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깨비의 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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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 밖의 연역적 논증방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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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비판적 사고

2011. 6. 27.

6) 그 밖의 연역적 논증방식들

 

내용을 붙여 넣기 하다 보니 표와 그림이 모두 깨졌습니다.

표와 그림이 완전한 문서는 다음을 참조 하세요.

http://pakebi.com/writing/critic/a06-etc-logi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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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1차 술어논리까지 익혔다면 여러분은 생각의 세계를 여행하는데 타고 다닐 자동차를 얻은 셈이다. 1차 술어논리(명제논리 포함)가 자동차라면, 벤다그림은 자전거 정도는 된다. 그 자동차의 성능은 여러분이 얼마나 현대 논리학을 잘 이해하고 반복 연습했는지에 달려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이런 자동차 없이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사람들(그들을 흔히 “뚜벅이”라고 부른다.)의 실력과 비교해 보자. 이를 위해 설명할 것은 현대 논리학(기호 논리학)이 나타나기 전에 개발된 논리학의 내용들이다. 이 내용들을 살펴보면서 두 가지 점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첫째는 이 내용들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빈약한가 하는 것, 둘째는 이 내용들이 다종다양하지만 결국에는 현대 논리학, 특히 1차 술어논리학을 알면 모두 해결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대당 사각형을 설명하겠다. 언제나 그랬듯이 핵심 내용부터 알아보자. 대당 사각형이란 바로 다음 그림을 말한다.

 

 


<전칭 긍정>

모든 S는 P이다.

 

반대

 

<전칭 부정>

모든 S는 P가 아니다.

 

대소 ↕

 

 

 

 

 

↕ 대소

 

 

 

모순

 

 

 

 

 

 

 

<특칭 긍정>

어떤 S는 P이다.

 

소반대

 

<특칭 부정>

어떤 S는 P가 아니다.

 

 


이 그림으로 무엇을 설명하려고 하는가? 각 네모 안에 들어 있는 내용들의 상호관계들을 설명한다. 즉 “모든 S는 P이다”의 부정은 “어떤 S는 P가 아니다”라는 것, 그리고 “모든 S는 P가 아니다”의 부정은 “어떤 S는 P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부정’이란 말은 왜 안 나타나고 대신에 ‘모순’이라는 말이 나타났을까? ‘부정’과 ‘모순’은 논리학에서 거의 같은 의미를 갖는다. 논리학에서 모순이란 “P이다”와 “P가 아니다”가 같이 성립하는 것을 말한다. 논리학에서 최악의 결과를 가리키는 이름이 ‘모순’이기도 하다.

대당사각형에서 모순(부정)관계는 1차 술어논리의 보편양화 부정법칙과 존재양화 부정법칙에 의해서 일거에 해결된다. 그 내용을 다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보편양화 부정법칙

 

~∀x(…x…)

 

 

∃x~(…x…)

 

존재양화 부정법칙

 

∀x~(…x…)

 

 

~∃x(…x…)

 

전칭 긍정은 현대 논리학에서 “”로 표시된다. 이것에 보편양화 부정법칙을 적용하면 “”가 된다. 이것을 풀이하면 “어떤 x는 P가 아니다”가 된다. 간단하지 않은가? 전칭 부정은 현대 논리학에서 “”로 표시된다. 이것에 존재양화 부정법칙을 적용하면 “”가 된다. 이것을 풀이하면 “어떤 x는 P이다”가 된다. 역시 간단하지 않은가?

