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보불자다-/법문

혜강 2012. 2. 12. 13:26

 

 

영가 천도 기도법


살아 있는 존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죽음이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죽음이다. 만약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러나 지금껏 그러한 일은 없었다. 태어난 존재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찾아들고, 생겨난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끔 되어 있다.
그렇다고하여 죽음이나 사라짐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 또한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 성현들은 죽음을 '옷 갈아입는 일'처럼 받아 들였다. 옷을 오래 입어 낡았으니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겠다며 담담히 받아들였다. 마이카 시대인 요즘으로 말하면, 오래 탄 헌 차를 버리고 새 차로 바꾸어 타는 것이 죽음이요 환생(還生)으로 본 것이다.
그럼 어떤 옷으로 갈아입고 어떤 차로 갈아타게 되는 것인가? 그 결정권은 '나 스스로 지은 바 업'이 쥐고 있다. 살아 생전 내가 지은 행위, 내가 추구한 바를 좇아 인연처를 구하는 것이다.

극악(極惡)의 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으로, 한평생 좋은 일만 하고 산 사람은 천상(天上)의 세계로, 탐욕에 찌들은 존재는 아귀(餓鬼)의 옷을, 뚜렷한 원력(願力)을 세운 사람은 그 원을 이룰 수 있는 좋은 환경으로 나아가게 된다. 자기가 지은 업의 에너지가 맞는 사이클을 찾아 파고드는 것이다.
그 모든 중생이 살아 생전에 잘살고 훌륭한 원을 세워 후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면 무슨 근심이 있으랴? 자신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의 한평생 업을 살펴볼 때 자유롭고 좋은 세상에 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많고, 망인이 좋게 환생할 것 같지만 보다 더 좋은 세계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뒤에 남은 사람들은 갖기 마련이다.

이러한 중생의 열망에 응하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이 천도법(薦度法)이다. 불보살의 크나큰 자비를 근거로 삼아 죽은 이를 보다 좋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영가천도의 묘법(妙法)이 우리 불교 집안에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영가의 천도

