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사랑하는 것들과... 고전음악, 풍란들..., 그리고 사진...

백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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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음악가들...

201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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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때 1946. 5. 10
태어난 곳 서울
소속 국가 한국
직업 피아니스트

1946. 5. 10 서울~.

피아니스트.

배재중학교를 졸업하고 1961년 미국 뉴욕 예술고등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학교에서 로지나 레빈에게 지도받았다. 1971년 나움버그 국제음악 콩쿠르, 레벤트리트 국제음악 콩쿠르에서 연달아 입상했다. 1965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하고 데뷔한 이래 1972년 앨리스툴리홀에서 라벨의 피아노 전곡 연주, 이어 같은 레퍼토리로 런던·파리·베를린 등에서 독주회를 가져 호평을 받았다. 1974년 무소르크스키의 피아노 작품 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파리에 거주하며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그밖의 많은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영화배우 윤정희와 결혼했으며 1977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북한의 납치음모에 의한 피랍소동을 겪기도 했다. 섬세한 조형과 깔끔한 타건으로 세련된 연주를 한다. 라벨의 작품 해석에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으며 라벨 피아노 전곡, 스크랴빈 피아노 전곡의 음반이 나와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세계


김동준(29)

1. 서론 - 현대 클래식음악계의 양상

세상에는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인간의 삶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물질적인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들이 인간의 삶을 항상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욱 편안한 것을 쫓으려고 하고 있고, 그러한 경향이 거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인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예술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술 본래의 기능으로 파악되던 인간심성의 정서적 순화, 혹은 미화는 잃은 채 마치 대중문화처럼 사람들의 감각을 만족시켜 주는 데에 급급한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것은 고도로 분화되고 자본주의화된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삶의 자발성을 상실한 채 생존에만 급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개인이 사회와 삶의 중심부에서 자신을 찾으려 하지 못하고 오히려 삶을 망각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감각적인 것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것에 기인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에 대한 기호는 감각적이며 그저 피상적인 아름다움을 느끼는 키취적인 것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인데, 예술이 상품화되어가는 사회구조 현실에서 본래의 순수예술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클래식 음악계의 구조는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작곡가, 연주가, 청중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서양음악사를 통해 본다면 베토벤 이후에야'예술을 위한 예술'이 가능한 사회로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낭만주의 이후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어려운 작품으로 인해 연주가와 작곡가는 더욱 전문화, 분업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음반산업의 발달은 클래식 음악계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음악사회의 모습 또한 많이 변모해나가고 있다. 거기에는 많은 장단점이 존재하나, 클래식 음악계가 소수의 연주가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폐쇄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되었고, 많은 청중들은 음악의 아름다움에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이유는 현재의 음악사회구조에서 대다수의 청중들은 동시대의 음악과는 분리되어 있으며, 과거의 음악에만 고착되어 있고, 또한 음악감상에 있어서도 소수 연주가에 의해서만 획일화되어가는, 감상자로서, 수용자로서의 주체를 상실하는 과정에 놓여있으며 이는 클래식음악계의 모습이 마치 매스미디어의 광고에 의해 좌우되는 소비사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 연주자가 녹음한 음반은 더 이상 한 예술가의 창작품이 아닌,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생산품'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 현대 음악계의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음악계의 상황으로 비추어보아 앞으로의 연주자와 청중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성을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할 수 밖에 없는 미래에 도달하고 말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가능할 수 밖에 없다.



