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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책] 작곡가가 안내하는 슬기로운 감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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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학 산책

2020.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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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런 코플런드(1900-1990)

작곡가들은 음악을 그렇게 대하지 않아요.

수년 전에 참석했던 한 음악 세미나에서 작곡가가 던진 말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음악을 여러 관점에서 생각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매우 필요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의 말에 힘이 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송주호 음악 칼럼니스트

 


작곡가의 관점에서 보기
그렇다면 작곡가는 어떻게 음악을 대할까? 음악을 감상하면서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작곡가의 관점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시도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한때 곡을 써보겠노라고 큰 악보를 사서 음표를 이렇게 저렇게 그려 넣어 본 적이 있지만, 작곡가가 받는 전문적인 교육과 혹독한 훈련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전문가로서 창작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고서는, 작곡가의 입장에서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이상적인 음악 감상은 근본적으로 ‘미션 임파서블’일까?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What to Listen for in Music· 1939-1957)』 표지

이러한 좌절 섞인 질문에, 미국의 중요한 작곡가 에런 코플런드(Aaron Copland: 1900-90)는 그 답을 내놓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What to Listen for in Music·1939-1957)』, 『우리 시대의 새로운 음악(Our New Music·1941)』, 『음악과 상상력(Music and Imagination·1952)』 등의 책은 그 결과물들로, 고전음악과 우리 시대의 음악을 올바르게 감상하는 길을 제시했다.

코플런드의 이 책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이유는, 첫 저서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의 초판 서문에서 밝혔듯이 “작곡가의 관점에서” 저술했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에 대한 설명에 작곡가만 한 적임자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우선 작곡가가 작곡하는 과정은 영감에 의존하기보다는 밥을 먹거나 자는 것과 같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담담하게 풀어간다.1) 이러한 양심선언 수준의 폭로(?)는 작곡가에 대한 환상을 깨는 것일 수도 있지만, 코플런드는 이 고백을 통해 감상자가 작곡가를 접근 불가의 환상이 아닌, 현실로 접근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도록 인도한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에런 코플런드 저, 이석호 역, 포노, 368페이지

이 책은 1936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겨울 동안 뉴욕의 ‘뉴 스쿨 포 소셜 리서치’에서 15회에 걸쳐 이루어진 동명의 강좌를 정리한 것으로, 1939년에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리고 1957년에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현대 음악과 영화음악 관련 원고를 덧붙여 증보판이 발간되었다. 강연과 초판 집필 당시는 관현악곡 ‘엘 살롱 멕시코’(1936)와 발레곡 <빌리 더 키드>(1939) 등을 쓰던 시기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즉, 모더니즘보다는 대중적인 음악 언어를 사용하여 아메리카 대륙을 대변하는 음악에 몰두하던 시기로, 이 책의 관점도 주로 고전을 향하고 있다.2) 그래서 현대 음악에 관심이 적은 애호가들에게도 매우 유용하다.

그런 점에서 음악의 요소, 음악의 형식, 음악의 장르, 올바른 감상법 등을 다루어 여느 음악 입문서나 해설서와 유사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작곡가의 관점’으로 본다는 것은 음악을 이론적이거나 역사적으로, 혹은 학술적으로 다룬 것이 아닌 실제 음악을 만들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실용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감상이라고 하는 예술 활동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3) 실제로 이 책은 일반적인 해설과 함께, 감상자가 스스로 분석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여기에는 코플런드의 다음과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선율, 리듬, 화성, 음색을 의식적으로 들어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코플런드는 이 책에서 리듬, 선율, 화성, 음색을 차례로 설명한다. 일반적인 박자부터 현대적인 폴리리듬까지, 선율이 가진 감정적 기능부터 선율을 구성하는 다양한 음계까지, 화음의 탄생부터 다조성까지, 그리고 여러 악기의 다양한 음색부터 지휘자의 역할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깊고 다양한 내용을 매우 쉽고 현실적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음악의 형식입니다.

코플런드가 가장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부분은 ‘형식’이다. 음악사를 꿰뚫고 있는 그의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은 형식에 대한 설명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각 형식의 특징을 소개한 후 든 다양한 실례에서, 오히려 형식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으려는 예술가의 고민이 절실히 드러난다는 점이다. 오죽하면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가 소나타 형식을 지켰다는 사실을 “별난 실책”이라고 말할까! 하지만 쇤베르크와 베베른도 그랬듯이, 한 관점에서 혁신을 꾀하면서 다른 관점에서는 과거를 지향함으로써 자신의 작품이 역사의 사생아가 아님을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코플런드는 형식만 새로웠다면 스크랴빈은 온전한 혁신의 완성을 성취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슬기로운 감상자와 재능 있는 감상자
코플런드가 이러한 설명을 통해 기대하는 것은, 독자들이 필요한 지식을 갖고 의도를 파악하며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감상자를 ‘슬기로운 감상자’라고 말한다.

