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사랑하는 것들과... 고전음악, 풍란들..., 그리고 사진...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의 산실(産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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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관련 이야기들...

2020. 6. 27.

'금호', 금호 아시아나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뛸 때가 있었다.

향토 기업이어선 것도 있었지만 1998년 금호갤러리 음악회에 발을 디딘 후부터 금호를 확실하게 좋아하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은 여와에 나왔거나 워낙이나 널리 알려진 과 소품 위주로 조금, 아주 조금 알다가?

정식으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이 1988 년부터 였는데 개관한 지 몇 년 안 된 예술의 전당과 금요스페셜 공연장을 찾아다니다가 금호현악사중주단을 만나게 되었다.

2000년 광화문 사옥 3~4층에 클래식 실내악 전용 연주회장을 건립해 매주 금요일에 열렸던 겔러리음악회를 이어서 금요스, 페셜이란 타이틀로 매주 훌륭한 연주회를 가졌었고, 주 5일 근무제 가자리를 잡려는 시점에 금요 연주일을 목요일로 옮겨 [아름다운 목요일] 연주회를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는데 2 천연대 중반에 들어 과욕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처절하게 깨져만 가고..

속상해 죽겠다.

그 알찬 회사를 다 날려버리고 이제는 재계 순위 100위에도 벗어났을 걸?

속 상한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blog.daum.net/oyunhwang/6980794

있는데 w.kacf.net/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사이트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40년(2017년 기준)

1 2003년 12월 금호 영재 콘서트가 끝난 후 참가자들과 함께한 고 박성용 회장(가운데). 2 2015년 내한한 독일 첼리스트 율리안 슈테켈이 금호 영재 마스터 클래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3 1998년 제1회 금호 영재 콘서트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고(故) 권혁주(무대 맨 오른쪽)가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4 2014년 금호 악기은행 수여식. 왼쪽부터 임지영, 박삼구 회장, 김범준. 5 ‘찾아가는 사랑의 금호아트홀’ 완도 노화초등학교 공연 장면. [사진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중앙 포토]

9일 저녁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 클라리넷과 피아노의 들뜬 선율이 300석 규모의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카미유 생상스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E플랫 장조 Op.167’.

90년대부터 클래식 신예 양성
연주의 완벽함보다
열정·성장 가능성 더 평가
조성진·손열음·김선욱·임지영 …
세계 클래식 음악계 뒤흔들어

반주를 따라 한가롭게 떠다니던 클라리넷 소리가 어느새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이날 무대에 선 클라리네티스트는 지난해 12월 독일 클래식 윈드 인터내셔널 페스티벌 콩쿠르에서 2위와 함께 특별상을 수상한 김우연(25).


세계적인 연주자 마틴 프로스트, 자비네 마이어와의 협연 등 최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 중인 떠오르는 신예다.



2009년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를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김우연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사장 박삼구)이 발굴한 음악 영재 중 한 명이다. 김우연을 비롯해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클래식 음악가의 상당수가 재단이 운영하는 영재·영 아티스트 콘서트를 통해 데뷔했다. 2015년 국제 쇼팽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23), 같은 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기악 부문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22)을 비롯해 손열음·김선욱(피아노), 클라라 주미 강·김봄소리(바이올린), 고봉인·문태국(첼로) 등 ‘금호 영재’ 출신들이 세계 클래식 음악계를 뒤흔들고 있다. 재단 설립 후 40년 만에 이뤄낸 눈부신 성과다.

고 박성용 회장의 클래식 사랑이 심은 씨앗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뿌리는 그룹 창업주인 금호(錦湖) 박인천(1901~84) 회장이 1977년 설립한 금호문화재단이다. 창립 당시엔 장학 사업에 집중했던 재단이 클래식 영재 발굴 프로그램을 시작한 건 90년대. 클래식 음악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박성용(1932~2005) 회장의 의지가 컸다.

