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싶은 글

Lotus Pond 2019. 8. 14. 11:21


"이 나라,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기룡

씨가 덥습니다.


 


'역사왜곡'이라는 프레이밍의 덫에 걸린,

영화 <나랏말싸미> 가 조직적으로 가해지는 저주의 사이버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개봉 2주일 만에 개봉관에서 내려졌습니다.

 

영화를 영화로 보지 않는 우리와,

사전승인을 받은 전시회 출품작도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떼어버리는 만용의 이웃이 뭐가 다른지를 몰라서 더욱 더운지 모르겠습니다.

이기룡

   ...............

 

                     영화  <나랏말싸미>

   사이버집단폭행으로 2주만에 강제 終映

봉 전부터 일부단체들이 연대라도 한 것처럼 조직적으로 벌인

보이콧 운동의 표적이 되었던 영화 <나랏말싸미>

댓글부대의집단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2주일 만에 주요 상영관에서 막을 내리는 참사를 맞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배우기 쉬운 소리글 이라는 훈민정음,

한글은 애민사상이 남달랐던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창제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만,

나랏말언어체계를 새로 창제한다는 방대한 작업량으로 볼 때

숨은 조력자나 단체가 있을 것이라는합리적 추론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어 왔다.

 

불교계, 특별히 속리산 법주사(복천암) 문중에서는

그 숨은 주역으로 신미로 대표되는 스님들(학조-학렬 등)의 조력이 있었다고

전해오며, 주장해 왔다. 물론 결정적 쐐기를 박을 만한 문헌이나 물증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정황증거와 구전으로 전해오는 자료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

 

그런 정황을 감안해서 일까.

이 영화의 첫 화면에는  "이 영화는 여러 가지 한글 창제설 가운데

불교의 범자梵字모방설을 주축으로 제작했다는 감독의 기획의도가

주먹만 한 글씨로 씌어져있다.

 

영화 첫머리의 기우제는 제관의 축문 낭독으로 시작한다.

 

유세차 임술년 정미월 병오일 신 조선 국왕 이도(維歲次 壬戌年 丁未月 丙午日

臣 朝鮮國王 李祹) 감소고우 천지신명 백악산 용신호라는 한문으로 된 축문을

읽어 내려 갈 때 성군 세종대왕은 일갈한다.

 

그렇게 빌면 이 땅의 신령들이 알아듣겠느냐?

우리말로 해라.”고 한글 창제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알리는 메시지를 예시하는

것으로 영화는 돌기 시작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

선대인 2대 정조대왕의 약속(조선왕조실록에 나옴)을 들먹이며,

유학의 나라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가지러 왔다

단식 투쟁을 벌이는 일본 승려단(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물리치는 장면에서

신미스님의 등장을 예고하고 나섰다

 

인도의 대장경, 중국의 대장경, 우리나라의 대장경에는

다 그 나라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 마음이 들어있지 않다면 그냥 나무판이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마음이 담긴 대장경을 만들어라!

 

영화는 여기서 해인사에서 팔만대장경을 공부했던 학승 신미스님을 등장시켜

불경 중에서도 난해하다고 소문난 능엄경楞嚴經 독경소리와

소리글인 범어(산스크리트어)의 존재, 이를 듣고 어떤을 받은 세종대왕이

운명적으로 엮여지는 불연佛緣 3구도를 암시했다.

 

한글맹그느라한 동안 볼 수 없었던 임금의 얼굴을 접한

집현전 학사들이 반가움도 순간 따지듯 물었다.

 

전하, 이상한 소문이 있습니다. 왕비의 처소에서 염불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교태전을 조사해 봅시다. 그것이 사실이면 중전을 탄핵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나를 탄핵하라!” 임금도지지 않았다.

세종왕비 소헌왕후가 불심이 돈독하여 궁궐 안에 불상을 세우고

불공을 드린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이쯤에서 한글창제에 집현전 학사들이 전폭적인 지원을 했을까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때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글을 만든다는

소문에 집현전 학사들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신하들과 상의하지 않고 만들었습니까?