1) 어느 학인 스님의 죽음
구체적인 영가 천도 기도 법을 이야기하기 전에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가 꼭 알아두어야 할 영가에 대한 기본 상식 몇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수십 년 전 합천 해인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강원의 학승들이 가을 수확 철에 장경각 뒤쪽의 잣나무 숲으로 잣을 따러 갔다. 그런데 잣나무가 워낙 높아 한 나무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다른 나무로 올라가려면 힘이 드니까, 몸이 재빠른 학인들은 가지를 타고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그냥 건너뛰는 일이 많았다.
그날도 그렇게 잣을 따다가 한 학인이 자칫 실수하여 나무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침 그 밑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몸에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완전히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학인은 자기가 죽은 것을 알지 못했다. 다만 순간 어머님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 생각이 일어나자 그는 이미 속가의 집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배가 많이 고픈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집에 들어서자마자 길쌈을 하고 있는 누나의 등을 짚으며 밥을 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머니와 함께 길쌈을 하던 누나가 갑자기 펄펄 뛰며 머리가 아파 죽겠다는 것이었다. 누나가 아프다고 하자 면목이 없어진 그는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는데, 어머니가 보리밥과 풋나물을 된장국에 풀어 바가지에 담아 와서는 시퍼런 칼을 들고 이리 저리 내두르며 벼락같이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네 이놈 객귀야, 어서 먹고 물러가라."
그는 깜짝 놀라 뛰어나오며 투덜거렸다.
"에잇, 빌어먹을 집. 내 생전에 다시 찾아오나 봐라! 그래, 나도 참 별일이지. 중이 된 몸으로 집에는 무엇 하러 왔나? 더군다나 사람 대접을 이렇게 하는 집에.... 가자. 나의 진짜 집 해인사로."
그리고는 해인사를 향하여 열심히 가고 있는데, 길 옆 꽃밭에서 청춘 남녀가 화려한 옷을 입고 풍악을 올리며 신나게 놀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으니 한 젊은 여자가 다가와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유혹하였다.
"스님, 우리랑 함께 놀다 가세요."
"중이 어찌 이런 곳에서 놀 수 있겠소?"
"에잇, 그놈의 중! 간이 적어서 평생 중질밖에 못해 먹겠다."
사양을 하고 돌아서는 그를 보고 여인은 욕을 퍼부었다. 욕을 하든 말든 다시 해인사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이 길가에 서 있다가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었다. 억지로 뿌리치고 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에는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맨 수십 명의 무인들이 활을 쏘아 잡은 노루를 구워 먹으면서 함께 먹을 것을 권하였다.
그들도 간신히 뿌리치고 절에 도착하니, 재(齋)가 있는지 염불소리가 들려 왔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소리가 이상하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유심히 들어보니,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은 '은행나무 바리때' 뚝딱뚝딱 '은행나무 바리때' 뚝딱뚝딱 하고 있고, 요령을 흔드는 스님은 '제경행상' 딸랑딸랑 '제경행상' 딸랑딸랑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염불도 다 한다.'고 생각하면서 열반당(涅槃堂) 간병실로 가보니 자기와 꼭 닮은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이었고, 그를 발로 툭 차는 순간 그는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조금 전에 집에서 보았던 누나와 어머니는 물론 여러 조객들이 자기를 앞에 놓고 슬피 울고 있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던 그는 살아난 자신을 보고 기절초풍을 하는 어머니에게 여쭈었다.
"어머니, 왜 여기 와서 울고 계십니까?"
"네 놈이 산에 잣을 따러 갔다가 죽었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초상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상은 진정 일장춘몽이었다. 그는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제 집에서 누나가 아픈 일이 있었습니까?"
"그럼,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죽는다고 하여 밥을 바가지에 풀어서 버렸더니 다시 살아나더구나."
그는 다시 자신을 위해 염불을 해주던 도반 스님에게 물었다.
"아까 내가 들으니 너는 은행나무 바리때만 찾고 너는 제경행상만을 찾던데, 도대체 그것이 무슨 소리냐?"
"나는 전부터 은행나무로 만든 너의 바리때를 매우 갖고 싶었어. 너의 유품 중에서 그것만은 꼭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어찌나 강하게 나던지...... 너를 위해 염불을 하면서도 '은행나무 바리때'에 대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어. 정말 미안하네."
"나도 역시 그랬다네. 네가 평소에 애지중지하던 <제경행상 諸經行相>이라는 책이 하도 탐이 나서...
죽었다가 살아난 학인은 그 말을 듣고 문득 깨닫는 바가 있어 무인들이 노루 고기를 먹던 장소를 가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자취는 없고 큰 벌집만 하나 있었다. 꿀을 따는 벌들이 열심히 그 집을 드나들고 있을 뿐....
다시 미모의 여인이 붙들고 매달리던 곳으로 가보니 굵직한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었으며, 청춘 남녀가 풍악을 울리며 놀던 곳에는 비단개구리들이 모여 울고 있었다.
"휴, 내가 만일 청춘 남녀나 무사, 미녀의 유혹에 빠졌다면 분명 개구리, 뱀, 벌 중 하나로 태어났을 것이 아닌가!"

