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신과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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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편지글

2020. 8. 15.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언제 어떻게 관여하시는가?

박 훤 일 [1]

 

환갑을 넘기고 정년을 앞둔 요즘 지나온 인생살이를 가끔 돌아보게 된다. 특히 고교 입시와 사법시험을 그만두고 대안을 선택할 때나 은행원에서 대학교수로 전직할 때의 상황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닌 실로 우연의 연속이었다.[2]

이것을 ‘운명적’이라고 한다면 크리스천으로서 내 삶에 하나님은 언제 어떻게 역사하셨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 아래서

우리 인간은 얼마나 주도적으로 자기의 삶을 살고 있는가? “운명아 비켜라” 하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도 자칫하면 운명의 수레바퀴에 치이고 말지 않을까?

연전에 이런 의문을 품게 만든 사건이 언론에도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다.

서울 S대의 P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명망 있는 학자였다. 학교 보직과 학회장도 여럿 역임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성희롱 교수로 몰려 학교에서 파면되었다. 평소 그의 언행에 불만을 품은 여학생들이 그의 성희롱 내용이 포함된 사석에서의 발언을 녹취하여 방송사에 제보하는 바람에 변명할 여지도 없었다.

그때 마침 P교수처럼 K항공과 오랜 인연을 맺고 교회봉사 활동에도 앞장서 온 B장로가 P교수와 비교가 되었다. P교수는 장기간 K항공의 사외이사를 지냈고 그 회사 신임임원을 위한 대학원 특별과정을 만들어 운영하던 주임교수였다. 그리고 B장로는 장성 예편 후 K항공 계열사의 임원을 오래 지냈으니, P교수와 B장로는 공통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데 한 분은 형편없는 파렴치범으로 매도되었고, 다른 한 분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으니 무엇이 두 분의 처지와 평판을 갈라놓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타고난 팔자(八字)대로 사는 운명인가, 아니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운명에 맞설 수 있는가?

명리학적으로 두 분의 생일생시는 모르지만 사주팔자의 그릇(格局)이 범상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P교수의 이력서에 남겨놓은 빈 칸은 대학총장 또는 장관의 타이틀이었고, 그것도 머지않아 채워질 것으로 보였다. B장로 역시 우리가 말하는 ‘별’(군대 계급장, 대기업 임원의 직함)을 줄줄이 달고 사신 분이었다.

그럼에도 P교수는 그가 잘 나갈 때 주변에 돈과 여자가 많이 모이자 그것을 인기로 착각[3]한 나머지 그만 오버하고 말았다. 연운에 넘치는 財星(재물과 여자)이 官星(조직에서 처신하는 지혜)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日干(본인 자신)을 침범하고 만 것이다. 때마침 학원 내 만연한 성희롱 사건에 경종을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학교 징계위원회는 정년을 몇 해 앞둔 P교수에 대하여 파면처분을 내렸다. 반면 B장로는 공군조종사로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사선(死線)을 넘나들며 살았기에 마음을 비우고 누구든지 섬기는 자세로 살아왔다. B장로는 예편 후에도 먼저 간 동료와 부하를 생각하면서 말로만 그치지 않고 봉사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경의 요셉 이야기와 자동차 비유

P교수도 드라마에서처럼 너무 잘나가서 주변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다가 운명의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닐까?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던 가장이 실직한 후 오피스텔에서 주식투자(Cybertrading)를 하다가 크게 손실을 보았다. 자존심 강한 이 남자는 아직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던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하고 말았다. 희대의 서초동 세 모녀 살해범은 파국(破局)을 예견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원하지 않는 삶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고 말았던 것이다.