새 문자를 중들하고 만들었습니까? 한자는 대국의 참 글자며,

독립된 문자를 가진 나라는 오랑캐일 뿐입니다

 

1443년 왕조실록의 기사가 전하는 집현전 학사들의 한글창제 반대 속내에는

부처의 왕국 고려를 뒤엎어 권력을 찬탈하고

새로운 공자의 나라 조선을 건국한 게 언제인데,

아직도 불교며, '중놈들이란 말인가 하는 까닭 없는 불교에 대한 적대감,

어려운 뜻글자 한문을 공유하며 엮여진 기득권 세력으로서의 선민의식,

쉬운 글을 익힌 후배들이 기어오르면서 자신들의 영역을 허물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같은 고민이 읽혀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세종과 집현전 학사 최만리와의 대화를 기록한

녹취록은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선명했다

 

"(최만리)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세종임금이 엄중하게 물었다.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 개나 되는지 아느냐?

만일 내가 그 운서를 바로 잡지 아니하면, 누가 이를 바로 잡을 것이냐!

이따위 말이 어찌 선비의 이치를 아는 말이겠느냐?

(너희들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용속(庸俗)한 선비 같으니라구!.....“

훈계를 넘어, 오늘로 치면 인격말살에 가까운 욕설로 들리는 이 대목은,

그러나 세종 26년의 실록의 일부를 옮긴 것이다.

 

영화 속에서 다이얼로그 처리.

너희는 중국에 사대만 하고 뜻글자인 한문에 얽매여 있어서

새 문자를 만들 실력이 안 되는데, 너희가 개처럼 여기는 불승佛僧에게 새 문자를

만드는 열쇠가 있었다.”고 면박을 주는 것으로 그렸다.

새 문자를 통해 모든 백성이 문자를 사용하는 나라를 만들어

중국을 능가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중국은 천 년이 가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신하들을 설득했다

 

집현전 학사들은 집요했고, 임금도 당당하게 잘랐다.

이 문자가 백성들에게 퍼지는 순간 이 왕조마저 삼켜버릴 것입니다.”

거머리처럼 백성들의 뼛골이나 뽑아먹고자 하는 나라라면 망해야 한다

 

한글 창제에 참여하는 신미스님을 못마땅해 하며 손 뗄 것을 종용하는 내시에게

전하는 신미스님의 결연한 의지는 칼끝처럼 날이 섰다.

복숭아 속의 씨는 하나지만, 그 씨앗 속에서 몇 개의 복숭아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문은 훗날 주상이 새긴 팔만대장경이 될 것입니다.”

 

세종이훈민정음으로 지은 책을 신하들에게 처음으로 배포하며 애원했다.

나는 유자儒子도 아니고, 불자佛子도 아니다. 너희가 도와주지 않으면

늙고 병든 임금일 뿐이다. 내 마지막 부탁이다.

이 책만은 너희 서가에서 썩지 않고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도와주라.”

그러나 어느 한 신하도 남아 있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으로 그렸다.

 

영화의 절정기 쯤, 병상의 소헌왕후의 유언.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끝까지 가십시오. 가다가 넘어지면

넘어진 자리에서 주저앉지 말고 그 자리를 딛고 일어나야 합니다.”

이 말의 뿌리쯤 연결될 불가의 가르침에 이런 구절이 있다.

 

因地而倒 因地而起(인지이도 인지이기)

離地求起 無有是處(이지구기 무유시처)

(땅 때문에 넘어지면 땅에서 일어나야 하느니,

그 땅을 떠나 어디에 다시 일어날 곳 있을 건가!).

 

소헌왕후가 죽은 뒤 열린 천도재는 소헌왕후가 궁녀들에게 한글을 가르친

열성과 한글 사랑의 마음을 계승하고 보답하는 행사인

언문(한글)을 전파할 것을 맹세하는 언문계(諺文契)를 하는 내용을 그렸다.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맹세합시다.

언문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연명부에 이름을 새기고,

팔뚝에 향불을 붙여(연비의식) 맹세합시다.”

 

이 때 까지도, 그리고 몇 백년이 지난 뒤에도 집현전으로 대표되는

조선조의 유학사와 이 땅의 사대부 선비들은 한글을

아녀자 들이나 배우는 암클이나 언문정도로 제 값을 쳐주는데 인색했음은

실록이 아니라 우리들이 어릴 적 직접 목격했던 현실 아닌가.

 

영화 속의 세종의 마지막 말.

유가도 백성이요, 불교도 백성이다. 나는 부처님 말씀도 진리라고 믿는다.

진리는 망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 이단이라고 삿대질하며 싸우다가 망한다.”

가슴을 울리는 이 대사에 울컥한 사람이 나 한 사람이었을까.