문제는 1차 술어논리에서는 부정(모순)만 있지, 반대관계나 대소관계는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것은, 반대관계나 대소관계가 논리학에서 별로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논리학은 바르게 생각하기 위한 학문이다. 바르게 생각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한 생각이 옳을 때, 다른 생각이 역시 옳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순관계만 따지면 충분하다. 반대관계를 생각해 보자. 전칭긍정(모든 S는 P이다)이 옳다면 그 반대인 전칭부정(모든 S는 P가 아니다)은 확실히 틀리게 된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 앞에서 말한 마크 트웨인의 국회의원 비난 일화는 반대가 너무 지나쳐서 다른 의미가 되어버리는 일상언어의 특징을 활용한 것이다. “어떤 국회의원들은 개자식들이다!”라는 문장은 “∃xSx”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때 Sx는 “x는 개자식이다”를 의미한다. 국회의원들이 원했던 것은 이 문장의 부정 “~∃xSx”일 것이다. 부정은 “~∃xSx = ∀x~Sx”가 되고 즉 “국회의원들 중에 개자식은 없다”가 된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반대 “∃x~Sx”를 말했다. “∃x~Sx = ~∀xSx”는 “모든 국회의원들이 개자식인 것은 아니다”, 혹은 “개자식이 아닌 국회의원도 있다”가 된다. 부정과 반대를 구분하지 못하면 마크 트웨인같은 사람이 자신들을 비난해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꼬집어 말할 수도 없게 된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대당사각형으로 돌아가자. “모든 S는 P이다”가 옳은 경우에는 “모든 S가 P가 아닐” 필요까지도 없이 “P가 아닌 S가 하나라도 있으면”(어떤 S가 P가 아니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대소관계도 불필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전칭긍정(모든 S는 P이다)에서 특칭긍정(어떤 S는 P이다)은 따라나온다고 볼 수 있다.6) 이것은 논리학에서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전칭긍정에서 특칭긍정만 따라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편예화 법칙에서도 보듯이 “모든 S는 P이다”가 참이면 “(그냥) S는 P이다”도 참이다. 결국 대소관계보다는 1차 술어논리에서 제시하는 연역규칙들이 더 쓸모가 있다.

정리하자면, 대당사각형은 내용이 거창하지만 대단히 유용하지도 않고, 별로 정밀하지도 않다. 반대관계는 모순(부정)관계의 일부로 사용될 수 있고, 대소관계는 추론관계의 일부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1차 술어논리에 다 있고, 그리고 더 많은 것이 1차 술어논리에 있다. 대당사각형을 배운 뚜벅이가 자신이 익힌 모든 것을 다 사용해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능력을, 현대논리학을 배운 카 레이서는 자신이 배운 것 중 일부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신에 여러분은 어려운 내용을 힘들게 배웠을 것이고, 뚜벅이는 아마도 쉽고 간단하게 대당사각형을 배웠을 것이다.

대당사각형 외에 ‘환위’, ‘환질’, ‘이환’이라는 추론규칙이 있다. 이 내용들 역시 처음 듣는 낯선 이름, 그래서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내용을 알고 나면 현대논리학을 먼저 익힌 여러분들에게는 굉장히 만만한 내용에 불과할 것이다. 그 핵심 내용을 전부 표로 먼저 보면 다음과 같다.

 


<환위>

 

주어진 문장

 

환위 문장

 

A: 모든 S는 P이다.

 

I: 어떤 P는 S이다. (제한 환위)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E: 모든 P는 S가 아니다.

 

I: 어떤 S는 P이다.

 

I: 어떤 P는 S이다.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환위 불가능

 

 


<환질>

 

주어진 문장

 

환질 문장

 

A: 모든 S는 P이다.

 

E: 모든 S는 비P가 아니다.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A: 모든 S는 비 P이다.

 

I: 어떤 S는 P이다.

 

O: 어떤 S는 비 P가 아니다.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I: 어떤 S는 비 P이다.

 

 


<이환(환질환위)>

 

주어진 문장

 

이환 문장

 

A: 모든 S는 P이다.

 

A: 모든 비P는 비S이다.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O: 어떤 비P는 비S가 아니다.(제한이환)

 

I: 어떤 S는 P이다.

 

이환불가능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O: 어떤 비P는 비S가 아니다.

 

 


내가 설명해야 할 것을 여러분들이 먼저 추측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수월할 것이다. 다음을 추측해 보자. 이 내용은 어떤 내용일까? 학자들은 ‘환위, 환질, 이환’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대당사각형과 비슷하다. 이것은 논리학의 내용이다. 현대논리학이 발전하기 전에 학자들이 생각해낸 논리학의 내용 말이다. 논리학은 항상 동일한 것을 추구한다. 하나의 생각 A에서 다른 생각 B로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에 더하여 생각 A가 옳은 경우 항상 생각 B도 옳게 되는 그런 생각의 이전 법칙. 이것이 논리학이 추구하는 것이다. 대단한 생각인가? 앞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추론의 타당성’이 의미하는 바와 같은 것일 뿐이다. 환위, 환질, 이환도 이런 내용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한편, 환위와 환질, 이환의 내용은 그에 비해 너무 사소하지 않은가? 만약 여러분이 현대 논리학을 모르는 상태에서 타당한 생각의 이전 방식을 찾아보려고 한다면 이만큼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번 해 보라.

