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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 박씨 行祚 할아버지 자손들의 살아온 이야기

가족 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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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내력

2020. 8. 15.

오늘날 운봉 박씨 자손들은 한국은 물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지리산록의 운봉읍 서천리 161번지이며, 역대 조상의 산소가 운봉읍 용산리와 신기리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상의 뿌리

운봉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도 당일로 성묘를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만 해도 성묘 다녀온 지가 오래 되어 2002년 늦여름의 태풍으로 운봉이 수해를 겪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조상의 산소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승재(升자在자) 할아버지·할머니의 산소는 운봉 읍내가 바라다보이는 용산리에 나란히 있었는데 그 위에 제방이 건조되면서 최근 안전한 곳으로 이장하였다. 용산리 동네 동쪽에 행조(行祚) 할아버지·할머니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에 61세손인 기옥(琪玉) 공, 화옥(華玉) 공 형제의 산소가 붙어 있으며 거기서 동쪽으로 좀 떨어진 고지대에 주옥(湊玉) 공의 묘소가 있다.

57세조인 술증(述曾) 공은 3형제중 막내로서 38세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산소는 신기리에 있다. 그 할머님(김해 金氏)은 둘째 아들 문영(文瑛) 공을 해산하자마자 돌아가셨는데 스물하나의 꽃다운 나이셨다. 참 미인이셨을 뿐만 아니라 가막재 묘자리가 아주 좋아 박씨 집안 후손들의 인물이 한결같이 곱고 번듯하다고 한다.

* 조부님 모시고 나들이 나선 장손 박섭용 내외

승재(升在) 공은 본래 59대조 경조(景祚) 공의 셋째 아드님이었다. 그러나 그 사촌 술증(述曾) 공의 차남인 문영(文瑛) 공의 아들인 行祚(행조) 할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없어 할머니(전주 李氏)가 업어다 키우시면서 온갖 정성을 기울이셨다고 한다. 이 할머니가 아이를 업었을 때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고 하신다. 지금도 전해오기를 이 할머니는 손자들 생일만 되면 새벽에 목욕재계하시고 자손이 잘되기를 정성을 다해 기원하셨다고 한다.

 

1920년대만 해도 운봉 박씨 집안에는 타고난 부자가 두루 많았으나 우리 집안만큼은 신학문(新學問)에 열심을 보여 대조적이었다. 행조(行祚) 할아버지는 몸소 개화기에 운봉초등학교의 전신인 만성(晩成)소학교라는 사립학교를 세우셨다. 그후 사회혼란과 토지개혁으로 전통적인 부자 계급은 몰락하고 말았으나 교육을 많이 시킨 우리 집안에는 관계, 학계로 나간 인사가 많았으니 교육만이 가문을 일으킬 수 있음을 절감케 된다.

 

운봉 마을도 1970년대 이후 새마을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많이 변모되었다. 우리 집안에서는 큰집의 향선(香先)이만이 옛날 할아버님 때부터 살아온 집을 지키고 있을 뿐 대부분 연고관계를 상실하였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됨에 따라 모두 대처(大處)로 나가 성공하고 살아야 하니 이를 탓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모름지기 고향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1]

운봉의 선영

전통적으로 좋은 자리에 조상의 묘를 써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동기감응론(同氣感應論)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를테면 조상의 유골(遺骨)이 좋은 환경에 있으면 좋은 기를 발산하여 그 기운이 통하는 자손이 좋은 기를 받고, 나쁜 환경에 있으면 나쁜 기를 발산하여 자손이 나쁜 기를 받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동기감응은 나이가 어릴수록 많이 받고, 나이가 들면 적게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발음론(發蔭論)의 구체적 해석이다. 그런데 화장을 하면 자손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유골 고유의 에너지는 파괴되어 없어지므로 좋은 자리를 찾을 수 없는 바에야 차라리 화장을 하는 것이 조상유골이나 자손에게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survived by) 자손들로서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무언의 상담을 청하고 싶고, 많은 사례가 들려주는 것처럼 기사회생, 인생역전의 기회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고향에 부모님의 산소를 모셨다면 한식과 추석에 정기적으로 성묘를 하고 잔디를 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을사람들로부터 "명당자리면 뭘 해. 산소 위에 잡초만 무성한데"하고 빈축을 사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운봉면 서천리(雲峰面 西川里)는 오랫동안 운봉 박씨(朴氏)의 집성촌이었다. 운봉에서는 한 때 1만5천명이 넘었던 인구가 감소하여 5-6천명에 불과한 가운데 박씨 집안 후손들도 다수가 대처(大處)로 떠나고 현재 35가구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비록 타성받이 타향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운봉은 대대로 조상이 살았고 선영(先塋)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2002년 늦여름 태풍 때 운봉 수리조합의 제방이 무너져 그 아래 있던 조부님의 산소가 수해를 입는 바람에 이장(移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부님의 묘소는 고조부님의 산소 바로 아래에 모셨다. 주변에는 그 사이에 돌아가신 백부모님들의 산소가 있어서 산 하나에 모두 열두 분의 묘소가 집중되어 있는 셈이다.