50년대 미국 예일대 유학 시절부터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박성용 회장은 90년에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을 모아 금호 현악 4중 주단을 창단했다. 이후 연주팀의 해외 순회 연주 등에 동행하면서 ‘한국 클래식 음악의 수준을 높이려면 영재를 키워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98년 만 14세 미만의 음악 영재를 선발해 독주 기회를 주는 ‘금호 영재 콘서트’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만 15~25세의 젊은 음악가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박성용 회장의 클래식 사랑은 지극했다. 박 회장을 보좌했던 그룹 전 임원은 “회장님 자택에서 열린 직원 초대 연주회에 간 적이 있는데, 큰 거실에 가구 하나 없고 피아노와 앰프, 접는 의자 50개만 딱 있더라. 집안 전체가 음악을 위한 공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영재 발굴 프로그램을 만든 후에는 직원들에게 맡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어린 연주자들을 챙겼다. 영재들의 콘서트가 열리면 직접 표를 구매해 공연을 관람하고 “연주자에겐 박수가 가장 큰 힘”이라며 가장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어린 음악가들이 해외 콩쿠르에 출전하면 직접 현지까지 찾아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금호 영재 출신으로 97년 제3회 차이콥스키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서 첼로 부문 1위를 차지했던 첼리스트 고봉인(32)은 “박 회장님의 격려가 음악을 계속하는 큰 힘이 됐다”라고 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직접 와 주신 것은 물론 외국 연주회 등에서 만나면 늘 푸근하게 웃으며 안부를 물어 주셨어요. 음악을, 그리고 어린 연주자들을 진심으로 아꼈던 분이었죠.”

콩쿠르 형식의 오디션은 지양

영재 오디션은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린다. 회당 선발 인원은 정해져 있지 않고, 악기별 심사위원 4~5명이 만장일치로 선택한 연주자만 선발이 된다. 영재를 고르는 금호의 첫 번째 원칙은 ‘잠재성’이다. 재단의 음악사업을 담당하는 박선희 팀장은 “실수가 없는 깔끔한 연주보다 10~20년 후에 좋은 연주자로 성장할 수 있을까를 평가해 달라고 심사위원들에게 요청한다”라고 했다. 여러 차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김의명 한양대 교수는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며 “본인이 연주하는 음악에 얼마나 깊이 빠져드는가, 자신만의 감정을 담아 연주할 수 있는가 등 연주자로서의 ‘끼’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기준은 한 시간 정도의 독주회를 스스로 구성하고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가다. 유명 악곡의 하이라이트 등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많지만 ‘스토리’를 가진 무대를 선보이는 것은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연주자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98년 재단의 첫 번째 영재 오디션에서 선발돼 콘서트를 했던 피아니스트 손열음(31)은 “그 당시에는 검증되지 않은 어린아이한테 독주회를 열어주는 시리즈가 전무했기 때문에 금호 영재 콘서트는 정말 감사하고 소중한 기회였다”라고 했다.

수십억 원대 명품 고악기 무료로 대여

클래식 음악 분야는 수십 년 전만 해도 부모의 재력이나 지극한 관심이 없으면 성과를 내기 힘들었던 분야였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영재 육성 시스템은 실력과 잠재력이 있으면 ‘금수저’가 아닌 아이들도 대형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데 그 의의가 크다. 재단 측은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은 경우 장학 프로그램과 병행해 영재들에게 유학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라고 했다.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에는 명품 고악기를 무상으로 임대하는 ‘금호 악기은행’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는다. 재단은 93년부터 악기 하나에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명품 바이올린 과다니니(Guadagnini)나 첼로 마지니(Maggini) 등 재단이 보유한 15점의 고악기를 오디션을 통과한 이들에게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1794년 산 주세페 과다니니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지영은 “세계 무대 연주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좋은 고악기”라며 “재단의 대여 프로그램 덕분에 각종 콩쿠르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영재 콘서트에서 재능을 발휘한 영재들에게는 ‘금호 라이징 스타’나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공연 협연 등 계속적으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영재 출신들로 구성된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활동, 항공권 지원, 무대 매너를 교육하는 ‘영 뮤지션 매너스 스쿨’, 세계적인 음악가들에게 레슨을 받을 수 있는 ‘마스터 클래스’ 등 연주자들의 성장 과정을 따라 ‘맞춤형 지원’을 한다.


