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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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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역사

2006. 2. 17.

태권도 역사에 대한 문제는 최근에 태권도학계의 뜨거운 관심거리였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른바 “가라데 유입론”이라 불리는 부정적 입장이 자리잡고 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근본적으로 역사학에 대한 기본 이해의 부족과 최소한의 학자적 연구의 결핍에서 오는 이 망상이, 태권도학의 발전에 필요한 많은 학문적 노력을 잡아먹고 있었다는 것은 태권도계의 큰 불행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이러한 불필요한 망상을 해소해 보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책까지 저술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역사적인 오해는 금방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다시 가라데 유입론의 문제를 분명하고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가라데 유입론의 시작과 끝은 해방 직후 태권도 관장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하면서 가라데를 배운 사범들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문제는 이 단순한 사실에 의해서 태권도 역사에 중요하게 관련되는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무시되고 일도양단으로 가라데의 파생무술로서의 태권도 역사가 주장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태권도가 가라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한국의 전통무예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필자의 주장을 간단히 개략하자면, 복잡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그래서 복잡한 만큼 세세하게 구분해서 고찰하고 종합해서 결론짓자는 것이다. 그리고 결론을 미리 말해보자면, 태권도가 태껸의 기술체계를 태껸의 존립양식대로 전승받았고 이것이 핵심이며 태권도의 기술 이외의 교육체계나 기타 주변적인 요소들에 있어서 가라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이다.

 

복잡한 것은 일단, 있는 그대로 복잡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복잡한가? 일제 35년의 억압을 받으면서 많은 민족문화가 유실되는 가운데에서도 태껸은 민속문화의 형태로 많은 부분 온전하게 전승되었다는 사실부터가 복잡하다. 뿐만 아니라 해방 직후 5대 문파의 태권도 관장들이 일부는 가라데를 배워왔고 일부는 중국 무술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복잡한 상황이다. 해방 전후의 지구촌 전체에서 일본이 먼저 무술을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그리고 체계화된 교육과목으로 발전시켰으며 무술에 대한 이런 관점과 방법론이 거의 모든 무술들로 확산되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해방 직후의 태권도 도장에서부터도 사실은 사범들과 수련생들이 모두 발차기 위주의 수련을 했다는 것, 태권도 품새가 가라데 형과 대동소이한 형태로 변모했다는 것, 동시에 품새는 태권도의 중심에서 멀어졌다는 것, 태권도라는 말이 어느 정도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제정되었고, 태권도의 교육체계의 단급제도와 같은 것이 가라데 및 유도와 유사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태권도는 발차기 위주의 겨루기 기술에서 그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 이 모두가 다 실타래처럼 얽혀있어서 복잡하다. 이제 어떤 사람이 이 모든 복잡한 것을 무시하고 단 하나의 잘못된 사실, 즉 해방 직후의 태권도 관장들이 일본에서 가라데를 배운 유학생들이었다는 사실로 재단해서 가라데 유입설을 주장할 것인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원래 이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사실을 복잡한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서 역사적 해석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고도로 분석적이면서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필요로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사실에 대해서 올바르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또한 그래서 사람들은 무협지적 무술사관을 뿌리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제대로 학문적 소양을 쌓은 사람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고 그들의 결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그건 마치, 태권도 경기를 얼핏 보면 발로 상대를 차기만 하면 되는 듯 간단해 보이지만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은 사실 고도의 기술습득과 체계적인 수련을 필요로 하므로 전문가에게 선수지도를 맡기는 것과 같다. 품새 몇 번 연습하고 태권도 1-2단 땄다고 누구나 국가대표 감독이 될 수 없듯이 체육학 책 몇 권 읽었다고 제대로 역사에 대해서 논증할 수 있다는 보증이 없다.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논증하려면 인문학에 대한 훈련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 필자가 태권도 역사에 대해 아무나 논의할 수 없도록 울타리를 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잡한 현상에 대해서 복잡한 것을 인정해야 하듯이 어려운 일에 대해서 어렵다고 인정해야만 한다. 대신에 어려운 내용에 대해서도 훌륭한 결론이 얻어지면, 그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내용이 비판에 개방되어야 한다. 이제 필자가 부족하지만 그것을 나름대로 시도해 보았다. 그 내용을 여기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태권도의 역사를 따지자면 ‘태권도’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먼저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정확히 바로 ‘그것’의 역사를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른 많은 태권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격투기법 체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태권도는 그것이 품새라는 형식에 있는 것도 아니고 ‘태권도’라는 말에 있는 것도 아니며 단급 제도나 도복에 있는 것도 아니다. 태권도는 1차적으로 격투기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격투기법이 다른 어떤 격투기법과 유사하며 그 유사성이 어떻게 얻어졌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이에 관해서, 태껸이 가장 유사한 격투기법체계를 가진 무술이라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 남는 문제는 두 무예의 전승과정에 대한 정당화이다.

