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시사

Lotus Pond 2020. 4. 25. 23:24

[선데이 칼럼] 길 잃은 보수정치에 붙여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

보수 정치가 길을 잃었다. 정처 없이 찾아 헤맨 건 오래지만, 이제 완전히 길을 잃었다.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갈 길조차 알지 못한다. 이미 예고된 표류요 좌초였다. 지도 하나 나침반 하나 없이 길을 나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여전히 길을 잃었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저마다 제 욕심대로 제 방향만 가리키고 있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탈진해 쓰러질 일만 남았다.
 

한도 지킬 줄 아는 이익 추구
비굴과 거만 없는 실용외교
요구보다 실천 앞세운 청렴
백성만 생각한 안영에 배워라

내가 세 번이나 “자유한국당은 폐업만이 답”이라고 썼는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제라도 접고 같은 생각끼리 헤쳐 모이는 게 돌아가도 빠른 길인데,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알량한 누더기 기득권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인데, 욕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될 리가 없다. 그 결과는 이미 봤다. 집은 나왔어도 마음은 온통 집에 두고 온 것만 생각하던 바른정당은 지금 흔적조차 없다.
 
더 이상 얘기해봤자 입만 아프다. 초심자들에게 오리엔테이션 하듯, ‘보수의 길’에 대한 홍보영상을 한편 상영할 뿐이다.
 
춘추시대 제나라는 두 명의 걸출한 재상을 배출했다. 초기 제나라를 춘추 5패 중 하나로 발돋움시킨 사람이 관중이라면, 중후반 흔들리는 제나라의 기둥을 바로 세운 이는 안영(晏嬰)이다. 사마천이 그를 위해서라면 마부라도 되겠다고까지 했던, 안자라 추앙받는 인물이다.
 
당시 제나라는 신구세력이 갈등을 빚고 있었다. 귀족계급의 통치에 무섭게 성장하던 신흥지주계급이 도전했다. 안영은 예법을 엄격히 시행해 경제 활동을 단속함으로써 신흥계급의 성장을 늦추려 했다. 얼핏 프랑스 혁명의 급진성에 놀라 경보를 발했던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버크가 그랬던 것처럼 안영도 보수주의자이지 복고주의자는 아니었다. 군주인 경공이 『주례(周禮)』를 동원해 기득권 통치를 모색했을 때 단호히 거부했다. 게다가 그는 신흥계급이 추진하는 개혁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자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신흥계급이 시대를 이끌어갈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데이 칼럼 4/25

선데이 칼럼 4/25

권력의 향배를 좇은 게 아니었다. 오직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는 군주에게 정치는 너그럽게, 규제는 없는 듯, 세금은 가볍게 하라고 조언했다. 어느 날 경공이 환공 때의 영화를 그리워했다. 그러자 안영은 왕을 이끌어 미복을 하고 시장통으로 나섰다. 신발 가게와 의족 가게가 나란히 있는데, 신발 가게는 파리를 날리고 의족 가게는 문전성시였다. 경공의 질문에 행인이 답했다.
 
“지금 왕이 가혹한 형벌을 주저하지 않아 발을 자르는 월형(刖刑)을 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요. 그러니 신발은 필요 없고 의족은 부족할 수밖에요.”
 
궁으로 돌아와 안영이 말했다.
 
“선조 환공께서 중원의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건 백성들을 몸처럼 아끼고 청렴하게 일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궁중에서 사치를 금하고 사욕으로 세금을 걷지 않았으며 궁궐을 지으려 백성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나라의 기풍이 절로 서, 높은 자리에 있어도 오만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고 돈이 있어도 가난한 사람을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안영은 자신부터 사욕이 없었다. 57년 동안 3대에 걸쳐 왕을 보필하며 상국에 이르렀지만 안영의 집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이에 경공은 안영이 외국에 나간 틈에 이웃집까지 터서 큰 집을 지어줬다. 하지만 안영은 새집을 헐고 이웃에게 다시 살게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부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안영이 부의 추구를 경멸한 게 아니다. 그는 이익을 좇는 걸 당연하게 여겼고 이를 위한 경쟁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봤다. 하지만 지나친 축재는 타인의 시기심을 자극해 자신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부는 바르게 추구해야 하며 옷의 폭에 한도가 있듯 이익에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바로 ‘폭리론(幅利論)’이다.
 
안영은 또한 외교의 귀재였다. 진나라 평공이 제나라를 취하고자 대부 범소를 보내 상황을 살폈다. 환영연에서 범소는 일부러 잔을 떨어뜨린 뒤 경공의 잔을 요구했다. 경공은 자기 잔에 술을 따라 범소에게 줬다. 범소가 마시려는 순간, 안영이 술잔을 빼앗아 버린 뒤 다른 잔에 술을 채워 줬다. 범소가 불쾌한 얼굴로 자리를 뜨자 경공이 걱정했다. 안영은 웃으며 말했다.
 
“범소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그의 행동은 우리를 시험한 것 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범소는 돌아가 평공에게 보고했다.
 
“지금 제나라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군주와 신하가 한마음으로 뭉쳐있는데다 지혜롭습니다.”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으며 정확한 판단력을 갖춘 안영의 외교수완에 공자도 무릎을 쳤다.
 
“훌륭하다 안자여! 술잔을 벗어나지 않고 천 리 밖 일을 조정하다니.”
 
오늘 보수냐 진보냐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길은 보수와 진보 그 사이 어디에 있다. 안영의 경제 사상과 실용 정치, 외교 안목, 실천 자세만 생각하면 된다. 국민을 위한 길이 어느 것이냐만 보면 된다는 말이다. 그걸 모르면 하느님, 부처님이 비대위원장이 돼도 답이 없다.
 
이훈범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대기자/중앙콘텐트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