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사랑하는 것들과... 고전음악, 풍란들..., 그리고 사진...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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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학 산책

2020. 1. 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수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철학자 니체. 유명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신의 사상에 영향을 준 인물로 니체를 꼽는다. 그만큼 그의 철학과 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시대를 뛰어넘어 철학적 사고의 기반을 제공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나치즘의 사상적 선구자, 인종주의자, 여성 혐오주의자 등과 같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근대인의 정신을 철저히 부수고자 했던 니체는 고대 페르시아 인물인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자기 자신을 극복하라고 가르친다.

차라투스트라의 사상은 근대인들의 사고방식에 깊은 영향을 주었고, 선과 악의 대립과 투쟁이 역사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차라투스트라의 사상을 뒤집는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오히려 선과 악으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낳은 허무주의를 부정하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발견하여 새로운 삶을 창조하라고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삶이 소설처럼 전개되면서 독특한 시적 잠언들과 비유와 상징들로 씌어진 이 책은, 모든 고통과 환멸 그리고 허무주의와 같은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하고 삶을 절대적으로 긍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Also sprach Zarathustra: Ein Buch für Alle und Keinen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만인을 위한, 그러나 어느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1.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1.1. 개요1.2. 주요 인용구1.3. 이야깃거리
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2.1. 편성2.2. 구성2.3. 다른 매체에서



1.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1.1. 개요

차라투스트라를 주인공으로 삼아 니체 자신의 철학을 풀어낸 니체의 주저(主著)이다. 차라투스트라가 10년 동안 머무르던 동굴에서 하산하여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는 내용으로, 주로 철학서로 분류되지만, 옴니버스로 구성된 소설처럼 이야기를 전개하며, 여러 등장인물과 사물, 시간과 공간에 상징이 담겨 있는 등 문학적 요소도 많은 작품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883년에 출간된 1부를 시작으로 1년 동안 집필이 계속되어 2, 3부가 각각 출판되었다. 4부는 출판사 없이 40여 부만을 사비로 간행했다. 1~4부의 합본은 1892년, 나우만(Naumann)에서 니체 전집을 기획하여 발간되었다.

1.2. 주요 인용구

좀 더 다양한 번역을 통해 보려면, 이 페이지에 정리가 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서서히 자살을 하며
바로 그것을 삶이라고 부르는 곳,
그곳을 나는 국가라고 부른다.


'새로운 우상' 中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자의 길' 中
그대들은 "삶이란 견디기 힘들다." 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대들은 아침에는 긍지에 가득차 있다가 밤이면 체념하고 마는가?
삶이란 견디기 힘들다. 그러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우리는 모두 사랑스러운 노새가 아니던가?
한방울의 이슬에도 몸을 떠는 장미 한송이와 우리 사이에는 무슨 공통점이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삶에 친숙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데 친숙하기 때문에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알면서 두려움을 제압하는 자, 심연을 보지만 자긍심이 있는 자가 대담한 자다.
심연을 보지만 독수리의 눈으로 보는 자, 독수리의 발톱으로 붙잡는 자에게 용기가 있다.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름이 차라투스트라라고 했던가. 그러나 그도 변했군. 그대는 자신의 타고 남은 재를 산으로 날라 갔지. 오늘은 그대의 불덩이를 골짜기로 날아 가려고 하는가? 그런데 이제 잠든 사람들에게로 가서 뭘 하자는 건가. 바닷속에 있는 듯 고독 속에서 살았고, 그 바다가 그대를 품어주었지. 그런데도 그대는 뭍에 오르려 하는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인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을 사랑하네. 인간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킬테지."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사랑에 대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소. 다만 인간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오."
"인간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말게. 차라리 그들로부터 얼마간을 빼앗아 그것을 그들과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그래야 인간에게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네. 그들로 하여금 애걸하도록 하게."