2. 연주가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

현재의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큰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역시 연주가들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굳이 부언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많은 청중들은 공연과 음반의 선택에 있어 작품보다도 연주가를 우선하는 경향이 팽배해 있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클래식 음악계의 많은 현상을 변화시키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은 다름 아닌 연주가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음악계를 둘러싸고 있는 외적인 환경의 변화가 음악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으나, 음악을 해석하고 재창조한다는 진정한 의미의 연주가상에 비추어 본다면 음악에 있어 연주가의 책임과 역할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연주가의 역할은 이렇듯 작곡가와 청중을 연결해 준다는 단순한 매개자의 의미가 이제는 크게 확장되어 때로는 특정 작곡가보다도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로 파악되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훌륭한 작곡가들은 대부분 피아노를 포함한 한가지의 악기에 있어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기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연주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음악인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으로 인해 작곡과 연주에 모두 임하는 경우는 예외적이며 특수한 경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시대의 연주가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역할은 음악을 피상적이며 감각적으로 대하는 애호가들을 포함한 청중들에게 그들이 가능한 망각하려고 하는 삶의 중심을 바라볼 수 있는 변화 즉, 감동이 가능한 연주를 들려주는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음악적 경험을 통해서 점점 부속화 되어가고 사물화 되어가는 개개인의 삶으로부터 주체성을 회복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삶이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순수예술로서의 음악이 아닌 상업성에 영합하는 감각적이고 저급한 '상품화된 문화'와의 변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는 문학이나 미술처럼 구체적인 표현언어가 아닌 '음(音)'이라는 추상언어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앞서 말한'사회와 삶을 직시'하도록 도와주는'구체적 의미'로 전해지기란 어렵다. 많은 연주가들은 날로 뛰어난 테크닉과 나름의 개성으로'새로운 베토벤'을 들려주려 애쓰고 있지만, 오늘날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이'예술행위로서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단순히 연주해석 측면의'새로움'만으로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음악적, 사회적 상황에서 한 연주가의 베토벤 연주가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단순히 악곡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기교적인 과시를 통해 느껴지는 음악적 쾌(快)를 넘어서 베토벤의 연주속에 현대사회상의 파악을 통한 '사상적인 감정'이 이입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추상적이나마 이러한'사상적 감정'에 기반을 둔 연주를 통해 청중은 한 작품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으며, 연주가로부터 감동, 감화되는 정서적 반응을 통해 연주가와 함께 동시대인으로서 삶을 의식적으로 되돌아보게 되는 순수예술 본래의 기능을 다하게 되는 것이라 본다. 이렇게, 음악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순수예술적 기능 회복의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연주가를 상정한 필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음악세계를 고찰해봄으로써 이 혼란한 시대에서의 바람직한 예술가상을 미약하나마 정립해 보는 계기와 함께, 백건우의 음악세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시론(試論)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3. 백건우의 음악적 발자취와 활동시기 구분

a. 연주회 자료

대표적인 국외 연주회

  • 1972 뉴욕 / 라벨 피아노곡 전곡 연주회
  • 1974 파리 / 무소로그스키 피아노곡 전곡 연주회
  • 1982 파리 / 리스트 피아노곡 연주회(총 6회 50여곡)
  • 1991 폴란드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연주회(전 5곡)
국내연주회 (*필자가 참석했던 연주회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음)

  • 1992. 7.7.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성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마리스 얀손스)
  • 1993. 3.24-27 서울 KBS홀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
    (KBS교향악단, 지휘:박탕 조르다니아)
  • 11.16-29 창원, 광양, 춘천, 안동, 대구, 서울, 울산 / 리스트, 부조니 피아노곡 연주회
  • 1995. 10.16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
    (서울시립교향악단 제 533회 정기 연주회)
  • 1996. 대구, 전주, 창원, 여수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 5번 '황제'
    서울, 대전, 부산, 광주 /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 9.2 ,4 ,6(3일) 서울 명동성당 / 메시앙 아기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전곡
    (*한국 초연)
  • 12.9 서울 예술의 전당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오슬로 필하모닉, 지휘:마리스 얀손 스)
  • 1997 서울, 부산, 대구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광주, 전주, 대전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LG정유 주관 푸른문화예술축제)
  • 1997. 9.28 서울 예술의 전당 / 베토벤/리스트 교향곡 제9번 <합창>듀오 연주회
    (피아노:후세인 세르미트)
  • 1998. 3.25 서울 예술의 전당 / 라벨 피아노 곡 전곡 연주회
  • 1998. 6.1 서울 명동대성당 / <평화의 집>돕기 자선음악회
  • 1998. 11.16 세종문화회관대강당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러시아 내셔날 오케스트라, 지휘:미하일 플레트네프)
b. 음반자료 (*국내에 발매된 음반들)