순서대로 환위를 먼저 보자. 현대 논리학이 발전하기 전에 학자들은 하나의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이전하는 타당한 방법을, 주어와 술어를 바꿈으로써 찾아보려고 했다. “환위”라는 이름은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 즉 “위치를 바꾼다”는 뜻이다.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꾸면서 원래의 문장과 뜻이 똑같을 수 있는 경우, 혹은 뜻은 다르더라도 원래 문장이 옳은 경우 새 문장도 항상 옳은 경우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 ‘모든’이나 ‘어떤’을 적절히 바꾸었다. 이것이 환위인 것이다. 하지만 1차 술어논리의 비기(秘技)를 이미 터득한 여러분들에게 이런 환위는 장난에 불과하다. 한번 보자.

 

 


주어진 문장

 

기호식

 

환위 문장

 

기호식

 

A: 모든 S는 P이다.

 

∀x(Sx→Px)

 

I: 어떤 P는 S이다. (제한 환위)

 

∃x(Px∧Sx)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x(Sx→∼Px)

 

E: 모든 P는 S가 아니다.

 

∀x(Px→∼Sx)

 

I: 어떤 S는 P이다.

 

∃x(Sx∧Px)

 

I: 어떤 P는 S이다.

 

∃x(Px∧Sx)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x(Sx∧∼Px)

 

환위 불가능

 

∃x(∼Px∧Sx)

 

여기서 1차 술어논리로 금방 도출되지 않는 것이 제한환위이다.7) 이것은 벤다그림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A를 벤다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여기서 S 안에 별표 하나를 그리면 다음과 같이 되고 이것은 I를 표시한다.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논리적인 관점(9요소)에서는 완벽하지 않다. 환위에서 왼쪽 문장들(주어진 문장들)은 전제이고 오른쪽 문장들(환위 문장들)은 결론에 해당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논증이나 예술가 논증을 벤다그림으로 그린 것을 잘 살펴보면,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논증들은 타당한 논증들인데, 그 때 결론은 전제들을 모두 표시한 벤다그림에 무언가를 더 그려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말이다. 타당한 논증의 결론은, 전제들을 표시한 벤다그림을 ‘그냥 그대로’ 읽은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 논증은 이랬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정치가 논증에서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렇다. 정치가 논증에서는 귀류법을 썼기 때문이다. 귀류법을 썼을 때는, 결론을 부정해 놓고, 그 상태에서 전제들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따져 본다. 그래서 무언가를 더 그려 보는 것이다. 이 때 그려보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전제이다. 그러므로 환위의 첫 번째인 제한환위 문장은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성립하지만 엄격한 논리학의 입장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 제한환위가 성립하지 않을 경우는 언제일까? 그것은 S의 원소가 하나도 없는 경우이다.

<다시 보기>

 

주어진 문장

 

기호식

 

환위 문장

 

기호식

 

A: 모든 S는 P이다.

 

∀x(Sx→Px)

 

I: 어떤 P는 S이다. (제한 환위)

 

∃x(Px∧Sx)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x(Sx→∼Px)

 

E: 모든 P는 S가 아니다.

 

∀x(Px→∼Sx)

 

I: 어떤 S는 P이다.

 

∃x(Sx∧Px)

 

I: 어떤 P는 S이다.