차라투스트라가 대답했다. "자선을 베풀고 싶지는 않소, 나는 그렇게 할 만큼 가난하지는 않다오."
"그들은 은둔자를 불신하며 우리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을 믿지 않네. 왜 그대는 나처럼 곰들 속의 한 마리 곰, 새들 속의 한 마리 새로 머물고자 하지 않는가. "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 성자는 숲 속에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식조차 듣지 못했구나."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프리드리히 니체 문서의 r249 판, 6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1.3. 이야깃거리

"차라투스트라는 가장 숙명적 액운인 도덕이라는 오류를 창조해냈으며, 따라서 그는 그 오류를 인식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 《이 사람을 보라》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지 中

패러디가 많은 책이다. 내용 곳곳에 신약성서 패러디가 많으며, 책 제목도 자라투스트라[1]의 패러디로 볼 수 있다.

영원회귀, 힘을 향한 의지, 초인 등 니체 철학의 많은 개념이 한데 모이는 사실상 프리드리히 니체의 대표작으로 본인의 저작 중 가장 인지도가 높지만, 많은 니체 연구자들이 입을 모아서 "이건 절대로 처음 읽으면 안 된다! 제일 마지막으로 읽어야 한다!"라고 이 책으로 니체 철학에 입문하는 것을 만류하는 책이다.[2] 안 그래도 함축적이어서 이해가 어려운 니체의 책 가운데서도 온갖 문학적 장치로 가득 찬 수수께끼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3]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화려한 경구를 접하고서 니체에게 이끌려 이 책으로 니체 철학에 입문하는 사람이 많다.

흔히 차라투스트라, 짜라투스트라로 번역되는데, 특이하게도 '짜라두짜'라고 번역한 책이 있다. 2007년에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라고 나왔다가 절판되고, 2012년에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로 다시 나왔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백석현과 박성현[4]으로 두 책의 역자 이름이 다르지만, 사실 동일인물이다. 다른 번역에 비해 읽기가 수월하고, 각주가 충실하여 평이 상당히 좋다. 무엇보다 원문이 운문으로 쓰였다고 하는데, 그 점에 유념하고 번역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우상으로 표상되는 기존의 가치들에 망치를 들이대며 부숴버리기를 촉구하는 패기 넘치고, 카리스마가 철철 흐르던 기존의 '차라투스트라'적 어투가 아닌 점에 대해 불만을 표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용전달이 가장 수월한 번역이라는 점은 대체로 인정받는다. 비유하자면 개역 개정 성경과 새 번역 성경의 차이 정도라고 보면 된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철학과에서는 번역 과정에서 생기는 누락이나 오역을 우려해서 그냥 해당 원서의 언어를 배워서 쌩 원서로 읽는 경우가 흔했다. 배우 이순재가 철학과 재학 시절 이런 식으로 독일어를 마스터한 케이스.

어느 한 부분을 떼어 비교하자면 다음과 같다.
1부 창조자의 길(Vom Wege des Schaffenden) 中
원문
일반 번역
박성현 번역
Schaffen will der Liebende, weil er verachtet!
Was weiss Der von Liebe, der nicht gerade verachten musste, was er liebte!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이 창조하기 원하는 이유는 경멸하기 때문이야!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경멸해야만 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Mit deiner Liebe gehe in deine Vereinsamung und mit deinem Schaffen, mein Bruder; und spät erst wird die Gerechtigkeit dir nachhinken.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형제들! <떼>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가도록! 사랑을 간직한 채 창조하면서 혼자 가도록! 사람들이 자네를 공정하게 대우해 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말도록!
Mit meinen Thränen gehe in deine Vereinsamung, mein Bruder. Ich liebe Den, der über sich selber hinaus schaffen will und so zu Grunde geht. —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형제들! 떨어져 나와 혼자 가도록! 자네에게 바친 내 눈물을 간직한 채 혼자 가도록! 자기 자신을 넘어서 창조하기 원하는 사람, 그리하여 그 과정에서 패하여 사그라지는 사람을 나는 사랑해.
Also sprach Zarathustra.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그 외에도 알고 싶은 게 있다면 한국어 니체 전집 번역자로 참여하기도 한 니체 철학 권위자인 백승영 교수의 해제와 밑에 보이는 벡승영의 강의 동영상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SKY 캐슬의 독서토론 옴팔로스에서 언급된다. 이수임이 처음 들어올 때 읽을 책이었으며, 결국 파국을 맞는 계기가 된다.[5]

2.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6]
서주[7]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음악으로 삽입된 바 있는데, 그 인상이 강렬하여 이 음악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OST인줄로만 아는 사람도 많다.

