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봉 박씨 行祚 할아버지 자손들의 살아온 이야기

못 다 이룬 꿈 (박훤일)

댓글 0

집안 내력

2020. 8. 15.

나이 드신 아버지(박내옥)는 약주가 거나해지면 시조 창을 하셨다.

그 덕에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청산리 벽계수야 …”[1] 시조를 따라 읊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가 내가 쓴 일기를 읽어보시고선 “문학적 소질이 있어 보인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사실 교내외 백일장 대회에 나가 여러 차례 상을 받기도 했거니와 아버지의 말씀이 내 평생 보고서든 논문이든 수필이든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버지의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은 팔순기념문집에 실려 있는 다음의 시조이다.

 

초로(草露) 인생

                                                   박 내 옥

삼각산(三角山)[2] 네 모습은 예나 다름 없건마는
내 홍안(紅顔) 간 데 없고 백발(白髮)만 흩날리네
초로(草露)의 삶이 뭔지 이제야 알까 하노라

 

* 아버지가 즐겨 오르셨던 북한산의 세 봉우리이다.

우리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전주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의학전문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할아버지가 일언지하에 “안 돼”하셔서 집안 사정을 잘 아는 효자 아들은 그만 꿈을 접으셨다고 한다.

 

후일 전북약품회사에 근무하실 때 전북 지역의 약사들을 상대로 일하시면서 약국을 차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꿈을 막내딸(박경희)이 이화여대 약학대학을 나와서 제약회사에 들어가고 약학박사 막내사위(전 충남대 권광일 교수)를 얻으시는 것으로 이루셨다. 2020년 초 우리 맏며느리(김나형)가 강남 중심부에 약국을 열었을 때에도 하늘나라에 계신 할아버지가 기뻐하실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대신하였다.

 

이번에 전자족보를 모바일 환경으로 새로 개편(2020.  8. 15)하면서 우리 집안의 가풍(家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升자在자 할아버지는 풍류를 좋아하시고 경향 각지로 다니면서, 대부분 실패로 끝났지만, 여러가지 사업을 펼치셨다고 한다. 그러니 자손들 중에도 그 기질(DNA)이 일부 전해져 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볼 수 있다. 지금은 '예능(藝能) 만발' 시대라 하지만 아직 연예계로 진출한 할아버지의 자손은 아직 보지 못했다.

 

필자는 정년퇴직 후인 2019년 중국 강남 이남의 고장을 다니면서 이백, 두보, 백거이의 시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평생직업으로서 공부했던 법학이나 금융경제는 정년을 맞으며 그 시효를 다했으나, 한시(唐詩)와 주자학의 본향에서는 천년의 세월도 무색하게 문사철(文史哲)이 살아 숨쉼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일행들과 식사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즉석에서 17음절의 단시(短詩)를 읊조리게 되었다. 그동안 틈틈이 하이쿠(俳句)를 써보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무조건 짧게 그날 보았던 풍경과 감흥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쳤을 때에는 나도 [하이쿠] 시인으로 데뷔해볼까 마음 먹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아래 보듯이 3개의 주제를 놓고 우리말과 영어로 된 17음절의 단시를 4연씩 모두 12연을 남길 수 있었다.

다만, 하이쿠 짓기가 성행하는 일본에서도 하이쿠는 수백 편의 다작(多作)을 통해 한두 작품을 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일단 많이 써볼 작정이다. 이에 따라 후일 옥석(玉石)을 가릴 요량으로 그때그때 떠오르는 시상을 필자가 따로 관리하는 웹사이트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

 

* 2019년 5월 무이구곡의 옥녀봉 아래로 대나무 뗏목 선유를 즐겼다.

무이산 구곡계류 주희(朱熹) 선생이 노니시던 곳
대나무 뗏목 타고 물결 흐름에 몸을 맡기네
공맹(孔孟)의 고담준론 넘치게 듣고 찾아 왔건만
성리학 말씀보다 옥녀봉(玉女峯) 자태 눈길이 가네
[3]

In the Mu-i valley where
Zhu Xi taught and studied Confucianism,
tourists are joyful with bamboo cruise
in the creek along the Nine Curves.
Rather than hearing the thoughts and
morals of Confucius and Mencius,
they like to see the gorgeous landscape
and old legend in the valley.