  • 라벨 피아노 작품 전집 1975 / Dante
  • 라벨 피아노 협주곡 전집 1981 / Orfeo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 1991 / Naxos
    (*프랑스 디아파죵상 수상)
  • 리스트 피아노 곡집 1991 / Virgin
  • 프랑스 작곡가 소품집 1991 / Virgin
  • 스크리아빈 피아노 작품집 1992, 1993 / Dante
    (*프랑스 디아파죵상, 누벨 아카데미 뒤 디 스크 수상)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집 1993 / Dante
  •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집 1993 / Dante
  • 멘델스존 무언가집 1994 / Dante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집 1998 / RCA
c. 백건우의 활동시기 구분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46년 5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고, 현재는 파리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전세계 무대를 누비며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어머니가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고 교사였던 아버지는 서양문화에 조예가 깊은 아마츄어 음악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양음악에 친숙할 수 있었으며, 10살때 최초의 독주회를 가졌고, 12살 때는 당시 국립교향악단 (*서울 시립교향악단의 전신)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협연무대를 가졌다. 15살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에서 공부하고, 나움베르크 콩쿨, 레벤트리트 콩쿨, 부조니 콩쿨등의 국제콩쿨에 입상하여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기 위한 발판을 다지기 시작했으며, 1972년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연주를 통해 세계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 작곡가씩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전곡연주등의 심도있고, 무게있는 연주회를 주로 가져온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활동시기는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학습시기 - 피아노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8살 때 부터 배재중학을 졸업하고 도미하여 줄리어드 졸업한 시기
  • 국제무대데뷔기, 미국 거주시기 - 카네기홀 데뷔, 레벤트리트 콩쿠르, 나옴버그 콩쿠르 입상, 1969년 부조니 콩쿨 우승한 시기. 26살(1972) 때 라벨 전곡 연주 (라벨을 필두로 사티, 드뷔시, 뿔랑, 무소로그스키, 프로코피에프, 리스트, 바르톡, 모차르트, 슈베르트, 스크리아빈, 메시앙등의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을 집중탐구 연주해 오고 있다.)
  • 축적기, 파리 거주시기 - 거주지 파리로 옮기고 연주횟수 줄임, 레파토리 확장
  • 녹음기, 재활동시기 -1991년 이후로 집중적으로 레코딩을 시작하였으며, 과거에 연주했던 레파토리들을 한 단계 높은 완성도로 연주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름
부족하나마 이상의 자료를 바탕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백건우의 연주경력은 무엇보다도 연주가로서의 주관과 그 세계가 뚜렷하다고 보여지며, 항상 쉼없이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다. 콘서트 피아니스트 이외의 다른 활동은 전혀 해 본 이력이 없는 전문연주가로서의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이는 연주예술가로서의 소명을 지켜나가려고 하는 굳은 노력에서 가능한 사실임을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지극한 완벽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주로 연주회를 통해 활동을 해오다가, 90년대에 들어와서야 본격적인 레코딩을 시작했으며, 92년도에 스크리아빈 음반이 프랑스의 디아파죵상을 수상하면서 더욱 주목 받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4. 연주회와 음반을 통해 살펴본 백건우의 예술세계

