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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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계 대모 이경숙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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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음악가들...

2021.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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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계 대모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이경숙 님이 내가 뒤늦게 격하게 받아 들은 김규연의 어머니라 한다.'

4월 1일 김규연의 금호아트홀 연주회 날 하루 전에야 알았다.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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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3 하콘, 그 사람 - 피아니스트 이경숙 7월은 원먼스 페스티벌 특집으로 매주 초대석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방송에는 한국 피아노 역사의 거장이며 증인인 피아니스트 이경숙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이경숙 선생님과 나눌 소소하고 심도 있는 음악 이야기, 소심음감에서 함께 하시죠.

 

[선곡 리스트]

● 1 곡목 : L.v.Beethoven / Bagatelle in A minor, WoO 59 "Für Elise"

연주 : 이경숙(Piano) (2018. 7. 27. 실황 연주)

● 2 곡목 : L.v.Beethoven / Sonata for Cello and Piano No.3 in A Major, Op.69 -

II.Scherzo. Allegro molto 연주 : 이경숙(Piano), 박진영(Cello) (제505회 하우스콘서트 / 2016. 10. 31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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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음악실] 8/25(화) 살롱 드 피아노 : 피아니스트 김규연

♣ 피아니스트 김규연 :

지나 박하우어 영 아티스트 국제 콩쿠르 우승, 더블린 국제 콩쿠르 준우승을 비롯하여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클리블랜드 국제 콩쿠르 등에서 입상. 한국예술 종합학교 영재 입학, 커티스 음대에서 디플롬,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석사, 이탈리아 코모 아카데미를 거쳐 클리블랜드 음악원에서 아티스트 디플로마, 맨해튼 음대에서 박사 취득.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벨기에 국립교향악단, 뉴월드 심포니, RTE 내셔날 심포니,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등 국내외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카네기홀, 링컨센터, 케네디 센터 등 세계 주요 공연장에서 독주회와 실내악 연주로 활발히 활동 중. 現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기악과 교수.

#KBS 음악실 #살롱드피아노 #KBSClassicFM #KBS클래식FM #피아니스트김규연 ---

 

연주곡 순서 ---

1. R. Schumann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Op.15 中 12번 잠자리에 드는 아이(Kind im Einschlummern) & 7번 꿈(Träumerei) Pf. 김규연 2. R. Schumann 유령 변주곡 WoO.24 테마 Pf. 김규연

3. C. Schumann Romance Op.21-1 Pf. 김규연

4. R. Schumann Romance Op.28-2 Pf. 김규연

5. R. Schumann / C. Schumann 헌정(Widmung) Pf. 김규연

 

 

이경숙 (Piano)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이경숙은 서울예고 재학 중 장학생으로 도미,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서 호 로조프스키와 루돌프 제르킨을 사사하였다.

 

유학 전 국내에서 이화·경향 콩쿠르 특상을 수상하였으며, 커티스를 졸업하던 해 1967년 제네바 국제 음악콩쿠르에서 입상한 것을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콘체르토 오디션에서 우승함으로써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196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그 실황이 전 미국에 방영되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경숙은 커티스 음악원 졸업 후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꾸준하면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연주자이다. 크리스천 페라스, 피에르 푸르니에, 유디스 샤피로, 아론 로잔드, 줄리어스 베이커, 마르시알 세르베라, 필립 뮬러, 드미트리 야블론스키, 알토 노라스, 폴 토르틀리에 등 세계의 거장들과 협연하였으며, 스위스 로망드, 홍콩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프라하 심포니, 모스크바 필하모닉, 동경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연주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증거로 1988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 32곡을 완주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미 1987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 5곡을 완주한 바 있는 그의 이 같은 업적은 한국 음악계에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어서 1989년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 19곡을, 1991년에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전 9곡을 완주하는 과업을 이루었고, 1993년에는 부천시향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3곡을 협연하였다. 또한 2000년에 사무엘 바버의 피아노 전곡을 연주하였고, 2003년에는 슈베르트 페스티벌을 통해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쉬지 않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의욕적이고 왕성한 활동으로 이경숙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 연주자의 시대를 연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1980년 이후 우리나라 피아노 음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경숙은 연주가뿐만 아니라 음악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은 물론 한국 음악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1993년 우리나라 첫 국립 콘서바토리인 한국예술 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국내외 유명교수 영입, 국내 최초의 영재 입학제도 도입 등을 통하여 탁월한 행정력을 발휘하여, 음악원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주자 양성학교로 성장,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경숙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피아노의 대모‘로서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1985년 음악동아 선정 제1회 올해의 음악가상, 1985년과 1988년 올해의 예술가상, 1987년 난파 음악상, 1988년 김수근 공연예술상, 199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5년 옥관 문화훈장 (“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1998년 한국음악상, 2000년 우경 문화예술상, 200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는 또한 독일 뮌헨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일본 소노다 콩쿠르, 서울 국제 음악콩쿠르, 영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한국예술 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명예교수, ‘커티스와 친구들'의 음악 대표, 예술의 전당 이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서울 사이버대학 피아노과 석좌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이경숙
‘연주는 장거리 여행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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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李慶淑. 1944.1.2∼)

