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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박씨 行祚 할아버지 자손들의 살아온 이야기

파평 윤씨 (61世 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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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020. 8. 15.

박혁거세 61世 손부 파평 윤씨, 윤보처화 (尹寶處華) 님은 1896년 음 정월 초엿새(1896. 2. 18) 운봉면 북천리에서 윤상원-임실 문씨 사이에서 2남 4녀의 장녀로 태어나 박주옥 님의 정부인으로서 93세 장수하시고 1988년 9월 4일 세상을 뜨셨다.

유가(儒家)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기에 16세이던 1912년 1월 운봉 박씨 집안에 시집을 와서 불평을 모르고 봉제사를 하며 조부모와 젊으신 시부모를 모시고 장손 며느리로서 사셨다.

시집 오자마자 태어난 넷째(박내옥) 이하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을 마치 동생처럼 자식처럼 키우고 보살피셨다. 특히 1951년 부군과 사별한 후에도 홀 시아버지를 정성껏 모셔 "운봉 고을의 효부(孝婦)"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낙상으로 드러누우시기 전까지는 노년까지 건강이 아주 좋으셨다.
미국 유학을 떠나 현지에 정착한 호현에 이어 을용과 섭용 세 아들이 미국에 가서 살게 되자 아흔이 다 된 1984년부터 2년여 간 미국 로스안젤레스 장남(섭용) 집에 머무시면서 동부에 사는 차남(호현), 삼남(을용)의 집에 다녀오시기도 했다.

원불교에 귀의

평생을 불교에 전념하여 명산대찰에 사람을 보내 불공을 드리셨다.

그러다가 일제 말에 운봉에 원불교의 전신인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가 들어오자 원불교에 심취하여 조석으로 좌선과 염불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받기보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성품에 따라 원불교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고 윤보처화(尹寶處華)라는 법명을 받기에 이르셨다.[1]

 

아래 사진은 1956년 2월 파평 윤씨의 회갑연에 모인 가족과 친척들이다.

 

가운데 앉은 분들은 파평 윤씨와 동서들인 은성덕, 윤후남, 파평 윤씨, 이규아 님이다.
뒷줄 왼쪽부터 한 사람 건너 박내옥, 김중기, 박기옥, 3남 을용, 장남 섭용 내외, 박태임, 장녀 순남, 박중임, 차녀 향선
맨앞줄은 박은희, 박훤일, 김정혜, 국영미, 박진숙(안겨 있는 어린이), 박은희, 박훤삼.

 

별세 조문 편지

다음은 위의 사연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생전에 가깝게 지냈던 시동생 박내옥 님이 1988년 9월 장례식을 마치고 미국에 사는 조카 섭용에게 보낸 조문 편지글이다.

 

[뒷면에 계속]  위로(慰勞)를 겸하여 장례(葬禮) 때 상황 일부를 알렸노라.
1988년 9월 12일 숙부 평서

 

운봉 장지에서는 원불교 교회장으로 장례식이 아주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아래 사진은 왼쪽부터 한 사람 건너 차녀 향선, 넷째동서, 장녀 순남, 큰시누, 다섯째동서, 막내동서가 한 자리에 모였다.

 

묘비명

운봉 선영에 있는 ○和陀圓尹寶處華之墓 (원화타원 윤보처화의 묘) 묘비명은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父 파평 尹相元 공 母 임실 文 씨의 2남 4녀 중 장녀로 운봉면 북천리에서 1896년(丙申) 음1월 6일 탄생하시고 16세의 어린 나이로 운봉박씨 湊玉 공 家의 장손 며느리로 출가하시어 70여년 동안 시조부모 시부모 5남 3녀 시동생의 뒷바라지를 인고와 우애와 효도로 보살피시면서 화목한 가정의 기둥이 되셔서 온 집안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되받아 오셨고 슬하의 3남 2녀를 자애로 양육하시다 1943년(圓紀 28년) 3월 4일 원불교에 입교하신 후 지극하신 믿음으로 수행에 힘쓰시어 1987년((圓紀 72년) 법강항마법(法强降魔法)의 자리에 오르셨으며 1988년(戊辰) 9월 4일 입적하시어 생전의 소원대로 시부모 묘 아래 묻히시니 형년 93세이시다.

주 석

1] 고인은 친정동생(尹修洪)과 아들들이 교회 장로로서 예수 믿기를 권해드렸으나, 인도환생하면 원불교의 정녀(專務 貞女)로 살고 싶다는 소원을 수차 피력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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