a. 한 작곡가의 작품세계의 근본을 파고드는 탐구자

백건우가 국제무대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6살 때 라벨 피아노곡 전곡 연주를 하면서이다. 라벨을 필두로 하여 특정 작곡가의 집중탐구 연주는 드뷔시, 무소로그스키, 리스트,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메시앙등의 작곡가로 이어져 최근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녹음이라는 결실을 맺으며 이어져 오고 있다. 한 작곡가의 피아노 작품을 전곡연주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연주행위인데, 한 두 작곡가가 아닌 여러 작곡가의 작품을 전곡연주 형식으로 집중탐구함으로써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백건우의 연주행위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연주계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 주요 연주회와 음반에 관한 자료는 3-a,b 참조) 최근 국내에서 20여년만에 다시 가진 라벨 피아노곡 전곡연주회(98년 3.25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는 두 번의 휴식시간을 가지면서 거의 3시간에 가까운 연주를 들려준 바 있다. 이날의 공연은 국내음악계에도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켜 전석매진이 되었으며, 연주가 끝났을 때는 많은 청중들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연주회를 통해 미래의 클래식 음악의 상황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비록 국내의 여러 악조건과 클래식 분야가 침체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연주의 수준이나 질이 높은 경우에 청중들은 그러한 연주자와 연주회장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고로, 연주회의 외형적인 형식의 변모나 대처도 중요하겠지만, 결국 청중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음악에 대한 요구를 눈뜨게 해줌과 동시에 그 요구를 채워주며, 감동을 줄 수 있는 연주가 준비된다면 순수예술로서의 클래식음악의 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의 예술적 상황에서 한 연주가가 자신의 음악적인 세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많은 유혹과 험난한 장애가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백건우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커다란 계기는 스크리아빈의 피아노곡 녹음에 있었다. 이 음반은 '스크리아빈의 세계와의 친화, 철학적인 심리학적인 차원을 이해하고 소화해내었다.'는 국제적인 평을 얻으며 프랑스의 '디아파죵상'과 '누벨 뒤 디스크 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스크리아빈 전곡녹음은 현재 중단되어 있고, 두 장의 음반만이 발매되었다. '스크리아빈의 음악은 인간의 선과 악을 강하게 노출시키고 있어, 스크리아빈의 음악에 오래 머무르기가 어렵다.'는 것이 백건우의 말이다. 또한, 그는 1982년 파리에서 리스트의 작품 50여곡만으로 6회에 걸친 연주회를 준비할 때 연주회를 준비하기 위해 리스트의 전작품을 수집했으며, 리스트에 관한 수십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4년의 시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회 (1993. 3.24-27 서울 KBS홀/ KBS교향악단, 지휘:박탕 조르다니아)후에 계속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마하여, 동양인 최초로 전곡녹음을 한 사실등을 통해, 백건우는 한 작곡가의 작품을 대할 때 총체적으로 작품과 작곡가의 세계의 심층에 깊이 머무르며, 음악주변적인 상황에 대한 방대한 탐구작업을 해나가는 연주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작곡가와 작품의 근본에까지 파고 들어가려는 그의 노력을 통한 연주로 일반인들에게는 무겁고 어려운 레파토리를 연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중들로부터 음악적인 공감을 얻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b. 합일(合一)의 장(場)으로써의 연주회장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

흔히들 청중들은'음악속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표현을 한 연주회에 대한 최상의 찬사의 표현으로 사용한다. 이렇듯, 다른 예술장르와는 달리 연주회장에서의 음악이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유일하면서도 득특한 점은 바로 예술을 행위하는자, 즉 연주가와 직접 만나며, 그가 연주하는 음악속에서의 합일의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경우 연주가는 자신이 연주하는 작품과 청중과의 합일의 매개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아마도 이것을 완전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일은 미학과 물리학의 상호연구를 통해 가능한 과제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합일의 경험이 '열림'의 형식을 통해 가능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열림'의 주체는 연주가 뿐 아니라, 청중의 총체적인 '열림'이 있어야'합일'의 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연주회장에서 '열림'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열쇠이자 매개는 바로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소리, 즉 악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다. 유일한 매개인 악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의해 연주자와 청중이 합일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소리에 '열림'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연주회장에 앉아있는 각 청중의 '들음'은 모두 다를지라도, 청각을 통해 강력히 호소하는 음악을 통해 청중은 나머지 다른 감각을 자발적으로 열게 되고, 이것이 바로 '열림'의 형식으로 이어져 '합일'의 체험을 가능케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음악이 매개가 되어 경험하는 '합일'의 경험이 삶에 미치는 영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은 설명의 필요가 없으며, 또한'존재의 기쁨'이라고 할 것이다. 연주회장에서 이러한 합일의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연주자에게 그러한 '합일'의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지와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백건우의 연주활동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에게는 한 연주가로서 그러한 의지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 것은 지난 '베토벤 / 리스트 교향곡 제9번 <합창>듀오 연주회(*한국초연, 피아노:후세인 세르미트, 97년 9월 28일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 )'를 통해서였다. 리스트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해 놓은 베토벤의 제 9번 교향곡 <합창>은 두 명의 피아니스트에게 어려운 기교적인 극복과 함께 본래의 곡이 지니고 있는 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어야 그 연주의 의미가 산다고 할 수 있는 곡인데, 백건우와 후세인 세르미트는 이 곡의 4악장에 지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고독속에서의 연대감의 회복을 힘차게 노래한 작품'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으로 연주되는 원곡의 의미와 감동을 두 대의 피아노로 충실하게 표현하였다. 이는 연주가로서 백건우의 중요한 특질이자 일면이기도 한데, '삶의 불안과 그것을 부정하고서 떠올라오는 고독속에서의 연대감의 회복'이라는 과정은 백건우가 연주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원동력중의 하나라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c. 인간의 참모습을 그리고자 하는 피아니스트

