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사랑하는 것들과... 고전음악, 풍란들..., 그리고 사진...

蘭의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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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 風蘭의 모습들...

2014. 12. 17.

 

 

 

 

 

2014년 12월 16일 오후 4시 31분.

컴푸터가 아웃되고, 전등이 나가고 집안의 모든 전원은 다 나가버렸다.

어~?

이게 뭐지?

정~~전?.

 

순간, 아찔했다.

정전?

내일 서울 기온이 영하 12도로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추위가 온다했는데...,

온실 어쩌지?

휴대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한전 정전신고 전화번호를 알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대기자가 많아 기다려야 한단다.

이런~ 제기랄~~

한참 만에 연결이 되고,

 

[여기 자양1동인데요~! 정전이 됐습니다.]

" 네, 정전됐습니다."

[언제 쯤 복구가 되는 거죠? ]

" 글쎄요~ (이런 우라질~ 글쎄요 라니...) 아직 원인이 안 밝혀져 뭐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언제 될지 모른다고요? 그렇게 무책임한 말이 어딨어요? . 온실에 전원이 안 들어오면 풍란들이 다 얼어 죽는다고요~!]

[그냥 풍란이 아니고, 희귀종 풍란들로 얼면 안 된다고요~!]

" 아~ 예~, 그래도 정확히 언제 복구될지 말씀을 못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 우라질~~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 생각을 할 수 없다.

도데데 무엇을,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

야~~ 황영윤, 영윤아~ 침착해야지~~,

너 침착하잖아~

야~ 침착하라고..., 천천히 천천히 생각을 해~~

 

온실 난방을 해야 하는데 전기 난방기구는 안 되고...

그래, 가스난로를 샀었지?

근데, 가스통이 없잖아~

난방용 가스는 어디서 팔지?

다시 휴대폰으로 검색, 자양1동 가스 충전소~~

전화를 거는데 자동차 가스 충전소란다..  이런 젠장~~

동사무소를 검색해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자기들은 모른단다.

아니, 동사무소에서 관내 가스판매처를 모른다고?

한바탕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 구청으로 전화를 걸어 알 수 있었다.

가스가 배달되는 시간에 베란다에 두었던 가스난방기 박스를 해체하고 사용설명서를 읽고 있는데

"가스요~~"

어찌나 반갑던지..., 아니 고마웠다.

가스배달 온 사람에게 연결과 작동을 부탁했는데 작동이 안 된다.

배터리가 다 된 것 같다며 빳데리를 교체하란다.

 

옷을 대충 걸치고 제일 가까운 편의점에 갔는데 D사이즈 대형 건전지는 없단다.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지?

대형 슈퍼로 달려가 2개를 샀다.

시계는 벌써 5시가 지났단다.

 

건전지를 갈아 끼우고 난로 스위치를 누르자  "치~르르~~ 소리와 함께 점화가 된다.

휴~~ 됐다.

가스난로 발열판에 가스불이 번지며 점점 더 커가고 발열판이 붉게 물들어 올 때...

아~ 이제 됐다.

이제 한시름 놓자~!

 

그제서야 담배를 한 대 피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출입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데

거실이 밝다.

 

와~~ 전기가 들어 왔네?   와~~

 

이제 됐다. 이제 됐어~~

아래 층 전열기들을 살피는데 모두 다 작동 중이다.

온실로 올라가 맨 먼저 보이라 전원을 확인, 녹색 불이 켜져 있다. 

콘트롤 박스 전원도 오케이~~!

보일러 온도 조절기 온도까지 확인하고서야 긴 한숨이...

후~~,

휴~~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난과 인연을 맺은 게 80년도 중반, 진급을 축하한다는 거래처에서 보내 온 화분이 [관음소심]이라는 중국 혜란이었다.

진녹색의 긴 잎, 잡색 하나 없는 백색에 가까운 연한 녹색의 꽃이 참 아름다웠다.

향기는 아주 맑은 청향으로 품위가 느껴졌다.

같이 들어 온 다른 혜란류 난 화분 몇 개 중에 5화분을 집으로 가지고 온 것이 나를 난초의 노예로 전락시킨 원흉이다.

주말이면 양재동 꽃시장에 가서 혜란류 화분을 하나 둘씩 사오다가 어느 날 한란이라는 난초를 만났는데

그 자태에 맛이 완전히 가벼렸다.

가느다랗고 긴 잎의 곡선...

