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ARY

Lotus Pond 2011. 4. 20. 09:01

 

 

재활공학 박사로 거듭난 온몸 마비 KAIST생
                                  [중앙일보] 입력 2011.04.19 00:29 / 수정 2011.04.19 00:29

내일 장애인의 날 … 새 삶 사는 국립재활원 김종배 박사

“괜찮아? 어떡해, 어떡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1985년 9월.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재활보조기술연구과 김종배(50·사진) 박사는 난간도 없이 허술하게 지은 친구 자취방에서

 

발을 헛디디면서 3m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부터 땅에 닿으면서 가슴 아래 부분이 모두 마비됐다.

 

촉망 받던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생이 한 순간에 장애인으로 바뀌던 순간이었다.

 그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에서 전산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할 정도로 컴퓨터 통이었다. 그러나 이 사고로 대소변도 혼자 처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누워있으면 몸을 옆으로 돌릴 수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종신형을 받은 무기수의 기분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죠.”

 김 박사는 1990년 국내에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배관공사에 필요한 가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995년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만난 전신마비 미국인 짐 루빈 변호사는 그에게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됐다.

 “짐 루빈은 모스 부호를 이용해 호흡기 하나로 장애인 사이트를 운영했습니다. 재활공학 기술의 힘이었죠. 장애인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6년부터 그도 한국특수장애인 사이버센터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에서 재활공학 강의 요청 들어와도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2001년 미국 피츠버그대학으로 훌쩍 유학 길에 오른다.

 

미국에서는 치료 후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들을 위한 원격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환자 가족이 사진을 찍어 보내주면 이를 3차원 영상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길고 긴 노력 끝에 2008년 봄 피츠버그대에 교수로 임용됐다. 사고를 당한 지 23년 만이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2008년 가을 장애인 재활에 관해 황무지와 다름없는 한국에 돌아왔다.

 “국립재활원에서 재활연구소를 만드는 데 참여해 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두 번도 생각 않고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미국에 처음 올 때부터 반드시 돌아가 한국의 장애인들을 돕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죠.”

 귀국 후에는 연구에 매진하다가 욕창이 생겨 수술을 받을 정도로 일에 집중했다.

 

그를 치료했던 국립재활병원 이범석 부장은 “연구소 옆 기숙사에서 머물며 집에는 일주일에 2~3회만 갈 정도로 지독히 연구했다”고 말했다.

 재활연구소는 김 박사 주도 하에 그 동안 식사보조로봇, 욕창 방지용 휠체어, 장애인 그림 도우미 기기 등을 만들었다.

 

현재 휴대용 경사로와 운동이 부족한 장애인을 위한 휠체어 게임도 개발 중이다.

 

김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지원을, 일반인과 동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해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권병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IP Address : 98.113.164.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