 

무이산과 여산(廬山), 악록서원, 동정호수 악양루
수많은 시인묵객이 예찬했던 강남의 명승(名勝)
산천과 누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데
이곳에 드나들던 인걸(人傑)은 모두 어디로 갔나

So many mountains, valleys, lakes,
old pavilions and time-honored schools -
-called South-of-the-River hot places
have been praised by poets and painters.
Those mountains and valleys seem to
remain as before until this time.
But where are the artists and commoners
who visited these hot places?

 

이백(李白) 두보(杜甫)의 발자취 따라 강남땅을 거닐 때
천 년 전 고선지(高仙芝)가 드날렸던 한국인의 기상(氣像)
천하무적(天下無敵) 용맹도 나라가 망하니 추풍낙엽
대국(大國) 앞에서는 역사도 냉엄(冷嚴)함을 일깨우네

When I followed the footsteps of
Lee Bai, Du Fu and other artists,
I noticed the enterprise of
General Koh Seon-ji overwhelmed this land.
As his homeland perished thousand years ago,
the Hero couldn’t survive.
The history proved decisive
in relation to Superpower.

Note

1] 널리 알려진 대로 위선적인 유학자 벽계수를 유혹하기 위해 황진이가 노래한 시조이다.

 

청산리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You, Clean Creek in the blue mountains,
are proud of rapid flowing.
Once you go into the ocean,
you will never return.
Look at that full moon in the sky.
How about taking a rest with me?

 

2] 서울 북쪽 북한산의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87.0m) 새 봉우리를 일컫는 말이다.

한양을 새 왕조의 도읍지로 정한 조선은 삼각산을 중시했다. 삼각산은 인수·백운·만경 세 봉우리가 깎아 세운 듯 우뚝 솟은 모양이 세 뿔과 같아서 "용이 서리고 범이 웅크리고 있는 (용반호거/龍盤虎踞) 형세"라고 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 “용반호거의 땅에서 제왕이 나온다(제왕지지/帝王之地)”고 촉나라 승상으로 풍수에 능했던 제갈량은 말했다. 쪼개진 바위가 아니라 거대한 암괴 그 자체다. 바위는 강력한 권력의 기운을 준다. 왕권 강화가 목적이었던 조선 왕조를 지켜 줄 진산으로 손색이 없었다. 반면 조선을 멸망시킨 일제로서는 삼각산 지위를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국도(國都)가 아닌 경기도 땅으로 격하시키는 일종의 ‘풍수 침략’을 감행했다.

삼각산은 맑고 밝아 멀리까지 그 양명한 기운을 발산한다. 화산(華山, 화려한 산)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바위로만 된 산이다 보니 수기(水氣)가 부족한 반면 화기(火氣)가 강하다. 불꽃처럼 위로 치솟는 산이다. 불[火]은 타오르면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해준다. ‘주역’에서 불을 문화·문명으로 상징하는 이유다. 세계를 휩쓰는 K컬처가 서울을 중심으로 떨쳐 일어난 것도 삼각산 정기 덕분이다. 지금 우리에게 삼각산이 더 중요한 이유다. 김두규의 국운풍수, "세계 휩쓰는 K컬처... 불꽃처럼 치솟는 ‘삼각산’의 정기 덕분", 조선일보, 2021. 4. 10.

 

3] 중국 무이산의 주희가 세운 무이정사 안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화와 그의 저작, 도산서원 사진이 걸려 있다. 성리학(性理學, Neo-Confucianism)이 우리나라에 끼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이구곡을 본떠 퇴계는 고향 안동에 도산서원을 만들고 도산구곡을 노래했다.

 

* 중국 무이산에 있는 무이정사와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이퇴계의 도산서원 소개 전시물

'집안 내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외 유학  (0) 2020.08.15
초상 사진  (0) 2020.08.15
못 다 이룬 꿈 (박훤일)  (0) 2020.08.15
성경적 효(孝)의 개념  (0) 2020.08.15
가풍(家風)  (0) 2020.08.15
대가족 사진  (0) 202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