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하루-/단독픽션 · 연재 중편픽션 막따리·

혜강 2012. 3. 6. 19:16

 

 

 

 

 

 

 

 

 

 

 

약 속

 

 

 

- 엄마 나 배고파

 

카페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던 정희가 눈을 뜨고 나와 막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정희가 뽀송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예뻤다.

마치 내가 낳은 딸 같은 착각에 빠졌다.

나는 지난 17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내가 너무 외롭고 쓸쓸할 때도 나는 오직 일에만 매달렸다.

일에 빠져 허우적대면서 나는 막따리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과 탄식을 재울 수 있었다.

같이 섬에 살 때는 막따리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

막상 막따리를 두고 야밤에 도주하듯 섬을 떠나와 객지를 전전하면서 나는 한시도 막따리를 잊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막따리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갔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내 안의 모든 어둠은 막따리의 고운 미소가 다 채웠고 눈을 뜨면 막따리의 생각에 모든 나의 의식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나는 다른 여자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사랑이란 것이 가까이 있으면 더 깊어지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만 더한다더니 정말 그랬다.

너무 막따리가 보고 싶고 그리우면 나는 두 주먹으로 벽을 치거나 한겨울이라도 냉수를 뒤집어쓰면서 막따리에 대한 나의 열정을 지우려고 발악하다 시피 했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세월이 어느 듯 17년이다.

오직 막따리 생각하나로 내 인생을 일구어 왔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왜 사랑이란 것이 꼭 지나간 다음에야 가슴 터지도록 느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의 영혼이 모두 소진되고 나의 육신이 모두 메말라 낙엽처럼 떨어지고 나의 형체가 밀봉되는 순간까지 막따리에 대한 사랑하나로 버틸 참이었다.

언젠가 KBS에서 이별한 사람 찾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생방송되던 한 달 동안 몇 번이고 한국본사에 연락해서 막따리를 찾고 싶은 때도 있었다.

허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지금쯤은 나를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가정을 소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은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진실할 수 없다 했지 않았는가?

나는 막따리의 환상 그리움 그리고 내 다 타오를 수 없는 열정으로 내 인생의 최후를 맞는다 해도 아까울 것이 없었다.

오직 하루의 시작도 막따리였고 하루의 마감도 막따리에 대한 사랑의 그리움으로 그렇게 많은 세월 보냈다.

그런 막따리가 지금 내 앞에 앉아 지난 세월 너무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너무 목이 막히고 너무 가슴이 찢어져 버틸 수가 없었다.

왜 우리에게 지난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이렇게 허송하게 만들고 이제 와서 막따리에게 상처만 남은 세월 주었는지 신에게 원망하는 마음으로 막따리의 옆에서 금방 잠깬 정희를 조용히 쳐다보며 나는 웃었다.

정희에게 보내는 이 미소는 막따리에게 다 못한 사랑의 미소였다.

 

- 정희야 미안하구나 정희 깨워 배고프지 않게 해야 하는데 아저씨 때문이야 미안해 정희야

- 아니에요 아저씨 그렇지만 난 잠자면서도 아저씨 생각했어요

- 오 그랬구나 아저씬 엄마만 생각했는데

- 아저씨가 우리 엄마 좋아하니까 전 좋아요 우리 엄마 슬프거든요

- 정희야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정희에게 더 하려던 말을 잇지 못했다.

가슴에서 용암같이 뭉클하고 뜨거운 느낌의 감정이 북받쳐 나의 말문을 막았기 때문이다.

나는 애써 침을 삼키며 정희의 곁으로 가서 정희를 꼭 끌어안았다.

섬에서 마지막 밤.

아버지가 새벽부터 하루 종일 힘들게 잡아온 물고기를 바다에 빠트린 그날 밤 막따리가 내게 까치발로 걸어와 평상의 나를 끌어안았던 그 느낌 그대로 그 향기 그대로 정희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정희를 한 단계 더 가깝게 내 품에 끌어안았다.

정희의 뛰는 심장 소리가 막따리의 심장소리처럼 들렸다.

 

- 정희야 아저씬 정희를 엄마보다 더 사랑한단다

- 정말이에요? 아저씨?

- 응 그럼

- 허지만 아저씨 전 어쩌면 봄에 죽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엄마를 더 사랑해 주세요 우리 엄마 불쌍하지 않게요

 

나는 그 순간.

정희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울었다.

소리 없이 오열했다.

흐르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입으로 나의 눈물을 받아마셨다.

그리고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 같은 슬픔으로 막따리에게 심장으로 소리쳤다.

 

막따리 왜 정희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거야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정희를 낳았어? 이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정희를 이 세상에 오게 했어?

 

참을 수 없는 격정에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신은 왜 이렇게 가혹하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이 세상 단 하나의 여자에게 어찌 이다지도 냉혹하단 말인가?

과연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신은 이렇게 냉혹한 존재였단 말인가?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나는 내가 나가는 교회의 십자가를 떠 올렸다.

무엇 때문에 내가 교회에 나가서 막따리의 행복을 빌며 지난 17년을 보냈는지?

그 해답이 이런 꼴로 내게 내려진단 말인가?

터지는 가슴속 격정의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는데 정희가 나의 목을 끌어안은 체 속삭이듯 말했다.

 

- 아저씨 나 배고파요

 

나는 얼른 냉정을 찾았다.

정희의 그 말이 나를 진정시켰다.

우리는 저녁을 그 카페에서 먹고 내 회사가 운영하는 호텔로 갔다.

제일 좋은 방에서 하루 밤이라도 편하게 정희를 잠재우고 싶었다.

제일 화려한 방에서 하루 밤이라도 막따리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것이 막따리에 대한 내 사랑의 보답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막따리와 정희가 30층 아래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시내 전경을 보며 뽀송하게 웃었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도시엔 어둠이 너무 짙게 깔려있었지만 그 어둠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가슴살 풀어헤친 여인의 살결처럼 수줍은 듯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수많은 차들이 헤트라이트를 켜고 분주하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정희를 안고 그 창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며 정희에게 말했다.

 

- 정희야 아저씬 이제 정희하고 엄마 어떤 일 있어도 지킬거니까 다시는 죽을지 모른다는 소리하지 않기로 약속해 줄 수 있어요?

- 네

- 정희야 아저씨가 정희 치료 어떻게 해서든 할 거야 그리고 우리 정희 다 낳으면 아저씨랑 엄마랑 두바이 가자 정희 두바이가 어딘지 모르지?

- 알아요 인터넷에서 봤어요 사막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운 도시잖아요

- 그래 맞아 우리나라 사람들도 세운 곳이지 아저씨도 그 곳에서 일했단다 아저씨가 지은 호텔 이 보다 더 높은 곳에서 엄마랑 우리 정희랑 살고 싶은 만큼 살다 오자 알았지?

- 약속?

- 그래 약속하자 우리 정희 위해 약속하자 막따리 막따리도 약속하지?

 

그리고 내가 옆으로 돌아보았을 때 막따리는 아주 엷고 가는 습기를 두 뺨에 흘리고 있었다.

막따리의 그 습기는 도시에서 올라 온 불빛이 반사되어 빨갛게 얼룩지고 있었다.

그리고 막따리는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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