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

Lotus Pond 2019. 7. 26. 06:55


1945년 9월 서방의 언론과 역사학자들은 일제히 장제스 중국 국민당 당수를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하였습니다.

 그때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직후였습니다.

일본은 동양 제패의 야욕으로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만주와 중국을 침략하면서

오직 총과 칼로 양민을 억압하고 학살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받고 항복했습니다. 

항복 후 그들은 총과 칼 없이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중국인들은 그들을 공격, 살해했습니다.

공식 집계로 만주에서만 1만2천 명이 살해되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의 집계는 발표조차 없지만

2만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집단살해 사건을 본 장제스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우리 중국인은 악순환(vicious cycle) 의 고리를 끊는 위대한 국민이 되자고 호소하였습니다.

악순환이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을 말합니다. 이 담화 하나로 장제스는 세계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럼 같은 시간대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했을까요?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인들은 편안히 일본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살해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럼 우리 민족이 받은 핍박이 중국보다 적습니까? 아닙니다.

열 배 크며 기간도 훨씬 길어 36년이나 되고 3.1운동 당시만 해도 사상자가 10만 명이 넘었으며 살해된 사람

공식 집계가 7천 명입니다. 한일 간에는 전쟁 포로 살해, 독립운동가 살해, 국가재산 강탈 등등

원한 맺힌 일들이 많고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일본인들을 죽일수 있는 상황인데도

죽이지 않았고 평화스럽게 고향으로 보내 주었습니다. 

1966년 한일 수교 다음해 일본의 한 우익 단체가 한국 정부에 한 건의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1945년 9월경 경상도 한 지역에서 일본인 한 사람이 살해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배상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송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전쟁 중 우리나라에 살던 많은 일본인이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일본인 스스로가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 1972년 중일 수교 후 지금까지 일본이 중국에 대해 일본인 인명 피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뉴스는 없습니다.

몇 만 명이 살해되었는데도 말입니다. 

한 명의 죽음에는 국제소송을 하는데 몇 만 명의 살해에는 침묵합니다. 이것이 어디 서로 비교가 되는 사례입니까?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런 과거의 사례를 발굴.비교하여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드러내야 합니다.

중국에는 10억 인구에 1명의 장제스가 있으나 한국에는 3천 만의 인구에 3천 만의 장제스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루 속히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의 홍익인간 국시 아래

5천 년을 위대한 민족으로 살아 왔습니다. 대전 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순환의 고리를

스스로 끊음으로서 이를 증명하였습니다. 우리는 진정 홍익인간입니다.

한 사람의 장제스는 선양되는데 3천 만 명으로 구성된 우리 민족은 왜 선양되지 못 합니까? 

한국의 언론인과 역사학자는 응답하시라!


최근에 1945년일본이 항복 직후에 벌린 "우키시마호 폭침 만행" 에 대해서 알았읍니다. 한국의 식민역사가들은 알고도 숨겼을가요??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