2.1. 편성

3 플룻(제 3주자는 피콜로를 겸함), 3 오보에, 잉글리시 호른, 3 클라리넷(E♭ 1개, B♭ 2개), 베이스 클라리넷, 3 바순, 콘트라바순, 6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2 튜바, 팀파니, 심벌, 트라이앵글, 글로켄슈필, 종, 오르간, 2 하프, 현 5부(제 1, 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각각 16, 16, 12, 12, 8명)

2.2. 구성

다음과 같이 9개의 장으로 나뉘어진다. 각각의 이름은 위 항목의 책에 있는 장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순서
독일어
영어
한국어
1
Einleitung, oder Sonnenaufgang
Introduction, or Sunrise
서주, 또는 일출
2
Von den Hinterweltlern
Of Those in the Background World
배후 세계론자에 대하여
3
Von der großen Sehnsucht
Of the Great Longing
위대한 동경에 대하여
4
Von den Freuden und Leidenschaften
Of Joys and Passions
환희와 정열에 대하여
5
Das Grablied
The Song of the Grave
무덤의 노래
6
Von der Wissenschaft
Of Science and Learning
과학과 배움에 대하여
7
Der Genesende
The Convalescent
회복되어 가는 자
8
Das Tanzlied
The Dance Song
춤곡
9
Nachtwandlerlied
Song of the Night Wanderer
밤의 노래



2.3. 다른 매체에서

서주, 또는 일출 부분은 그 특유의 웅장함 덕분에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음악을 시작으로, 여러 매체에서 애용되고 있다.
  •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전주가 오프닝 음악으로 삽입되었다.
  •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에서 윌리 왕카가 개발한 초콜릿 워프 장치를 실험하는 장면에서 전주가 흐른다. 이때 초콜릿이 모노리스 모양이며, 초콜릿이 워프되는 곳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이다.
  • 극장 애니메이션 월-E 후반부에 선장이 AUTO에 맞서 스스로의 힘으로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 장면에서 전주가 흐른다.
  • 박정희의 영결식에서 전주 부분이 쓰였다.
  • 철완 아톰의 1980년 판 애니메이션 1화에서 아톰의 탄생의 순간 때 쓰였다.
  • LG전자의 휴대폰 브랜드인 싸이언의 TV CF 음악으로 나왔다.
  • WWE 선수인 릭 플레어의 테마곡으로 쓰인다. 그의 딸 샬럿 플레어 또한 아버지에 이어 사용중이다. 샬럿은 원곡에서 편곡이 가해져있다.
  • 종합격투기 선수 밥 샙의 테마곡으로 쓰인다.
  • 애니메이션 키즈모노가타리에서 하네카와가 아라라기에게 팬티를 보여주는 장면에 전주 부분이 쓰인다.
[1]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본명 Zaraϑuštra(자라수슈트라). 독일어로는 Zarathustra(차라투스트라)며, 영어로는 Zoroaster(조로아스터).[2] 반대로 입문 추천작은 니체 스스로 자신의 저작들을 설명하는 《이 사람을 보라》.[3] 이하 백승영 교수 강의 동영상 25분 20초부터 참조[4] 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중퇴에, 미국 조지 워싱턴대 경제학부 졸업생으로, 인터넷에서는 '뱅모'로 유명하다. 현재 뉴데일리 주필로 재직 중.[5] 상술된 것을 보면 알겠지만 교수들도 어려워하는 책이 이 책이다.[6] 게오르그 솔티 지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7] 니체의 책 목차에서 이름을 따 일출(Sunrise)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Friedrich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