40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앞으로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 한국인들을 진출시키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재단이 그동안 쌓아온 네트워크를 활용, 영국 런던이나 독일 드레스덴 등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한국 연주자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금호영재 콘서트

금호영재 콘서트는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1977년 창립)이 운영하는 클래식 영재 발굴 시스템이다. 만 14세 미만 영재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며 만 14세 이상 음악 영재들에게는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가 있다. 지금까지 두 콘서트를 통해 배출된 음악 영재들은 1000여 명에 달한다. 김선욱(피아노) ・ 손열음...

도서 에듀윌 시사상식 | 태그 기업/경영

  • 금호아트홀

    이상의 독주 및 실내악 연주 무대를 위한 공연이 열려 1년 365일 음악이 멈추지 않는 클래식의 전당으로 자리 잡아 왔다. 1997년 6월, 故 문호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갤러리 콘서트'를 개최했다. 금호미술관에서 개최된 갤러리 콘서트는 국내외 뛰어난 연주자들을 초청, 소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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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호 음악인상

    금호 음악인상은 2004년부터 제정하여 수여하는 상으로서,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 및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한국의 클래식 발전을 위해 뛰어난 음악성과 큰 장래성을 지닌 젊은 음악가중 일 년 동안 가장 활발한 음악 성과를 보였으며, 향후 세계적인 음악가로 발돋움할 만...

    출처 위키백과

  • 박성용

    한국메세나협의회 4대 회장 2002년 6월 : 제4대 광주과학기술원 이사장 1998년 ~ 2001년 : 예술의 전당 이사장 1996년 4월 :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 1996년 4월 ~ 2005년 5월 :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 1984년 8월 ~ 1996년 : 금호그룹(금호아시아나그룹) 제2대 회장 1981년 : 금호건설 회장 1976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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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인천

    고무 등의 사업을 통해 오늘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창립했다. 1966년에는 삼화교통을 인수하여 사장과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77년에는 재단법인 금호(현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에 취임했다. 1959년 죽호학원 이사장, 1954년 광주상의회 초대회장(8대까지 연임,~1976년)과 1964년 대한상공회의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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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구

    1989년 ~ 1996년 : 금호아시아나그룹 부회장 1981년 ~ 1989년 : 삼양타이어(현 금호타이어) 대표이사 1981년 : 죽호학원 (현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 1978년 :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이사장 1972년 ~ 1995년 : 광주고속(현 금호고속) 대표이사 1969년 : 광주여객자동차 (현 금호고속) 1965년 : 전남제사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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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메세나협회

    풍산그룹 류진 회장 한화갤러리아 서영민 前 고문 현대해상 화재보험 정몽윤 회장 한미약품 송영숙 CSR 고문 효성 조현준 회장 고려당 정재호 사장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서현재 전무 (주)두산 민은식 상무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사장 사라 안윤정 사장 신세계 장재영 대표이사 이건 홀딩스 안기명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출처 위키백과

 

'

 

' 손열음 Yeol Eum Son, ソン・ヨルム

5월 2일 생으로 초등학교 5학년이던 1997년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 입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인 1998년 7월, 금호문화재단(현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 영재 발굴 및 지원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금호영재 콘서트에 첫 주자로 발탁되면서 음악계에 데뷔하였다. 이후 1999년 오벌린 국제 콩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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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블랑 예술 후원자상

    명품 브랜드인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이 세계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를 기리기 위해 1992년에 제정한 상이다. 매년 10명을 선정해 시상한다. 2004년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고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2005년에는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이 수상했다.

 

 

'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Kumho Asiana Cultural Foundation, 錦湖韓亞文化財團)(이사장 박삼구)은 '한국 국가 발전에 공헌할 인재 양성, 학술·예술 등의 진흥을 위한 문화 활동과 이의 연구조사, 창작 보급에 참여하고 이를 지원'이라는 목적으로 1977년 11월 29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재단법인이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76 (신문로 1가)에 있으며, 본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18 (사간동)에 있다.

목차

재단 소개

1977년 11월 29일에 창립되었다. 당시 금호그룹(現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억 원을 출자해 장학재단으로 출발하였으며, "기업의 오늘을 있게 한 지역과 지연민들에게 그 이윤의 일부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금호아시아나의 경영 철학을 기본으로 장학 사업을 확장하여 오늘날 클래식 음악, 미술, 장학 사업을 아우르는 모범적인 문화재단으로 성장했다.