2) 자력의 천도, 타력의 천도
해인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 이야기는 영가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그것과 연결시켜 영가 천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개시켜 보자.
죽어서 육체를 이탈한 영(靈)은 업을 좇아 헤매이게 되고, 자기의 업과 인연이 있는 곳에 이르면 걷잡을 수 없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비단 개구리가 화려한 옷을 입고 풍악을 울리며 놀고 있는 청춘 남녀로 보인 것이나, 또아리를 튼 뱀이 어여쁜 여인으로 보인 것도 한 예이다.
영혼은 자기가 태어나야 할 인연처에 이르면 그곳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낙원처럼 보이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묘한 점이다. 까마귀로 태어날 영혼에게는 까마귀 둥지가 대궐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게 되고, 그래서 그 대궐 같은 까마귀 둥지로 들어가 까마귀 새끼로 태어나고 만다. 스스로 지은 업의 에너지가 맞는 사이클을 찾아 파고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명업력(無明業力)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어둠이다. 이 업의 장벽에 가리어 까마귀 둥지를 까마귀 둥지로 보지 못하고 뱀의 몸을 뱀으로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렇듯 깜깜한 무명(無明)을 제거하여 있는 그대로를 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살아 생전에 스스로 닦아 익힌 수행의 힘이요, 다른 하나는 49재 등의 타력적(他力的)인 천도 의식을 통한 구원이다.
살아 생전에 불경을 공부하고 참선, 염불 등의 수행을 많이한 사람은 죽은 후에도 미혹에 휩싸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아 스스로가 꼭 태어나야 할 곳에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수행하지 않았더라도 부처님의 한 말씀 가르침, 예를 들어 <금강경> 사구게(四句偈) 한 구절이라도 마음에 깊이 새겨 좌우명으로 삼는 이라면 나쁜 악도(惡道)에 떨어지지 않게 된다.

옛날, 공부한 것이라고는 <금강경> 사구게 한 구절밖에 없는 스님이 평생토록 욕심을 부리다가 죽었다. 그 스님의 영혼은 이곳 저곳을 헤매 돌아다니다가 대궐보다 더 화려해 보이는 까마귀 둥지가 너무나 좋게 보여 그곳에 들어가서 머물고자 하였다. 그때 허공에서 우뢰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모양 있는 것이 모양 아닌 줄을 알면
곧바로 부처님을 보리라
凡所有相
皆是處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네가 평소에 이것 하나만을 부지런히 외웠거늘, 어찌 까마귀 둥지를 대궐보다 더 좋게 보고 들어가려 하느냐? 눈을 떠라. 눈을 떠라. 네가 그곳에 빠져들면 영원히 헤어나기 힘드느니라."
그 소리를 듣고 스님은 까마귀 둥지를 벗어나 새롭게 발심하고 불법을 잘 닦을 수 있는 인연처를 찾아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불가(佛家)에서 몇 년마다 윤달이 드는 해에 베푸는 예수재(豫修齎)도 같은 의도에서 마련된 의식이다. 사후 세계를 위하여 미리 닦는 예수재. 이 예수재 때 수행을 잘하게 되면 그 공덕이 밑거름이 되어 능히 좋은 인연처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재는 이름 그대로 '미리 닦는 것'이다. 단순히 몇 푼의 돈을 내고 형식적으로 이 절 저 절을 찾아다녀서는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 참으로 그 이름에 걸맞는 '예수재'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선심(善心)을 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아 내생까지도 구제할 수 있는 불연(佛緣)을 맺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예수재를 마련한 참 뜻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고 깨달음의 씨를 심도록 인도하기 위함에 있다는 것을 예수재에 참여하는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에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참된 원을 심고 깨달음을 이루는 공부를 배워 익힌다면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사 윤회를 두려워하겠느냐? 오히려 죽음을 옷을 갈아입듯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내생을 새로운 희망으로, 정진의 터전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만 가지고 수행하면 자기 영혼은 능히 스스로 천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력 천도(自力薦度)인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인 타력 천도(他力薦度)는 다른 사람이 죽은 자로 하여금 좋은 인연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바로 망자의 마음을 바꾸는 법문이다.
망자가 살아 생전에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속에서 한 평생을 보냈으니 죽었다 하여 어찌 그 마음이 바뀌겠는가? 자연 그 마음은 어둡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그러한 마음을 밝혀 주기 위해 행하는 것이 공양, 독경, 염불, 법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재의식(齋儀式)인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이 마음을 고쳐서 새 사람이 되듯이, 영가도 염불과 법문을 듣고 마음을 바꾸어 참회하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재를 지낼 때 준비하는 음식이나 법공양하는 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재를 지낼 때 충분한 음식을 마련하여 베푸는 것은 망인으로 하여금 재시(財施)의 공덕을 쌓도록 하는 것이고, 각종 불교 서적을 법공양하는 것은 법시(法施)의 공덕을 쌓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의 법공양은 특히 의미가 있도록 행하여야 한다.
곧 법공양은 망인을 대신하여 법문을 베푸는 것이므로, 그 책을 받아 읽는 사람이 불교의 진리를 잘 이해하여 발심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한다. 곧 최상의 공덕인 발보리심(發菩提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책을 선정하여 법공양을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길인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려운 한문 경전이나 난해한 불경을 준다 한들 누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영가와 천도

