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하루-/단독픽션 · 연재 중편픽션 막따리·

혜강 2012. 2. 26. 22:59

 

 

 

 

 

 

재 발

 

 

막따리에게 걸려온 전화는 정희가 다니는 학교 학원강사였다.

정희가 프로그램 수업 중 갑자기 코피를 흘리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막따리는 회식자리를 망치게 할 수 없어 적당한 구실로 자리를 빠져 나와 병원으로 택시를타고 달렸다.

정희는 아직 혼수상태였다.

막따리는 가슴이 막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가느다란 두 줄의 투명링거호스에 연결된 정희의 가녀린 팔을 보고 막따리는 파랗게 질린 체 정희를 바라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 담당의사가 들어왔다.

 

- 선생님

- 우선 급한 대로 지혈치료는 계속하고 있지만 지금 상태로는 지혈이 우선문제인데 환자의 진료기록이 전혀 없는 우리 병원에서는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이 환자는 제가 보기에 근원치료가 필요한 환자인 것 같습니다

- 네 한 달에 한번 대학병원에서 정기 검진과 진료를 하고 있습니다 만 아직 다른 증세는 없었는데

- 악성빈혈은 학계에 보고된 신약도 신치료의료기술도 아직 없습니다 오직 현상태의 진행을 늦추는 처치만 유일한 치료방법입니다 아마 한두 시간 후엔 일단 지혈은 될 겁니다 그 후 다시 이 환자의 진료기록이 있는 병원으로 옮기셔서 정밀 체크해 보십시오

- 지금 옮기면 안 될까요?

- 그 쪽 병원에 이 환자의 주치의가 이 시간에 근무하느냐 하는 것이 우선 문제이고 지금 환자를 이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꼭 원하시면 이송절차는 밟아드리겠습니다

- 우선 교수님께 전화를 해 보겠습니다

 

막따리는 떨리는 심정으로 정희의 담당주치의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나 택시 안에서 정신없이 교수와 통화 시도했을 적에 안 되던 전화가 지금 될 리 없었다.

신호만 뚜르륵 거리며 갔지 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막따리는 이런 경험을 지금까지 수차례 해 왔기 때문에 교수에게 전화를 하면서도 불안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보통 이런 상태에서 하루 이틀 지나면 일단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정희의 병이다.

허지만 이럴 때마다 막따리의 심정은 새까맣게 타들었다.

의사가 진료실로 돌아가고 막따리는 정희의 머리맡에서 죽은 듯 잠들어 있는 정희를 내려다보며 가혹한 자신의 현실에 눈물이 났다.

백번 자신이 죽어도 정희가 건강해 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망설임 없이 그 길을 택하고 싶었다.

차라리 생사가 걸린 긴급한 병을 앓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았다.

예측할 수도 희망이 확실히 보이는 것도 치료방법도 없는 정희의 병에 무능해질 수밖에 없는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정희를 임신하고 조금도 부정한 짓 하지 않은 자신의 정성에도 가혹한 시련을 주는 부처님에게 수없이 기도로 물었던 막따리였다.

누구보다 깊은 믿음으로 정희에게 희망을 달라고 기도했다.

무더운 삼복더위 스님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배기도하다 쓰러진 막따리다.

정희에 대해서 지금 자신이 매달릴 수 있는 곳은 오직 믿음하나 뿐이란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막따리는 절실한 현실이 너무 두려울 뿐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섰을 때 누구나 두렵다.

잠시 숨을 거두면 모든 절망과 시련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은 누구나 그 순간의 짧은 시간을 두려워한다.

지독한 절망과 처절한 시련을 이겨 낼 의지가 약해 질 때도 있었다.

감당할 수 없는 절박감에 몇 번이나 정희와 동반자살도 생각했던 막따리다.

그러나 꼭 정희를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막따리를 이제까지 버티게 했다.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정희를 막따리는 처연한 마음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티 없이 맑은 정희에게 헤어날 수 없는 형벌을 내린 존재는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인지 막따리는 물었다.

신의 대답이 없자 막따리는 모든 현실은 자신의 전생 업으로 인해 그 형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으며 정희가 고통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막따리의 비통한 절규는 새벽안개처럼 산화해 버릴 외침이지만 막따리는 허공을 향해 절규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막따리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검은 그림자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정희를 덮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신을 거역하는 한이 있어도 정희를 그 운명의 어두운 그림자에 휩쓸려가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 엄마

 

막따리가 정희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깊이 기도하는데 정희가 눈을 떴다.

막따리가 정희에게 온 시간으로부터 꼭 세 시간 만에 정희가 의식을 찾았다.

일단 정희가 의식을 회복하자 막따리의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 엄마 울고 있는 거야?

- 아니야 울긴

- 눈물인데?

- 아니래도 조금 전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그런 거야

- 아닌데? 여긴 병원이잖아 병원엔 먼지 없어

 

막따리는 자신의 눈물도 보이지 않고 정희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보지 않도록 정희의 머리를 가슴으로 꼬옥 안았다.

따스한 온기가 자신의 눈물처럼 정희로부터 막따리의 가슴으로 전해 왔다.

 

- 지금 정희의 상태가 진행된 건 아닙니다 일시적인 혈류돌출현상이었을 뿐입니다 우리 몸이 외부의 자극에 제일 먼저 반응

하는 것은 신경계가 아니고 혈류계통입니다 그래서 피가 끓는다는 말이 있지요 화가 나거나 기쁠 때 피가 끓는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온도변화나 또는 감정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혈액이기 때문에 정희는 환경의 변화보다 가급적 감정을 자제하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로마 요법이나 음악요법등에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꼭 명심해야 할 것은 상처로 인해 피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코피가 나는 횟수는 꼭 집에서 기록해 두셔야 합니다 횟수뿐만 아니고 발생하는 주기도 파악해야하구요 싸이클이 짧아지면 즉시 입원시키십시오

 

막따리는 정희 주치의 교수가 하는 말에 일단 안심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학원에서 흘린 코피는 거의 두 달 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처음 정희가 코피를 흘리고 악성빈혈이란 진단이 나오고 일 년 후 또 한 번의 코피 흘린 날이 있었으나 그 후 정희의 코피 흘리는 싸이클은 6개월을 초과하지 않았다.

지금 정희가 학원에서 프로그램 공부를 하다 흘린 코피는 거의 2개월만이었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러나 싸이클이 일개월내로 좁혀지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한다.

정희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선 단 두 가지뿐이다.

골수이식과 봄에 화이자에서 개발한 신약임상결과에서 좋은 치료효과를 보는 방법이다.

그러나 두 가지 다 완전치료법은 아니다.

평생 피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서 살아야한다.

정희의 악성빈혈은 한번 피가 나면 지혈이 되지 않는다.

심하면 며칠이고 계속 피를 흘린다.

다른 아이처럼 정희의 피 속엔 적혈구가 적고 한번 적혈구 수치가 떨어지면 금세 보충이 되지 않으며 철성분과 헤모글로빈이 적기 때문에 지혈이 되지 않고 계속 피를 흘리는 특징을 가진 병이다.

만약 정희의 지혈이 장시간 계속되면 빈혈로 사망할 수 있다.

그래서 이 혈액암을 악성빈혈 또는 백혈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막따리는 정희의 치료와 진료 때문에 약속보다 하루 늦게 보험설계북을 세풍고충상담실의 임미숙위원에게 제출했다.

서면입찰의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출처 : 아마추어`불자라`
글쓴이 : 불루보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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