피아니스트. 경남 울산 출생. 서울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960년에 미국으로 가서 1968년 커티스 음악원을 졸업했다. 1956년 이화·경향 전국 아동음악 콩쿠르 특상, 1958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콩쿠르, 1967년 미국 필라델피아 콩쿠르, 1969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 입상했다.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많은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넓은 음폭과 생동감 있는 구성으로 연주하며 강인한 체질과 깊은 서정을 잘 조화시키는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고 1980년대 이래 매우 활발히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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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서울예고 재학 중 장학생으로 도미,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서 호 로조프스키와 루돌프 제르킨을 사사하였다. 유학 전 국내에서 이화·경향 콩쿠르 특상을 수상하였으며, 커티스를 졸업하던 해 1967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한 것을 비롯하여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콘체르토 오디션에서 우승함으로써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1968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그 실황이 전 미국에 방영되어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경숙은 커티스 음악원 졸업 후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에서 꾸준하면서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쳐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연주자이다. 크리스천 페라스, 피에르 푸르니에, 유디스 샤피로, 아론 로잔드, 줄리어스 베이커, 마르시알 세르베라, 필립 뮬러, 드미트리 야블론스키, 알토 노라스, 폴 토르틀리에 등 세계의 거장들과 협연하였으며, 스위스 로망드, 홍콩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프라하 심포니, 모스크바 필하모닉, 동경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는 연주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증거로 1988년 국내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 32곡을 완주한 것을 들 수 있다. 이미 1987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 5곡을 완주한 바 있는 그의 이 같은 업적은 한국 음악계에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어서 1989년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 19곡을, 1991년에는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전 9곡을 완주하는 과업을 이루었고, 1993년에는 부천시향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3곡을 협연하였다.

또한 2000년에 샤무엘 바버의 피아노 전곡을 연주하였고, 2003년에는 슈베르트 페스티벌을 통해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쉬지 않고 정진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의욕적이고 왕성한 활동으로 이경숙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문 연주자의 시대를 연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1980년 이후 우리나라 피아노 음악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대표적인 피아니스트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이경숙은 연주가뿐만 아니라 음악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은 물론 한국 음악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다. 1993년 우리나라 첫 국립 콘서바토리인 한국 예술 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국내외 유명교수 영입,국내 최초의 영재 입학제도 도입 등을 통하여 탁월한 행정력을 발휘하여, 음악원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주자 양성학교로 성장,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경숙은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 피아노의 대모‘로서‘ 주요 수상경력으로는 1985년 음악동아 선정 제1회1 올해의 음악가상, 1985년과 1988년 올해의 예술가상, 1987년 난파 음악상, 1988년 김수근 공연예술상, 199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5년 옥관 문화훈장(“세계를 빛낸 한국 음악인”), 1998년 한국음악상, 2000년 우경 문화예술상, 200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는 또한 독일 뮌헨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일본 소노다 콩쿠르,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서울 국제 음악콩쿠르,영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한국예술 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명예교수, ‘커티스와 친구들의 음악 대표,예술의 전당 이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력

1967 미국 커티스 음악원 졸업

1980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교수(1981)

1981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1993)

1993 한국예술 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원장 역임)(∼1998)(원장역임)(1998)

1997 일본 다카히로 소노다 세계 피아노 콩쿠르 신사위원

1997 독일 뮌헨 세계 음악콩쿠르 심사위원

1998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2009)

2005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학장 역임(∼2008)(2008)