성경을 보면 그보다 더 처절한 위기 속에서도 이를 지혜롭게 극복한 인물이 나온다. 그는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다행히 목숨을 건지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었다. 그는 자기를 고용한 이집트 바로왕의 경호대장(보디발) 부인의 유혹을 받자 이를 뿌리치고 도망쳤다가 성폭행범으로 몰려 경호대의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요셉의 삶을 명리학으로 풀면[4] 그는 운명과 맞서 싸우지 않고 지혜롭게 처신하여 財星(곳간지기, 여성의 신임)이 넘치는 가운데 이를 官星(지혜와 리더십)과 印星(기도와 율법 공부)으로 순환시켰다. 감옥 안에서도 여러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 후일 바로 왕이 꾼 해괴한 꿈을 국가 정책적으로 해석하는 큰 공을 세우고 이집트 총리가 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멋진 자동차가 자갈길에서 한 때 고장이 나기도 했으나 경주대회(rally)에서 실력을 보여준 후 세계적인 대회를 모두 석권한 챔피언 카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사주추명학에서는 개인의 삶을 자동차 여행에 비유하곤 한다. 팔자의 格局, 大運, 歲運, 日辰을 자동차(배기량)의 크기, 도로 사정, 기상조건과 그날의 날씨로 바꿔보면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5]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머리나 재능은 부족해도 운이 좋아 젊어서부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하자. 말년의 운세가 좋지 않다면 이런 식으로 조언해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덕이 없어 타고나기는 자동차로 치면 티코 급이요. 초년에는 내가 벌어서 기름을 채워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지만, 20대부터는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어 막히는 일 없이 잘 이루어졌소. 40대에는 간간히 교통체증 구간이 나타나 고생 좀 했겠소. 그러나 50이 넘어 신호등 없다고 마구 달리면 비 내리는 길에서 전복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겠소."

우리는 간혹 고상한 이상을 지니고 좋은 학교를 다녔음에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필자의 대학동창 중에도 장·차관, 대법관을 지내거나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찍 세상을 뜬 사람, 흔적도 없이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람, 환갑이 지나서도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는 사람 등 가지각색이다. 자동차가 에쿠스 급이더라도 비포장도로나 눈 내리는 고속도로에서는 제 속력을 낼 수 없으며, 고장이 나거나 주유소가 없는 길에서 기름이 떨어지면 차를 세워둘 수밖에 없다.

 

* 수가성에서 물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인격신과의 조우

우리에게 “블레이드 러너”, “토털 리콜”, “마이노리티 리포트” 같은 SF영화의 원작자로 유명한 필립 K 딕은 상상력이 막힐 때마다 주역(周易)으로 점을 치면서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6] 그는 ‘발리스’(VALIS: Vast Active Living Intelligence System)라는 외계의 지성을 만난 사실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재야 인문학자인 고미숙 씨는 현대문명과 개인의 운명을 음양오행론으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7] 그의 책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욕망이 치솟는데(財星 과다) 이를 조직 내 인적관계의 형성(官星)을 통해 서로 배우고 가르쳐 주는 것(印星)이 바람직함에도[8] 현실은 그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바로 P교수의 사례에서도 술자리의 걸쭉한 입담으로 풀지 말고, 현대의 기업·기관 등 조직체들이 안고 있는 성차별, 양성갈등의 문제를 세미나를 통해 학문적으로 접근하였어야 했다. 그리 하였더라면 P교수는 더욱 존경 받는 대학자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들어 빈발하는 각종 스캔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날의 대중문화는 ‘섹시’ 컨셉에 그치지 않고 ‘에로스’를 돈으로 환산하여 거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를 官星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財星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회 도처에서 부도덕한 스캔들과 성폭력 같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9] 현대 문명의 섹스 코드가 돈벌이에 이용되다 보니 줏대 없는 남자들은 그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여기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어느 해보다도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2016년 여름에는 사회지도층 인사의 성범죄 사건이 잇따랐다. 혹자는 최근 들어 이런 사건이 크게 늘었다기보다는 종전에는 쉬쉬 하고 넘어갈 일들이 소소한 사건을 탐지해서 널리 전파하는 SNS의 보급과 더욱 촘촘해진 처벌 법규정 때문에 급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들 사건이 거의 예외 없이 사건 무마 조이든 대가관계이든 돈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방에 널려 있는 섹시 컨셉을 돈으로 거래하지 말고 官星이 시사하는 조직, 규범, 관계로 풀어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해 보인다.

 

요컨대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인격신과의 조우’를 통해 우리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인생의 고비에서 운명적으로 체념하지 말고 비록 우연이라도 좋으니 좋은 관계와 인연을 맺으며 가장 선한 것, 진실된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탁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 것이다. 필자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신념을 지니고 살아왔던 것 같다.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과 먼 길을 가시던 예수님이 사마리아 지방의 수가성(북이스라엘의 수도)에 들르셨는데 제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흩어졌다. 우물가에 홀로 남으신 예수님은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대낮에 물을 길러 나온 여인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의 처지를 간파하시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고 제안하셨다. 이 말씀을 받아들인 그녀는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드센 여자’였음에도 예수님의 진실된 말씀을 듣고 그 동안의 삶이 ‘순화’되어 그때부터 복음을 전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였던 것이다.[10]

Note

1] 이 글은 필자의 중학교 동창 김영택의 개인문집 (2016. 10.)에 수록된 수필이다.

