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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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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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들 이야기(피아노)

2014. 9. 26.

 

 

 

 

 

 

빌헬름 켐프 명연주자 열전 14 켐프는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감수성을 갖춘 시인이었다.<br>그는 시성과 상상력 넘치는 피아니즘으로 현대적 베토벤 해석을 완성한 피아니스트였다.

20세기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은 개척자로서의 명예는 최초의 전곡 녹음을 남긴 아르투르 슈나벨에게 돌아갔지만, 우주와도 같이 드넓은 이들 작품에 현대적인 피아니즘에 의한 일관성을 갖춘 리리시즘, 풍부한 상상력을 불어넣은 장본인은 바로 빌헬름 켐프(Wilhelm kempff, 1895~1991)였다. 그는 빌헬름 박하우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의 양대 산맥이었다. 박하우스가 독자적이고 관념적이며 낭만주의적이었던 비르투오소였다면, 켐프는 보편적이고 자연주의적이며 현대적인 감수성을 갖춘 시인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시성과 상상력 넘치는 독일 피아니즘으로 일관성과 개연성 높은 구조적 논리를 부여한 현대적 베토벤 해석의 완성자이다.

건반 위의 시인, 빌헬름 켐프

1895년 11월 25일 독일 브란덴부르크 근처의 쥐터보그라는 도시의 교회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켐프는 어릴 때부터 이미 천재성을 보였다. 아버지는 성 니콜라이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고 할아버지 역시 오르가니스트, 삼촌은 에를랑겐 대학의 교회음악 교수였을 정도로 음악적인 집안에서 자란 켐프는 어린 시절에 이미 바흐의 [평균율]을 암보로 조옮김하여 연주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다. 9세라는 이른 나이에 켐프는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수학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의 즉흥 푸가와 변주 연주를 들은 교수가 그의 기억력과 연주력에 탄복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베토벤 연주에 큰 업적을 남긴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

당시 그는 브람스와 친분이 두터웠던 로베르트 칸과 리스트의 제자인 하인리히 바르트(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스승)를 사사하며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니즘과 그 음악정신을 배웠다. 1917년에는 첫 리사이틀을 열어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와 브람스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했다. 멘델스존 상을 받으며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연주회를 가지기도 했다. 다음 해인 1918년에는 아르투르 니키쉬가 이끄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기 베토벤 소나타만으로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다.

1924년부터 29년 사이에는 슈투트가르트 베르텐베르크 국립 음악원의 학장직을 맡았고 1931년부터 1941년 사이에는 에트빈 피셔와 발터 기제킹, 에두아르트 에르트만, 엘리 나이와 함께 포츠담에서 여름 학기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 혹은 전통을 수렴, 발전시켜 계승해야 한다는 독일인 특유의 마이스터 정신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 교육 뿐만 아니라 그는 작곡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1932년 프러시아 예술 아카데미의 정회원으로 선출된 것도 작곡가의 자격으로 선출된 것인데, 1930년대에 네 개의 오페라와 두 개의 교향곡, 현악 4중주,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창작작품은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지만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비롯한 많은 바로크 시대 음악을 피아노로 편곡한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널리 연주되고 있다.

