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이야기

펜보이 2007. 6. 25. 11:33
 

오디오에서 음악으로 가는 길

 

신항섭(미술평론가)


종교는 이상적인 세계를 내세에 두고 있다. 이는 현실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그래서일까. 종교는 현실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도 내세에서는 가능하다고 일러준다. 종교는 살아 있는 인간의 욕망이란 결코 채워질 수 없으니 원하는 것은 모두 내세에 가서 찾으라고 이른다. 다시 말해 이상세계로 가는 방법과 길이 다름 아닌 초월적인 인간인 신의 말씀에 있으니 그를 따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와서 우리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살다가 일체의 욕망을 끊고 완전한 인격체로 다시 태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은 신의 존재는 그래서 인간의 귀감이자, 경배의 대상이 된다. 이상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내세로 가는 길은 오직 신의 존재를 통해서만 가능하고 한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상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절망은 바로 이로부터 시작된다. 현실에는 이상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이 맞닥뜨리는 절망이다. 그러니 그 절망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탈출시켜 영생이 가능한 이상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필경은 종교에 귀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는 듯싶다.

오디오를 취미로 하는 메니어들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이상적인 재생음에 도달하겠다는 꿈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오디오를 생산하는 이들은 이상적인 재생음은 자기들이 만든 오디오 기기로 가능하다고 선전한다. 그런 달콤한 유혹에 빠져드는 오디오메니어들은 쉽사리 하이엔드 신봉자가 되고 만다. 그러기에 초고가의 하이엔드 기기를 소유하지 못하는 한 언제나 자신의 오디오가 불만족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매불망 꿈꾸는 하이엔드 기기를 소유하는 것으로써 정말 단숨에 오디오 재생음악의 이상향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메니어가 정말 있기나 하며, 또한 하이엔드는 과연 궁극의 소리일까.

불행하게도 초고가의 하이엔드 기기를 사용하는 그 어떤 메니어도 더 이상 갈데 없는 이상적인 오디오음악이 바로 하이엔드에 있음을 단언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 하이엔드도 결과적으로는 이상적인 오디오 재생음악으로 가는 한 과정일 따름이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메니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재생음악이란 그 어떤 하이엔드도 해결해 줄 수 없는 막연한 목표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종교에서 말하는 이상향이 어떠한 세계인지 알 수 없듯이 오디오의 이상적인 재생음이 어떠한 것인지 우리는 정확히 알고 있지 않다. 이상적인 재생음이란 목표를 가늠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가치이기에 그렇다. 이렇게 말하면 음악 홀에서 열리는 실제의 연주가 오디오 재생음의 기준이자 목표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잡한 전자회로를 통해 재생되는 오디오 음악이 실제의 연주와 결코 동일할 수도 없으려니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다.

물론 오디오 엔지니어들은 목표가 있어야 하니 실연에 가장 가까운 음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오 재생음악이란 최종적으로 스피커라는 재생장치를 거쳐 나오는 소리에 불과하기에 어떠한 경우라도 악기의 실연과는 같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보면 오디오의 이상적인 재생음을 실연에서 찾는 것은 오디오엔지니어 또는 오디오숍의 상업적인 전략에 동조하는데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복잡한 전자회로를 거쳐 나오는 오디오의 재생음악을 실연에 견준다거나 이상적인 음악으로 생각하는 것조차 잘못된 일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오디오메니어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오디오 재생음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일까. 과연 그럴까. 하지만 그렇게 낙담할 일은 아니다.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이상적인 재생음을 오디오 기기에서만 찾으려고 하는데 있다. 아무리 고가의 오디오라고 해도 메니어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간의 귀란 참으로 간사스럽고 또 민감해서 아주 미묘한 부분의 차이도 감지해내는 능력이 있다. 이처럼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기에 오디오 기기를 통한 재생음에 완전히 승복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초고가의 기기라고 할지라도 어차피 악기 자체의 음과는 다른 전자회로를 거쳐 재생되는 만큼 완벽한 실연의 재현은 기내난망이다. 오디오 기기는 차가운 이성이 만들어내는 과학의 산물인 것이다. 반면에 오디오에서 재생되는 음악 자체는 인간의 감정을 담고 있다. 인감의 감정이 담긴 음악을 재생하는 장치는 전자기계이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차가운 전자기계 장치로 음악을 재현하는 일도 그러하거니와 거기에서 이상적인 재생음악을 기대하는 일은 모순이다. 과학과 음악이 만났다는 일 자체 처음부터 억지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이상적인 재생음악을 추구하는 일 또한 자연스럽지 못하다. 자연스럽지 못하기에 이상적인 재생음악에 대한 기대는 처음부터 허공의 뜬구름 잡기인 셈인지 모른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청각의 영역이자 기능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음악을 감상하는 일은 단순히 청각의 작용에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소리 자체는 청각을 통해 인지하고 인식하지만 그 소리 속에 담긴 음악을 이해하는 것은 정신 및 감정의 영역이다. 즉, 소리를 울리는 것은 악기인데 반해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인간의 정신 및 감정이다. 따라서 오디오 기기는 소리만을 울려주고 그 소리에서 음악을 뽑아내는 것은 메니어의 정신과 감정의 소관이다. 기계는 단순한 소리를 재생해주는데 그친다는 말이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청각을 이용한 마음의 작용인 셈이다.