그 곡선의 잎들의 여백...

마치 鶴인 듯한 꽃...

그 향기는?

청향인듯 한데? 코끝을 살~짝 톡 치는 향기를 뭐라 해야 하지?.

그 때부터 혜란류는 눈에 안 들어오고 오로지 한란...

나중에 알았지만 한란도 일본이나 중국 것이 아닌 우리 제주 한란의 우수성에 반하여 제주한란에 푸~욱 빠졌다.

 

내가 미쳤지...

3월 어느 날, 춘란을 처음 알았다.

어렸을 때 고향 산에 지천으로 피었던 것들이 춘란이었는데 몰랐었고.

80년 중반부터 우리 춘란에 빠져 이십여 년을 주말이면 남쪽으로 춘란 산채를 다녔다.

전라남북도의 왠만한 야산들은 다 헤집고 다녔다 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경남 거제를 시작으로 사천, 진주, 창원, 김해도 수 없이 다녔지...

베란다 난대에는 춘란 7백여 분과 7십여 분의 한란으로 가득 찼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95년, 집을 신축하면서 복층 윗 층에 동쪽과 남쪽 전면을 아예 난초들을 위한 베란다로 따로 만들었다.

자동화 시설은 물론이고...

 

그렇게 춘란에 빠져 살던 어느 날,

난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김 순제라는 후배가 카페에 올린 란 사진 한 장을 보고 반해버렸다.

[옥금강]이라는 두엽종 일본 풍란이라는데 순백의 꽃 수십 송이가 모아피기를 했는데 얼마나 앙증맞던지...

과천 난단지에 가면 있단다.

퇴근길에 과천 난단지에 들려 옥금강을 사온 것이 난초의 노예가 될 두 번쩨 단초였다.

그 다음부터 옥금강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정지송]을 구입하고, 분홍색 꽃을 피우는 [도희]를 사고...

두세 촉 한 분에 4~5만원하는 풍란류를 키우다 보니 차츰차츰 예가 더 좋은 高價의 풍란들로 자동으로 옮겨가고...

풍란을 일본에서는 [부귀란(富貴蘭)]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풍란은 흑산도 홍도와 남쪽 신안군 섬 지방에 더러 자생하고 있었는데 80년대 초에 홍도 풍란이 인기가 좋아

남획으로 거의 자생지는 파괴됐다.

한 때, 홍도 풍란이 고가로 거래가 됐지만 일본 부귀란과 비교할 수 없는 예가 떨어진, 잎이나 꽃에 무늬가 전혀 없는 무지풍란이 전부였다.

그러니, 풍란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우리 자생풍란은 눈에 들어 올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그 부류에 속해 일본 풍란의 예가 좋다는 풍란들에 깊숙히 발을 들어 놓았다.

베란다 난대에 풍란 분수가 늘어 가면서 한 분에 4~5백하는 금광금, 도산금이네, 부귀전, 금모단으로 눈이 높아(?)지면서

소위 [신풍란]이라 부르는 변이종에 빠져 버렸다.

 

춘란을 할 때는 주말이면 남쪽 산을 헤멨다면 풍란에 빠지면서는 경기도 일산, 구파발과 안성, 충청도 서산과 경남 통영의

춘란 유묘를 키우는 화훼농가를 뒤지기 시작했다.

돋보기를 들고 다니면서 3~4Cm 크기의 작은 유묘들로 콩나물 시루같이 빼곡히 심어 놓은 농장을 뒤지기 시작.

어렵사이 무늬가 든 한 촉이라도 발견하면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이 기뻐했던 바보 영유니~~

그 어린 유묘 한 촉을 작게는 몇 만원부터 많게는 기백만원을 주고 구입...

어느 경우에는 기천까지 주고 샀으니...  , 아~ 부끄럽고 챙피한 얘기는 여기서 스톱~!.

 

그렇게 구입한 풍란들이 몇 백분이 넘어서지 베란다에서는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 옥상에 풍란 전용 온실을 지었다.

본격적으로 풍란 노예 생활로 접어 든 것이다.

약 10평 조금 넘는 규모로 온실을 지었는데 완전 자동이다.

실외와 실내의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환기 시켜주고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그늘 막을 쳐주고.

비나 눈이 오면 자동으로 천창이 닫히고...

온도가 설정 온도 이하로 떨어지면 보일러가 자동으로 가동해 원하는 온도까지 실내 온도를 올려주고...

