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사랑하는 것들과... 고전음악, 풍란들..., 그리고 사진...

정율성 鄭律成,1914 ∼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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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음악가들...

2014. 6. 11.

 

 

 

정율성 鄭律成,1914 ∼ 1976

 

광주(光州) 출생. 초명 부은. 광주숭일보통학교를 마치고 1933년 항일운동에 가담한 형들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난징[南京] ·상하이[上海] 등지를 전전하는 동안 크리누아에게 작곡과 성악을 배웠다. 1937년 옌안[延安]의 루쉰[魯迅]예술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하고 1939년 중국공산당에 입당, 《옌안송》 《팔로군대합창》 등을 작곡 발표하였다. 그 가운데 《팔로군대합창》 중의 <팔로군행진곡>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함께 《인민해방군가》로서 정식 비준을 받았다. 한때 문화대혁명에 협력하지 않은 죄로 시련을 겪었으나 다시 작곡활동을 개시하여 가곡 ·가극 ·영화음악분야 등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광복 60주년, 남북 공동선언 5주년
남북 화합의 새로운 장이 열린 2005년!
살아있는 민족혼과 남북 공동의 중심체로 정율성 음악을 지목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중국인에게 특히 사랑받는 '팔로군행진곡' '연안송' 등을 작곡한 작곡가 정율성.
그의 탯자리인 광주에서 한국인에게 정율성을 알리고 문화적 자긍심을 놓임은 물론 남북 화합 동아ㅣ아 전체의 평화공존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제1회 광주 정율성 국제 음악제'가 열린다.

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광주광역시 황일봉 남구청장은 이번 음악제를 준비 하면서 한국인이면서 한국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데올로기가 빚은 슬픈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그를 평가했다.
2005년 11월 11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개막식으로 열리는 이번 음악제에는 작곡가 정율성의 영상물및 노래등을 중심으로 중국과 한국의 대표적 합창단들이 나와 그의 음악을 함께한다.
12일 학술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에서의 작곡가 정율성의 삶과 예술을 재조명하고 그의 노래를 유명 음악가의 노래로 함께하는 순서도 준비돼 있다.
또한 11일 12일 양일간 광주문화예술회관 로비에서는 정율성 사진전이 준비 된다.
이번 행사는 '황일봉' 광주 남구청장을 명예위원장으로 '노동은' 중앙대교수가 위원장으로 그외 많은 국내, 중국의 음악가 학자등으로 조직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하고 있다.
본 이미지는 링크 URL이 잘못 지정되어 표시되지 않습니다. 이번 음악제의 총감독이자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맏고 있는 노동은 총감독은 "일제 강점하 광주 사립숭일학교와 전주신흥중학교에서 민족의 고통을 체험하고 한반도와 중국대륙에서 일본제국주의와 맞서 민족독립과 아시아 평화를 노래한 음악가 정율성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위대함을 일깨워준다" 라며 "이것은 곧 한국과 중국의 혈맹이야말로 태평양시대의 동반자가 되어 아시아의 번영을 함께 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한국인이면서 정작 한국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를 알리기 위한 광주 남구청의 이번 행사 기획 의도가 인상깊게 남는 이번 행사는 8월 4일 롯데호텔 벨부볼륨에서는 내외신 기자를 대상으로 기자 발표회를 시작으로 힘찬 출발을 하게 된다.

 

정율성 / 중국인민해방군가

 

정율성 鄭律成,1914 ∼ 1976

 


"중국인민해방군가"

중국인구 6억명 이상은 중국의 위대한 혁명가로 정율성을 기억하고 있고, 중국인구 10억명 이상은 정율성이 작곡한 노래를 최소 1곡 이상 부를줄 안다. 우리나라의 아리랑과 같은 '연안송'의 작곡가가 정율성이며, 홍군의 대장정을 직접 답사하고 그 감흥을 바탕으로 작곡한 '팔로군대합창'은 1988년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중국인민해방군군가'로 공식비준되었으며, 1990년 북경아시안게임 개막식 첫프로그램으로 연주되었다. 태어나서 어린시절을 보낸 조국인 한국에서는 낯선 이름이지만 중국의 2백만 조선족 동포들에게는 추앙을 받고 있는 작곡가가 있다. 정율성은 조선인이면서도 1937년 이후 중국에서의 항일투쟁과 탁월한 음악적 업적으로 최고의 중국음악인 반열에 오르게 된다.

