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하루-/단독픽션 · 연재 중편픽션 막따리·

혜강 2012. 3. 6. 18:57

 

 

 

 

 

 

 

 

 

재 능

 

 

 

세풍에 제출한 보험설계서면입찰 결과가 나올 동안 막따리는 정희의 곁에서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작년부터 정희는 삼 개월에 한 번씩 글리벡을 투여 받고 있었다.

현재까지 백혈병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글리벡을 한번 투여하는데 드는 비용이 230만원 전후여서 막따리에겐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러나 믹따리에겐 그 보다 더한 경제적 부담이 와도 정희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야 했다.

그나마 국내제약회사에서 생산시작 했기 때문에 글리벡의 경제부담도 크게 준 것이 그 정도다.

막따리는 글리벡에 의존해서 정희의 악성빈혈을 붙들고 있는 현재 수준의 불투명한 치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밤마다 기도했다.

오직 정희가 최악의 상태로 가기 전에 새로운 신약이 개발되어 기적처럼 정희가 저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마음껏

뛰놀았으면 좋겠고 정희의 재능이 보이는 화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생각했지만 모두 부질없는

공상일 뿐이었다.

정희가 그림에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네 살 때였다.

죽은 남편이 생전에 마지막 생일선물로 사다준 붉은 립스틱을 막따리는 무척 아꼈다.

외출할 때 간혹 한번 발랐지만 그 마저 듬뿍 바르지 못했다.

립스틱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생전 선물이란 모르던 남편이 해외출장가서 막따리의 생일에 맞춰 돌아오면서 사다 준 립스틱이었고 남편의 사랑을

체감하고 남편의 그 고운 사랑을 립스틱에 묻어두고 오래 기억하고 싶어 특별히 아꼈던 붉은 립스틱이었다.

그런 립스틱을 막따리가 잠간 마트에 갔다 오는 사이 정희가 붙박이장의 거울에 온통 칠해 놓았다.

그런 사태를 본 막따리는 너무 화도 나고 너무 당황해서 처음으로 정희의 엉덩이를 때리며 화를 냈었다.

정희는 막따리의 체벌에 울면서도 그 남은 립스틱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막따리는 그런 정희가 더 얄미워 더 아프게 정희를 때렸다.

갑자기 정희의 코에서 빨간 립스틱 색의 선혈이 흘렀다.

막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정희가 흘리는 코피는 세 시간이나 지혈이 되지 않고 흘렀다.

그 후 별다른 이상이나 징후는 없었다.

막따리는 정희의 코피가 멎고 정희가 잠든 사이 정희가 낙서로 칠해 놓은 거울의 립스틱 그림을 지우려다

잠시 주춤거렸다.

립스틱이 뭔데 정희를 때렸다는 자책에 가슴이 비로소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정희가 놀래 코피까지 흘렸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미어져

도저히 그 황칠을 지울 수가 없었다.

막따리는 핸드폰으로 정희가 그린 그 황칠을 촬영해서 나쁜 엄마와 화가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렸다.

많은 반응이 쏟아 졌다.

그 중에 한사람 심리미술학 시간강사의 미술대학조교수의 댓글이 막따리의 눈길을 잡았다.

 

정희 어머니.

정희의 그림은 네 살짜리 수준이 아닙니다.

정희의 감성과 정희의 사고엔 열 살짜리도 흉내 낼 수 없는 무한한 상상력이 있으며 정희는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천부적 그림재능이 있는 아이입니다.

지금부터 정희의 재능을 잘 계발하고 교육시키면 훌륭한 화가가 될 것이라 예견합니다.

정희의 립스틱 그림 속엔 회화가 가득하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막따리는 그 때 그 조교수의 댓글로 정희의 재능을 알게 되었고 정희를 가까운 유아미술원에 데리고 가서 그림공부를

시켰다.

그 유아미술원 원장도 정희가 그리는 그림마다 감탄했다.

동짓날을 보낸 그 다음 주일 정희는 자신의 팥죽그릇에 다섯 개의 새알을 그렸고 놀이터 그림엔 막따리가 정희를

밀어주는 그네그림을 그리면서 남편은 그네 위의 허공에 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정희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 아빠를 찾고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어린 정희가 다섯 살이 되면서 정희는 소설 같은 그림을 그렸다.

이야기가 있고 줄거리가 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 봄 정희는 또 그림을 그리다 코피를 흘렸다.

이번엔 일주일 이상 코피가 반복되었다.

그래서 불야불야 병원을 찾게 되었고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는 너무 참혹했다.

정희가 악성빈혈 즉 백혈병이란 소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막따리는 처음에 정희와 동반자살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전혀 예견하지 못했고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던 불치의 병이 정희에게 운명의 그림자처럼 내려 앉아있었다는 사실은

막따리를 지치게 했고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막따리는 정희가 7살 되던 해까지 그런 방황과 번민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다.

깊은 절망 속에서 다시 힘을 얻기 시작한 계기는 정희가 자신의 병을 눈치 채면서도 절대 막따리에게 표현하지 않았던

정희의 깊은 심지에 감동하면서 부터다.

세 번째 정희가 출혈하기 시작해서 입원했을 때 정희는 병실 밖 창 넘어 지고 있는 하얀 목련을 바라보며 막따리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 엄마 저 꽃은 떨어지지만 난 안 죽어 걱정마 대신 엄마가 힘들어 하는 건 보기 싫어 나하고 약속해 줄 거지?

절대 안 운다고

 

막따리는 정희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막따리는 정희 앞에서 울지 않았다.

아홉 살짜리 정희가 40을 넘어 선 막따리에게 인생의 교훈 같은 말을 했을 때 막따리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 변덕스럽게 변한 가을.

정희의 10번째 생일.

지난 가을 막따리는 정희에게 선물을 했다.

사랑암 젊은스님이 연결시켜 준 화이자의 백혈병 1차신약임상실험에 채택된 것이 막따리와 정희에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글리벡보다 수십 배 항암효과와 치료효과가 있는 화이자의 백혈병 전문항암 신약 슈펙트 1차임상실험에 채택된 것은

막따리에겐 희망의 빛이었고 정희에겐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행운이었다.

이 항암제 슈펙트에 정희가 임상치료효과를 인정받으면 세계보건기구의 시판허가 없이 정희는 이 신약을 무제한

무상공급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2차 임상실험 3차 임상실험까지 자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현재로선 정희에게 이 길이 가장 빠르고 완벽한 치료선택의 길이다.

허지만 만약 정희가 신약부작용을 나타내거나 임상투여에서 거부반응을 보이면 정희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는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대개 임상실험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길어야 3개월 생존이 보장 될 뿐이다.

그동안 정희에게 감춰왔던 정희의 병세에 대한 비밀을 정희에게 솔직하게 털어 놓은 그날.

정희는 생일 케익의 촛불을 입으로 단번에 불어 끈 후 막따리에게 말했다.

 

- 엄마

- 응? 정희생일 축하해요

- 엄마 그런데 엄마 내게 할 말 있지?

- 무슨 말?

- 나 알고 있었어

- 뭘?

- 나 백혈병이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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