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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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해외출장 (박기승)

우리나라가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할 때까지 일반 국민은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니 해외이민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누가 해외유학이라도 떠날라치면 일가친척이 김포공항에 나가 송영대에서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하곤 하였다. 지금은 이웃 마실 다니듯이 해외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국제수지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정부가 해외여행을 자유화할 때까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1] 하지만 다섯째집 박기승 님은 예외였다. 농림부와 토지개량조합연합회 공직에 계실 때에도 해외출장을 많이 다니시곤 하였는데,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서 근무하실 때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가 있는 태국 방콕을 거점으로 FAO 본부가 있는 이태리 로마는 물론 세계 각지로 출장여..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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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박기승

박혁거세왕 61세손 박기승 (朴基丞)은 1918년 12월 9일 전라북도 남원군 운봉에서 태어나 1992년 12월 23일 갑자기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1937년 익산농업고동학교를 졸업하고 1940년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 농생명과학대)를 졸업하신 후 농림부 양정국장을 역임하셨다. 그 후 토지개량조합연합회 부회장, 지하수개발공사(현 농업진흥공사) 부사장,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관개(irrigation) 전문가, 한국해외개발기술공사 고문 등으로 활동하셨다. 업 적 제3공화국에서 농업용수를 개발할 때 지하수 개발은 영속적일 수 없으므로 다목적 댐을 만들고 관개(灌漑) 방식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가뭄을 걱정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지하수 관정(管井)을 뚫어 단..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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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2등 열차표 (박훤일)

2등 열차표를 샀다면 목적지까지 당연히 2등칸을 타고 가야 한다. 예순이 넘어서 지난 생애를 돌이켜 보니 나는 2등 열차표를 사가지고 1등칸에서 편하게 여행을 해왔던 것같다. 나의 재능이나 실력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복을 누리고 살았다.[1] 경제학에서는 소비자의 만족도(효용)가 그가 지불한 가격에 비해 큰 것을 소비자잉여(consumer's surplus)라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Amazing Grace)로 그 많은 잉여를 누려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남은 생애는 미처 내지 못한 승차요금을 지불하듯이 나누고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크리스천으로서의 믿음이 뜨뜻미지근할 적에 실제로 2등 열차표를 들고 1등칸에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크리스..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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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아버지의 초상 (박훤일)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일 (朴烜日, 1953 - )은 박내옥-은성덕의 4남으로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교대부속초등학교, 전주북중학교[1]를 다녔고, 서울 대광고등학교[2]를 마치고 1971년 곧바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였으며, 몇 차례 사법시험에 고배를 든 후 1977년 말 한국산업은행에 들어갔다. 은행에서는 주로 국제금융부와 조사부에서 근무하였는데 88 올림픽 직후 3년간 미국 뉴욕에서 주재원 근무를 하였다. 1986년 네덜란드 정부의 펠로우십을 받아 암스테르담 대학교에서 유럽통합과정(ICEI)을 공부하고, 다시 1993년 미국 댈러스 소재 서던메쏘디스트대학(SMU) 로스쿨에 유학하였다. 1996년 봄부터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야간)에서 매학기 국제거래법을 강의하다..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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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이홍구

박혁거세 왕의 62세손서 이홍구 (李洪九, 1938 - 2003)는 1938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2003년 10월 1일 세상을 떠났다. 1962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주)동원에서 석탄 등 자원개발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였다. 1966년 박내옥 (朴萊玉)의 차녀 박숙희(朴淑姬)와 결혼하여 3남 1녀 (남석, 영섭, 상준, 현정)를 두었다. 장남 남석은 고인의 소망(所望)을 삼중으로 이루었다. 하나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했던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이고, 둘은 민완검사로서 대검찰청에서 근무한 것이고, 셋은 의뢰인들의 고충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형사 전문 변호사가 된 것이다. 그의 모친 역시 인생의 굴곡이 심했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나서 효성 많은 장남 곁에 살면서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다고 한..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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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박훤용

박혁거세 왕의 62세손 박훤용 (朴烜庸, 1939.8.5 ∼ )은 넷째집 박내옥-은성덕의 차남이다. 1939년 남원에서 태어나 전주북중학교,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다녔다. 1961년 학도병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1963년 중소기업은행에 들어가 계리과장을 역임한 후 공인회계사(CPA) 개업을 하였다. 1971년 전남 해남 출신의 사업가 김공칠(金公七)의 3녀 김미자(金尾子)와 결혼하여 정윤, 정민, 선민 세 딸을 두었다. 훤용 형님의 고희연 다음은 2008년 7월 26일 서울 COEX Asem Hall에서 열린 박훤용 형님의 고희연에서 필자가 하객들에게 소개한 오늘의 주인공에 얽힌 에피소드이다. 아래 사진에서 한복 입고 앉아 있는 부부가 이날의 주인공 부부이고, 그 가운데 앉아 있는 두 분은..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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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미국 여행기 (박내옥)

미국 여행기는 넷째집 박내옥 님이 1989년 봄 미국의 서부(LA)와 동부(뉴욕)을 여행하고 쓴 글이다. 평생을 회계 담당 '회사원'으로 근무하셨기에 마치 업무일지를 쓰듯이 보고 들은 사실을 기록하셨다. 당시의 생활상과 함께 미국에 이민을 간 자녀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1] * * *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캐치 프레이즈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였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우리 집안에도 세계로 눈을 돌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4남 훤일 군이 뉴욕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우리 가족의 세계진출 사실 그 전부터 아내가 세계지도를 벽에 걸어놓고 아이들이 나가 있는 곳을 표시하리 만큼 우리집은 상당히 ‘국제화’되어 있었다. 일찍이 1960년대 말부터 3남 훤장 군이 백마부대 용사로 ..

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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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이야기 편지 (박내옥)

박혁거세의 61세손 박내옥 (朴萊玉, 1912 - 1996)은 옆에서 지켜보았을 때 그야말로 '어머님 숭배자'이셨다. 젊어서부터 쭉 그렇게 살아오신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노년의 삶은 완전히 '아내를 위한, 아내에 의한' 것이었다. 평생 고생시킨 아내에 대한 안쓰러움의 자연스러운 결론이기도 하리라.[1] 아내에게 쓰는 편지 요즘 나는 팔순(八旬)에 즈음하여 당신이 아니었던들 내 인생이 어찌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고 있소.[2] 소심하고 성미 급한 나와는 달리 당신은 성질이 온유하고 말이 없으며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었소. 우리 생애의 고비마다 당신과 힘을 합쳤기에 4남 5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이만큼 여유있게 지난 생애를 돌이켜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소. 이것은 당신의 타고난 품성 뿐만 아니라 훌륭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