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하루-/단독픽션 · 연재 중편픽션 막따리·

혜강 2012. 2. 2. 15:40

 

 

 

 

 

막따리는 경비원의 친절한 물음에 아무 준비 없이 말했다.

 

- 네 보험설명 좀 드리려고 왔습니다

- 사전 예약은 하셨습니까?

- 아니요 전 이 빌딩에 아는 분은 전혀 없습니다

- 그러니까 보험 세일 오셨다 이거네요

- 네

- 죄송하지만 아주머니 같은 분은 출입 안됩니다 잡상인 출입금지 빌딩입니다

- 허지만 잠시면 되는데

- 안된다니까요 어서 나가주세요

- 한 곳만이라도 들리게 해주세요

- 이 아주머니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꼭 무자비하게 쫒겨나야겠소?

 

막따리는 돌변한 경비원의 태도에 겁이 났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라 그런지 막따리는 섬 여자인데도 겁이 많았다.

어두운 밤엔 바로 윗집 나의 집에 오는 데도 걸음아 날 살려라 는 식으로 달음박질하지 않으면 못 올만큼 겁이 많은 여자였다.

그런 막따리가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경비원의 험한 인상과 돌변해버린 거친 말에 기가 죽어버려 아무 말도 못하고 걸음을 돌려야 했다.

막따리는 아침에 그렇게 다짐하고 또 용기를 내서 어제 아리를 구출했던 장소 바로 앞의 빌딩으로 들어섰다 예기치 않은 푸대접만 받고 돌아서서 다시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아니 아침에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용기가 그 경비원의 호령 한마디에 산산이 흩어지고 허탈한 마음만 남았다.

막따리는 어제 다시 그 버스 정류장의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세상을 산다는 것이 만만찮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남편이 생각났다.

남편의 밀린 병원비와 장례비를 전부 적금이나 가지고 있던 예금들을 다 정리해서 수납했지만 그외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은 달랑 정희와 살고 있는 집한 채 뿐이었는데 이 집마저 온전한 것은 아니었다.

집을 무리하게 산 것은 아니었지만 대출원금이 아직 태산만큼 남아 있어 당장 막따리가 일하지 않으면 어떤 봉변을 당할 지 알 수 없었다.

막따리는 자꾸만 터져 나오는 한숨을 쉬며 오가는 버스를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더 어디로 가야 할 지 도무지 가닥을 잡을 수 없었다.

 

- 여보세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막따리는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막따리가 쫓겨났던 그 빌딩의 경비가 막따리를 부르고 있었다.

막따리는 대답대신 그 경비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경비는 막따리에게 자신을 좇아낼 때와 사뭇 다른 표정으로 막따리에게 말했다.

 

- 좀 전엔 제가 잘 몰라뵈었습니다 진작 말씀하시지 전 그냥 일반 잡상인인 줄 알고 무례했습니다

- ?

- 저를 따라 오시지요

- 왜요?

- 네 가보시면 압니다

 

막따리는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찾아 온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무작정 경비를 따라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는 엘리베이트로 17층까지 올라가서 긴 복도 끝 방으로 막따리를 안내했다.

경비는 그 방문 앞에서 더 이상 그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막따리만 들어가라고 했다.

 

- 여긴 어디죠?

- 네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모시고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엄명이셔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막따리는 비서실을 통해 깊숙이 자리한 방으로 여비서를 통해 안내됐다.

100평은 넘어 보이는 넓은 방엔 지긋한 중년의 남자가 웅장한 책상에 앉아있었다.

막따리는 생전 처음 이런 방에 들어와 보았다.

여비서를 내 보내고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막따리에게 중년의 남자는 웃으며 책상에서 일어섰다.

 

- 여기로 앉으시지요

 

중년의 남자가 막따리에게 자리를 권했지만 오금이 저린 막따리는 쉽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

중년의 남자가 먼저 자신의 소파에 앉으며 막따리에게 다시 자리를 권했다.

 

- 편히 앉으시오

-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 아 나요? 아 이런 실례했네요 우선 자리부터 앉으시오

 

막따리가 마지못해 엉거주춤 자리에 앉자 그 중년의 남자가 말을 꺼냈다.

 

- 나는 정희 어머님을 잘 압니다 이름은 막따리시구요

- 전 도저히 아무 생각이 안납니다

- 그럴거요 사랑암 아시죠?

- 네?

- 그 백련사 사랑암 말입니다

- 네 압니다 만

- 그 사랑암 월혜스님 알지요?

- 네

 

그는 세풍건설회장이었고 회사입출입하는 고객과 직원들의 상황을 파악가기 위해 가끔 방안의 CC모니터를 통해 관찰하다 방금 막따리가 경비에게 쫓겨나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회장은 경비에게 직접 막따리를 모셔오라고 명령했고 지금 막따리가 경비에 의해 불려온 것이다.

회장은 사랑암에 한 달에 한 번씩 가는데 갈 적마다 공교롭게 정희와 함께 온 막따리를 보게 되었고 회장은 막따리의 사연을 젊은 스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젊은 스님은 안타까운 정희와 막따리의 사연과 함께 회장에게 막따리를 몇 번 이 회사에 추천했다고 했다.

막따리는 젊은 스님마저 남편의 장례식에 오지 않아 서운했는데 회장의 이야기를 마저 듣고 그 오해를 풀었다.

 

- 얼마 전에 내가 다시 사랑암에 갔을 때 맨 날 보이던 정희라는 아이와 막따리씨가 보이지 않아 궁금해서 내가 물었더니 그새 부군께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더군요 월혜스님이 막따리씨의 장례에 가지 않았다며 안간 이유가 속세의 정으로 막따리씨를 대하게 될까 두려워 그랬다더군요 월혜스님이 그러고 보면 막따리씨를 무척 좋아하는가 보지요? 하하하하

- 감히 제가 어떻게 스님의 사랑을 탐하겠습니까?

- 그래요 일단 출가한 사람이니 응당 그래야겠죠 허지만 아무리 스님이라 해도 아직 젊은 사람이니 왜 마음에 속세의 정이 없겠소? 월혜스님은 그런 면에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지요

-

- 월혜스님 말을 들으니 막따리씨의 전공이 사회학이라구요?

- 네 허지만 아직 전공을 활용해 본적은 없습니다

- 그런데 오늘 우리 회사엔 무슨 일로 오셨지요? 경비실 말로는 보험관계로 방문했다던데

- 네

 

막따리는 그제야 조금 진정되고 정신을 수습할 수 있어 회장의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엔 수십 대의 모니터가 켜져 있었고 집무실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기품이 있는 인테리어로 장식되어 있어 막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막따리는 에두러지 않고 회장의 말에 조심스럽게 답하며 차츰 편하게 대화했다.

 

 

 


출처 : 아마추어`불자라`
글쓴이 : 불루보트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