재단의 목표는 '영재는 키우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설립 취지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 전용 홀인 금호아트홀과 한국의 젊은 음악도를 위한 교육의 공간 문호아트홀, 국내 사립미술관의 대표주자인 금호미술관의 운영 목표 역시 여기에 맞춰져 있는데 무엇보다 주력하는 것은 음악과 미술 각 분야의 영재를 집중 발굴 및 육성하는 데 있다. 그동안 재단이 국내외 저명 연주자와 해외 오케스트라 초청,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 운영, 명품 고악기 무상 임대, 음악 영재 및 젊은 작가 발굴 및 지원, 연주자 항공권 제공 및 음악 영재에 장학금 수여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금호 예술기금을 쾌척하여 예술의 전당 음악영재 캠프 & 콩쿠르를 개최하는 등, 국내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위한 기금 지원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한국의 대표적인 메세나로 자리 잡았다.

주요 사업

문화예술 지원사업은 음악사업, 미술사업, 장학사업 등 크게 세 가지 분야로 나뉜다. 대표적인 클래식 영재 발굴 시스템으로 '금호영재 콘서트 시리즈'(만 14세 미만)와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만 14세 이상)가 있다. 지금까지 두 콘서트를 통해 배출된 음악 영재들은 1천 여 명에 달하며, 김선욱(피아노), 손열음(피아노), 권혁주(바이올린), 김봄소리(바이올린), 신지아(바이올린), 임지영(바이올린), 조진주(바이올린), 최예은(바이올린), 이유라(바이올린/비올라), 고봉인(첼로), 문태국(첼로), 조성현(플루트), 함경(오보에), 김한(클라리넷) 등이 대표적이다. [1]

 

 

연혁

  • 1977년 11월 29일 - 금호문화재단(現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설립

  • 1989년 - 서울특별시 관훈동 금호갤러리 설립

  • 1990년 - 한국 최초 직업 실내악단 금호현악 4중 주단 창단

  • 1994년 - 故박성용 이사장 문화훈장 최고등급 문화 무궁화장 수상

  • 1996년 - 서울특별시 사간동 금호미술관 건립

  • 1997년 6월 - 기획공연 '갤러리 금요콘서트' 시리즈 개설 장소:금호미술관

  • 1998년 7월 - 기획공연 '금호영재 콘서트' 시리즈 개설 장소:금호미술관

  • 1999년 7월 - 기획공연 '금호 영 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 개설 장소:금호미술관

  • 2000년 12월 - 서울특별시 광화문 금호아트홀 개관, 갤러리 금요 콘서트 -> 금호아트홀 금요 시리즈로 변경

  • 2002년 11월 - 메세나 대상(대통령상) 수상: 금호현악 4중 주단 운영

  • 2003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초청

  • 2004년 5월 - 故박성용 이사장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 2004년 10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2: 내한공연 (지휘: 로린 마젤)

  • 2005년 6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3: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지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 2005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4: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 사이먼 래틀 경

  • 2006년 1월 - 제2회 금호 음악인상/금호 음악스승상 시상 음악회

  • 2006년 6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5: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 2006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6: (지휘: 로린 마젤)

  • 2007년 8월 - 금호 아시안 오케스트라 시리즈 1: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첸 시엔 양)

  • 2007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7: 파리 오케스트라 (지휘: 크리스토프 에센바흐)

  • 2008년 2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8: (지휘: 로린 마젤)

  • 2008년 3월 - 금호아트홀 객석 증설 공사 완료 305석 -> 390석

  • 2008년 4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9: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켄트 나가노)

  • 2008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0: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 사이먼 래틀 경)

  • 2009년 4월 - 금호 아시안 오케스트라 시리즈 2: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고이즈미 가즈히로)

  • 2009년 10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1: (지휘: 앨런 길버트)

  • 2010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2: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지휘: 마리스 얀손스)

  • 2011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3: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 사이먼 래틀 경)

  • 2012년 8월 - 금호 아시안 오케스트라 시리즈 3: 차이나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리 신차오)

  • 2013년 1월 -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시리즈 개설

  • 2013년 11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4: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 사이먼 래틀 경)