슬기로운 감상자라면 음악이 지향하는 목적을 무엇보다 앞서 염두에 두어야 함을 잘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1957년에 덧붙인 ‘현대 음악’ 파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대부분 현대 음악이 감상자의 익숙한 청취 습관으로는 이해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코플런드는 비교적 접근성이 높은 자신의 작품조차 현대 음악이라고 불리며 외면당하는 현실에서 감상자에게 말하고 싶은 바가 많았을 것이다.

우선 코플런드는 작곡가의 입장을 대변한다. 쇼팽과 모차르트가 살았던 세계가 지금 세계와 같지 않은데, 그들의 음악적 언어가 오늘날의 음악적 언어가 될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문학에서는 새로운 표현을 기대하고 이를 즐기는데, 유독 음악에서만 왜 익숙한 소리를 원하는지 불만을 토로한다. 첨예한 자극으로 감상자를 각성시키는 현대 예술의 특징에서 왜 음악만이 예외가 되어야 하는가?'

 

 

'『음악과 상상력(Music and Imagination·1952)』 표지

 

[음악과 책] 작곡가가 안내하는 슬기로운 감상생활

[BY 서울시립교향악단] 에런 코플런드(1900-1990) “작곡가들은 음악을 그렇게 대하지 않아요.”수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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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룬 세 번째 저서 『음악과 상상력』에서는, 이러한 현실에서 음악가에게 필요한 고민을 소신 있게 적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에서 이루어진 6회 분량의 ‘노턴 강좌’를 정리한 것으로, 작곡가는 존재의 본질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며, 청중과의 소통에 성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해석자로서 창작의 영역과 무관하지 않은 연주자도 자신이 먼저 음악에 감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감상자도 빼놓지 않는다. 코플런드는 이 책에서 “음악은 본질적으로 상상력을 발휘시킨다.”라고 선언하며, 따라서 음악으로부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감상자를 “재능 있는 감상자”라고 말한다. 감상에도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교육이 필요하고 능력이 계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4) 그리고 감상자를 지휘자와 예술가적 경험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감상은 적극적인 예술적 활동과 다르지 않음을 넌지시 밝힌다.

이에 코플런드는 감상자에게 필요한 능력을 제시한다. 우선 서로 다른 시대의 음악에서 예상할 수 있는 음악 표현의 자연적 차이에 대해 성숙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대규모 작품의 구조적 틀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강조한다. “진정한 음악 애호가라면 누구도 (음악 경험이) 단지 몇백 년간의 음악에만 국한되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코플런드는 ‘음악과 상상력’보다 5년 후에 쓰인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의 현대 음악 파트에서 감상자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듣는 입장에서도 작곡가의 좋은 뜻을 믿고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 우리가 속한 시대의 특징적인 음악 화법에 둔감하기 때문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현대음악은 다른 그 어떤 음악이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코플런드는 학술적인 지식을 늘어놓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작곡가의 고민과 경험을 나눔으로써, 감상자를 예술 활동에 동참시키려 한다. 이를 통해 감상자는 음악을 마음과 정신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코플런드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다. 열린 마음으로 진정한 애호가가 되기를, 충분한 지식을 통해 슬기로운 감상자가 되기를,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재능 있는 감상자가 되기를!

1) 쇤베르크가 언급한 수공예로서의 작곡이나 소스타코비치가 말한 일로서의 작곡과 유사하다.
2) 서울시향이 연주할 밴드곡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1942)와 발레곡 ‘애팔래치아의 봄’(1944)도 이 연장선에 있다.
3) 감상은 예술 작품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공감과 상상력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예술활동이다.
4) 감상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악 현상을 ‘상상적 음악’이라고 설명한 티보르 크나이프(Tibor Kneif·1932)의 의견을 연상시킨다. 그는 감상자는 학습을 통해 동시대의 음악 미학에 익숙해져야 하며, 음악에 열린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문화적 공감대의 측면에서 언급된 것인데, 코플런드가 말하는 작곡가의 입장에서의 지식과 감상 경험은 이와 연결된다.

※ 이 글은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발행하는 월간 2020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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