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추억 (박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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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020. 8. 16.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혜영 동덕여대 명예교수(여섯째집 장녀)가 디지털 족보 [운봉박씨 이야기] 개편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에세이를 기고하였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산골 가난한 집안 아홉 남매 중 막내였던 아버지는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꿈과 능력을 펼치지 못한 불운한 세대였다. 일본 유학 중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내 조국의 전쟁이 아닌 일본의 전쟁에 끌려간 한 많은 식민지 청년이었고, 해방 후에는 6.25 전쟁으로 신혼 1년 만에 아내와 갓 낳은 아들을 뒤로 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군대로 떠난 젊은 가장이셨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이야기, 6.25 전쟁 때 이야기를 우리들에게는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 침묵이 아버지의 큰 상처를 말해주는 것이었음을 정년의 나이가 된 지금 깨닫는다.

 

내 기억에 새겨진 아버지는 감수성이 풍부한,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고 다정한 모습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버지는 앞마당과 뒷마당 한 구석에 화단을 만드셨다. 봄이 오면 해바라기, 분꽃, 나팔꽃, 봉숭아, 채송화 등 씨를 뿌리셨다. 화려한 칸나와 더불어 수세미도 잊지 않으셨다. 여름이 다가오면 나팔꽃과 수세미 넝쿨이 기어올라가도록 노끈을 엮어 길게 담장에 매어 놓으셨다. 아침이면 반짝이는 잎들과 갓 핀 꽃들을 보러 마당에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꽃이 만발한 화단 앞에서 딸들을 세워놓고 아버지가 찍어주셨던 사진 한 장이 눈에 선하다.

 

또 아버지는 집안에서 십자매, 문조, 잉꼬, 카나리아 등이 저마다 다른 음색으로 지저귀는 새들을 키우셨다. 자연부화가 어려운 잉꼬의 알은 알 낳은 십자매 둥지에 함께 살짝 넣어서 같이 부화시키시던 아버지 모습도 기억난다. 새들이 알을 잘 낳도록 아버지는 특별식을 만들어주시곤 하셨다. 좁쌀에다가 계란 노른자를 입혀 말린 그 영양식 덕분인지 십자매는 자주 둥지에 알을 낳았다. 며칠 후 어미새가 모이를 물고 둥지에 들어가면 갓 부화한 깃털도 없는 발그스레한 새끼들이 입을 크게 벌리던 모습도 기억에 새겨져있다.

 

며칠에 한 번씩 새장 바닥에 깔아준 모래 위 똥을 치우고 포실포실하게 햇볕에 말린 모래로 갈아주는 일, 매일 모이통에 모이를 넣어주고, 상추, 배추 몇 이파리를 물을 반쯤 담은 길쭉한 통에 꽂아 넣어주고, 새 목욕탕에 물을 갈아주는 일은 나의 숙제였다. 새들이 목욕통 속에 부리를 담구었다가 고개를 쳐들면서 푸드득 푸드득 날개를 퍼득이며 목욕하고, 신선한 채소를 부지런히 쪼아먹고, 좁쌀 껍질을 날리면서 모이를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귀찮은 숙제 후의 질리지 않는 기쁨이었다.

 

새와 화초와 더불어 떠오르는 그리운 아버지의 추억은 아버지께서 어린 딸들을 나란히 앉혀놓고서 동화를 읽어주시던 모습이다. 어릴 적부터 문학을 좋아하던 내가 프랑스 문학으로 유학을 하고 교수가 된 것도 아버지 영향인 것 같다. 경성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 전쟁 상황 때문에 일본 유학을 못 가시고 교직에 종사하던 어머니의 이화여고 시절 성적까지 확인하고 결혼하셨다던 아버지는 그리 똑똑하던 어머니도 가정주부 역할만 하니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여 안타깝더라면서 대학생이던 나에게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결혼 전에 다 하도록 해라, 하고 싶은 공부는 어디까지든 다 밀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공부 잘해라, 열심히 해라고 말씀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던 아버지셨다. 공부와 관련된 소중한 아버지 추억들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전날. 첫 등교 전날 저녁 아버지는 새 연필들을 사서 직접 예쁘게 깎아서 가지런히 새 필통 가득 채워주셨다. 그날 밤 그 필통을 눈부시게 바라보던 나.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거의 중, 고교 시절까지 해마다 3월 개학 전 주말의 추억. 종이도 귀하던 그 시절 빳빳한 달력을 뒤집어서 하얀 면으로 모든 자식들의 교과서를 정갈하게 아버지는 직접 싸주셨고, 겉표지에는 국어, 산수, 사회생활이라고 붓글씨로 써주셨다. 중, 고교시절에도 아버지는 우리가 포장한 교과서 겉면을 붓글씨로 써주셨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흠잡을 데 없는 필체여서 친구들이 인쇄한 것이냐고 묻기도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파트 앞 베란다에서 꽃향기가 그윽한 라일락, 자스민과 더불어 벤자민, 부겐벨리아, 풍란, 고무나무 등에 물을 주고 꽃을 바라보는 것을 소중한 힐링타임으로 여기는 내 모습에서 나는 언뜻언뜻 아버지의 모습을 읽는다. 30년 넘은 벤자민이 싱싱하고, 20년 넘은 자스민, 10년 넘은 부겐벨리아가 해마다 꽃이 피어 스스로 ‘초록 엄지’ 혹은 ‘초록 손’ [1]으로 자부하는 내 취미에는 아버지의 섬세한 교육이 살아 있다. 나는 항상 어린 시절처럼 카나리아 소리를 들으며 아침 잠깨는 것을 꿈꾸어왔다. 교수로서 바쁜 일상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소소한 꿈 한 가지를 정년퇴임을 한 이제 실현해 볼까 생각하며 그리운 아버지의 추억에 젖어본다.

 

2020.  8. 15

Note

1] 화초를 잘 키우는 사람을 영어로 'green thumb', 프랑스어로는 'la main verte'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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