출생1844. 10. 15, 프로이센 작센 뢰켄
사망1900. 8. 25, 독일 바이마르
국적 독일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성서 이야기 형식의 문학적·철학적 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우상의 황혼>, <반그리스도>등을 썼다. 루터의 경건주의를 신봉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이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배웠다. "신은 죽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주장은 20세기 유럽 지식인의 주요한 구호였으며, 니체는 전통적인 서구 종교·도덕·철학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밝히려 했다. 니체의 철학은 이후 신학자·철학자·심리학자·시인·소설가·극작가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성의 왕관을 벗기고 야성을 영광의 자리에 앉힌 사상가는 니체(Friedrich Nietzsche)이다. 니체는 사회개혁, 의회 정부, 보통선거제를 비난하고 과학에 의한 진보라는 당대의 풍조를 조롱하고 기독교 도덕을 매도하는가 하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고 도덕적이라는 자유주의 사상을 비웃었다. 니체는 당대를 이렇게 진단하였다.


오늘날 부르주아 사회는 퇴폐적이고 연약하다. 의지와 본능을 희생하며 합리성을 지나치게 발전시켜 탄생한 희생물이 부르주아 사회이다. 본능적인 욕구는 생명의 참된 동력이다. 이 어둡고 신비스런 세계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해야만 한다.

지나친 지식으로 의지가 질식당하면 삶의 창조력이 파괴되고 인간의 가능성이 제약받는다.

이러한 니체의 주장은 전통 서구의 사상흐름을 빗겨간 이단 사상으로 인간의 숨겨진 본능의 개발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특히 기독교 윤리가 금지, 억제, 절제, 순종 등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본능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원흉이라고 비판하였다.


니체는 기독교의 윤리란 연약한 노예에게나 유용할 뿐이라고 조롱하며 고대 세계에서 기독교의 승리란 강자로부터 용기를 빼앗은 약자의 혁명이라고 평하였다. 또한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내세는 현세를 다스리려는 인간의지를 좀먹는다고 비난하며 기독교가 인간 본성과 정반대되는 금욕주의를 덕으로 키운다고 몰아세웠다.


계몽철학자들이 기독교 체계는 비판하되 기독교 윤리는 받아들인 것과 달랐다. 니체는 기독교가 이성과 어긋난다는 점에서 비판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윤리가 굴종의 정신을 전파한다고 부정하였다. 니체의 유명한 선언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신에 대한 생각을 잘 드러낸다. 그는 신이 인간에 의하여 창조된 허상이라고 믿었다. 결코 죽음 이후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신과 기독교의 윤리를 없앰으로써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는 인간에게 신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만드는 시도였다.


니체는 인간은 허무를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여 인간 자신의 주인이 됨으로써 지금껏 상상할 수도 없던 새로운 세계를 만들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외침은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했지만 사상의 세계에서는 새로운 질서를 마련하였다. 현대 문명이 내세우는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라는 평범한 세계를 없애고 초인과 영웅이 나타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니체는 유럽의 구원은 초인의 등장으로 가능하리라 믿었다. 평등사상을 중시하는 노예적 사고에서 벗어난 초인은 열등한 인간들이 만든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를 파멸시키고 그의 도덕을 세워 열등한 인간을 이끌며 초인의 의지대로 새로운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 생각하였다. 또 전통적인 가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새로운 가치도 만들 것이라 기다했다.


니체 철학은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을 얻었다. 현대 서구 문명의 본질적 폐단을 날카롭게 드러낸 니체의 초인 철학은 그 공과에 대하여 아직도 논쟁이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복지정책을 무시하고, 전통 유럽의 제도와 가치관을 부정하면서 야성의 본능과 초인의 의지를 내세운 나치 집단의 대두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다.