 

∃x(Px∧Sx)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x(Sx∧∼Px)

 

환위 불가능

 

∃x(∼Px∧Sx)

 

환위의 다른 경우들은 너무나 뻔하다. 단, 1차 술어논리의 문장으로 써 놓았을 때만 그러하다. 이것을 일상적인 말로 서로 다르게 읽으면 그렇게 읽은 문장들 간에는 환위 관계가 성립한다. 세 번째 환위인 “어떤 S는 P이다”와 “어떤 P는 S이다”가 그런 것이다. 두 번째 환위는 수학시간에 이미 배운 적이 있는 ‘대우명제’를 적용한 것이다. 한편 네 번째 환위는 1차 술어논리의 문장에서는 전건과 후건을 바꾼 것뿐이지만, 어떤 경우(∃x(∼Px∧Sx))에 이것을 일상적인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을 뿐이다.

환위는 그렇고, 환질은 어떤가? 환위란 주어와 술어의 위치를 바꾼다는 뜻이었는데, 환질이란 주어와 술어의 ‘성질’을 바꾼다는 뜻 정도로 볼 수 있다.

<환질>

 

주어진 문장

 

기호식

 

환질 문장

 

기호식

 

A: 모든 S는 P이다.

 

∀x(Sx→Px)

 

E: 모든 S는 비P가 아니다.

 

∀x(Sx→∼∼Px)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x(Sx→∼Px)

 

A: 모든 S는 비 P이다.

 

∀x(Sx→∼Px)

 

I: 어떤 S는 P이다.

 

∃x(Sx∧Px)

 

O: 어떤 S는 비 P가 아니다.

 

∃x(Sx∧∼∼Px)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x(Sx∧∼Px)

 

I: 어떤 S는 비 P이다.

 

∃x(Sx∧∼Px)

 

기호식으로 표현했을 때 주어진 문장과 환질문장은 사실상 모두 같거나 아니면, 이중부정규칙을 한번씩 사용했을 뿐이다. “비P가 아니다”를 “∼∼P”로 쓴 것은 그런 까닭이다.

 

이중부정규칙

 

~~P

 

 

P

 

다만, 이것을 일상적인 문장으로 읽었을 때 그것은 환질이 된다. 이환은 “환질환위”라고도 불린다는 점에서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환질을 해서 환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호식으로 그 내용을 써 보면 다음과 같다.

<이환(환질환위)>

 

주어진 문장

 

기호식

 

이환 문장

 

기호식

 

A: 모든 S는 P이다.

 

∀x(Sx→Px)

 

A: 모든 비P는 비S이다.

 

∀x(∼Px→∼Sx)

 

E: 모든 S는 P가 아니다.

 

∀x(Sx→∼Px)

 

O: 어떤 비P는 비S가 아니다.(제한이환)

 

∃x(∼Px∧∼∼Sx)

 

I: 어떤 S는 P이다.

 

∃x(Sx∧Px)

 

이환불가능

 

∃x(∼(∼Px∨∼Sx))

 

O: 어떤 S는 P가 아니다.

 

∃x(Sx∧∼Px)

 

O: 어떤 비P는 비S가 아니다.

 

∃x(∼Px∧∼∼Sx)

 

이 내용들도 기호식과 잘 비교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환이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 줄이 그런경우이다. 이것을 기호식으로 써서 변형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Sx∧Px)의 전건과 후건에 부정기호(∼)가 붙으려면 ∼(∼Sx∧∼Px)가 아니라 ∼(∼Sx∨∼Px)가 되어야 한다. 차이점은 “그리고(∧)”가 “또는(∨)”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또는(∨)”이 전건과 후건을 연결하면 일상적인 말로 주어와 술어 관계로 읽힐 수가 없다. 그래서 이환이 불가능한 것이다. 요점은, 이환에서 주어진 문장의 의미가 이환이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이환된 문장을 일상언어로 읽었을 때 원래의 주어진 문장(어떤 S는 P이다)와 너무나 무관해 보인다는 점에 있다.

전체적으로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말하려고 하는 바는 단순하다. 현대 논리학의 내용이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이지만 그것은 강력한 스포츠카와 같다. 대당사각형이나 환위, 환질 등의 뚜벅이들과는 다른 속도로 논리의 세계를 달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첨단 지식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여러분들이 학습할만한, 연역추론의 지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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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붙여 넣기 하다 보니 표와 그림이 모두 깨졌습니다.

표와 그림이 완전한 문서는 다음을 참조 하세요.

http://pakebi.com/writing/critic/a06-etc-logic.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