 

이에 대해서 가라데 유입론자들은 두 가지 모순된 주장을 한다. 하나는 태권도 사범들이 가라데를 배운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동시에 태껸은 민속무술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왜 이것이 모순의 출발점인가? 가라데를 배운 사람에게서 오늘날의 태권도인들의 계보가 다 이어지니 태권도는 가라데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은 태권도가 인적 계보에 의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태껸이 민속무술이라는 것, 동시에 송덕기 옹 이전의 태껸 계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면서도 태껸이 최소한 조선 시대부터 전승된 무예임을 인정하는 것은 뚜렷한 사제 간의 계보가 없이도 한국의 전통무예(태껸)가 전승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인가? 태권도가 태껸에서 전승된 무예라고 말하기 위해서 태껸이 전승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태권도인들에게 태껸이 전승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하고, 또 사실은 이것이 가장 정당하다. 태껸이 뚜렷한 인적 계보 없이도, 민속문화의 형태로 이웃집 형이나 삼촌의 움직임을 흉내내거나 조금씩 지도받으면서 전승될 수 있다면 그렇게 태껸이 태권도에 유입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가라데의 체계적인 교육은 더 강력하게 태권도에 유입되었지 않을까 하고 우리는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의 태권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태권도에 유입된 가라데의 흔적이라는 것은, 태권도 수련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품새와 단급제도와 같은 것들뿐이다. 만약 해방 직후의 태권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때부터도 발차기 위주였으며 그 정도는 가라데와 이미 차별화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의 태권도는 가라데와 더 많이 유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뿐만 아니라 중국무술과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비슷했다. 문제는 우리가 오늘날 정체성이 확고해진 무예인 태권도의 역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태권도는 태껸이 전승되던 방식으로 태껸의 기술을 전승했고 그것은 오늘날 가라데 유입론자들까지도 굳이 설명하려고 하는 태껸과 태권도의 놀라운 유사성에서 가장 잘 입증된다. 물론 가라데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것은 품새와 단급제도와 같은 주변적인 특징 및 근대화된 무술의 교육체계에 관련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용은 논쟁을 통해서 더 치열하게 따지고 들어갈수록 확고해지는 것이지만, 오랜 기간 동안 가라데 유입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되어 온 것에 대해서 필자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언급은 이 글이 궁극적으로는 태권도 발전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기에 외도로 취급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가라데 유입론을 중심으로 한 태권도 역사논쟁의 성격이 학술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태권도 역사에 대한 가라데 유입론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는데, 그 확장은 질적인 확장 없이 양적으로만 확장되어 왔다. 이에 근거해서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하나는 태권도에 대한 폄하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구자의 능력에 대한 회의이다. 첫 번째 추측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태권도 역사에 대한 폄하가 태권도와 경쟁하는 다른 무술단체들에 의해서 상당부분 제시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그런 사람들이 매우 황당한 역사적 허위를 주장하는 다양한 소위 사이비 ‘전통 무예’의 역사에 대해서는 비판이 없거나 혹은 오히려 긍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추측의 증거는, 태권도 역사에 대한 연구는 한중일 삼국의 정치문화사에 대한 연구로 확대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당연한 수순이 무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 하나의 사실에 매달려왔다. 그것은 태권도 초대 관장들 일부의 가라데 수련 경력이다. 거기다 “태권도”라는 명칭 제정의 경위는 감초처럼 따라다니는 장식품이다. 때로는 초대 관장들 일부는 중국무술을 수련했다든지, 혹은 태껸이 민속무예로 전승되었다든지 하는 사실들을 숨기지 못하고 언급할 때조차도 자신들의 논의에 합리적으로 통합되지 못했다. 왜 그러한가? 의도적이지 않았다면 그것은 사고능력의 부족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언급은 인신공격이나 지나친 폄하가 아니다. 이것은 사실 태권도인 모두가 억지로 눈감고 있는 태권도의 현주소에 대한 자책이다. 태권도 발전을 위해서 논의한다면 이러한 적나라한 현실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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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태권도학:회고와 전망"(상아기획, 2004)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