천도의 뜻과 영혼의 극락왕생


글·오형근: 동국대 명예교수



불교는 중생들에 대해서 윤회한다고 하고 부처님에 대해서는 윤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회하지 않는 것은 생과 사의 고통을 해탈하여
영원하게 안락을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중생과 부처님을 비교하여 중생은 윤회의 고통을 받고,
부처님은 해탈하여 열반의 안락을 받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또다른 학설을 빌리면 윤회하고 윤회하지 않는 것은 마음 안에
달려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마음에는 양면성이 있다. 마음의 양면성이란 첫째는 윤회
하지 않는 진여심(眞如心)을 말하고 둘째는 윤회를 하고 있는 망식
(妄識)을 말한다. 이는 한 마음 속에서 두 가지 마음의 성품을
나누어 설명하는 학설이다. 이러한 학설을 유식학(唯識學)이라고 한다.

유식학에 의하면 부처님과 범부는 마음을 떠나서 따로 있을 수 없고
윤회하고 안 하는 것도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 글은 양면성의
마음 가운데 망식을 중심하여 윤회하고 있는 영혼과 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윤회하지 않는 진여심(眞如心)

우리의 마음에는 윤회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 그러한 마음을 진여심
이라고 한다. 진여심의 진(眞)은 진실과 청정을 뜻하고 여(如)는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진여심은 항상 진실하고 청정하면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뜻한다. 이 마음은 현재 범부들도 가지고 있다. 이 마음은 범부들의
본성이며 범부들이 지옥과 천국 등 삼계, 육도에 윤회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마음을 불성(佛性)이라 말하기도 하고
부처의 마음이라고도 칭한다.

부처님은 오직 이 진여심만을 수용하면서 살게 된다. 진여심에 의하여
밝은 지혜가 발생하기 때문에 부처님은 삼라만상의 진리를 환하게
알 수 있다.

진여심은 연꽃이 부정을 타지 않는 것처럼 어디에 있어도 부정을 타지
않는다.이 마음은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중도적이면서 진리의 체성을
유지한다. 중생들은 이 마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혜로울 수 있고
보살이 될 수도 있으며 성불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마음을 깨달음의 마음이라 하며 청정무구한 불심(佛心)
이라고도 칭한다. 그리고 윤회하지 않는 해탈심이며 열반심
또는 보리심이라고도 칭한다.


2. 윤회하는 망식(妄識)

진여심은 청정무구한 것이지만 이를 망각하고 무명을 발생하여 후천적
으로 형성한 마음을 망식이라고 한다. 이 망식은 진여심과 함께
한 마음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 속의 진리와 물질의 진리를 함께
망각하여 무지 속에서 생활하는 마음을 뜻한다.

망식은 팔식(八識)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며 팔식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말나식(末那識),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한다.