2009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상훈】경향 이화 콩쿠르(1956), 제네바 국제 콩쿠르 입상(1967), 1회 올해의 음악가상(음악동아 제정. 1984), 난파음악상(1987), 올해의 예술가상(1988), 김수근 공연 예술상(1988), 한국평론가협회상한국 평론가협회상(1989),26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1994), 옥관문화훈장옥관 문화훈장(1995),한국음악상(1998), 우경문화예술상우경 문화예술상(2000),대한민국예술원상(2007)

연주활동

1970 1회 대한민국 음악제 초청 연주

1983 동경 교향악단과 협연

1987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 5곡 완주

1988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 32곡 완주(국내 최초)(국내최초)

1989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 19곡 완주(국내 최초)(국내최초)

1991 프로코피에프 피아노 소나타 전 9곡 완주(국내 최초)(국내최초)

1993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전 3곡 완주

2000 사무엘 바버 솔로 피아노 전곡 연주

2001 서울시 교향악단 제600회 정기연주회

2002 Alto Noras Cello Recital

2003 슈베르트 페스티벌(5회)(5)

2004 광주시립교향악단 제208회 정기연주회

2005 예술의 전당 신년음악회(지휘자 정명훈)

2006 Virtuoso Concert

2006 10월 이경숙 모차르트 소나타의 밤

2006 12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모차르트 전곡 연주회

2007 연세 챔버 플레이어스 창단연주회

2007 5월 이경숙의 My Life, My Music

2008 교향악축제-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2009 KBS FM 개국 30주년 기념 특별 콘서트(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의 밤)

2009 7월 한화와 함께하는 2009 예술의 전당 청소년 음악회

2009 11월 서울 바로크합주단 제126회 정기연주회

2009 11월 창원시립교향악단 제95회 정기연주회

2009 11월 나덕성 첼로 독주회

2010 2월 커티스와 음악친구들 <<아이티 돕기 자선음악회>

2010 2010 예술의 전당 여름 실내악

2010 9월 이경숙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

2010 10월 김남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2010 10월 서울 바로크 챔버홀 오프닝 콘서트

2010 11월 제7대 상임지휘자 취임 기념 음악회-청주 예술의 전당

2011 4월 수원시립교향악단 제208회 정기연주회

2011 6월 강남심포니 제49회 정기연주회

2011 8월 이화 경향 음악콩쿠르60주년 기념음악회

2011 8 24 Great Hands PEACE&PIANO FESTIVAL

2011 10월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 개관기념 페스티벌

2011 KT와 함께하는 <토요일 오후의 실내악>

저서<말러와 그의 가곡>(삶과 꿈. 2002)>(삶과꿈.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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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이경숙 / 음악춘추 201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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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남긴 파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음악 문헌이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성악 또는 여타 기악 장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행복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문헌의 다양성은 피아니스트가 생애를 통해 정복하려 해도 여전히 도전이 불가할 영역으로 우뚝 서 있다. 마치 알프스나 히말라야의 등정을 시도하는 것처럼 한계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흔히 피아노 연주를 오케스트라의 그것과 연계하여 말하곤 한다. 그처럼 많은 생각과 준비는 물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한 악기다. 마치 ‘구도자’처럼 자신의 개인적 삶을 바쳐야 하는 길에 비유된다.
  여류 피아니스트에게는 역할상 단지 음악가로서만이 아닌, 가정의 굴레에서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심적 정신적 부담이 가중된다. 즉, 가정과 사회(음악계)의 활동을 항상 병행해야 하는 운명적 길을 걸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 또 다른 선택적 삶의 길을 지향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이경숙과의 대담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오피스텔 문 좌측에는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어 누가 보더라도 이 집의 소유자가 예술가 또는 예술적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이란 인상을 갖게 하였다.
  피아니스트 이경숙을 지칭할 때, 필자는 한국 피아노계를 대표할 여류 피아니스트라고 간주함에 있어 전혀 손색없는 인물로 생각한다. 이경숙 교수의 음악적 성향, 특성과 지향을 고려할 때, 한국의 마르타 아르헤리치라고 칭해도 좋을 듯싶다.
대담을 진행하면서 이경숙 교수가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은퇴 전 과거의 삶(피아니스트 및 교수)이 자신의 발전과 사회적 역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현재 그의 삶은 그동안 실현하지 못했던 피아노 교육 영역에 대한 새로운 관심으로 나눔을 모색하고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가 배어난다. 아니 과거보다 더욱 예술가로서 달관한 경지에 다다른 면모가 물씬 풍겨 났다.

