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

Lotus Pond 2019. 5. 6. 22:20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88세'

 는 여기에서 이 세상 그 어떤 88세보다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여기서 ‘나’는 억만장자 워렌 버핏,
‘여기’는 그의 버크셔 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 사무실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투자의 귀재, 버핏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긴 인터뷰에서
년기 그의 행복의 비결은 ‘일’이라고 말했다. 

“88살에 내가 왜 매일 아침 신이 나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겠는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일하는 매일 매일이 휴가, 사무실은 즐거움의 궁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달리 가고 싶은 데가 있다면 가겠지만, 가장 좋은 곳이 사무실이니
그는 매일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860억 달러의 재산으로 세계 3번째 부자인 버핏은 정크푸드 식습관으로 유명하다.
매일 맥도널드 음식으로 아침을 먹고 일주일에 세 번은 맥도널드 치킨너겟으로
점심을 먹으며, 코카콜라를 하루에 너덧 캔씩 마신다.
일일 섭취 열량이 대략 2,700 칼로리인 데 그 중 1/4은 코카콜라 열량,
“나의 1/4은 코카콜라”라고 그는 말한다. 

건강식과는 거리가 먼 식습관에 90을 바라보는 나이,
보청기를 사용하고 밤 운전은 포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건강하다.
건강의 비결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하고 있으니 행복하고, 행복하니 건강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서 손을 떼는 나이로 여겨졌던 노년을
‘일’로 즐기는 70대 80대가 늘고 있다. 반면 일에서 물러나 골프, 크루즈로 시간을 보내자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료하다”는 노년층의 하소연도 늘고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정 이루고 자녀들 키우며 인간 종으로서 종족번식의 의무를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수명이 다하던 것이 수만년 인류의 역사였다.
그에서 벗어난 낯선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수명이 길어져 은퇴하고도 수십년을 사는 데 마냥 노는 것이 편치만은 않다.
수렵하고 채집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죽는다는 위기의식이 우리 몸에 유전자로 박혀 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노동 즉 일하고 도전할 목표가 있을 때 우리는 신이 나고 삶에 활력이 생긴다.
노년이라고 다르지 않다.

버핏의 행복 비결이 뉴스를 타고난 며칠 후 뉴욕타임스에는
한국 시골 할머니들의 신나는 삶이 소개되었다. 부호 버핏과 전남 강진 할머니들의
삶의 조건은 천양지차이지만 그렇다고 할머니들이 ‘일’에서 얻는 행복감이
덜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밭일 부엌일의 일선에서 물러난 ‘은퇴’ 할머니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평생의 한이던 일, 바로 글공부이다. 

한국의 시골 어디나 그렇듯 강진에서도 초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했다.
출산율은 낮고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니 시골에서 아이들 구경이 어렵다.
80년대 수백명 북적이던 학교 전교생이 지금은 고작 22명.
그나마 올해는 입학생이 한명도 없자 학교 측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노인들을 입학생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글 못 쓰고 못 읽는 설움 깊은 할머니들 8명이 입학했다.
어린 나이에 집안일 돕고 동생들 돌보느라 학교 구경 한번 못한 아픔,
동네아이들 학교 가는 모습 훔쳐보며 울던 기억,
다른 엄마들처럼 ‘아들/딸 보아라’ 편지 한번 써보는 게 소원이던 지난날의 한을
훌훌 털어내고 할머니들은 초등학생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노인들은 “학교가 너무 재미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 공부하고,
24살 여교사에게 “숙제 좀 더 내달라”고 부탁하고, 쉬는 시간이면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한다. 사는 게 신이 나니 노인들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고 가족들은 말한다. 

노년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가 되었다.
손 놓고 노는 노년이 아니라 뭔가 일하는 노년으로 계획을 바꾸지 않으면
생의 마지막 20~30년은 무료함의 수렁이 되고 말 것이다. 

남가주 한마음봉사회가 ‘2019년 장한 어버이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3명의 수상자 모두 좋은 어버이 역할에 더해 80 전후의 고령에도 사회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그중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은 특히 성공한 ‘제2의 인생’의 주인공이다.
평생 간호사로 사업가로 일한 그는 2007년 은퇴하면서 뭔가 뜻있는 일로
노년을 보내고 싶었다. 그때 마음에 와 닿은 것이 죽음준비의 필요성이었다.
이민 1세대 친지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는데, 너무 준비가 없어서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소망소사이어티를 설립하고 ‘아름다운 마무리’ 캠페인을 시작한지 12년,
죽음’에 대한 한인사회의 인식은 많이 바뀌었다.
83세의 그는 죽음준비 교육을 위해 남가주는 물론 미 전역을 멀다 않고 다닌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목적이 있는 삶’은 노년에 더 더욱 필요하다.
건강과 행복의 비결이다. 
   <미주한국일보 주필/논설위원 역임/서울본사 한국일보 외신부 기자(견습 31기) 역임/
     숙명여고~서울대 사대 불어교육과 졸/LA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