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2020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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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내력 가풍(家風)

어느 집안이고 가풍(家風)이 있게 마련이다. 일찍이 사재(私財)를 털어 근대식 학교를 설립하신 조상(行祚 할아버지, 오른쪽 사진)의 음덕으로 우리 집안은 대대로 신학문과 교육을 중시하는 가풍이 전해져 왔다. 2013년 8월 노구를 이끌고 미국에서 오신 섭용 형님은 아들 손자를 데리고 운봉 선영을 돌아보시고 숙부모님들의 성묘까지 마치신 후 LA로 가셨다. 섭용 형님은 사촌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집안의 가풍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셨다. "전라도 산골에 뿌리를 두고 비록 갑부(甲富) 소리 듣는 큰 부자가 나오진 않았지만, 우리 박씨 집안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물 좋고 머리 좋고 형제간 우애 있는 게 자랑이다. 이렇게 험한 세상에 어디 교도소에 간 사람이 있는가 보라." 사실 맞는 말씀이다. 필자(박훤일)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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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내력 대가족 사진

운봉 박씨 집안의 4대가 모처럼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이다. 升자在자 할아버지를 모시고 네 분의 아드님과 세 분의 따님이 그 자녀들과 함께 사진을 촬영하였다. 1967년 전주에서 거행된 김희자의 결혼식 장면으로[1] 특히 여섯 분의 며느리가 앞뒤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귀하고도 이채롭다. 앞줄 왼쪽부터, ( ) 안은 소속집안의 서열이며 가족구성은 초화면의 가계도를 참고하시오. 맨앞줄: 가운데 할아버지 옆으로 왼쪽부터 박경희(4남), 박훤겸(6남) 둘째줄: 박두일(2남), 김정혜(3녀), 박숙희(4남), 박내옥(4남), 박정혜(1녀), 박태임(2녀), 박중임(3녀), 박순남(1남) 셋째줄: 박기승(5남), 박규홍(6남), 박섭용과 박양선(1남), 박기옥(2남), 파평 윤씨(1남), 이규아(2남), 은성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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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내력 안동 김씨 (60世 손부)

안동 김씨(1883. 3.25 - 1947. 8. 5)는 박혁거세왕의 60세손 升자在자 할아버지의 정부인이다. 곡성 명문가(부 金容準)의 태생으로 升자在자 할아버지를 모시고 장남(湊玉)의 조력을 받아 슬하의 자녀를 잘 가르치시고 사실상 가세(家勢)를 크게 일으키셨다.[1] 할머니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전형으로서 살림을 주도하는 가운데 일가친척은 물론 원근 마을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아래 글은 그 어머니를 기리며 4남 박내옥이 생전에 올린 추모사이다.[2] 추모사 아버님, 어머님께 삼가 아뢰나이다. 오늘(음력 8월 5일)은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지 44년이 되는 날입니다. 어머님께서 세상을 뜨신 해는 8.15 조국 광복이 된지 2년째로 온 나라가 아직 혼란에 휩싸여 있을 때였습니다. 우리 9남매를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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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내력 가족 약사

오늘날 운봉 박씨 자손들은 한국은 물론 미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는 지리산록의 운봉읍 서천리 161번지이며, 역대 조상의 산소가 운봉읍 용산리와 신기리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조상의 뿌리 운봉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도 당일로 성묘를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만 해도 성묘 다녀온 지가 오래 되어 2002년 늦여름의 태풍으로 운봉이 수해를 겪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조상의 산소가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승재(升자在자) 할아버지·할머니의 산소는 운봉 읍내가 바라다보이는 용산리에 나란히 있었는데 그 위에 제방이 건조되면서 최근 안전한 곳으로 이장하였다. 용산리 동네 동쪽에 행조(行祚) 할아버지·할머니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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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운봉 황산대첩