  • 2014년 2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5: (지휘: 앨런 길버트)

  • 2014년 6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6: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 히로 1 카미 주니치)

  • 2014년 9월 - 박삼구 이사장 몽블랑 문화예술 후원자상 수상

  • 2015년 3월 -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7: LA 필하모닉 (지휘: 구스타보 두다멜)

  • 2016년 11월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8: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 2017년 11월 금호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19: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

각주

  1.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영재는 키우고 문화는 가꾸고, 한국일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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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박인천(朴仁天) 이 택시 2대를 운영하는 광주 택시로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48년 9월 광주여객자동차(현 금호고속)를 설립하여 버스운송사업에 진출한 것이 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광주여객자동차는 1961년 6월에 전남 여객자동차를 흡수·합병하여 사세를 확장하였다. 1968년 10월에는 경부선 고속버스 사업인가를, 1971년 11월에는 호남선 고속버스 사업인가를 얻으면서 전국적인 고속버스 회사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편, 설립자 박인천은 운송사업과 함께 1960년 9월에 삼양타이어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타이어 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삼양타이어는 국내 수요 충당과 함께 1965년 10월부터는 동남아시아지역에 수출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8년부터 흑자경영을 이루게 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광주고속과 함께 향후 금호그룹을 형성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 두 회사를 기반을 1970년 일본의 미쓰이상사, 일본 합성고무 주식회사와의 합작으로 한국 합성고무 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2년 10월에는 종합 무역상사인 금호실업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무역업에도 진출하였다. 금호실업 설립 후 그룹체제로 발전하면서 고속버스와 타이어를 발판 삼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1973년에는 미국의 모빌석유 주식회사와 합작으로 윤활유를 주로 생산하는 모빌코리아 윤활유 공업 주식회사 및 금호전자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이 시기부터 금호는 지역기업의 수준을 넘어서 국내 굴지의 그룹으로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1974년에는 광주 투자금융주식회사를, 1976년에는 금호산업 주식회사와 금호화학 주식회사를, 1977년 금호 섬유 주식회사와 금호건설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사업영역을 확대하였다. 이로써 12개 회사로 구성된 금호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1979년 제2차 석유파동과 국내외적으로 불황이 겹쳐 금호전자와 금호산업은 금호실업 주식회사로 흡수· 합병되었고, 1984년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합병하여 주식회사 금호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이 시기 금호는 육영사업에 투자하여 일반고등학교로 금호고등학교와 광주중앙 여자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실업고등학교로 금파화학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사업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6년 9월에는 미국 유니로열(Uniroyal)사와 타이어에 대한 기술 제휴를 맺어 타이어 제조 기술의 전문화를 이룩하였다. 1987년 3월에는 금호타이어 서울 판매 외 10개 판매사를 합병하여 타이어 영업망을 크게 확장하였다. 1988년에는 대한항공에 이어 제2 민항 사업자로 선정되어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며 그룹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후 1990년대 초반에는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등을 중심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면서 글로벌 경영체제 구축에 힘을 쏟았다. 국내적으로는 1991년 8월 스포츠용품 브랜드 ‘포즈(POSE)’를 출품하였으며, 1992년 2월에는 민항기 타이어 부문에서 미국 F·A·A 테스트에 합격하였다. 1992년 10월에는 45 시리즈 타이어를 국내 최초로 개발하였고, 1994년 2월에는 ‘24 ISO 9001 인증’을 획득하였다. 그리고 1996년 2월에 주식회사 금호의 상호를 금호타이어㈜로 변경하였다. 아시아나항공·금호건설·금호타이어가 주력기업이었던 금호그룹은,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아 그룹의 부채비율을 낮추고 기업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였다.

 

이어서 2004년에는 그룹 명칭을 금호그룹에서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변경하였고, 한국 복합물류와 호남 복합물류를 계열사로 편입해 물류사업에도 진출을 하였다. 또한, 2005년에는 금호타이어를 런던과 한국증권시장에 동시 상장하였다. 그러나 2006년과 2008년에 각각 당시 워크아웃 상태에 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그룹이 해체 위기까지 가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개별 업종에서 국내를 대표하던 두 기업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체의 시가총액보다 많은 금액으로 인수한 것이 그룹 부실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즉 두 기업을 인수한 후 국내적으로 경기 불황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고,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겹쳐 자금 유동성 문제에 당면하면서 설립 후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이었다.

