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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역논증의 도구들: 벤다그림(벤다이어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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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비판적 사고

2011. 6. 27.

5) 연역논증의 도구들: 벤다그림(벤다이어그램)

 

이 문서에 붙여넣기를 했더니 표과 그림이 깨어졌습니다.

표와 그림이 완전한 문서는 다음을 참조 하세요.

http://pakebi.com/writing/critic/a05-vandiagra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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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논증의 도구들을 설명함에 있어서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설명한다. 가장 발달된 것을 먼저 알고 조금씩 덜 발달된 것을 아는 것이 여러 모로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쉬워진다는 것, 그리고 처음 배운 것이 복습이 되고, 그것으로 모두 해결된다는 것 등이 그런 이점이다. 처음에 어렵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 이전 단계의 연역논증의 도구는 “벤다이어그램”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것 역시 수학책에서 본 적이 있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벤다이어그램”이라는 말을 줄여서 “벤다그림”이라고 부른다. 일종의 그림이니까. 이 벤다그림은 그림으로 간단히 표시하여 1차 술어논리의 판단을 분명하고도 손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에 복잡한 판단을 종합적으로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 현대 기호논리학보다 못한 점도 있다.

벤다그림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논법의 타당성을 그림으로 이해하고 증명하기 위한 생각의 도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벤다그림은 1차 술어논리를 간단하게 대신할 수 있다. 그렇지만 1차 술어논리나 명제논리만큼 활용폭이 넓지는 못하다. 명제논리의 유용성을 일부분 포기하는 대신에 간단한 1차 술어논리의 판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도구이므로, 명제논리와 1차 술어논리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다.

벤다그림을 논리적 사고에 활용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판단을 벤다그림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일단 목표는 (1)“모든 ○이 □이다”, (2)“모든 ○이 □이 아니다”, (3)“어떤 ○이 □이다”, 그리고 (4)“어떤 ○이 □이 아니다”라는 판단내용을 벤다그림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벤다그림은 주어 개념을 표시하는 원과 술어 개념을 표시하는 원이 일부 겹쳐지는 방식으로 그리게 된다. 벤다그림의 바탕은, ‘어떤 것’들을 모두 점으로 표시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어떤 속성을 가진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선으로 갈라놓는다. 주로 동그라미를 사용한다. 물론 네모나 세모를 사용해도 된다. 요점은 폐곡선으로 표시하면 된다는 것이다. 먼저 (1)“모든 ○이 □이다”의 예인,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를 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 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이렇다. 어떤 것은 장미이고 가시가 없으며(1), 어떤 것은 장미이면서 가시가 있고(2), 어떤 것은 장미가 아니면서 가시가 있고(3), 어떤 것들은 장미도 아니고 가시도 없다. 동그라미들은 이런 것들을 선으로 갈라 놓았음을 나타낼 뿐이다. 따라서 이 그림만으로는 아직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더 해야 하는가? 주로 다음과 같이 한다.

 

 

 

 

이 그림에서 빗금을 칠한 <1>의 영역은, 거기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검은 색으로 채워졌으므로 거기에 빈 자리가 없다. <1>의 검은 부분을, <3>을 둘러싸는 동그라미 선이 부푼 것 정도로 이해하면 느낌이 올 것이다. 따라서 <1>에는 아무 점도 없는 것이다. 이 때 점은 ‘어떤 것’을 의미하므로, 위의 그림은 다음을 의미하게 된다. “장미이면서 가시가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잘 되새겨 보면 이것은 곧 “모든 장미에는 가시가 있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자에는 날개가 없다”라는 판단을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다음과 같다.

벤다그림으로 표현되는 내용은 모두 1차 술어논리로 표현된다. 때로는 논리학자들조차도 벤다그림을 가지고 1차 술어논리의 기호를 쓰기도 한다. 어떻게? 벤다그림에서 동그라미로 그려진 것은 모두 F와 같은 술어문자를 가리킨다. 한편 동그라미 안쪽이나 바깥 쪽에 있는 점들은 a, b, c와 같은 대상을 나타낸다. 위의 벤다그림은 다음의 1차 술어논리의 식이 된다.

[여기서, R은 ‘장미’를, T는 ‘가시’를 가리킨다.]

이 문장이 뜻하는 바를 ‘말 그대로’ 읽으면 이렇다. “모든 것에 대하여() 그것이 장미()이면(→) 그것은 가시를 가지고 있다().”

두 번째는 “모든 ○이 □이 아니다”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한 예로, “모든 사자는 날개가 없다”의 벤다그림은 다음과 같다.