황산대첩(荒山大捷)은 전라북도 운봉과 인월 사이의 황량한 산야로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의 대군을 무찔러 대승을 거둔 곳으로 유명하다. 왜구의 준동 일본은 왕조가 바뀌지 않고 천황이 만세일계(萬世一系)로 다스려 왔다고 하지만 중앙권력이 약해지면 지방의 세력이 발호하곤 하였다. 특히 해안지방의 무력집단은 먹을 것이 떨어지면 바다로 나가 해적이 되었고 중국과 한반도의 해안지방을 약탈하기 일쑤였다. 왜구(倭寇)의 준동은 13∼16세기 고려 말, 조선 초에 가장 심했는데 특히 1350년 이후 30여년간은 피해가 너무 큰 나머지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 왜구의 침입은 삼국시대에도 빈번하였으며 그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1] 왜구는 일본 남북조 혼란기의 남조 세력권에 있던 규슈(九州) 일대의 일본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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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운봉 운봉과 운봉 박씨

밀양박씨에서 갈라져 나온 운봉박씨가 어떻게 운봉에 터잡게 되었는지 역사기록을 통해 알아본다. 운봉 지명의 유래 운봉(雲峯)은 전라북도(全羅北道) 남원군(南原郡)에 위치한 지명(地名)으로 백두대간 지리산 동편의 고원분지에 위치하며, 읍내의 하천은 람천에 모여 동남쪽으로 흐른다. 동쪽에는 산내면, 남쪽은 주천면, 북쪽은 산동면, 서쪽은 이백면과 접하고 있다. 현재 읍 소재지인 서천리를 비롯한 주촌리ㆍ덕산리 등 17개 법정 리가 속해 있다. 『삼국사기지리지』(천령)에 의하면 본래 신라(新羅)의 무산현(毋山縣) 혹은 아영성(阿英城)ㆍ아막성 (阿莫城)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 때 운봉현(雲峯縣)으로 고쳐 천령군(天嶺郡)의 속현이 되었다. 『고려사지리지』(남원)에 "경덕왕이 천령군의 관할 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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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운봉 지리산 등정기 (박내옥)

智異山 天王峰 1980년 5월 3일 ∼ 5월 5일 지리산 기슭에서 태어난 내가 천왕봉에도 못올라봄이 한스러워 연초부터 계획을 세우고 여기저기 등산 정보를 수집하였다. 우선 내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가장 쉬운 코스를 물색하기 위함이었다. 심지어는 中山里 국민학교 교장한테 문의 편지를 내어 친절한 회답을 받기도 했다.[1] 마침 어린이 날 연휴를 맞아 「설암 산악회」에서 천왕봉 등정을 한다기에 나도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그러나 날씨가 문제였다. 연속 7주째 주말만 되면 비가 내렸는데 5월 3일 토요일에도 비가 예상된다는 예보였다. (故 박정희 대통령의 원혼이 주말 날씨를 궂게 만든다는 속설마저 나돌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지리산으로 출발하는 주말 오후부터 가랑비(細雨)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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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운봉 운봉의 환경

운봉 박씨 자손 중에 현재 운봉에 거처를 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방 전후부터 대처(大處)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2000년 이전에 모두 고향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직 선영에 여러 조상 묘가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운봉의 지리와 역사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1] 지리적 환경 운봉은 '구름에 싸인 봉우리'라는 지명 그대로 지리산 주능선의 북서부에 위치한 분지에 자리잡고 있다. 남동쪽으로 덕두산(1150m)등 해발 100m가 넘는 산들이 연이어 있으며, 북쪽으로 황산, 서쪽으로는 고남산(846m)에 둘러싸여 있다. 산골짜기에서 동천, 서천이 흘러나와 그 주변에 들판이 펼쳐져 있는데, 처음 와보는 사람은 산 속에 갑자기 넓은 평야가 나타나므로 깜짝 놀라게 마련이다. 지리산 등반을 하는 경우 대부분 88 고속..

댓글 고향 운봉 2020. 8.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