매 년 9월 하순 밤부터 보일러가 가동하기 시작해서 이듬 해 6월 초까지 가동을 한다.

 

이렇게 온갖 신경과 애를 쓰는 온실의 풍란들이 정전으로 다 얼어 죽게 되었으니 혼비백산을 할 수밖에...

이게 이 바보 영유니가 풍란들의 노예가 된 전말이다.

취미로 난이 좋아 시작한 것이 언제부턴가 그들의 노예가 됐다.

 

후~~~

 

어느 때 부턴가 풍란들이 지겨울 때가 있다.

 

 

 

 

 

 

 

 

 

 

 

 

 

                                                 아주 오랜 전, 춘란 산채 때, 웃는 모습이 귀여워 한 컷한 우리 춘란

 

 

 

    옥향로

 

 

 

 

 

  무지 옥금강 실생묘에서 한 줄 설백호가 든 것을 구입해 기르던 중에 발전하는 모습

 

   위 설백 편호가 발전하여 설백복륜으로 최상의 예로 발전 중...

 

 

 

 

 

 

 

  윗 사진과 같은 품종 (백복륜, 백서반, 산반, 백호 예가 혼재한 노수엽에 침엽의 예가 자주 다양한 신품종) 

 

 

    꽃을 핀 위의 풍란

 

 

 

  한 때는 일본 풍란계를 흥분시켰던 루비근[ 화영]

 

  나도풍란 무늬종

 

 

 

  온실 내 모습...

 

 

 

무늬 에가 아주 화려한 신품종 풍란

 

 

 

햇빛에 안토시안이 화려하게 드는 풍란

 

 

 

 

                

 

                          온실 비닐 교체 작업 중...

 

                     늦가을에 찾아온 손님 무당벌래

 

                                 베란다 난실

 

 

 

 

리스트 /  헝가리 광시곡 - 19곡 전곡
Franz Liszt / Hungarian Rhapsodies
Franz Liszt(1811 - 1886)
Campanella - Hungarian Rhapsodies(헝가리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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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광시곡 No.1 in C sharp min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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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광시곡 No.5 in E minor(Hereide Elegia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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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광시곡 No.12 in C sharp minor

헝가리 광시곡 No.13 in A minor

헝가리 광시곡 No.14 in F minor

헝가리 광시곡 No.15 in A minor (Rakoczy March)

헝가리 광시곡 No.16 in A minor

헝가리 광시곡 No.17 in D minor

헝가리 광시곡 No.18 in F sharp minor

헝가리 광시곡 No.19 in D minor
 
 
1839년에서 1885년에 걸쳐 헝가리에 전승되어온 집시의 무곡 차르다시를 소재로 하여 작곡된 것으로 모두 19곡으로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제2번 C#단조 ·제6번 D♭장조 ·
제9번 E♭장조(페스트시의 사육제)· 제12번 C#단조 ·제14번 F단조 ·제15번 A단조 등이 유명하며 제15번에는 헝가리의 민족적 행진곡 《라코치행진곡》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리스트와 제자 포플러가 공동 관현악용으로
편곡한 것(전 6곡)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리스트는 소년 시절을 헝가리의 시골에서 보냈는데 그 때 대중들의 노래와 집시들이 켜는 바이올인 소리를 듣고
헝가리의 민속 음악을 배웠다. 그 영향으로 피아노를 위한 헝가리 랩소디를 작곡하였다. 원래 랩소디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를 지칭하는 것이었는데 후세에 와서 정열적이고 자유 분방한 시를 일컫게 되었다. 리스트는 이것을 음악에 적용하여 자유롭게
열광적인 곡을 써서 랩소디라고 하였다. 이는 헝가리의 마자르 사람들의 춤곡인 차르다슈(Czardas)에서 나온 것으로 헝가리 민족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헝가리의 춤곡에는 느린 템포의 라싼(Lassan)조와 대단히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Friska)조가 있는데 느린 템포의 라산조는 헝가리 사람들의 평화, 슬픔, 우울함을 나타낸 것이고 빠른 템포의 프리스카는 헝가리의 국민성이라 할만한 격렬하고 야성적인 면과
열정적인 기쁨을 나타낸 것이다. 리스트는 이 두가지 곡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헝가리 사람 고유의 기질과 생활을 아주 예리하게 표현하였다. 리스트는 조국인 헝가리 음악을 예술화하는데 힘썼으나 바르토크같이 철저히 연구하지는 못했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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