베토벤 연주를 위해 태어난 사람

켐프는 베토벤으로부터 내려온 계보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했다. 켐프에 따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테크닉과 위대한 정신성을 갖춘 피아니스트이자 그의 스승인 하인리히 바르트는 한스 폰 뷜로로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뷜로는 리스트에게, 젊은 리스트는 베토벤으로부터 권위의 봉인을 상징하는 키스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베토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켐프는 고전과 낭만적 전통을 가장 훌륭하게 물려받은 적자로서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통성을 음악을 통해 실천해보였다. 리스트의 또 다른 애제자인 달베르트의 자연스러운 열정과 페루치오 부조니의 싱싱하게 빛을 발하는 영감이 그를 열광케 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바흐와 오르간, 폴리포니에 대한 이해 또한 그의 음악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피아니즘은 베토벤의 여사제인 엘리 나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청명한 톤과 표현력 높은 멜로디 라인, 성부의 긴밀한 대화, 강인한 저역과 응축된 엑스타시 등등, 나이의 고집스러운 경외심과 드라마틱함에 대한 본능은 켐프의 정신으로 고스란히 녹아들어왔음을 음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다른 음악성과 연주력으로 독일에서 유명세를 떨친 켐프는 곧 전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그는 독일 악파의 피아니스트들의 전형으로서 심오함과 진지함을 바탕으로 한 호흡이 무척 긴 연주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투명한 해석은 프랑스에서 커다란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1936년부터 꾸준히 연주회를 가졌던 일본에서도 그는 거의 ‘베토벤의 왕’으로 인식되었으며, 1934년부터는 남아메리카에서도 연주회를 가지며 커다란 환호를 받았다. 한편 시카고에서 70세 생일 기념 연주회로 연주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이벤트로 기록된다.

1957년부터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거주한 남부 이탈리아의 포시타노에서 그는 재능 있는 전세계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마스터 클래스를 열었다. 자신의 연주 스타일을 모방하는 기술을 가르쳐주기보다는 건반 위에서 꿈을 꾸는 방식, 그리고 각각의 개인들의 개성을 살려내는 방식을 가르쳤다. 그의 제자로는 음색과 상상력에 있어서 그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게르하르트 오피츠를 비롯하여 존 오코너가 대표적인데, 이 둘은 지금까지도 포시타노에서 켐프의 뒤를 이어 마스터 클래스를 계속 열고 있다. 그 외에 외르크 데무스, 노먼 쉬틀러, 미츠코 우치다, 페터 슈말푸스, 이딜 비레트, 카르멘 피아치니,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인 신수정 등을 꼽을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닌 음악

레코딩과 연주 목록을 살펴보면 그는 베토벤을 위시하여 슈만과 브람스, 슈베르트, 모차르트, 바흐, 리스트와 같은 독일 악파의 작품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서 이렇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이지만 간혹 평론가들로부터 ‘위대한 스튜디오 연주가’라는 농담 섞인 평가를 받기도 했다. 레코딩으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완벽한 음악을 담아냈지만 연주회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영상물들을 일별해 보면 TV용으로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필름들은 그 완성도가 대단히 높은 반면, 몇몇 실황 리사이틀 기록들에서는 미스터치 및 일관성이 떨어지는 흐름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는 푸르트벵글러의 무게감 없이 흘러가면서도 정확하고 신비로운 형체를 만들어가는 음악 만들기를 항상 떠올렸던 만큼, 수치적이고도 외형적 정확함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의 위대함을 희석시킬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음악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무게감이 없는 완성된 형태의 음악을 저 높이서 조망할 수 있는 경지를 지향해 왔다. 보기 흉한 음악 혹은 잘라내듯 떨어져나간 음표들, 긴장되어 있거나 힘에 벅찬 요소들 모두를 나는 반대한다.” 당시 위대한 독일 음악가들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켐프 또한 추구했던 것이다.

그의 연주에는 생명감이 충만한 아고긱이 있으며 명쾌한 프레이징에 의한 섬세한 명암의 대조 및 선열(鮮烈)한 어택이 있다. 특히 그는 베토벤의 32개의 소나타 하나하나에 즉흥성과 상상력을 새롭게 부여한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켐프는 계획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높은 수준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을 재창조냈다. 근본적으로 시인적인 기질이 농후했던 켐프에게 있어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음악보다는 머리 속에서 상상해낼 수 있는 낭만적인 세계를 꿈꾸기를 원했다.

