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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박씨 行祚 할아버지 자손들의 살아온 이야기

박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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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020. 8. 15.

박혁거세 61세손 박주옥 (朴湊玉) 님은 1899년 10월 23일 박승재-안동 김씨를 부모로 운봉에서 태어나 6.25 와중인 1951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영모(永模)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1911(辛亥)년 음11월 14일 13세의 나이로 같은 고을의 16세 파평 윤씨 (尹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 2녀를 두셨다.

3, 4대가 모여 살며 농사 일을 해야 하는 대가족 농촌 가정의 6남 3녀 9남매 중의 장남으로서 소임 이상의 역할을 다하셨다. 일찍이 한문과 근대학문을 익혀 금융조합(현 농협은행) 서기로 들어가 일하셨다.

동생들 교육에 헌신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박봉을 쪼개 바로 밑 기옥(琪玉)과 화옥(華玉) 쌍동이 형제를 대처에 있는 전주고등학교에 유학을 보내셨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대구사범 강습과를 마치고 당시 최고의 직장인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도록 하셨다.

이 두 분은 전라북도에서 "쌍동이 교장"으로 유명하였는데 그 밑의 동생들을 거두어 다섯째, 여섯째 두 분은 일제강점기에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생명과학대학)와 일본 추오대학교(해방 후 서울대 상과대학에 편입)를 다닐 수 있었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기승(基丞)과 규홍(圭烘) 숙부는 맏형님의 3형제 섭용, 호현, 을용을 서울로 불러 올려 친자식처럼 고등교육을 받도록 하여 이에 보답하였다. 그러니 외손자(신항균 교수)가 서울교육대학교 총장이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성경말씀 그대로 한 알의 밀알이 죽어 수십 배의 열매를 맺는 기적[1] 같은 현실이 운봉 박씨 집안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파평 윤씨와 혼인

파평 윤씨는 1896년 2월 8일 (음 1896. 1. 6) 태어나 1912년 1월 2일 (음 1911. 11. 14) 박주옥 님과 혼례를 올리고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951년에 홀로 되셨으나 원불교에 귀의하여 윤보처화 (尹寶處華)라는 법명을 얻었으며 1988년 향년 93세로 세상을 뜨셨다.

국립대 총장 배출

고인은 쉰을 넘기고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생전에 동생들과 자녀 교육에 열심이셨던 만큼 크나큰 보람이 있었다. 차남 호현은 경기고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가서 소아정신과 의사로 활약하였으며, 3남 을용과 조 형 부부는 하버드대 박사가 되어 귀국한 후 각자 한국개발원(KDI)과 이화여대에서 중책을 다하였다.

 

박을용 박사는 KDI 연구위원을 거쳐 한동대 대학원장과 부총장을 역임하였는데, 장녀 순남의 아들 신항균은 국립대학교인 서울교육대의 총장이 되었다. 신항균 교수는 성균관대 수학과를 나와 수학박사로서 우석대와 서울교육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교과서를 집필하였다. 서울교육대에서는 대학발전기획단장과 교무처장을 역임한 후 교수들의 직선제 투표로 총장에 선출되어 2011년 8월부터 4년간 총장을 지냈다.

 

* 1999년 미국에서 고인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종손 홍균의 두 아들(曾孫子)과 2011년 국립대학 총장이 된 외손자 신항균 교수  

Note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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