양의 죽도암 근처로 월남했다. 그리고 곧장 한암 스님을 찾아갔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법주는 부산 범어사로 갔다. 동산 스님 아래서 공부하다가 다시 청담 스님의 제자가 됐다.
출가할 생각이었지만 청담 스님은 “너는 머리 깎지 말고 재가불자로 남아서 젊은 학생들을 위해 포교 활동을 하라”고 했다.
이법주는 “한국 불교를 위해서 내 한 목숨 바치겠다. 그런데 지금 불교로는 안 되겠다”며 ‘불교 혁신’을 시도했다. 




1970년대 성철 스님을 친견하고 있는 룸비니 법도들. [사진 룸비니]





새로운 불교를 위해 그는 젊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했다. 룸비니의 창립 정신은 간결하고 명쾌했다.
‘정신 물질 둘 아니다. 마음 깨쳐 바로 살자.’ 한문 불교 경전에 종종 등장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 등 난해하게만 들리는 불교 사상을 쉬운 우리말로 또렷하게 표현했다.
룸비니는 ‘종교’나 ‘불교’보다는 붓다의 가르침과 우리의 일상적 삶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다시 말해 불교의 본질에 충실한 모임이었다. 

룸비니의 지향점은 ‘깊은 산속’이나 ‘황홀한 깨달음’이 아니다. 오히려 재가자들이 살아가는 직장과 학교,
가정에 방점을 찍는다. 룸비니는 특정 불교 종파에 소속되지 않는다. 어떤 경전을 특별히 내세우지도 않는다.
각자 자신에게 와 닿는 경전을 펼친다. 참선과 염불, 사경과 독경, 108배 수행에도 모두 열려 있다.
법회 때 보는 의식도 아주 간소하다. 구태의연한 절차는 없다.
60년 전에 꾸렸다고 보기에는 지극히 진보적이고, 굉장히 현대적이다. 

룸비니는 실천 덕목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다 잘 알자’, 둘째는 ‘다 잘 돕자’, 셋째는 ‘다 잘 살자’이다.
차례대로 지혜와 자비, 그리고 해탈을 뜻한다. 쉽고 간결한 우리말로 불교의 핵심을 오롯이 짚고 있다.
룸비니 창립자의 안목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국 불교는 갈수록 신자 수가 줄어들고 있다. 출가자의 수도 급감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불교뿐만 아니라 각 종교는
 ‘신자 절벽의 순간’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룸비니의 정신이 각별하게 다가온다.
그 속에 앞으로 60년, 100년을 향한 미래불교의 실마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룸비니 창립 60주년 기념법회는 7일 오후 4시 법경(서울 종로구 운니동 88번지)에서 열린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