 

 

 

 

이 벤다그림이 의미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이렇다. “사자 중에는 날개 있는 것이 없고, 날개있는 것 중에는 사자가 없다.” 이 그림 역시, <2>의 검은 부분을, 선이 두껍게 부푼 정도로 이해하면 느낌이 올 것이다. 결국 “모든 사자에는 날개가 없다”라는 뜻이 된다. 그럼, 사자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원래 우리가 “모든 사자에는 날개가 없다”고 말할 때 사자가 아닌 다른 것에는 어떤 말을 하지도 않는 것이니 말이다.

지금까지의 두 벤다그림으로 설명된 것은, “모든 ○이 □이다” 혹은 “모든 ○이 □이 아니다”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3)“어떤 ○이 □이다”와 (4)“어떤 ○이 □이 아니다”는 어떻게 벤다그림으로 표시할 수 있을까?

먼저 “어떤 ○이 □이다”의 한 예인, “어떤 사자는 날개가 있다”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모든 사자는 날개가 없다”의 부정이다. 이 말이 틀렸을 경우 ‘어떤 사자는 날개가 있다.’ 그렇다면 위의 그림에서 <2>에 최소한 점 하나가 있으면 된다. 그래서 “어떤 사자는 날개가 있다”는 다음과 같은 그림으로 표시된다.

 

 


이 그림의 의미를 직접 말로 표현하면 이렇다. “사자이면서 날개가 있는 것이 하나 이상 있다.” 여기서 <2>는 사자이면서 날개가 있는 것들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면 “어떤 사자는 날개가 있는 것”이 된다. 한편 이 그림은 바로 위의 벤다그림의 부정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바로 위의 벤다그림을 부정하는 것, 그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하는 <2>의 영역에 무언가 하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 □이 아니다”의 한 예인, “어떤 장미는 가시가 없다”는 어떻게 벤다그림으로 표시될까? 이것 역시 “모든 장미는 가시가 있다”의 부정을 표시하면 된다. 이것은 “가시가 없는 장미가 최소한 하나는 있다”를 의미하므로 다음과 같이 벤다그림으로 표시된다.

 

벤다그림으로 판단을 표시하는 방법을 이해했다. 이제는 이것을 추론에 활용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예를 들면 3단 논법같은 것 말이다. 먼저 소크라테스의 죽음 3단논법은 벤다그림으로 단순하게 증명된다. 그건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이 과정에서 ‘아마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를 벤다그림으로 그리는 것일 테다. 왜 죽는 것의 동그라미 안에 사람의 동그라미가 들어가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사람이면 어느 것이든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벤다그림에서 사람에 속하는 모든 것(점)은 죽는 것에도 속해야 한다. 한편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죽는 것은 뭐든지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죽는 것에 포함되는 것(점)은 사람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동그라미가 죽는 것의 동그라미 안에 들어간다.

일단 “모든 사람은 죽는다”가 그려지면 그 다음 과정은 이해하기 쉽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는 소크라테스를 나타내는 어떤 점이 사람의 동그라미에 포함됨을 의미한다. 이제 결론은 이 점이 죽는 것의 동그라미 안에도 포함되는지를 보면 된다. 역시 죽는 것의 동그라미 안에 들어있으면 결론은 증명된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방식으로 벤다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벤다그림은 이보다 더 복잡한 논증도 검사할 수 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예는 다음과 같다.

 


모든 예술가는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떤 예술가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떤 가난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논증은 다음과 같이 벤다그림으로 나타낸다. 먼저 다음과 같이 3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왜 3개냐 하면, 이 논증에서 나타나는 집합 개념들이 ‘예술가’, ‘노력하는 사람’, ‘가난한 사람’의 3 가지이기 때문이다. 한편 위의, 소크라테스 죽음의 3단 논법에서 소크라테스는 집합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것은 별로 나타낸다. 하나의 어떤 것이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을 가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동그라미로 구성된 벤다그림 안에서 예술가에 대한 위의 논증은 다 표현될 수 있다.

 

 


이제 첫 번째, “모든 예술가는 노력하는 사람이다”를 그림에 표현해 보자. 그것은 다음과 같이 된다. 여기서는 ‘가난한 사람’을 나타내는 동그라미는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어떤 예술가는 가난한 사람이다”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노력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동그라미를 무시하고 그리면 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다음의 두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1) 

(2)

그런데 (1)과 같은 그림은 그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림에서 검게 빗금친 부분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별표를 그린다는 것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빗금친 부분, 즉 ‘아무 것도 없는’ 부분에는 별을 그릴(어떤 것이 있다고 표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위에서는 (2)만 성립한다.

(2)가 반드시 성립한다면 결론, “그러므로 어떤 가난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이다”는 반드시 참이게 된다. 전제들이 참일 경우에 결론이 참이 아닐 수 없는 것,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곧 이 논증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벤다그림을 사용해서 논증을 검토하는 것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겠다.

첫째, 이런 논증은 벤다그림이 아닌, 더 강력한 무기인 ‘1차 술어논리’로 모두 해결된다. 다음과 같다.