니체는 독일의 군국주의, 반유대주의, 폐쇄적 민족주의를 거부하고 히틀러를 증오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서구 문명 전통에 대한 비판은 새로운 유럽 건설을 자처한 히틀러가 유리한 입장에 서도록 도왔다. 대중 문화에 기반을 두었던 나치가 열등하고 비겁한 대중 문화를 거부하였던 니체를 공식 이데올로기로써 이용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전통적인 서구 종교·도덕·철학에 깔려 있는 근본 동기를 밝히려 했으며, 신학자·철학자·심리학자·시인·소설가·극작가 등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계몽주의라는 세속주의의 승리가 가져온 결과를 반성했다. "신은 죽었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주장은 20세기 유럽 지식인의 주요한 구호였다.

민주주의, 반(反)유대주의, 힘의 정치 등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뒷날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름은 그가 혐오했던 파시스트들에게 이용되었다.


초기생애

프리드리히 니체의 집안은 루터의 경건주의를 신봉했다.

친할아버지는 프로테스탄트교를 옹호하는 책을 썼고, 외할아버지는 시골 목사였다. 아버지 카를 루트비히 니체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니체의 이름은 이 왕의 이름을 딴 것임)의 명으로 뢰켄의 목사로 임명되었다. 아버지는 프리드리히 니체가 6세가 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 프란치스카, 누이 엘리자베트, 할머니와 두 하녀 사이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1850년 잘레 강변의 나움부르크로 옮겨 돔 김나지움을 다녔고, 1858년 프로테스탄트교 학교인 슐포르타에서 고전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본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재학중 두 학기는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그 까닭은 2명의 대표적인 고전학 교수 오토 얀과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사이의 날카로운 대립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음악에서 안식처를 찾았고, 낭만파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의 영향이 두드러진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1865년 리츨 교수를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으로 옮겼다.

1867년 10월 군에 입대했으나 다음해 3월, 말을 타다가 가슴을 심하게 다쳤다. 장기간의 병가를 받고 그해 10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알게 되었고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났으며 고전문학자 에르빈 로데와 우정을 쌓았다.


바젤 시기

스위스 바젤에 고전문헌학 교수직이 비었을 때, 리츨의 추천으로 학위도 없이 교수로 임명되었다.

1869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시험과 논문없이 출판된 저술들만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일어나자 의무병을 지원했는데, 1개월도 안되어 환자를 수송하다가 이질과 디프테리아에 걸렸다.

1869년 니체

ⓒ Nagualdesign/wikipedia | Public Domain

바젤에 있을 때 바그너와 사귀었고 뛰어난 제자로 인정받았지만, 바그너가 〈파르지팔 Parsifal〉에서처럼 그리스도교적 모티브를 많이 이용하고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에 빠지자 결별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첫번째 저서 〈음악의 정신에서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1872)은 그가 고전학의 굴레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 작품에서 그리스 비극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전자는 중용·제약·조화를, 후자는 거침없는 정열을 표현함)의 결합에서 나왔으며,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와 낙관주의가 그리스 비극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아폴론-디오시소스 이분법).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미학사(美學史)의 고전으로 꼽힌다.

1878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을 출판했다.

건강이 점차 나빠져서 1879년 교수직을 사임했다. 1879~89년에는 책을 쓰는 것 외에는 삶에 어떠한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프리드리히 니체는 중병에 시달렸고 시력도 거의 잃었으며,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와도 접촉하지 않았다.


고립·창조·오용의 시기

성서 이야기 형식의 문학적·철학적 대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는 1883~85년에 4부로 나왔는데, 제4부는 자신의 돈으로 출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대부분의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철학을 더욱 직접적인 산문 형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선악의 피안 Jenseits von Gut und Böse〉(1886)과 〈도덕 계통학 Zur Genealogie der Moral〉(1887) 역시 독자를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정신이 정상적이었던 마지막 해인 1888년은 생산적인 해로, 〈바그너의 타락 Der Fall Wagner〉을 출판했고 〈우상의 황혼 Die Götzen-Dämmerung〉·〈반(反)그리스도 Der Antichrist〉·〈니체 대 바그너 Nietzsche contra Wagner〉·〈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등을 썼다.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의 길거리에서 쓰러진 뒤 정신적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고 1900년 8월 25일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름이 아돌프 히틀러 및 파시즘과 연결된 것은 주로 그의 누이 때문이었다(국가사회주의). 그녀는 대표적인 국수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인 베른하르트 푀르스터와 결혼했는데, 1889년 푀르스터가 자살한 뒤 니체를 푀르스터의 이미지로 개조했다.