다만, 산소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우리 부모님(萊玉公)과 두 분 숙부님(基丞公, 圭烘公)의 산소는 서울에 가까운 공원묘지에 모셨다.

 

2005년 5월 초 운봉의 뒷산인 지리산 다래봉(1165m)에서 철쭉 축제가 벌어질 때 선영의 관리를 전담하시는 장손 燮鏞 형님을 모시고 조상의 묘소를 찾았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성묘를 해야 할 조상의 묘소는 다음과 같다.[2]

 

▶ 57세조 述曾(술증)公 및 김해 金氏의 묘: 서천리의 북쪽인 신기리에 소재함

▶ 58세조 文瑛(문영)公 및 남원 晉氏의 묘(합묘): 서천리의 남동쪽인 용산리에 있음

▶ 59세조 行祚(행조)公 및 전주 李氏의 묘: 용산리 文瑛公의 묘소의 오른편 아래에 10여m 떨어져 있음

▶ 60세조 壬淳(개명후 升在)公 및 안동 金氏의 묘: 본래 景祚公의 3남으로 그의 사촌인 行祚公에 입양되었으며, 슬하에 6남 3녀를 두었음. 文瑛公의 묘소 아래에 자리하고 있음

▶ 61세 湊玉(주옥)公과 파평 尹氏: 두 분 산소는 500m 떨어져 있음 琪玉(기옥)公 및 영천 李氏, 華玉(화옥)公 및 파평 尹氏의 묘: 두 분은 쌍둥이 형제로서 묘소도 마주보는 자리에 있음

찾아가는 길

서울에서 운봉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 코스가 있다.

일단 경부고속도로로 내려가다가 하나는 대전을 지나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해서 함양까지 간 후 88올림픽도로의 광주 방면으로 진행하여 인월 나들목에서 남원방면 국도를 타는 것이다. 3시간 20분 소요.

다른 하나는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해 전주(익산) 나들목에서 나와 남원으로 가는 코스이다. 중간에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통행료 부담은 있지만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 귀로에 이 코스를 이용하면 전주(신리) 죽림온천(063-232-8832)에서 온천욕을 하며 장거리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막히지 않으면 3시간 50분 소요.

 

선영 진입로는 운봉 읍내에서 바래봉 축산단지로 가는 길목인 용산리에 있다. 포장이 잘 되어 있는 2차선 도로를 따라가면 춘향이 허브마을 표지가 붙어 있는 정자가 나온다. 정자를 왼편으로 하고 진행방향을 따라 좁은 길로 접어들면 운봉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자그마한 야산들이 나온다.

벼를 심은 계곡을 오른 편으로 하고 산길로 올라가면 좌우의 백부님들 산소를 지나 고조부님(文瑛公)과 조부님(升在公)의 산소를 모신 선영의 입구가 나온다. 증조부님(行祚公)의 산소는 조금 떨어진 왼편에 있다. 그리고 첫째 백부님(湊玉公)의 산소는 소나무 숲 앞에 차를 세우고 10분쯤 위로 올라가면 된다.

현조부님(述曾公)의 산소는 신기리에 있다. 운봉에서 인월 쪽으로 가다가 이성계의 황산대첩비가 있는 비전마을 못 미쳐 신기리 마을로 접어든다. 1km 쯤 진행한 후 소나무 숲이 아름답게 우거진 야산의 입구 쪽에 자리잡고 있다.

Note

1] 박내옥 팔순기념문집, [아버지 朴萊玉의 八十平生], 1992.

2] 박훤일, "여행기 - 성묘", 국제거래법포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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