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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박씨 行祚 할아버지 자손들의 살아온 이야기

박태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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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020. 8. 15.

* 오른쪽은 모친을 마지막까지 성심껏 모신 장남 중기

박태임 (朴太任, 1915.6.18 ∼ 2011.9.13 음8.16) 은 박혁거세 왕의 61세손이다.
박승재 님과 안동 김씨의 9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나 1935년 전주고등보통학교를 나온 김형귀(金瀅槶) 님과 혼례를 올리셨다.

슬하에 중기 (1936∼ ), 양기 (1939∼2017. 2.11) 두 아들을 두고 일찍이 홀로 되셨다. 그러나 평생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지내셨으며 2011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구로동에서 일여당 한의원을 하였던 일여 박의수가 장남 중기의 장인으로 바깥사돈이 된다.

고모님과의 추억

조카(박훤일)로서 고인[1]의 모든 면을 낱낱이 적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세상에서 활동하셨다면 어떠하셨을까 상상해보는 것으로 추모사에 갈음하고자 한다. 틀림없이 커리어 우먼으로서 활약이 많으셨을 것이다.

이목구비가 크신 고모님은 현대적인 미인형에 속하셨다. 두 아드님이 “미남” 소리를 들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게다가 시원시원한 성격에 사교성도 좋으셨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셨고 집에 찾아온 손님한테는 누구든지 “잘 가고 또 와”라고 말씀하셨다.

날계란 사건

고모님과 계란에 얽힌 추억이 한두 가지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전주 근교의 봉동에 있는 고모님 댁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보리 이삭을 잘라 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한참을 놀다가 집에 돌아올 참이었다. 그때 고모님이 “우리 조카 무엇을 줄까” 하시더니 갓 산란한 날계란 위아래 구멍을 뚫고 호르륵 마시듯 먹으라고 하셨다.

그리고선 버스에 올라탔는데 계란 먹은 것을 그만 체하고 말았다. 얼굴이 사색이 되어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알았다. 싱싱한 계란의 난황막은 위산으로도 녹일 수 없게 단단하다는 것을. 나중에 고모님은 그러한 사정을 아시고 알 잘 낳는 레그혼을 한 마리 주셔서 그 닭이 낳는 계란을 잘 받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망상 해수욕장 하계연성

1978년 여름 필자가 다니던 직장에서 동해안 망상 해수욕장에 하계연성소를 차렸다. 콘도가 없던 그 당시만 해도 해변 여관에 단체숙소를 마련하고, 직원가족들의 취사의 편의를 위해 연탄아궁이를 여러 개 설치하였다.
그 해 여름 필자는 부모님과 고모님을 모시고 하계연성을 갔는데 고모님은 아침 일찍 취사장에 가셔서 질서(?)를 잡으셨다. 그리고 늦잠 자고 나온 직원가족들을 도와주시는가 하면 화기애애한 이야기꽃을 피우곤 하셨다. 고모님 덕분에 신입사원이던 필자가 하계연성 같이 갔던 선배 동료 직원들로부터 대접을 받기도 했다.

 

* 1983년 7월 넷째집 생신을 축하하며 (주인공은 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오빠, 동생, 시누이들과 함께

집안의 커뮤니케이터

고모님은 집안의 대소사 간에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 소통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셨다.
집집에 필요한 조언을 해주시고 항상 좋은 말씀만 전하셨다. 필자도 고모님의 격려성 발언에 고무되어 앞서 말한 망상 해수욕장 하계연성에도 모시고 가고 가끔 용돈을 드리곤 했다. 그리하면 그 몇 배로 칭찬이 돌아왔다.

그러나 고모님은 일찍 홀로 되신 후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두 아들과 손주들을 훌륭하게 훈육하신 것만으로도 내세의 축복을 받으실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기에 미국의 시인 롱펠로우가 노래한 “인생의 찬가”를 불러드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분이시다.[2]

롱펠로우의 인생찬가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마라.
인생은 한낮 헛된 꿈이라고

잠자는 영혼이란 죽은 영혼,
인생의 모든 것은 겉모양과는 다르다.

인생은 진실, 인생은 진지한 것.
그 무덤이 목표는 아니다.

너는 본디 흙이라, 흙으로 돌아가라.
이것은 그 육체를 말할 뿐, 영혼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가야 할 곳 혹은 가는 길은
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 내일이

장엄한 삶의 바다를 향해 하다가
외롭게 난파한 그 어떤 형제를 보고,
용기를 얻게 될 발자국을 …….

그러니 우리 부지런히 일해 나가자.

어떤 운명도 헤쳐나갈 정신으로
끊임없이 성취하고 추구하며 일하고
기다리기를 힘써 배우자.

Note

1] 집안에서는 “큰고모” 또는 남부순환도로 부근의 구로동에 있는 장남 집에서 사셨기에 “구로동고모”라고 불렀다.

2] 아름다운 시와 좋은 글, 멋있는 사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였던 차남 김양기의 애송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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