  최근 피아니스트인 딸 김규연과 함께 무대를 가진 이경숙 교수는 딸에 대해 말한다.


이경숙_ 저는 규연이를 대를 이을 피아니스트가 되도록 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어려서 규연이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피아노를 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어느 집을 방문했을 때 피아노가 없는 것을 이상하게 느끼곤 했다고 말하더군요. 집에서 매일 피아노 소리를 듣고 자라왔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규연이가 피아노를 전공하게 된 것은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규연이가 연습을 게을리하지도, 자유롭게 놀지도 못하고 항상 긴장감에서 사는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한편 안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박경우_저는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만(웃음).
이경숙_이제는 음악에 완전히 빠져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즐겁게 하는 것을 보면 행복해 보이기도 하고요. 어려서는 멋모르고 했지만, 이제는 음악의 깊이도 이해하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박경우_자식으로서가 아니라, 딸 규연에 대해 객관적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경숙-저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저희 세대와 지금 세대와는 환경적 측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음악적 성향의 차이도 크다고 봅니다. 요즘 젊은 학생들은 모든 것이 풍족한 문화 예술적 환경에서 자라 저희 때와는 사뭇 다릅니다. 예전에 저희가 공부할 때는 악보도 구하기 힘들고, 음반 한 장을 구해서 여기저기 돌려가며 들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세대는 한 곡을 듣기 위해 여러 연주자의 음반을 구해서 들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리고 유튜브에 들어가면 자기 또래들의 연주도 들을 수 있고, 렉처, 마스터 클래스, 국제 페스티벌 등 다양한 기회들을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저희 때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이었지요. 그래선지 규연이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경우 음폭이 넓고 음악도 깊이가 있고 수많은 레퍼토리를 접하고 들을 기회가 많아 이미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유가 생겨 자신의 개성도 크게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저희 때는 “테크닉이 좋으면 음악성이 없고, 음악성이 있으면 테크닉이 부족하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이해되지 않는 시기인 것 같습니다. 음악성과 테크닉 두 가지가 다 갖춰져야 제대로 피아니스트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고 규연이는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어 음악적 이해나 사고가 다각적이고 폭넓게 된 것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규연이의 단점은 성격이 너무 완벽주의자라서 제가 보기에는 그것이 단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완벽주의자는 우선 자신이 정신적으로 힘들고, 또한 자연스러우면서 폭넓고 시원스럽게 연주하는 성향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주활동을 지속하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쨌든 저희가 공부할 때 하고 시작부터가 다른 환경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박 경우_ 저 역시 이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공부하기에 여건이 충족하지 못했던 시기였었지요.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정서적으로 풍부한 예술성을 갖춰 나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이경숙_ 아버지께서는 건축이 전공이셨는데, 정치에 관심이 있으셔서 6·25 사변이 발발하던 해에 울산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셨다 낙선하셨습니다. 이후 서울의 이화 여전(이화여대의 전신)에서 공부하시던 어머니를 찾아 올라온 이후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인민군들이 당시 청운동에 살던 정치에 입문하려던 저희 아버지를 샅샅이 찾아내었고, 결국 쪽지에 몇 글자 남기고 끌려가시던 것이 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화 여전에서 성악을 공부하셨지만 젊은 연세에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고아가 됐지요.(웃음)

 