19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 첫 프로그램과 2000년 6.15 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만남에 울려퍼진 곡이 모두 그의 곡이었다는 사실은 중국과 북한에서의 그의 음악적 위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항일독립투쟁, 국가건설, 문화혁명 등 파란만장한 중국현대사 속에서 혁명성 짙은 작곡으로, 때로는 침묵의 저항으로 일생을 보낸 그는 1914년 광주시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광주 숭일소학교를 마치고 전주 신흥중학교에 입학했으나 부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학업을 그만둔 율성은 1933년 봄 셋째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1934년 의열단의 남경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곳에서 항일비밀활동에 종사하는 한편, 매주 일요일 상해로 가 러시아의 저명음악가 크리노와 교수로부터 성악을 배우게 된다.

교수로부터 이탈리아에 가서 계속 공부할 것을 권유 받지만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던 율성은 1937년 10월 연안으로 옮겨 노신학교에 입학한다. 그는 이곳 연안에서 모든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팔로군행진곡’, ‘연안송’ 등 주옥같은 음악을 남기게 된다. 특히, 힘차게 시작되는 ‘팔로군행진곡’은 큰 사랑을 받으며 군가로 채택됐고 1988년 중국군사위원회로부터 정식 ‘인민해방군군가’로 비준을 받게 된다. 외국인으로서 불가피하게 갖게 되는 음악적 언어전달의 어려움을 그는 한국인의 특유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중국인민의 모든 것을 몸소 체득하고 배움으로써 극복했던 것이다. 1966년 작곡, 공연 등 모든 예술 활동이 금지된 문화혁명기간 마저도 정율성의 불타는 창작열을 끝내 꺽지 못했다. 그는 이 기간 “그 자체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기백이 넘쳐흐르는 교향악으로 중국혁명사의 최고탑” 이라고 불리는 마오쩌둥시사 20편에 곡을 붙이는 작업을 완성하게 된다. 대자연을 한없이 사랑하고 노래한 그는 문화혁명이 막을 내린 1976년 12월7일 베이징 근교의 운하에서 낚시를 하던 중 고혈압으로 쓰러지면서 그의 길지 않은 파란만장한 예술적 삶을 마감하게 된다.

 

 

 

정율성 鄭律成, 1914 ∼ 1976

정율성. 그의 이름은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낯설지 않다. 1990년 9월 22일 베이징 아시안게임 개막식은 인민해방군 군악대의 힘찬 연주로 시작됐다. 300만 중국군이 아침저녁으로 부를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행사 때 어김없이 연주되는 '팔로군 행진곡'이었다. 이 곡은 중국에서 국가 '의용군 행진곡' 다음으로 널리 연주된다고 한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순안공항에 내린 김대중 대통령을 맞은 것은 '조선의용군 행진곡'이었다. '팔로군 행진곡' '조선의용군 행진곡'은 모두 그가 작곡한 곡이다. 중국 3대 음악가 중 1인으로 추앙 받는 그는 13억 중국인들이 떠받드는 항일투쟁가이자 음악가다. 하지만 그가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한국 태생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의외로 많지 않다.

사회주의 계열의 혁명가로 생전에 조국과 단절된 시간이 워낙 길었던 데다 해방 후 북한에서 5년을 보낸 게 그 이유일 것으로 추정된다. 정율성은 광주 양림동에서 태어나 숭일 소학교를 졸업한 후 20살이 되던 1933년까지 광주에 살았다. 생가는 광주 남구 양림동 79번지. 이후 중국 남경으로 건너가 항일투쟁 활동을 하는 등 혁명가로서의 삶을 유지한다. 일생동안 동요에서 오페라, 영화 음악 등 360여 곡을 작곡하면서 중국의 3대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추앙 받았다. 중국인들이 국가 다음으로 즐겨 부르는 중국 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행진곡'은 1988년 중국 인민해방군가로 정식비준을 받았다. 가곡, 가극, 영화음악 분야에서 360여 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으나, 문화대혁명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죄로 시련을 겪다가 1976년 10월 뇌일혈로 사망했다.

지난해 6월 광주에서 정 선생의 미망인인 정설송(86·중국 전 네덜란드·폴란드대사) 여사와 딸 정소제(62·중국음대 겸임교수)씨 등 중국과 대만인사 8명을 초청, '음악가 정율성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지난 8월에는 쑨지야쩡(61·孫家正) 중국 문화부장(장관)이 제1회 광주 정율성 국제음악제 개최를 협의하기 위해 광주의 정율성 생가를 방문했는데, 이 자리에서 "정율성 선생은 음악을 통해 아직도 중국 인민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며 "이처럼 출중한 음악가를 배출한 광주시민은 물론 한국 국민들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 함께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음원출처:http://fpdownload.macro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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