그녀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작품들을 무자비하게 통제했고 탐욕에 사로잡혀 니체의 버려진 글들을 모아 〈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1901) 등을 출판했다. 히틀러에 대한 그녀의 열렬한 지지 때문에 대중은 니체를 독재자 히틀러와 연결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니체의 철학사상

니체(Friedrich Nietzsche)

ⓒ Beao/wikipedia | Public Domain


니체의 저서들은 뚜렷하게 3가지로 구분된다.


초기작품

〈음악의 정신에서 비극의 탄생〉과 〈시대와 맞지 않는 생각 Unzeitgemässe Betrachtungen〉(1873)에서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낭만주의적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중기 작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즐거운 과학 Die fröh-liche Wissenschaft〉(1882)까지는 이성, 과학, 문학 장르의 실험 등을 찬양했고 초기 낭만주의, 바그너, 쇼펜하우어 등에게서 벗어났음을 보여주었다.

원숙기 철학은 〈즐거운 과학〉 이후에 나타난다.


원숙기

저작에서는 주로 가치의 기원과 기능을 다루었다. 생에 내재적 가치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면서 항상 생이 평가되고 있다면 그러한 가치평가는 평가자의 조건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특히 서구의 철학·종교·도덕의 기본적인 문화적 가치들을 금욕주의적 이상(理想)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금욕주의적 이상은 고통이 궁극적 중요성을 갖는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니체에 따르면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은 고통을 신의 의도이자 죄갚음의 기회로 해석함으로써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개인의 불멸성이라는 교리와 개인의 삶과 죽음은 우주적 의의를 갖는다는 기만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철학은 신체에 비해 영혼, 감각에 비해 정신, 욕망에 비해 의무, 현상에 비해 실재, 시간적인 것(일시적인 것)에 비해 무시간적인 것(영원한 것)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금욕주의적 이상을 표현했다.


그리스도교가 죄지은 자들에게 구원을 약속한 반면, 철학은 현자들에게 세속적인 것이긴 하지만 구원의 희망을 제시했다. 전통적인 종교와 철학의 공통점은 존재는 설명·정당화·속죄 등을 필요로 한다는 가정을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양자는 경험을 다른 세계, 이른바 '참된' 세계를 빌려 훼손한다. 양자는 몰락하는 생이나 비탄에 빠진 생의 징후로 볼 수 있다.


전통도덕에 대한 니체의 비판의 초점은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의 유형학이다.

니체는 독일어 어휘 'gut'(좋은, 선한)·'schlecht'(나쁜)·'böse'(악한) 등을 검토하면서 선악의 구별은 원래 비도덕적인 기술(記述)에 쓰인 것으로 선은 우월한 주인, 악은 열등하고 천한 노예를 가리켰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노예가 주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배의 속성들을 악으로 규정함으로써 선과 악의 대조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월함은 악덕이 되었고, 자애·겸손·복종이 경쟁·자존심·자율성으로 대체되었다. 노예도덕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것은 노예도덕만이 참된 도덕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절대성에 대한 주장은 종교적 윤리와 마찬가지로 철학적 윤리에도 중요하다.

니체는 주인·노예 도덕의 역사적 계통학을 제시했으면서도, 이 계통학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성에 대한 비역사적 유형학이라고 주장했다.