박경우_ 마음 아픈 과거시네요. 어머니께서 27년생이시면 지금도 충분히 생존하실 연세이신데 안타깝습니다. 이 교수님 어려서 빨간 피아노와의 사연이 돌아다니는 것 같던데요.(웃음)
이경숙_ 1·4 후퇴 때 배를 타고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 방을 얻어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빨간색이라고들 하는데 자주색으로 기억합니다. 6세 무렵이었는데, 당시는 스펠링을 몰랐지만 후에 기억을 더듬어 보니 스타인웨이 피아노였습니다. 외국인 선교사께서 소장했던 피아노를 어머니께 주고 갔습니다. 그들도 아마 서울에 왔다가 전쟁 와중에 부산으로 내려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당시 부산으로 피난 와서 피아노를 갖고 있던 집은 아마도 저희 집뿐이었을 겁니다. 큰 행운이었지만, 어머니께서 저를 가르치려 하셨던 것 같은데 몹시 싫어했습니다. 당시 바로 윗동 내에 피아니스트 신수정 교수가 살았는데, 그는 피난을 온 것이 아니고 충청도에서 부산으로 유학을 온 사례입니다. 이애내 선생님께 레슨 받기 위해 선생님 댁에서 기거하며 유학생활을 한 케이스입니다. 신 교수님이 저보다 조금 위고, 한동일 교수님은 그보다 조금 위였습니다. 또 한 사람 김덕주(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 누나) 씨가 피아노를 잘 쳤는데, 피난시절 부산에서 텐트 치고 개최된 제1회 이화·경향 콩쿠르에서 함께 참가해 수상했습니다.

 

박 경우_ 어머니께 어떤 음악적 영향을 받았으며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경숙_ 처음에 피아노를 시작한 것이 아니고 집에 피아노는 있었지만, 부산으로 피난 가기 전부터 어머니께서 집에 오시면 노래 부르시고, 코르위붕겐(발성연습을 위한 교칙본)으로 연습하시면, 저 역시 어머니 곁에서 듣고 따라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래선지 피아노를 알기 전에 악보를 먼저 접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슈베르트 연가곡 ‘겨울나그네’를 항상 틀어 놓으셔서 오히려 저는 동요보다 더 친밀감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내용은 독일어라 몰랐지만, 멜로디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음악적이고 환경적인 영향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박 경우_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가지셨습니까?
이경숙_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어머니께서 미국 유학을 가셨습니다. 피아노를 두고 가셔서 피아노를 쳤지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목적을 갖고 피아노를 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게 연습을 강요하지 않았고, 학교를 다녀와서 또는 놀다 와서 피아노에 마주 않곤 하였습니다.

 

박 경우_ 지난 수십 년간 피아노와 더불어 함께 하셨는데 피아노에 대해 정의하신다면?
이경숙_ 피아노는 제 신체의 한 부분 같이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친구이자 동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 경우_ 저 역시 변하지 않는 친구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항상 그 자리에서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내가 다가설 때까지 기다려 주는 불변의 친구지요. 한국 음악계의 현실을 어떻게 느끼시고, 미래를 내다보았을 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경숙_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 데, 일단 한국 음악계가 전반적으로 현격한 발전을 도모하였습니다. 외국에 비해 수준 역시 뒤떨어지지 않고 모든 장르가 뛰어난 상태입니다. 개인적인 기악 등 전공에는 뛰어나나, 뒤처진 부분이 제 생각에는 창작분야여서 여기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듯싶습니다. 그리고 연주자들이 창작곡을 자주 연주를 해 줘야 합니다. 진은숙 등 좋은 작곡가가 많지만 앞으로 더 역량 있는 신인들이 배출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작과 연주가 균형적으로 안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교향악단 단원들의 생활이 안정된 상태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재정적 뒷받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각 지자체마다 거의 교향악단이 있습니다만, 환경적 측면에서 제대로인 교향악단은 불과 몇 단체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박 경우_ 피아노 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경숙_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것 이외에 철저한 이론적 배경을 갖출 학습을 병행해야 합니다. 음악 선진국에서는 우리와는 다르게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즉 음계, 리듬, 화성 등의 개념을 어렸을 적부터 접목시켜 학습하게 합니다. 그리고 소리 찾기 등 다양한 학습방법을 도입하여서 흥미를 제고해야 합니다. 대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오직 피아노 실기에만 관심을 갖고 이론을 소홀히 취급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학에 입학한 후 이론을 접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피아노 교육은 모두를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도록 지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론적 바탕이 확립되어야 비로소 훌륭한 교육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피아노 연주에서도 빨리 치고 크게 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연주는 장거리 여행이며 평생을 함께 해 나가는 것입니다. 너무 빨리 성공하려다 보니 기초 정립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길게 가려면 밑에서부터 차근히 배우고 다져야 합니다.

