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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가볼만한곳/3대악성 난계 박연의 사당 난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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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행/충청도

2020. 11. 25.

영동 가볼만한 곳

난계 박연의 영정을 모신 난계사

 

 

 

 

 

요즈음 기온이 많이 내려가서 몹시 추우며

독감을 비롯해서 코로나 19 관련 개인위생 등

철저한 관리로 이 난국을 이 겨자고요

 

지난 10월 하순경 단풍잎에 절정을 달했을 떼

보다 안전하고 빠르면서 추억의 기차여행으로

충북 영동에 당일로 다녀오면서 여러 곳의 명소와

영동 향토음식을 비롯한 언택트 여행을 하면서

영동 하면 난계 박연 선생의 고향이기에 당연히

박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난계사를 다녀온

후기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으시는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사당인 난계사()의 모습이며

영동군에서는 해마다 난계예술제를 열어

박연 선생의 업적을 기립니다.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세워졌고

충북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난계사(蘭溪祠)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516-1

043-740-3221

 

난계사는 총면적 약 5,500평에 홍살문을 지나

 박연 효자비, 난계 박연 선생의 동상, 외삼문,

난계사가 자리 잡았다.

 

 

 

 

 

 

홍살문을 지나기 전 아름다운 색상의

단풍잎이 윤중이 가는 길을 멈추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셔터를 누르게 된다.

 

 

 

 

 

 

난계사()

이 건물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분인 박연(1378~1458)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3년에 세운 것이다.

선생의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溪)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영동군 심천에서 태어났다.

 

태종 11년(14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세종 즉위년(1418)에 관습도감 제조가 되어

음악에 전념하고 동 7년(1425)에 악학별좌가 되어

당시의 불완전한 악기의 율조를 정리하여 악서를

편찬하였다. 그 후 편경을 만들고 궁정에서 향악을

폐하고 아악을 연주케 하는 등 궁정음악을 전반적

으로 개혁하였다. 동 15년(1438)에는 회례아악을

만든 공으로 안마(鞍馬)를 하사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특히 피리에 능했으며 조선 초기에 국악의 기반을

닦아놓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어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다.

 

 

 

 

 

 

난계() 박연(:1378~1458) 선생

조선 초기의 문신인 난계 박연 선생은 천재적인

음악가이자 음악 이론가로 음악계의 대두이며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선생은 고려 우왕 4년에 삼사좌윤(三司左尹)

박천석(朴天錫) 공의 아들로 충북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초명은 연(然), 자(字)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溪), 시호(諡號)는 문헌공(文獻公)이며

밀양 박씨 복야공파(僕射公派) 중에 우뚝 선 인물이다.

 

난계는 영동향교에서 수학한 후 34세인 태종

11년(14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예문관 대제학을 역임했고

관습도감 제조로 있는 동안 작곡과 연주뿐만 아니라

 악기의 조율, 궁정음악의 정립 및 혁신 등 음악에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음악은 하늘의 소리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취하고 음양의 도리를 쫒아

 발휘하는 자연의 소리기에 음악에는 거짓이 없고

 오직 성(誠)과 경(敬)으로 인간을 감동시킨다.

음악을 바르게 하고 예를 흥기 하는 것은

정서순화의 지름길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대왕(新羅 始祖 朴赫居世 大王)

나라 세움의 으뜸 생각(建國理念)

밝게 세상을 다스림(光明理世)

 

박 씨 성손(朴氏姓孫)

종중 세 가지 도리(宗綱三是)

조상을 잘 받들자(宗祖)

종친을 사랑하자(愛宗)

인재를 잘 기르자(育英)

 

 

 

 

 

 

박연 효자비

이 효자비는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명인 박연(奭,1378~1458)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비석으로, 명문(銘文)에 의하면 건문(建文) 4년인
1402년(조선 태종 2년)에 하사된 것이다. 비석 상부에 가첨석이 없이
화봉형(花峯形)으로 장식된 특이한 형태이다. 제작시기가 명확하고
박연과 관련된 희귀한 유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고당리
세덕사 경내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것이며, 비문에
박연의 초명인 연(然)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박연이 관직에 오르기
전 유물로 보인다.

 

 

 

 

 

 

영동 난계사

이 건물은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인 박연

(朴堧:1378~1458)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73년에 세운 것이다.
선생의 자는 탄부(坦夫), 호는 난계이며 본관은
 밀양으로 영동군 심천에서 태어났다.

 

태종 11년(14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세종 즉위년(1418)에 관습도감 제조가

되어 음악에 전념하고, 동 7년(1425)에 악학
별좌가 되어 당시의 불완전한 악기의 율조를

정리하여 악서를 편찬하였다.


그 후 편경을 만들고, 궁정에서 향악을 폐하고
 아악을 연주케 하는 등 궁정음악을 전반적으로

개혁하였다. 동 15년(1433)에는 회례아악을 만든
공으로 안마를 하사 받기도 하였다. 그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특히 피리에 능했으며, 조선 초기에 국악의
 기반을 닦아놓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어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더불어
 3대 악성으로 추앙되고 있다.

시호는 문헌이다.

 

 

 

 

 

 

외삼 문의 난계사 현판

 

 

 

 

 

 

 

 

 

입구의 석조 계단을 올라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나란히

 놓인 3개의 석조계단 위에 ‘(난계사)’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익공집으로 지붕의 좌우 측면에는 부채모양의

풍판(:비바람을 막기 위해 박공에 이어 대는

나무판)을 갖추고 있다.

(naver 지식백과)

 

 

 

 

 

난계사(祠) 현판이 걸려있다.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으시는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영정입니다

 

고향인 영동군에서는 해마다 난계예술제를

 열어 그의 업적을 기립니다.

 

 

 

 

 

 

 

 

 

윤중 박희명이 방문한 날은 늦은 가을 10월 24일에

난계사의 아름다운 색깔의 단풍을 담은 것입니다.

 

 

 

 

 

 

인근에는 아름다운 우리 소리로 우리 음악의

멋과 향기 그리고 몸과 마음에 여유를 가득

채워줄 국악체험촌을 비롯해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인 천고와 국악박물관,

현악기공방, 타악기공방 등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