 

그 까닭은 이런 것이리라.

'이 것이냐, 저 것이냐를 칼로 자르듯  나누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들이 그려놓은 프레임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적으로 몰아

할퀴어도 된다는 천박한 연대의식,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거야!’라며

욱박질러 보는 오만함이 넘쳐나는 세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또 그렇다 쳐도,

언필칭 문화가 어떻고, 인간구원을 외치는 종교인들이

영화감독의 기획의도만 보고, ‘감히 성군 세종을 능멸하다니!’하며

벌떼처럼 인터넷으로 달려가 댓글 달기라는 집단폭행을 서슴치 않고,

그 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는 듯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상영금지를 자청하는

단체행동도 서슴치 않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화든 미술이든 모든 예술이 예술로 읽혀지고 평가되어지기를 바라는 게

예술창작자의 바램 아닐까 싶다. 따라서 영화 잘 만들었네하며 두 세 번 보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밖에 못 만들다니...’하고 외면 받아 막을 내리면,

그래 다음에 더 좋은 영화를 만들자며 승복하는 것이

입만 열면 부르짖는시장의 원리에 부합 할 텐데,

혼자 힘으로는 안 되니까 〇〇연대또는 그룹을 지어

마치 감별사완장이라도 찬 듯 떼 법의 캠페인을 벌인단 말인가.


가령, 전인미답의 에베레스트 산(해발 8820m)의 최초 등정자는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힐러리와 함께 오르며 도움을 준 네팔 출신의 포터(짐꾼)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의 이름을 지우지는 않는다.

 

, <영국원정대>에 참가한 힐러리의 국적이 뉴질랜드라는 사실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런 것들로역사적 최초등정이란 기록이 퇴색되거나

변질되지 않는다는 사회의 건전한 상식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일본 나고야에서는 평화의소녀상(일본군 위안부 상징)

전시회 개막 3일 만에 강제로 퇴출당하는 돌발사건이 들려와

우리를 분노케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 아이치(愛知)현이 3년마다 주최하는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전시회에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출품된 작품을 숨기고 싶은 일본군 위안부의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이라고 해서 돌연 전시중단 조치를 내렸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을 예술로 보아주지 않고정치적 주장이 따르기 때문에

많은 일본 국민의 감정을 해칠 우려가 크다" 는 가와무라 다카시(河村隆之) 나고야 시장과

"헌법 위반 여지가 농후하다"는 아이치 현의 오무라 히데아키(大村秀章) 지사의

편협한 주장이 맞물리는 헷갈림 속에서, 결국 심적 스트레스와 물적 피해는 고스란히

출품 작가의 몫으로 남았다는 사실이다.

 

영화 <나랏말싸미> 강제 종영을 지켜보는 심사가 불편한 것은,

이웃나라의섬나라근성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 아닐까 싶다.

 

영화에 관한한 일 년 가야 두 세편 볼까 말까한 문외한이지만,

봉은사 사내 봉시활동자에게 주어지는 보너스로 개봉 전 초대시사회와

종영 날 2번을 관람하는 행운의 기회를 즐겼던 영화가

영화문법이 아닌 떼법에 의해 강제로 조기 종영되는 참사를 지켜보며,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밤낮을 잊고 열심히 영화를 만든 감독을 비롯한

시나리오 작가 등 스태프 들에게 존경과 함께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특별히 독실한 불자 소헌왕후 역을 중후한 연기로 되살려준

 전미선 배우님의 극락왕생도 빌어본다

 

아울러 혼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했던

스태프 들은 이 영화가 세종대왕과 한글의 위대함을 영화적으로 그리는 작품이라

믿고 함께 하였다.그것이 저와 그들의 진심이다.

그 분들의 뜻까지 오해받고 있어서 무척 아픈 지점입니다.

부족함은 저의 몫입니다.”라고 적은

조철현 감독의 속마음을 종영 인사말로 여기에 옮겨 적는다.

    <포토에세이스트/포교사(대한불교조계종·봉은사)/헤피레그(시각장애인 마라톤)도우미/

     한국일보 사진부 차장(한국일보 견습29기) 역임/gainnal0171@naver.com>


좋은 영화고 울림이 있는 내용이고 배우들도 좋았는데 특정세력들의 억지에 조기종영으로 극장에서 막을 내리다니...많은 사람들이 뫄야 되는 권리를 막은 것 같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인데 뭐가 역사 왜곡인지 모르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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