 

박 경우_ 음악활동을 펼치시며 삶과 음악, 삶과 피아노의 관계에 대해 느끼시는 점은?
이경숙_ 피아노 공부를 할수록 삶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가는 것 같습니다. 깊이 연구하고 들어가면 갈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력도 깊어 가는 것 같고, 제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성찰하고, 많이 참고 견디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인내심을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창의력 상상력 등은 우리 생애에서 절대 필요한 요건인데, 이를 자각하면 인간이 좀 더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요즘 눈이 불편해서 연습을 못하니까 인간적으로 퇴보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가 성장하는 느낌이 들고, 어려운 것을 하면서 어려운 사람들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학습의 모든 것이 삶에 반영되는 것 같은 생각입니다. 이로써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고 마음을 깊이 읽을 수 있습니다.

 

박 경우_ 지금까지 살아오며 자신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경숙_ 늙어 가는 변화요(웃음). 어렸을 때는 뭣도 모르고 피아노를 시작했고, 어느 단계에 들어선 후에는 이것이 나 전공분야구나 하며 오도가도 못 했습니다. 이후 연세대에 적을 두고 연주활동을 하며 학생과 대중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와 부담이 있었습니다.
나의 발전이 있어야 청중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학생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나를 위해 스트레스를 안고 공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은퇴하면서 내 자신을 입증 또는 인정받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안타까운 것은, 정년퇴직하는 순간부터 내가 이제는 훌륭한 선생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지금까지 공부하고 연주하고 경험하면서 겪었던 것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배우고 노하우를 터득해서 이제는 학생들을 보면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울 챔버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고문으로 활동을 하며 젊은 피아니스트를 위한 바로크 아카데미(Baroque Academy For Young Pianist) 클래스를 부탁받고 9월부터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클래스를 개설해서 재능 있는 아이들, 비록 영재가 아니더라도 공부하겠다는 아이들,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학생들을 비즈니스적인 차원이 아닌 자선 나눔을 실현하는 베푸는 클래스입니다.

 

이경숙과 그의 클래스는 10년 넘게 회비를 모아 고아들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도와줘 왔다. 그의 ‘인생 3장’은 나눔을 본격 실현하려는 숭고한 삶이 본격 전개될 것이란 확신으로 떠나 왔다.

 

대담. 글 - 박경우 / 사진 - 김문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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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모녀 멘토 이경숙·멘티 김규연

'성실한 음악가의 모습 자체가 가르침”
“아이들에게 음악가의 길을 강요한 적은 없어요. 우리나라 엄마들은 자녀의 미래를 설계도대로 진행시키려는 경향이 강하죠. 엄마의 역할은 강요가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한국 피아니스트의 ‘대모’로 불리는 이경숙(61) 연세대 음대 학장은 두 딸 엘리사 리 콜조넨(33)과 김규연(20)을 각각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니스트로 키워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 딸 규연 씨는 베를린 국립 음대에 재학 중으로 지난해 12월 17일 이 씨의 환갑을 기념하는 ‘패밀리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귀국했다.

이경숙 씨는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음악을 접하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선택했다. 67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에 입상함으로써 국제대회에 대한 문턱을 낮추는 데 공헌했다. 또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전곡 완주 등을 연이어 성공하는 등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으로 후배 음악가들의 귀감이 돼 왔다.

집안에 항상 피아노 소리가 가득했던 탓에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김규연 씨는 예원학교 졸업 후 고교 과정을 건너뛰고 한국예술 종합학교에 영재로 입학했으며 2004년 4월부터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수학 중이다. 2001년 지나 박하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2002년 제네바 국제 음악 콩쿠르 최연소(16세) 특별상 수상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차세대 기대주이다.

이경숙 씨는 “예술이란 평생 자신의 만족을 위해 싸우는 고독한 길이라 아이들은 다른 길로 가길 바랐다”면서 “지금이라도 원하는 일이 있으면 찾아가라”라고 얘기한다. 그가 이런 교육관을 갖게 된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한때는 문학소녀를 꿈꿨었다”는 그는 실제로 이를 시도했다가 자신의 능력 밖의 일임을 깨닫고 음악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어머니는 그런 방황을 묵묵히 지켜보셨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딴 걸 해보고 싶다고 하면 오히려 부추겨요. 예술가란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자신의 철학을 가져야만 계속할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이런 어머니 덕분에 김규연 씨는 틈틈이 평소 관심사인 조선왕조에 대한 역사공부도 하고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엄마가 한시도 쉬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그는 항상 바쁘게 움직이던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가장 큰 가르침이 됐다고 얘기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피아노를 치겠다는 이경숙 씨는 딸이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란다. 성실함과 음악에 대한 열정만이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엄마가 가장 중요한 삶의 역할 모델”이라는 김규연 씨는 “엄마처럼 연주 활동과 가정, 후학 양성 모두에 충실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라고 다짐했다.


