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하루-/단독픽션 · 연재 중편픽션 막따리·

혜강 2012. 1. 24. 21:03

 

 

 

 

막따리가 기다리는 봄 / 푸들

 

 

 

 

남편은 벽제화장장에서 화장했다.

마지막 관이 화구로 들어 갈 때 막따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 내어 울었다.

설움이 북받쳐 참을 수 없었다.

그저께까지 병상에서 정희의 어린 손을 잡고 꼭 일어나겠다고 약속하던 남편이었는데 작은 항아리 하나에 재로 담겨 흰 보자기에 싸여 막따리에게 돌아왔을 때 막따리는 너무 처연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이제 막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는데 남편은 야속하게 잿빛 재로 변했다는 사실이 믿어 지지 않았다.

꼭 금세 집으로 돌아와 자신을 부를 것 같았다.

막따리는 남편의 유언대로 흐르는 강에 남편을 띄워 보냈다.

선산에 장지가 있었음에도 갇힌 곳이 싫다며 고인물이나 수목장도 마다하고 꼭 흐르는 물에 띄워 보내 달라던 생전의 남편 유언대로 막따리는 남편을 그렇게 강물에 흘려보냈다.

막따리는 남편의 마지막 흔적 한 줌까지 모두 깨끗이 손으로 훔쳐 강물에 띄워 보내면서 서럽고 서러웠지만 결코 울지 않았다.

강물에 남편의 하얀 흔적이 떠내려가며 물속으로 유입되어 사라지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막따리는 새삼 인생이란 참 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인생의 미래가 이렇게 허망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무엇 때문에 집착하고 쌓으려고만 했는지 후회스럽고 허탈했다.

남편은 강물에 떠내려가며 물속으로 말없이 사라졌지만 남편의 기억은 추억이 되어 막따리의 가슴에서 막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강물에 모두 떠내려가고 한참 남편이 흘러간 강물을 바라보던 막따리의 웨이브 긴 머리를 강바람이 지나가며 흔들어 놓았을 뿐 사방은 너무나 고요했다.

남편이 가고 한 달이 지났다.

삶과 이별의 경계에서 막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정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막따리는 남편이 흘러간 강물을 향해 미소지었다.

남은 사람보다 떠난 사람의 가슴을 덜 아프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에 미련을 두고 떠났을 남편이기에 막따리는 더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을 출장 갈 때처럼 편한 마음으로 배웅했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남편을 보내고 돌아 나오는 강 언덕 길섶에 노란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항상 고개를 들지 않고 피는 노란 수선화를 바라보면서 막따리는 이제 자신은 저 수선화처럼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살아서는 안 된다 남편을 위해서라도 정희를 아름답고 예쁘게 키워 언젠간 남편에게 자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남편이 가고 한 달이 지났다.

삶과 이별의 경계에서 막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정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너무 마음이 황량했다.

꼭 남편이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거나 샤워하고 있는 것 같아 막따리는 몇 번이고 화장실 문을 열어 보기도 한 한 달이 지나면서 막따리는 차츰 생활의 안정을 찾아 갔다.

막따리는 이제 남편이 못 다한 몫을 해야 했다.

모두 정희를 위해서다.

별다른 유산도 없이 홀연히 남편이 갔기 때문에 당장 무슨 일이든지 해야 했다.

우선 선택한 것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보험설계사였다.

처음엔 내성적인 성격의 자신이 감당 할 수 있을까 무척 망설여졌지만 거센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격도 탈바꿈해야했고 생활이나 의식도 바꿔야 한다고 고민 끝에 그런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막따리가 처음 보험회사에 출근한 날 자신에게 배당된 책상 앞 조금은 나이 든 여자가 막따리에게 왜 하필 젊은 여자가 이런 직업을 택했느냐며 안쓰럽게 생각했는지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주었다.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 본 막따리는 그래도 아직은 세상에 작은 정들은 남아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외근 나가면 회사 정문 앞에서 모두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져 갔을 뿐 막따리에게 세일즈 방향제시나 현장접근 방법 등에 대해 조언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허허 벌판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 들 뿐이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는 까짓것 다른 사람이 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막상 길거리에 나와 보면 어디로 가야할 지 막연하기만 했다.