이들 팔식은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학설이기도 하다. 팔식은 각각
역할분담을 하면서 활동하며 그 활동하는 것을 행위라 하고 이를
업이라고 말한다. 업은 곧 인(因)이라는 뜻이며 그 인은 반드시
연(緣)을 만나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이 팔식은 각각 행동을 발생시키면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가운데 아뢰야식은 앞의 칠식(七識)이 행동하여 조성한 선업과
악업을 빠짐없이 잘 보존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칠식은 보고 듣고
하는 중생의 행동을 모두 하게 된다. 그 가운데서도 말나식이 무명과
탐진치를 야기하여 범부로 타락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 나머지 육식은 이에 의하여 무지의 마음을 야기하고 온갖 선악의
업을 짓게 된다. 말나식이 근본이 되고 이에 의지한 의식이 동시에
무명과 탐진치를 야기하게 되는데 이들 무지는 자신의 진여심을
망각한 것을 뜻한다. 진여심을 망각한 찰나부터 윤회하게 된다.

즉 무지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을 뜻하며 무지는 온갖 악업을
조성하는 원인이 된다. 악업을 조성한 그 업력은 모두 아뢰야식에
보존되었다가 사망하게 되면 아뢰야식이 내생의 몸을 받는 생명체가
된다. 대승불교에서는 이 아뢰야식을 윤회의 주체로 간주한다.


3. 영혼과 천도의 뜻

위에서 한 마음 속의 진여심과 망식을 나누어 간단하게 살펴 보았다.
여기서는 망식을 중심하여 영혼설과 천도의 뜻을 설명하겠다.
범부들 스스로 자체의 진여심을 망각하고 망심을 중심하여 선악업을
짓게 되었으며 아뢰야식은 그 선악업에 의하여 윤회하게 된다.

이러한 무명은 매우 미세한 현상이기 때문에 스스로도 모르며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이와 같이 망식을 일으킨 것도
자기 마음이며 비공식으로는 이들 마음을 망령(妄靈)이라고 칭한다.
이 망령은 소승불교에서 사후의영혼을 중음신(中陰身)이라고
칭한 것과 같다.

이 중음신은 대승불교의 아뢰야식에 해당하는 말이며 중음신은
천안(天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먼저 살았던 이승에 대하여 모두
보고 들을 수 있게 된다.

중음신은 이승의 업보인 몸을 벗어난〔死〕 영혼의 몸이기 때문에
이승에서 염불해 주고 독경해 주는 소리를 능히 들을 수 있는 청력을
갖게 된다. 특히 이승에 있을 때 범부의 몸으로 애착하고 아끼던
재산과 가족과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하여 잊지 못하고 바라보게 된다.

그리하여 불교는 이들 영혼을 위하여 애착을 버리고 지혜를 발생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기원해 주는 염불과 독경을 해주는 것이다.
이승의 모든 것은 무상하고 헛된 것이므로 애착을 버리고 왕생극락
하라는 내용들인 것이다.

이와 같이 사후의 중음신 즉 아뢰야식을 방편으로 세속의 칭호를 따서
부득이 영혼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들 영혼은 업력에 따라 일주일
내지 49일간 공중에 머무르는 것을 중음신이라고 한다. 중음신은
내생의 몸을 받게 되면 중음신이라는 명칭은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아뢰야식은 몸을 받으면서 생과 사를 되풀이하고 또 생사에
윤회하는 동안의 마음을 총칭하는 단어이다. 이승에 있을 때나 저승에
있을 때나 변함없이 중생의 몸을 유지하고 업력을 지니고 있는
윤회의 주체인 것이다.

이와 같은 아뢰야식은 다른 칠식을 거느리고 저승으로 가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업자득의 인과법칙에 따라 생과 사를 수용하는 마음이다.
이러한 아뢰야식을 상대하여 염불과 독경을 하며 천도의식을 해주는
것이다. 그 영혼은 설법을 듣는 순간 대오각성하여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 부사의한 도리가 있다.