한 연주가의 정신적 측면을 파악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연주라는 행위가 어떤 사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구체성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연주가의 연주행위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주가의 정신적 측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백건우는 많은 인터뷰를 통해 '예술가란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역설해오고 있다. 그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다가, 예술가란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든지, 예술가의 길을 모색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연주활동을 해오다가 예술가란 인간의 참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든지 간에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연주이외에 다른 활동은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고 보면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참모습'은 역시 그가 연주하는 음악 속에 담겨있다 할 것이다. 만일 그가 깨달아서 결론에 도달한 인간의 참모습이 구체적이고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이라면 보다 구체적인 글이나 그림을 통해서 그것을 전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활동을 통해 주관적이나마 파악될 수 있는'인간의 참모습'은 결코 고정적이거나, 객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백건우의 예술세계에 대해 앞서 설명을 한 것처럼, 백건우가 추구하고 펼쳐보이고 있는 연주세계와 마찬가지로 그가 생각하는 인간의 참모습은 '크고 하나된 열려진 가능성의 존재'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며,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1996년 9월2일 4일 6일, 서울 명동성당, 한국초연)의 연주속에서 그러한 의미를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연주자 스스로 "음악적, 심리적인 것 뿐 아니라 종교적인 차원까지도 체험할 수 있는 이 곡을 대할 때마다 기쁨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며, 이 곡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순수한 참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라고 얘기했던 2시간이 넘는 난해하고 장대한 이 현대곡의 연주를 통해 백건우는 빛과 생명이 넘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과 순수한 기쁨'을 그려냄으로써 명동성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받았다. 백건우에게 있어서 인간의 참모습이란 '객관적으로 파악되고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마치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레파토리와 새로운 연주를 청중에게 들려주고 있듯이, '미래를 향하여 열려져 있는 존재','하나로 융화될 수 있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며, 이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독교적인 인간관이라고 말할 수 있고, 백건우의 정신적인 측면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되는 것이다.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의 연주는 음악을 통해서 종교성을 체험할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연주회였다.



5. 맺음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술에 있어 상반된 예측과 걱정이 공존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가 문화예술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과, 순수예술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는 심각한 걱정이 그렇다. 최근의 현대예술은 청중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안식을 주기보다는 혼돈만을 제공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연주라는 행위는 새로울 것이 없음에도 이 시대에 계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큰 영향력을 가진 예술행위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그동안 들려준 그의 음악세계 뿐만 아니라, 그가 걸어온 삶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리라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불가능'과 '안주'란 있을 수 없는 것 처럼 여겨진다. 적어도 연주회장에서의 연주가란 청중들과 직접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있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연주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 내면에 있어야 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그 무엇'이며, 그 무엇이 풍요롭게 자리하고 있는 상태에서 연주를 들려주었을 때 청중은 무언의 감동과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절실한 생명'의 모습일 것이다. 혼란한 이 시대를 차갑고 날카롭게 분석하여 절망을 우리앞에 내어놓는 것이 아닌, 점점 무감각해지고 차가워지는 현대인의 냉소적인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하여 생명으로, 생명으로 숨쉴 수 있게 하는 생명력이 참으로 이 시대의 연주가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며, 혼란한 예술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항상 청중과 연주회장에서 만난다는 연주예술행위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상업주의의 악영향에도 불구하고 모든 예술분야중에서 그래도 연주행위에는 여전히 희망이 살아숨쉬고 있다. 그러나, 그 희망의 바탕은 그 무엇도 아닌 연주가, 곧 사람에게 있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그러한 희망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희망을 걸 수 있는 진정한 예술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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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 사람 피고를 알고 있습니까?"