막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가닥을 잡을 수 없어 버스정류장의 나무의자에 앉았다.

오전 10부터 오후 네 시까지 부지런히 일하고 정희를 유아원에 데리러 가면 정희는 자신의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때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는 정희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생각들은 한 낱 망상이었다는 것을 막따리는 차츰 깨달아갈 것이다.

새삼 남편의 빈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던가 막따리는 남편이 문득 문득 생각났다.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제일 먼저 가까운 친지들 동창 남편의 친구들부터 공략하라던 영업소장의 말이 지당하고 옳은 것인 줄 알지만 막따리는 아직 그런 지인의 사람들을 찾아 갈 수 없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남편을 욕먹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처자식 하나도 챙겨 주지 못한 위인이란 말을 듣게 하고 싶지 않아 처음부터 그런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막막한 길거리에서 불현듯 생각을 바꾸고 싶기도 했지만 막따리는 다시 머릿속 그런 상념들을 먼지 털듯 털어냈다.

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이 내리고 타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막따리는 그 사람들처럼 목적 없이 우두커니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는 자신이 너무 나약하고 초라하게 생각되었다.

갑자기 등에서 열이 나고 땀이 솟았다.

한 달 사이에 날씨도 무척 따뜻해졌지만 자신을 되짚어 볼 때 자신의 막막한 현실이 자신의 몸에 열이 나게 만들어 한 줄기 땀을 흘렸는지 모른다.

바로 그때였다.

막따리 앞을 가로 막고 있던 버스가 출발하자 도로 한 복판에 길 잃은 푸들 한 마리가 지나가는 차들 사이를 위태하게 피하고 있었다.

푸들은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 차들을 피하고 있었지만 무척 겁에 질려있었다.

그러나 누구하나 차를 세우고 강아지를 구출하거나 혼란스럽게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푸들을 비켜가는 차들은 한 대도 없었다.

그대로 두면 꼭 푸들은 차에 치어 죽을 것 같았다.

막따리는 미쳐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로 뛰어 들었다.

푸들은 다행히 막따리를 발견하자 피하거나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막따리가 푸들을 안아 가슴에 안았다.

덜덜덜 푸들이 온 몸을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막따리가 푸들을 안고 막 인도로 돌아서는데 좌회전하던 차 한 대가 급정거하며 끼익 막따리의 바로 코앞에 멈춰 섰다.

차가 서자마자 운전석 문을 열고 젊은 남자가 나오더니 다짜고짜 막따리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이 씨팔년아 죽고 싶어 환장했어?

- 죄송해요 이 강아지 때문에

 

그리고 젊은 그 남자는 한참 더 큰 소리로 막따리에세 온갖 욕을 다하고 휭 가버렸다.

막따리는 남편을 강물에 흘려보내면서도 울지 않았는데 그 젊은 남자의 욕을 먹고 갑자기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몇째 동생뻘 되는 그 젊은 남자의 컬컬한 입에서 터져 나온 욕은 생전 듣도 보도 못 했던 욕설이었다.

막따리는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두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어 구출해 온 푸들을 정류장에서 떨어진 안전지대로 옮겨 놓아주고 얼른 그 버스정류장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 푸들은 얼마나 놀랐던지 막따리가 내려놓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눈물을 닦고 화장을 고치기 위해 바로 앞 건물의 화단 소나무 앞으로 걸어가는데도 푸들은 제자리에서 막따리만 쳐다보고 서있었다.

 

- 얘 너 왜 안가고 거기 서 있니? 어서 집에 가

 

막따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강아지였지만 푸들은 그 후 계속 막따리를 따라 오고 있었다.

막따리가 걸음을 멈추면 푸들도 멈췄고 막따리가 걸아가면 또 다시 막따리를 따라 왔다.

 

 

 

 

 

 

  

출처 : 아마추어`불자라`
글쓴이 : 불루보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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