 

2010년 1월 그룹의 모태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기업개선 절차)에 들어갔고,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의 자율협약 체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의 사재 출연으로 채권단과의 합의하에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아 기업이 회생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015년 7월에는 법원 판결을 통해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 계열사들이 법적으로 계열분리되어 독립경영의 길로 가게 됐으며, 같은 해 8월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되었던 아시아나항공이 이러한 자율계약을 벗어나게 되었다. 2015년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속리산고속·금호고속관광·청도 솔라 등 4개사의 지분을 인수하여 계열사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2016년 8월에는 금호터미널이 금호 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금호 기업은 해산되었으며, 금호터미널은 사명을 금호 홀딩스㈜로 변경하였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표회사인 아시아나항공은 항공기의 기령이 낮은 편이어서 고객들의 선호도가 높으며, 2009년 ‘에어 트랜스포트 월드’를 시작으로 2010년 스카이트랙스, 2011년 글로벌 트래블러, 2012년 프리미어 트래블러, 비즈니스 트러블러로부터 5회 연속 ‘올해의 항공사 상’을 수상하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하고 있다. 또한, 금호건설은 현재 베트남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와 중동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면서 도시개발사업과 공항사업 등 각종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는 등 신흥시장 진입을 통한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1977년 설립된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재단 설립 취지에 맞게 명품 고악기 무료 대여, 항공기 프리티켓 지원, 음악 영재 연주 기회 확대 및 후원, 금호미술관을 통한 다양한 기획전시 및 신진 유망작가 발굴 등 한국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폭넓은 지원 활동을 펼쳐 국내 메세나 활동의 대표 회사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금호아시아나는 2016년 창립 70주년을 맞이하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44.5% 늘어난 2,570억 원을 기록하였는데,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미얀마 양곤, 인도네시아 발리 노선 운항을 전격 중단하는가 하면 국내외 45개 지점을 순차적으로 줄이는 등 다각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한 덕분이다. 또한, 에어부산에 이어 아시아나항공의 두 번째 저비용항공사(LCC)인 에어 서울이 공식 운항을 시작하였다. 에어 서울은 2016년 10월 일본 다카마쓰·시즈오카·요나고·나가사키, 마카오, 코타키나발루, 시엠레아프 등 국제선 10개 노선에 성공적으로 취항하였다. 금호산업의 실적도 호전되었는데, 2016년에는 신규 수주액 1조 6,034억 원을 달성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17위였던 시공능력 평가 순위도 15위로 두 단계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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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위기

대우건설 인수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박삼구 회장은 항공과 타이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며, 석유화학과 금융을 기반으로 건설을 주력 업종으로 키우고자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11월 한국 자산관리공사와 대우건설의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하여, 대우건설 주식 72.1%을 6조 4천255억 원에 인수하였고, 2008년 3월 대한통운을 4조 1천40억에 인수하면서 거침없이 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와 건설경기 불황으로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되면서 2009년 6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여 대우건설을 재매각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를 인수할 만큼 여력이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이무렵 형제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는데, 박삼구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은 2009년 3월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던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려 그간 지분을 똑같이 쥐고 있던 형제간의 규칙을 깨뜨렸다.

2009년 7월 박삼구 회장은 동생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박삼구 회장 본인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룹은 금호아시아나와 금호석유화학 두 개로 쪼개지게 된다. [1] 이어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금호생명 매각 결정을 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하게 되었지만 대우건설 재매각이 무산되면서, 2009년 12월 30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을,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을 선언한다. [2] 이듬해인 2010년 상반기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서 박삼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다.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대한통운CJ그룹에 매각하고 금호산업 자산인 금호고속,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대우건설 등 주식을 패키지 딜로 매각한 것도 재무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됐다. 이런 노력으로 2014년 10월 금호산업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 워크아웃을 마쳤으며,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도 12월도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을 마치게 되었다.