한 영화에서 증인석에 앉은 우디 앨런이 검사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그는 답변하지 않은 채 예의 그 막막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여러 차례 다그침을 당하자 그제야,

"내가 이 사람을 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야 할지,

사람이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게,

그러니까 어디까지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는 겁니까?"

 

나는 베토벤을 알고 있는가?

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32작품에 대해 알고 있는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음악이든,

우리는 그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를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출생 연도를 알고

대표작들을 알고

초상화를 통해 그의 얼굴 모습을 분간할 수 있고,

그가 청각을 잃었다는 걸 들어 알고,

고전에서 낭만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이정표가 되었음을 알고있다고 해서

베토벤을 안다고 할 수 있을지.

 

초기 소나타는 1~15번, 중기는 16~26번, 후기는 27~32번으로 분류되며,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신약성서'라 불리며 중히 여겨진다는 것을 안다고,

8번엔 '비창', 14번엔 '월광', 26번엔 '고별'등의 표제가 붙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고별>은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루돌프대공이

나폴레옹의 빈 침공으로 피신해야 했을 때(1809) 그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는 걸 알고,

악장별로 '고별''부재''재회'의 부제가 붙어있다는 것을 안다고

내가 베토벤의 <고별>을 포함한 피아노 소나타들을 안다고 할 수 있을지.

 

허다한 정보들의 바다를 뒤져

베토벤과 그의 피아노 소나타의 앎을 위한 분류체계를 입력하고

각 소나타에 대한 지식들을 빡빡하게 머리에 넣은 채

백건우를 만나러 갔다.

인터뷰 녹을을 하러 가는 길머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유의했다.

급입력은 급낙하하기 마련이니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백건우는 소위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데에 어떤 표준화된 틀이 있는 것이 아니건만

아무튼 백건우는 말을 잘하는 축에 분류되지 않는다.

여기서 분류의 기준은 아마도 유창함일 것이다.

그러나 유창함 속에 얼마나 무진정과 무감동과 심지어 무질서가 스며 있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 말을 들을 땐 한마디의 진정이,

백건우의 타건 같은 한마디가 그리워진다.

 

인디언 부족 라코타는

말 앞뒤의 침묵을 참으로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말하는 자의 말에 앞선 생각하는 시간,

말 뒤에 오는 듣는 자의 듣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침묵의 공간a space of silence'이라 표현하며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을 귀히 여겼다.

 

백건우는 음악 사이사이의 침묵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림을 그림이게 하는 여백처럼

음악을 음악이게 하는 침묵에 대해서.

그의 말도 음악 앞의 침묵처럼 기다림의 미덕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늘 헛되지 않았다.

침을 꾸울꺽 삼키고 기다리면

꿀처럼 첫입에 달진 않지만 오래도록 입안에 향내를 남기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꿀꺽이 아니다. 그렇게 삼키고 나면 또 기다려야 하니까 반드시 '꾸울꺽' 삼켜야 박자가 맞는다)

 

그는 베토벤에 대해 알 것은 알고 모를 것은 모르고 있었다.

모른다고 솔직히 말할 줄 아는 사람은 이후 알기 위한 노력과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인 법이다.

 

그런데 백건우가 "그건 몰랐네요" 할 때에는.

"그게 뭐 꼭 알아야 하는 건가요?"로 들렸다.

그리고 그 되물음은 너무나 적절했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베토벤 자신과 그의 음악 자체에 대한 것이고,

그가 모르거나 언급하지 않은 것은 베토벤과 그의 음악 바깥의 것이었다.

 

그 사람과 그의 음악에 대해 아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백건우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매달린 몇 년 동안

베토벤에 천착했으나 그것은 앎이라기보다는 느낌으로였다.

진정 느껴야 알 수 있는 것임을 백건우의 연주가 말해주고 있었다.

하긴 내가 행복했던 건 그의 연주를 들으며 느낄 때였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 대해 공부하고 있던 때가 아니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느끼면 알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다.