그러나 평소에 자신이 불교를 공부하고 신행한 업력이 왕생극락하는데
최상의 비결이다. 사후의 영혼은 평소에 지은 업력이 저승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과사상은 자력(自力)의 사상이 매우 강하다. 교리를 잘
알고 진리를 분별할 줄 아는 영혼은 염라대왕 앞에서도 당당하게
진솔하게 되며 자력으로 왕생극락할 수 있다.

사후의 천도의식은 무지의 영혼을 일깨워주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며 왕생극락할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 이승의
권속들도 큰 복을 받게 된다.

출처:월간 불광(佛光) 200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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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재

돌아가신 조상이나 부모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제의식(齊儀式)입니다. 조상의 혼령이신 영가를 부처님전에 모시고 부처님을 찬탄하고, 영가의 업장을 소멸케 한 다음, 시식을 하도록하여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축원합니다. 여러 스님들께서 범패와 염불의식을 행하여 장엄을 더하며 살아 있는 후손들의 안과태평과 사업성취를 발원한다.



49재

영가(靈駕)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칠일마다 한번씩 재를 올리게 되는데 그것을 일곱번에 걸쳐 올립니다. 그 일곱번에 걸쳐 올립니다, 그 일곱번째 재를 막재 또는 사십구재라고 합니다. 보통 칠일마다 올리는 재는 간소하게 하고 마지막 사십구일이 되는 일곱번째 올리는 재는 영가가 정성으로 차린 재물을 흠향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장만합니다.
이렇게 칠일만에 한 번씩 올리는 것은 몸을 벗어버린 영가가 49일 동안 중음신(中陰神)으로 떠도는데 몸을 가지고 있을 때 지은 업에 따라 매 7일째마다 심판을 받게 되며 이때마다 불공을 드려 망자를 대신해 선근공덕을 지어주며 그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49재를 중요시 여기는 까닭은 명부시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염라대왕이 49째 되는 날 심판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십구재는 법화경(法華經) 사상과 지장경(地藏經), 아미타경(阿彌陀經), 약사여래경(藥師如來經) 등의 사상에 근거해서 봉행하는 의식입니다. 그리고 사십구재는 우리나라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제 우리나라 고유의 민족의식으로 자리잡아 생명존중과 조상공경의 의식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49재의 근거는
지장보살님이 말씀하시되, 장자여 내가 지금 미래 현재 일체중생을 위해 부처님의 위력을 이어서 간략히 이 일을 설하리라. 장자여 미래 현재 모든 중생들이 명을 마칠 때 다달아서 한 부처님 이름이거나, 한 보살의 이름 을 얻어 듣게 되면 죄가 있고 없음을 불문하고 다 해탈을 얻으리라. .....중략.... 죽어서 모든 이가 7.7 49일 안에는 업보를 받지 않았다가 49일이 지나면 비로소 업에 따라 과보를 받나니, 만일 죄 인이 이 과보를 받으면 천백세중에 헤어날길이 없나니 마땅히 지극한 정성으로 49제를 베풀어 공양하되 이같이 하면 목숨을 마친이나 살아 있는 권속들도 함께 이익을 얻으리라.

라는 구절에서 비롯된다.

49재의 절차

(侍輦) - 동구 밖에서 영가를 맞아들인다.
대령(對靈) - 영가를 간단한 대접을 하여 맞이들이고 휴식하게 한다.
관욕(灌浴) - 불보살을 맞이하기 위하여 영가를 목욕시킨다.
신중작법(神衆作法) - 불법의 도량을 잘 수호하도록 모든 신중을 맞아들인다.
상단권공(上壇勸供) - 불단에 공양을 들이며 법식(法食)을 베푼다.
관음시식(관음시식) - 영가를 대접하는 일반 제사의식이다.
봉송(奉送) - 불보살을 먼저 배송(拜送)시키고 영가도 왕생시킨다. 
 

 

 

 

 

 

 

 

 

 

 출처:http://cafe.daum.net/mindbuddha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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