출처 : 여성신문(http://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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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brunch.co.kr)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최인아책방 콘서트_피아니스트 이경숙 '내 인생의 음악과 책' | 음악이라는 타임머신음악은 향수와 같다. 지나가는 사람이 남긴 향기 속에서 같은 향수를 쓰던 사람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음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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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2015.11월) '토크 앤 콘서트' 출연
신 교수, 50여 년 음악인생 들려줘
1세대 연주가 산증인 국제시장 격
존경하는 '후배들' 게스트로 한 무대
후배들 "언니 오지랖 이제 그만"
사랑하는 모차르트·슈베르트 엄선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66)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이 “언니 오지랖은 이제 그만”이라고 말하자, 피아니스트 이경숙(71) 연세대 명예교수도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다”라고 거들었다.

우리나라 여류 피아니스트 1세대인 신수정(73)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는 후배들 말마따나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7년 전 서울대 퇴임 후 국내 클래식계 대소사를 줄곧 맡아온 데다, 최근엔 제자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각종 음악회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서다. 이런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 연주회 무대에 선 신 교수는 “원래 이렇게 바쁜 사람이 아닌데 잔심부름이 많아 괜히 바빠 보이는 것”이라면서 “나보다 곱절은 바쁜 후배들이 무대에 함께 서줘 너무 고맙다”라고 웃었다.

신수정·김남윤·이경숙 한국 클래식계 대모(代母) 3인방이 한 무대에 섰다. 지난달 28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 ‘토크 앤 콘서트’ 현장에서다. 이 세 사람이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 신 교수의 50년 음악인생을 들려주는 이번 연주회에서 김 원장, 이 교수는 게스트로 출연해 함께 보고 겪은 한국 음악사 이야기는 물론 신 교수와 번갈아 협연을 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먼저 김 원장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타나를 협연한 신 교수는 후배 김남윤 원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임지영을 비롯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훌륭한 선생이자 후배”라고 소개하며 “악기를 선뜻 내줄 정도로 제자를 아끼는데 거침이 없는 연주가다. 어린 김남윤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작년 정년 음악회를 열 때는 눈물이 절로 났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 원장은 “무서운 선배다. 잘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 뒤 “선배가 있다는 위안 감은 말로 할 수 없다. 라이벌 의식 그런 거 없다. 특히 바이올린이란 악기는 피아노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선배의 건강도 걱정했다. 김 원장은 “언니가 일이 너무 많다. 클래식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나도 대한민국에서 바쁘다면 바쁜 사람인데 언니를 보면 정신이 없다. 안쓰럽고 걱정된다”며 “이제 당신 몸도 챙겼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도 “남윤이도 얘기했지만 어려운 일만 있으면 수정 선배에게 연락을 한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그만큼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명심하겠다는 신 교수는 “경숙이는 배움을 끊임없이 실천하는 스승이자 연주가”라며 “모차르트 전곡, 브람스 전곡, 베토벤 전곡 등 쉼 없이 도전하는 친구다. 존경한다”라고 칭찬했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피아니스트 신 교수는 1969년 당시 26세 젊은 나이에 최연소로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면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이후 5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같은 우수한 제자들을 키워낸 우리나라 음악계 산증인으로 통한다.

신 교수는 모든 공을 선배들에게 돌렸다. 신 교수는 “한국 클래식 음악이 이런 수준에 오른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이애내, 신재덕, 정진욱 선생 같은 분들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며 “우리 선배들이 차근차근 쌓아온 결과물이다. 선배들에게 감사한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 피날레 무대에서 신 교수는 슈베르트의 ‘바닷가에서’ ‘보리수’ ‘음악에’ 3곡을 바리톤 박흥우 리더 라이히 대표의 음성과 함께 선보였다. “첫 곡은 선배들에게, 두 번째 곡은 여기 온 관객과 함께, 마지막 곡은 후배들에게 돌린다. 음악적 동료이자 절친으로 함께 한 많은 음악인과 계속 피아노 길을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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