 

그의 여덟 차례의 전곡 연주회 중 두 번의 연주를 볼 수 있었다.

매일 밤 연주야 그렇다 치고

매일 밤 관람을 어찌 할 수 있으랴 생각했으나,

한 차례의 연주를 보고 나니

'부질없는 약속들을 취소하고 12월의 한 주일 밤을 베토벤 소나타 전곡 감상에 바칠 것을' 하고후회가 되었다.

 

파리에서 연주회가 끝나고 한 여성 관객이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어디 머언 곳에 다녀온 것 같다고. 그곳에 데려다준 백건우에게 감사한다고.

백건우는 매일 밤 그렇게 서울의 우리도 어딘가로 데리고 가 주었다.  

자신이 어느 시골의 전원 풍경을 보는 것 같다던 10번으로,

<비창>의 비감함으로,

단조의 구애로,

<함머클라비어>의 현란한 기교로,

다 다르게 다른 곳으로. 파리의 그녀의 표현은 너무도 적확했다.

 

관객들은 숨죽이고 그 떠남에 동참했던 것 같다.

다만 그 떠났다 돌아오는 길, 후드득 정신이 깨어남에 있어

난 좀더 그곳에 있고 싶었지만

일부 관객들은 빨리 현실세계로 돌아 오고 싶었던 건지,

백건우가 피아노 건반에서 채 손을 떼기도 전에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나만의 적막한 유적지에서 새들이 푸두득 나는 것 같았다.

유적지의 고요가 깨지는 것이 싫었다.

 

어눌하기 짝이 없는 그가 어찌 그리 피아노를 치는가.

치지 않음으로 해서 영롱해지고 침으로 해서 충만해지는

베토벤의 영혼의 소리를 들으며

우리를 이토록 아름다운 여행으로 이끌어주는

우리 시대의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깊이 감사했다.

   

그 스스로 기교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했던

29번 <함머클라비어>를 들으면서

'저런 곡은 한 번 칠 때마다 한 10년씩 늙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주를 끝내고 객석을 향해 얼굴을 돌린 백건우의 얼굴은

오히려 한 10년은 젊어 보였다.

욕심껏 마셔 끝내 갓난아기가 되었다는,

한 모금을 마시면 일 년씩 젊어진다는 옛날이야기 속 샘물이 떠올랐다.

베토벤이라는 샘물을 거침없이 들이키며

합일의 경지를 이루고 난 개운함으로

백건우는 나이와 세월마저 털어내고 있는 듯했다.

   

- 유정아의 클래식 에세이 <마주침> 중에서 -

 

Lodwig Van Beethoven(1770-1827)
Piano Sonata No. 29 in B flat major Op.106 "Hammerklavier
KUN-WOO PAIK, piano

 
I. Allegro  

 
II.  Scherzo : Assai

 
III.  Adagio Sostenuto, Appassionato

 
IV. Largo - Allegro  


피아노 소나타 No.29 in B flat Major Opus op.106,(Hammerklavier)은

1819년 그의 나이 43세에 작곡된 것으로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된 곡이다.

초판의 악보에 함머클라비어를 위해서로 되어 있는 작품(작품번호101,106,110) 세 곡 중에서

1817∼ 1818년에 작곡된 106번을 가리킨다.

개량된 피아노에 자극을 받아 이 곡을 썼다고 하며

이 곡은 구상이 웅대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품으로 알려졌다.

1악장의 1주제는 교향악적인 장대함을 주며,

특히 3악장의 그 장대한 비가는 듣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감동을 준다.

이 곡은 모두 4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을 따르는 모습이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어서,

마지막 악장은 피날레이지만 역시 푸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각 악장에서도 엄격한 소나타형식을 취하기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대작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최대 작품으로

큰 규모의 교향곡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하는데,

이 곡의 도전엔 모든 피아니스트들에게 피와 땀을 요구하고 있는 난곡중에 난곡이다.

 
당시 마흔아홉 살의 베토벤은 이 곡을 쓰고 난 뒤

“이제야 작곡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을 만큼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다.

이곡은 피아노 소나타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오케스트라가 동원돼야 할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교향곡 같은 소나타다. 

(글자료 : 대전일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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