켐프가 남긴 위대한 레코딩 유산

그는 레코딩에 있어서도 엄청난 양을 남겼던 독일 피아노 음악의 진정한 기록자이기도 하다. 특히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40여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전집을 녹음한 것에서 그의 베토벤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1926년부터 1945년 사이 셀락 음반으로 첫 번째 전집을 완성(몇몇 소나타는 미완성으로 남아있다)했다. 당시 영국에서 먼저 전집을 완성한 슈나벨의 연주와 비교해보면 조금은 극단적인 템포를 선호했지만, 켐프는 현대적인 관점에 의한 온건하고도 논리적 템포를 보여주었음이 비교된다. 당시 슈나벨은 자신이 만약 전집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후임자로 빌헬름 켐프를 기용하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LP 시대에 접어들면서 1951년부터 56년 사이 두 번째 전집을 모노로 녹음했고 1960년대에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스테레오 전집이 완성되었다. 그가 최초로 녹음한 앨범 또한 베토벤으로서 1920년 도이체 그라모폰 게젤샤프트에서 녹음한 [에코세이즈]와 [바가텔 Op.33]이다.

리허설 중에 지휘자 앙세르메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켐프. <출처: wikipedia>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또한 전곡을 두 번에 걸쳐 녹음했다. 1950년대 초반 베를린 필하모닉과 파울 반 켐펜의 지휘로 모노 레코딩을, 그 다음으로는 역시 베를린 필하모닉과 페르디난트 라이트너의 지휘로 스테레오 레코딩을 남겼다. 1940년대에도 몇몇 녹음을 남긴 바 있다. 한편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에서도 그는 방랑자의 이미지와 독백을 체계적으로 완성한 위대한 슈베르티안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슈만 레코딩에서도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나 알프레드 코르토의 해석과는 또 다른, 전형적인 낭만적 독일인으로서의 슈만을 그려낸 바 있다.

또한 그의 리스트는 그 레코딩 수가 적은 편이지만 하나 같이 훌륭한 연주로 칭송받는다. 특히 알프레드 브렌델은 그의 연주를 ‘에올리언 하프’로 묘사하며 리스트의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 녹음을 초월적인 연주로 꼽기도 했다. 이 외에 라파엘 쿠벨릭과 함께 녹음한 슈만의 협주곡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및 여러 편곡 작품들 또한 켐프의 대표적인 앨범으로 인정받고 있다.

1957년 5월 켐프가 핀란드에서 몇 달 동안 체류할 당시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와 만남을 가졌다. “남은 시간 동안 베토벤의 [함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연주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특별히 오늘은 나를 위해 다 카포를 지켜서 연주해주면 좋겠는데요. 그렇지 않다면 제가 물어볼 것이 너무도 많을 것 같습니다.” 켐프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자신의 영적인 힘 모두를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은 그 이야기를 듣기만 하더라도 내 자신을 초월케 한다. 마치 내가 올림픽 제전의 육상주자가 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에게서 그러한 불꽃을 느꼈고 그것을 모두 쏟아냈다. 베토벤이 작곡한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모놀로그라고 말할 수 있는 아다지오를 연주하는 동안 오직 예르벤페에 살고 있는 위대하지만 외로운 그를 위해 연주해줄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나를 엄습해 왔다. 내가 연주를 끝냈을 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해주었다. “당신은 피아니스트처럼 연주하지 않는군요. 마치 인간 그 자체처럼 연주해 주었습니다.” 항상 인간의 입장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사람과 대화하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는 1981년 파리에서 마지막 리사이틀을 가진 뒤 파킨슨 병으로 더 이상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병으로 인해 평소의 바람대로 정상적인 인간으로서는 결코 꿈 꿀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를 편안하게 여행을 하다 1991년 포사타노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영면에 들었다.


약력

  • 1916 베를린성당합창단에서 피아니스트로 음악활동 시작
    1917 베를린의 성악원(Singakademie)에서 독주자로서 첫 공연,
    1924∼1929 슈투트가르트음악원 원장을 역임
    1926~1945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첫 번째 전집 완성
    1951~1956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두 번째 전집 완성
    1951 영국 런던에서 첫 공연
    1960년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스테레오 전집 완성
    1964 미국 무대 데뷔
    1981 파리에서 마지막 독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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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성 | 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음악 전문지 <음악동아>,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피아노 음악>과 여러 오디오 잡지에 리뷰와 평론을 써 온 음악 칼럼니스트 공연, 방송, 저널활동, 음반리뷰, 음악강좌 등 클래식 음악과 관련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문화재단 평가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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