2] 고교 입시에서 떨어진 필자는 大光高의 존재도 몰랐으나 그날따라 집에서 쉬고 있던 형님이 대학 동창을 예로 들며 집에서 가까운 미션 스쿨을 적극 추천하셨다. 은행을 다니게 된 것도 사법시험에 연거푸 고배를 들고 의기소침해 있던 필자에게 대학선배가 전화를 해준 데서 비롯되었다. 취업 시즌이 아님에도 무시험 면접전형의 찬스를 귀띔해줘서 잠시만 다니기로 한 것이 평생직장이 되었다. 대학교수가 된 것은 더 극적이다. 직장의 학술연수를 다녀와 전문서를 출간하였는데 우연히 그 책의 서평을 읽은 그 대학교수가 강의를 제안하여 법무대학원에서 매학기(야간수업) 시간강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도교수의 권유로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학위를 받자마자 전공교수들의 추천으로 공채의 기회를 얻게 되어 학자로 변신할 수 있었다.

3] TV에 여과 없이 방송이 된 P교수의 발언 중에는 “천하의 P아무개 애인이 됐다는 건 조상의 음덕인 줄 알아라”는 말도 있었다. 평소 그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는지 의식세계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4] 사주로 운명을 감정하는 것은 점치는 것과 다르다. “음양오행에 입각하여 자기 또는 타인의 운명의 사용설명서를 읽는 것”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5] 서양에서도 점성술보다 상세한 분석이 가능한 ‘바지’(八字)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는 사주팔자론(四柱推命學)을 Wikipedia식 한국의 법률·문화 백과사전인 KoreanLII영어로 설명해 놓았다.

6] 우리나라에도 삼사십년도 넘는 오래 전에 주역을 풀이하여 현대 사회상을 내다보신 분이 있다. 바로 탄허 스님이다. 탄허록(呑虛錄, 휴출판사, 2012, 44∼55쪽)을 보면 미구에 “여자들이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몸을 노출하고 다니는 것처럼 지구도 적나라(赤裸裸)하게 변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SNS의 유행을 내다보고 “사람들과 휩쓸리지 말고 무리지어 잡담하지 말라”고 경계하셨으며, 이럴 때일수록 “뜻은 항상 고상하게, 그리고 지조는 굳게 가져라”고 당부하셨다. 그리하면 “한국에서 세계인류를 구출할 정신문화가 일어나 꽃을 피울 것”이라는 가슴 벅찬 예언을 남기셨다. 무엇보다도 세상에 많이 알려진 것은 “제천의 월악산(月岳山) 영봉 위로 달이 뜨고 이 달빛이 [1983년 완공된 충주댐] 물에 비치고 나면 30년쯤 후에 여자 임금이 나타나고 그리고 3∼4년 있다가 통일이 된다”는 예언(조용헌, "월악산의 통일예언",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971, 2015.1.5.)일 것이다.

 

7] 고미숙,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인문학, 사주명리를 만나다, 북드라망, 2014.11, 207-209쪽.

8] 재물(財), 벼슬(官), 학력(印) 삼박자를 갖추면 상팔자이다. 재관인은 돌고 돌아야 하는데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재물이 많으면 벼슬을 살 수 있다(財生官). 재벌 기업이 퇴직한 고위 관료들을 모으는 것과 같다. 반면 학력이 너무 높으면 사업을 못한다(印綬破財). 창업자는 학력이 낮고 그 밑에 있는 참모는 학력이 높아야 궁합이 맞다. 그러나 학자가 재물을 탐하면 학문이 어그러진다(貪財壞印). 인수가 너무 많아도 지혜가 무디어진다. 고학력 60대 이상의 부모(인수) 35%가 자녀를 부양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한국 사회는 지금 인수(학력) 과잉 상태이다. 명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등학교만 마치게 하고 취업전선에 보내거나, 자식을 3명 이상 낳는 등 간벌을 해야 한다. 조용헌, “財官印", 조선일보 2015.12.7.

9] 고미숙, 앞의 책, 222쪽.

10] 요한복음 제4장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앗수르는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를 지우기 위해 혼혈정책을 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순수혈통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결과 여호와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는 혼합종교를 믿게 되었다. 다섯 남자와 살았던 수가성의 여인은 여러 신을 의지하면서도 만족을 찾지 못하던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