2015년 2월 금호산업의 채권단은 금호산업의 지분 57.4%에 대한 매각공고를 내고 입찰에 들어갔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 격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08%을 가진 최대주주이다. 따라서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이 추가로 발생하게 된다.. [3]

아시아나항공 매각

2019년 4월 15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채무 자구안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하게 된다. 2019년 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전체 채무의 일부인 1조 3000억 원을 상환해야 하지만, 총채무가 8조 원 이어 현실적으로 상환이 불가능하자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을 결정하였다. [4]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무리한 M&A가 과다한 부채의 원인으로 꼽히며, 2006년 대우건설 인수, 2008년 대한통운 인수 등 당시 무리한 인수 및 합병을 강행하였다. 당시 3조 원가량이었던 그룹 자본에 비해 무리한 인수를 강행하여 적자가 나기 시작하였다. 또한 항공기 운영방법에 따른 자금 계산법도 원인으로 떠오르는데, 아시아나항공의 항공기의 90%가 리스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직접 구매가 아닌 리스는 부채로 적용됨에 따라 부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5]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제계 60권 밖의 중견기업으로 하락되었다.

회장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1977년 11월 말 과거 광주고속(현 금호고속)과 ㈜금호가 각각 1억원씩 출자해 세운 올해로 42년을 맞는 장학재단이다. 현재는 클래식 음악과 미술, 장학 분야를 지원하는 문화재단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박 전 회장은 형이자 선대회장인 고(故)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2005년부터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아오고 있다. 그가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지 14년이 됐다. 이곳에는 그의 누나 박강자 금호 미술관장이 부이사장으로 있다.

그는 올해 초 아시아나항공 2018년 감사보고서 한정의견과 이로 인해 불거진 유동성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그룹 회장직을 내놓았다. 동시에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대표이사직과 등기이사는 물론 지주사 격인 금호고속 등기이사에서도 물러났다.

현재 박 전 회장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유일한 곳은 그룹 내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뿐이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가 이사장직을 내놓지 않는 데는 그럴만한 유인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

세무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자산총액은 751억 원이다. 이 중 투자한 주식자산은 70%가 넘는 542억 원에 달한다. 구체적으로 금호고속(400억 원)을 포함해 KDB생명보험(118억 원), 서울신문(12억 원) 등 주식을 다수 보유 중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이다. 아시아나 IDT, 에어부산, 에어 서울 등 자회사를 함께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매각이 완료되면 금호그룹의 지배구조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을 중심으로 새 판이 짜여지게 된다.

새롭게 재편될 지배구조상 가장 중요한 곳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금호고속이다. 그런 금호고속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캐스팅 보트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다.

현재 금호고속 지분의 67.6%는 박 전 회장과 그룹 계열사 등 특수관계자가 보유하고 있다. 이 중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박 전 회장(31.35%)과 박세창 아시아나 IDT 사장(21.17%)에 이어 3대 주주(7.19%)다.

무엇보다 정관변경, 해산, 합병, 영업양도 등 주총 특별결의(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 전체 주식 3분의 1 동의) 사항을 어떤 상황에서도 통과시킬 수 있는 데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의 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곳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이외에도 항공 운송지원 서비스업을 담당하는 케이에이(KA), 케이 에프(KF), 케이오(KO), 케이알(KR) 등 4개 회사의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 KA는 에이 에이치(AH)와 에이큐(AQ), KO는 에이오(AO), KF는 에스티엠에의 100% 주주다. 모두 8개사를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이 직간접적으로 지배하는 형국이다.

지난해 기준 이들 8개사의 자산총액은 336억 원이며 부채총액은 170억 원이다. 매출은 1천175억 원, 영업이익 46억 원, 당기순이익 62억 원을 기록했다. 재무상태도 탄탄하고, 적지만 알찬 수익을 내는 알짜 계열사들로 평가받을 만한 곳들이다.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은 지주사의 주요 주주로서 그룹 전체에 대한 적잖은 영향력을 가진 데다 알짜 자회사를 지배하는 중간 지주사의 역할을 하는 만큼, 표면적으로는 공익재단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룹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계열사에 가깝다.

결국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후 새 출발을 할 금호그룹에서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박 전 회장은 향후 경영 복귀가 어려워진다고 해도 간접적으로나마 그룹에 영향력을 행사할 의도를 갖고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이사장직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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