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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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아버지의 추억 (박혜영)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혜영 동덕여대 명예교수(여섯째집 장녀)가 디지털 족보 [운봉박씨 이야기] 개편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은 에세이를 기고하였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산골 가난한 집안 아홉 남매 중 막내였던 아버지는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꿈과 능력을 펼치지 못한 불운한 세대였다. 일본 유학 중 학업을 지속하지 못하고 내 조국의 전쟁이 아닌 일본의 전쟁에 끌려간 한 많은 식민지 청년이었고, 해방 후에는 6.25 전쟁으로 신혼 1년 만에 아내와 갓 낳은 아들을 뒤로 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군대로 떠난 젊은 가장이셨다.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이야기, 6.25 전쟁 때 이야기를 우리들에게는 거의 하지 않으셨다. 그 침묵이 아버지의 큰 상처를 말해주는 것이었음을 정년의 나이가 된 지금 깨..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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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남도여행 (박훤일)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일(朴烜日, 1953 - )은 2013년 초 3박 4일의 회갑 기념 형제들과의 남도여행을 하였다. 학자로서 화갑(華甲)기념논문집을 만드는 대신 형제, 자매들과 함께 고향인 전주를 비롯하여 남도로 회갑(回甲)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매달 한 번씩 모이는 형제들의 점심식사 모임을 확대하여 마침 한국에 다니러 오신 누님 내외를 포함한 모든 식구들을 초대하였다. 개인사정이 있는 분을 제외하니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9명이 되었다. 왼쪽부터 김민홍, 김삼중, 은희, 정희, 경희, 숙희, 태용, 김혜경, 훤일 형제들과 함께 한 남도 맛 기행 아래의 여행기[1]는 필자의 블로그에서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첫째날 (2013.1.18 금) 금요일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각기 편리한 대로 ..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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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산사소풍

산사 (山寺)는 불자가 아니더라도 오래 전부터 기분전환 삼아 즐겨 찾는 곳이었다. 비교적 멀리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적당한 높이의 등산을 한 다음 약수로 목을 축이는 것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놀러갈 곳도 많지만 예전에는 곧잘 산사(山寺)로 원족(遠足)을 가곤 하였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 고려 말 나옹 선사 지음 1974년 여름이 거의 끝나가는 9월 초에 산사로 소풍을 갔다. 넷째집 박훤용의 아내 김미자가 집안의 어머님들과 고모님들을 모시고 미국으로의 이민을 준비 중인 박섭용 형수의 송별회를 겸하여 서울 근교의 산사[1]로 소풍을 간 것이다. 참석자는 사진 왼쪽부터 훤용형수와..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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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일여 박의수

일여 박의수 (一如 朴義洙)는 박혁거세 61세손 박태임의 바깥사돈이다. 장녀 박영선(朴瑛善, 1941∼ )이 박태임의 장남 김중기(金重起, 1936∼ )와 결혼하여 기수, 경호를 두었다. 일여 선생은 1958년 상경 후 그의 호를 딴 한의원을 서울 인사동에 개설하였다가 1966년에 영등포구 구로동으로 이전하였다. 일여 선생은 특히 위장병과 부인병에 있어 명의로 소문이 났다.[1] 일여 선생은 무엇보다도 가전비방(家傳秘方)을 발굴 수집하고 이를 널리 공유하고자 노력했던 한의학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경희대 한의과대학의 김남일 의사학교수가 기록한 일여 선생의 업적이다.[2] 일여 선생의 업적 일여 박의수(一如 朴義洙)는 전북 출신으로 1908년에 태어났다. 1928년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을 중퇴..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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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박태임

박태임 (朴太任, 1915.6.18 ∼ 2011.9.13 음8.16) 은 박혁거세 왕의 61세손이다. 박승재 님과 안동 김씨의 9남매 중 둘째딸로 태어나 1935년 전주고등보통학교를 나온 김형귀(金瀅槶) 님과 혼례를 올리셨다. 슬하에 중기 (1936∼ ), 양기 (1939∼2017. 2.11) 두 아들을 두고 일찍이 홀로 되셨다. 그러나 평생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지내셨으며 2011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구로동에서 일여당 한의원을 하였던 일여 박의수가 장남 중기의 장인으로 바깥사돈이 된다. 고모님과의 추억 조카(박훤일)로서 고인[1]의 모든 면을 낱낱이 적을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 세상에서 활동하셨다면 어떠하셨을까 상상해보는 것으로 추모사에 갈음하고자 한..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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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해외출장 (박기승)

우리나라가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할 때까지 일반 국민은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니 해외이민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누가 해외유학이라도 떠날라치면 일가친척이 김포공항에 나가 송영대에서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곤 하였다. 지금은 이웃 마실 다니듯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국제수지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정부가 해외여행을 자유화할 때까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1] 하지만 다섯째집 박기승 님은 예외였다. 농림부와 토지개량조합연합회 공직에 계실 때에도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시곤 하였는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근무하실 때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태국 방콕을 거점으로 FAO 본부가 있는 이태리 로마는 물론 세계 각지로 출장여..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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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박기승

박혁거세왕 61세손 박기승 (朴基丞)은 1918년 12월 9일 전라북도 남원군 운봉에서 태어나 1992년 12월 23일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1937년 익산농업고동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생명과학대)를 졸업하신 후 농림부 양정국장을 역임하셨다. 그 후 토지개량조합연합회 부회장, 지하수개발공사(현 농업진흥공사) 부사장,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관개(irrigation) 전문가, 한국해외개발기술공사 고문 등으로 활동하셨다. 업 적 제3공화국에서 농업용수를 개발할 때 지하수 개발은 영속적일 수 없으므로 다목적 댐을 만들고 관개(灌漑)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가뭄을 걱정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지하수 관정(管井)을 뚫어 단..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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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등 열차표 (박훤일)

2등 열차표를 샀다면 목적지까지 당연히 2등칸을 타고 가야 한다. 예순이 넘어서 지난 생애를 돌이켜 보니 나는 2등 열차표를 사가지고 1등칸에서 편하게 여행을 해왔던 것같다. 나의 재능이나 실력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복을 누리고 살았다.[1] 경제학에서는 소비자의 만족도(효용)가 그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큰 것을 소비자잉여(consumer's surplus)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Amazing Grace)로 그 많은 잉여를 누려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남은 생애는 미처 내지 못한 승차요금을 지불하듯이 나누고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믿음이 뜨뜻미지근할 적에 실제로 2등 열차표를 들고 1등칸에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