 

모든 예술가는 노력하는 사람이다.

어떤 예술가는 가난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어떤 가난한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대충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 내용에 관심이 없다면 건너 뛰어도 좋다.

에서, 그 어떤 것이 a라고 하면 다음이 따라나온다. ,

는 보편예화 규칙에 의해 도 따라나온다. 이것은, 모든 것에 대해서 말하므로 a에 대해서도 말한다는 의미이다.

 

(1) 보편예화

 

∀x(…x…) 

 

그러므로

 

…a…

 

이제 와 이 각각 나왔으므로 이 둘을 결합하여 다음을 형성할 수 있다.

. 연언지 결합법이다.

 

(7) 연언지 결합법

 

P, Q.

 

그러므로

 

P∧Q.

 

여기에서 의 후건에 다 명제논리의 추론규칙 중 실질함축 규칙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실질함축규칙

 

(P→Q)

 

 

(~P∨Q)

 

다시 여기에 배분규칙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전건을 그대로 두고 후건을 분리해서 적용했다.)

 

 

배분규칙

 

(P∨(Q∧R))

 

 

((P∨Q)∧(P∨R))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전건 에 가 들어있다. 이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전건 전체는 없어진다. 모순은 거짓말이므로 무의미하니까.4) 그래서 후건 만 남는다. 여기에서 만 빼면 가 도출된다.5)

끝으로 존재일반화 규칙에 의해서 에서 가 도출된다.

 

(2) 존재일반화

 

…a…

 

그러므로

 

∃x(…x…)

 

이런 설명이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어렵고 귀찮기만 하겠지만, 혹시 또 아는가? 여러분 중의 누군가가 어느 순간 논리학의 매력에 빠져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생길지 말이다. 어쨌든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앞에서 내가 공언한 바대로, 1차 술어논리를 배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배우기는 좀 어렵지만 말이다. ‘좀’이 아니라 ‘많이’ 어려운가?^^

둘째, 이 벤다그림을 통한 검토는 3개 이상의 복잡한 논증에는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1)예술가와 2)가난한 사람, 3)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4)부자의 관계를 표현하는 논증이 있다면 그것은 벤다그림으로 표시하기 매우 어렵다. 그럼 그런 경우에는 어떤 방법으로 논리적인 타당성을 검사할 수 있을까? 1차 술어논리가 그 때 쓰인다.

셋째, 앞에서 예술가 논증의 경우에는 두 번째 전제를 표시할 때 두 경우 중 하나만 가능했었다. 하지만 어떤 논증의 경우에는 두 경우가 모두 성립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정치가 논증이 그러하다.

 


어떤 정치가는 모험가이다.

어떤 모험가는 바보가 아니다.

그러므로 어떤 정치가는 바보가 아니다.

 


이 논증의 두 전제를 벤다그림에 표시하면 다음의 경우들이 모두 가능하다.

 

 

이 경우들 각각에 대해서 모두 따져야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가 있다. 하지만 너무 번잡스럽지 않은가? 이것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곧 ‘귀류법’이다. 귀류법이란 무엇인가? 수학시간에 배웠을 테지만, 다시 확인해 보자. 결론을 부정함으로써 전제에 모순이 생기는지를 보는 방법이 귀류법이다. 결론을 부정했는데, 전제에서 모순이 생기면 이 논증은 타당하다. 반대로 모순이 생기지 않고 성립할 수 있으면 이 논증은 타당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 부당하다. 정치가 논증을 가지고 귀류법을 써 보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결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즉 “어떤 정치가는 바보가 아니다”가 거짓이라 말해야 한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모든 정치가가 바보라는 뜻이다. 이제 이것을 벤다그림으로 표시하자. 다음과 같이 된다.

 

여기에다가 두 전제를 모두 표시해 보자. 먼저 “어떤 정치가는 모험가이다.”를 표시해야 한다. 정치가와 모험가가 겹친 부분에 별을 그려야 하므로 가능한 방식은 단 하나이다. 다음과 같다.

 

다음, “어떤 모험가는 바보가 아니다”를 표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유일하게 다음과 같은 경우만이 가능하다.

 

 

이것이 끝이다. 그럼 어떻게 되는가? 결론을 부정하고 나서 모든 전제들을 표시할 수 있었다. 즉, 전제가 모두 참이더라도 결론이 부정되는 것, 결론이 거짓인 경우(혹은 전제가 모두 참이고 동시에 결론이 부정되는 것)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결국 이 정치가 논증은 타당하지 않다. 부당하다. 하지만 여기서의 초점은 그것보다도, 4가지 경우나 나오는 벤다그림의 증명을, 귀류법을 사용할 경우 단 한 가지 방식으로 단순, 깔끔하게 검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벤다그림으로 어떤 논증을 증명하다가 두 가지 이상의 경우로 갈라지면 귀류법을 쓰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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