니체는 금욕주의적 이상에 의해 최고의 가치로 정립된 것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허무주의'란 용어를 썼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수동적 허무주의 시대, 즉 19세기에 실증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종교적·철학적 절대성이 이미 해체되었음을 아직 모르고 있는 시대라고 보았다.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기초와 전통적인 도덕이 허물어짐으로써 이제는 무목적·무의미 등의 느낌만이 남았다. 무의미의 승리는 곧 허무주의의 승리이며, 따라서 "신은 죽었다". 그러나 니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금욕주의적 이상의 쇠퇴와 존재의 본래적 무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삶에 의미를 주는 대리 절대자를 찾으리라고 보았다. 당시 등장하던 민족주의가 그러한 불길한 대리 신이고 민족국가는 초월적 가치와 목적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철학과 종교가 교의의 절대성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듯이, 절대성은 사명감과 정열을 지닌 민족국가에도 나타난다고 보았다. 경쟁자에 대한 살육과 영토의 정복은 보편적 형제애와 민주주의·사회주의의 깃발 아래 진행된다. 니체의 이러한 선견지명은 날카로운 것이었다.

니체는 자신의 저작들을 허무주의와의 투쟁으로 보았다.


종교·철학·도덕에 대한 비판을 바탕으로 퍼스펙티브주의(perspectivism),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 영원한 회귀, 초인(超人)에 관한 독창적인 사상을 발전시켰다.


퍼스펙티브주의는 지식이 항상 특정한 퍼스펙티브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즉 순수한 지각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점없는 지식이란 특정한 관점없이 본다는 것만큼이나 모순적이다. 퍼스펙티브주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퍼스펙티브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퍼스펙티브란 대상을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 동시에 본다는 생각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니체의 퍼스펙티브주의는 때로는 상대주의나 회의주의로 오해받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퍼스펙티브주의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퍼스펙티브주의는 니체의 주장, 이를테면 지금까지의 지배적인 가치는 금욕주의적인 이상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주장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퍼스펙티브에서만 옳은 것인가? 퍼스펙티브주의는 퍼스펙티브주의 자체가 절대적 참이라고 가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는 자기모순이 아닐까? 이러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인식론에서 유용한 작업과 풍부한 주석서가 많이 나왔다.



니체는 종종 생을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 즉 성장과 영속을 위한 본능과 동일시했다.

이러한 개념은 금욕주의적 이상을 해석하는 또다른 방식을 제시한다. 이 점은 그가 "이 의지가 '결여'된 인류의 모든 최고 가치는 쇠퇴와 '허무주의적' 가치의 징후이면서도 신성한 이름을 내걸고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데서 나타난다. 따라서 전통적인 철학·종교·도덕은 불충분한 권력의지의 옷으로 치장하고 있다. 서구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가치들은 퇴폐의 승화된 산물이었다.


몇몇 주석가는 니체가 말하는 권력을 지향하는 의지라는 개념을 인간의 삶만이 아니라 유기적·무기적 영역에까지 확대 적용함으로써 니체를 권력의지의 형이상학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지지하기 어렵다.


영원회귀의 원리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기본사상이다. 영원회귀란 서로 다른 삶이 무한히 반복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매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되는 것을 뜻한다.

니체는 영원회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초인일 것이고 초인과 보통사람의 거리는 인간과 원숭이 사이의 거리보다 더 멀다고 말하고 있다. 주석가들은 아직도 영원회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인간을 규정하는 특수한 속성들이 있는가에 대해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니체의 영향

니체는 어떤 사람은 죽은 뒤 다시 태어난다고 쓴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니체 없이는 20세기의 철학·신학·심리학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독일의 철학자 막스 셸러, 카를 야스퍼스, 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등도 마찬가지이다.


철학과 문학비평에서 일어난 실존주의와 해체주의는 그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신학자 파울 틸리히, 레프 셰스토프는 "신은 죽었다"의 신학자인 토머스 J. J. 알타이저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위대한 유대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니체가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지적하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1부를 폴란드어로 옮겼다. 니체가 자기를 그 누구보다도 더 철저하게 이해했다고 말한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프레트 아들러, 카를 융 등 심리학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앙드레 말로, 앙드레 지드, 존 가드너 등의 소설가와 조지 버나드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슈테판 게오르크,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등의 시인·극작가도 그에게서 영감을 얻었고 그에 관해 글을 썼다. 분명히 니체는 지금까지 살았던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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