오디오 기기로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시각을 바꿔보면 어떨까. 즉 발상의 전환을 통해 오디오 재생음악을 새로운 관점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오디오 기기가 이상적인 재생음악을 실현시켜 줄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이제부터는 그 상대적인 존재인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어떨까. 다시 말해 오디오 기기에 집착할 일이 아니라 나를 ‘하이엔드 메니어’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하이엔드 메니어라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해 고급스러운 미적 감각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고급스러운 미적 감각이란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고상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문화에도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존재하듯이 한 인간의 정신 및 감각 또한 마찬가지다. 온전한 인격을 갖추고 교양미가 있으며 지식이 풍부한가 하면 아름다움을 즐기고 또한 사랑이 넘치는 인간은 고급하다고 할 수 있다. 고급문화는 바로 이처럼 고급한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오디오 재생음악을 즐기는 일 또한 고급문화에 속한다. 값비싼 오디오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고급하다는 뜻이 아니라, 오디오 기기에서 재생되는 음악이 고급하기 때문에 고급문화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그러나 오디오 기기를 갖추고 아름다운 음악을 즐긴다고 해서 반드시 고급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은 잠시 유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음악을 즐기지 않고 오직 오디오 기기에만 탐닉하는 메니어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소유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오디오 기기를 탐한다면 그 행위는 저급한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다. 음악의 아름다움 따위는 관심 밖이고 보다 비싼 기기를 소유하는 즐거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고급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비싼 보석과 의상으로 치장했더라도 교양미가 없으면 천박해 보이듯이, 초고가의 오디오 기기를 소유했어도 진정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역시 천박한 취미일 따름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진정한 오디오 메니어가 되기 위해서는 나로부터의 혁신 또는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음악이란 어떠한 종류이든 간에 인간의 고고한 정신세계 및 풍요로운 감정의 세계를 반영한다. 작곡가가 악상을 음표라는 기호를 오선지 위에 조합해 만들어내는 악보는 추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작곡가는 오선지 위에 그려지는 기호를 자신의 마음속으로 재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악상을 음표로 바꾸어 악보를 만들고 그 악보 위에 그려진 음표를 통해 악상을 재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악보의 음표 속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음악의 세계가 전개된다.

연주자는 악보를 통해 작곡가의 악상을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다. 물론 연주자도 연주를 하면서 자신의 해석이나 감정을 싣게 된다. 이때 악보는 단순히 악기를 울릴 수 있는 약속된 기호의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작곡가는 음표 속에 그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이나 지식 또는 미의식 및 감정을 담기에 그렇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악보에 충실하는 것만으로 좋은 연주가 될 수 없다. 악보에는 필연적으로 작곡가의 작곡의도 및 내면세계가 숨겨져 있는 까닭이다.

이렇듯 음악은 생각보다 복잡하여 연주자나 그를 감상하는 음악애호가나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작곡가의 사상이나 철학 인생관 국가관 세계관 따위의 내면적인 세계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멜로디나 리듬 화성 등 음악의 기본요소를 충실히 따르는 것만으로는 좋은 연주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비싼 오디오 기기로 재생한다고 할지라도 그 연주되는 음악 속에 담긴 깊이를 감지하고 감득할 수 없다면 훌륭한 메니어라고 할 수 없다.

훌륭한 메니어가 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음악 속에 담긴 풍부한 음악적인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각을 아주 예민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음악 속에 담긴 작곡가의 혼과 만날 수 있어야 하고 연주가의 해석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음악과 관련한 기본적인 소양은 물론 타 분야의 예술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이해 및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음악이란 예술의 한 분야로서 서로 연관성을 가지는 부분이 적지 않기에 그렇다.

음악 속에 담긴 작곡가의 사상 및 철학 그리고 서정적인 이미지 따위의 내용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문학적인 이해방식을 필요로 하며, 악상을 형상으로 조합해내는 데는 미술의 조형감각이 필요하다. 그림이나 연극 또는 무용 따위의 타 분야 예술을 통해 악상을 얻은 작곡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아무튼 고급한 음악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는 고급한 문화예술에 대한 소양을 넓히는 일이 필요하다. 음악회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짬을 내어 미술전람회나 연극 영화 그리고 무용 따위의 주변 예술공연에 시간을 할애할 일이다. 그러다 보면 미적인 감수성 및 감각이 아주 민감해지게 되며 심미안이 생기게 된다. 모든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가짐으로 오디오 재생음악을 듣게 되면 음악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음악 속에는 우리의 귀로 듣는 것만으로는 다 이해되지 않는 무한한 아름다움의 세계가 자리한다. 공간으로 치자면 우주와 비견될 수 있을까.

음악에 의해 자극되는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곧 음악이 거느리는 영역이다. 음악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작곡가 자신의 체험과 지식을 포함하여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은 그 곡을 만든 작곡가와 그 곡을 해석하는 연주자의 합작품이며, 그를 완성하는 것은 음악애호가이고 오디오 메니어이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단순히 귀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 상태가 되면 마침내 하이엔드 기기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에서 헤어나게 될 것이다. 하이엔드의 환상에서 빠져 나오는 그 순간이야말로 다름 아닌 오디오 재생음악의 이상세계인지 모른다. (신항섭)


<이 글은 국내 오디오메이커인 사운드포럼의 '오디오컬럼'란에 쓰고 있는 내용입니다>